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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의 공관장 앞 비밀전문 “2차에서 뒤집는다”
12국 공관 설치 발표, ‘양두구육 외교’ 물밑 거래?
연결된 강서구청장 보선·부산 엑스포·총선 ‘3대 참패’
대통령실과 외교부 한통속 실정, 국회가 바로잡아야
오태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실장
윤석열 정권의 집권 2년 성적은 참담합니다. 나라 안팎에서 모두 낙제점입니다. 윤 정권이 내·외정에서 거둔 ‘3대 참패’가 모든 걸 말해줍니다. 시간순으로 보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2023년 10월 11일) 참패,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결정(2023년 11월 20일) 참패, 제22대 총선(2024년 4월 10일) 참패가 그것입니다.
이 세 가지 참패는 서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3대 참패를 관통하는 열쇳말은 ‘무지’와 ‘오만’, 그리고 ‘무반성’입니다. 미리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했다면 일어날 수 없었던 일이, 무지와 오만이 윤 대통령의 눈을 가리는 바람에 폭풍처럼 들이닥쳤습니다. 모두 그가 자초한 화입니다.
앞의 참패를 교훈 삼아 제대로 반성이라도 했다면 뒤의 참사는 막을 수도 있었겠지만, 반성 없는 태도가 제2의 참사, 제3의 참사를 불러왔습니다. 4·10 총선에서 참패한 뒤에도 ‘정책 방향은 옳았는데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라고 버티는 윤 대통령의 태도를 보면 제4, 제5의 참사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서로 연결된 강서구청장 보선·부산 엑스포·총선 ‘3대 참패’
윤 대통령의 실정에 명확하게 ‘아니오’ 판정을 내려 준 3대 참사 중에서, 2030 부산 엑스포 참사가 가장 기억에서 흐려지고 있습니다. ‘이채양명주(이태원 참사-채 상병 죽음–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명품 가방 수수-도이치 모터스 주가조작)’로 표현되는 내정 실패의 그림자가 워낙 짙어 그에 파묻힌 감이 있습니다. 긴급하게 추궁해야 할 내정 실패가 한둘이 아니어서 우선순위에서 밀렸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부산 엑스포 참사는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 원인을 규명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잘못을 바로잡고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이 사안은 내치과 외정의 실패가 함께 섞여 있다는 점에서, 더욱 준엄하게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부산 엑스포 참사는 윤 정권이 한국 외교의 방향과 목표를 ‘글로벌 중추 국가(Global Pivot State, GPS)’로 삼은 것이 얼마나 허황한 꿈인지도 잘 보여줬습니다. 글로벌 중추 국가를 추구한다고 간판을 걸어놓은 채 친미-친일 추종 외교로 일관한 ‘양두구육’ 외교의 결정판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9대 119라는 당시 표결 결과는, ‘심리적 G7’ 또는 ‘G7 플러스’를 운운하다가 올해 6월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 초청도 받지 못한 윤 정권의 허장성세 외교의 민낯을 미리 까발려 준 선행 지표였습니다.
그럼, 왜 엑스포 참사 추궁이 꼭 필요한지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짚어보겠습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오른쪽부터),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박형준 부산시장, 한덕수 국무총리,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장성민 대통령실 미래전략기획관을 비롯한 대표단이 28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외곽 팔레 데 콩그레에서 열린 제173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2030년 세계박람회 개최지 투표 결과 부산이 탈락하자 아쉬워하고 있다 2023.11.29. 연합뉴스
‘양두구육 외교’ 물밑 거래였나, 12개국 공관 설치 발표
외교부는 2030 엑스포 유치국을 결정하는 투표를 3주 앞둔 2023년 11월 7일, 느닷없이 24년까지 12개국에 재외공관을 추가로 개설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룩셈부르크, 리투아니아, 마셜제도, 보츠와나, 수리남, 슬로베니아, 시에라리온, 아르메니아, 에스토니아, 자메이카, 잠비아, 조지아가 그들 나라입니다. 한꺼번에 12개국의 공관을 신설하는 것은, 건국 이후 최초입니다. 남북이 국제무대에서 각국의 지지를 얻으려고 공관 늘리기 경쟁을 맹렬하게 벌였던 냉전 시대에도 없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국제박람회기구(BIE) 누리집을 살펴보니, 이들 12개국 중 룩셈부르크를 뺀 11개국이 모두 국제박람회기구 회원국이면서 한국의 공관이 없는 나라들입니다. 룩셈부르크도 회원국은 아니지만 한국의 박람회 유치 행사에 총리를 비롯한 고위 관리가 자주 얼굴을 내민 것으로 봐, 엑스포 유치 활동과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그냥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공관 설치 약속을 미끼로 부산에 찬성표를 던져 달라고 물밑 거래를 했다면 보통 일이 아닙니다. 국제적으로는 ‘매수 행위’이고, 국내적으로는 국고의 낭비입니다. 공관 하나를 추가로 설치하고 운영하려면, 공관과 공관장 관저, 직원 인건비를 포함해 아무리 작은 공관이라도 한 해에 수십억 원은 족히 들어갑니다. 지금도 외교부는 세계 곳곳에 모두 188개 공관을 유지·운영하고 있습니다. 차제에 12개를 더 늘려 200개를 채워 ‘공관 수 분야 금메달’을 딸 요량인 줄 모르겠지만, 지금도 적은 인원에 많은 공관을 운영하느라 질 높은 외교를 할 수 없다는 불만이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실정입니다.
2030 부산 엑스포 유치전의 참담한 실패 하루 뒤인 29일 부산 해운대구청사 외벽에 걸렸던 엑스포 응원 현수막이 철거되고 있다. 2023.11.29. 연합뉴스
공관장에 보낸 충격의 비밀전문, ‘2차에서 뒤집을 수 있다’
또 외교부는 엑스포 유치 결정 일주일 정도를 앞두고는 국제박람회기구 회원국 공관장들에게 투표 때까지 교섭에 활용하라면서, ‘부산세계박람회 판세 메시지 송부’라는 제목의 비밀전문을 보냈습니다. 공관장에게 마지막까지 유치에 힘쓰라고 독려하는 것이야 무슨 문제겠습니까마는 그 내용이 자못 충격적입니다. ‘본부의 판세 분석에 따르면, 사우디가 120표 이상을 얻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고 1차 투표에서 약간의 표 차가 있을 수 있으나 한국이 2차 투표에서 이를 만회하고도 남을 표를 확보하고 있다’라는 내용입니다. 특히, 대다수 국가도 2차 투표에서 유치국이 결정된다고 보고 있고 1차 투표에서 사우디를 지지했던 나라들도 2차에서는 태도를 바꿔 한국을 지지하기로 했다고 전했습니다.
투표 결과가 보여줬듯이, 모두 거짓된 내용입니다. 외교부가 정말 그렇게 판단했다면 정보 수집 및 판단력이 제로였다는 걸 확인해 주는 것입니다. 이런 판세가 거짓임을 알고도 비밀전문을 공관장에게 발송했다면 더 문제입니다. 한국 외교의 최일선에서 일하고 있는 공관장을 바보로 만든 처사니까요.
이 전문은 재외 공관장, 외교부 본부의 장관, 1차관, 2차관, 경제조정관, 차관보 등 주요 간부뿐 아니라, 대통령실의 미래전략관실과 국가안보실까지 공유됐습니다. 이제까지는 외교부가 실상을 알고 있었으나 대통령실의 벽에 막혀 제대로 보고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정설처럼 돼 있었지만, 이 전문은 외교부도 한 배에 타고 있었다는 걸 말해줍니다. 물론 외교부 자체 판세 분석은 달랐는데 대통령실에서 내려온 모종의 압력에 굴복해 이런 거짓 내용의 전문을 보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욱 더 진상을 파헤쳐야겠지요.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19일 서울 서대문구 인왕시장에서 박진 후보(서대문 을)과 함께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2024.3.19. 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이 29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광장에서 안삽갑 장성민, 안산을 서정현, 안산병 김명연 후보와 함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2024.3.29. 연합뉴스
대통령실과 외교부의 한통속 외교 실정, 국회가 바로잡아야
3대 참사 중에서, 윤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앞에 나와 사과를 한 것은 부산 엑스포 참사가 유일합니다. 윤 대통령은 유치 실패가 결정된 당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부산 시민뿐 아니라 우리 전 국민의 열망을 담아 민관 합동으로, 범정부적으로 2030년 부산 엑스포 유치를 추진했지만 실패했다”라면서 “이 모든 것은 전부 저의 부족”이라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상한 건, 윤 대통령의 이례적인 사과에도 불구하고 후속 문책 인사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채 상병 사망 수사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전부 승진 또는 우대를 받았듯이, 부산 엑스포 참사의 주역들도 모두 후대를 받았습니다. 외교 수장이었던 박진 외교부 장관은 총선에서 서대문을 후보로 단수 공천됐고, 외교부 안에서 실무 책임을 맡았던 오영주 제2차관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승진·발탁됐습니다. 대통령실에서 호가호위하며 부산 엑스포 유치를 총지휘했던 장성민 미래전략기획관도 문책은커녕 총선에서 안산갑 후보로, 전략 공천됐습니다. 엑스포 유치 활동을 한답시고 총리 역사상 가장 빈번하게 ‘해외순방 놀이’를 즐겼던 한덕수 총리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다가 총선 패배 뒤에야 사임 의사를 밝혔습니다.
대통령이 사과했는데도 실무자들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은, 대통령실과 실무자들의 생각이 똑같았다는 것 말고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더욱 더 외부의 감시와 견제, 추궁과 신상필벌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제22대 총선은 윤석열 정권의 내치뿐 아니라 외정도 준엄하게 심판했습니다. 이런 결과에 따라 탄생할 새 국회는 방향을 잘못 잡은 채 헤매고 있는 한국 외교를 바로잡을 책임도 지고 있습니다. 청문회를 하든, 국정조사를 하든, 더욱 강한 다른 무엇을 하든, 그것을 위한 첫걸음은 부산 엑스포 참사의 원인과 과정을 파헤치고 따져 묻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출처 : ‘부산 엑스포 참사’, 최소한 국정조사 감이다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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