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덕무 「詩의 溫度」] ⑳ 봄날 작은 모임(春日小集)
해 길고 봄 깊어 나무문 고요한데
높은 누각 모임 인기척 별로 없네
산들산들 바람 눈 흐릿하게 스쳐 가고
부슬부슬 가랑비 나비 날개 적시네
하늘하늘 아지랑이 그윽이 풀 덮고
울울창창 나무 예쁜 새 돌아오기 알맞네
듬성듬성 발 시원한 기운 꽉 찼으니
술이랑 사양 말며 봄빛에 보답하세
日白春靑靜板扉(일백춘청정판비)
高樓讌坐客跫稀(고루연좌객공희)
輕颸剪剪經花眼(경시전전경화안)
微雨絲絲褪蝶衣(미우사사퇴접의)
娿娜煙能幽草覆(아나연능유초복)
丰茸樹可艶禽歸(풍용수가염금귀)
疏簾滿貯蕭閑氣(소렴만저소한기)
報答韶光酒莫違(보답소광주막위)
―『아정유고 3(雅亭遺稿 三)』 이덕무(李德懋, 1741-1793)
✺ [이덕무 「詩의 溫度」] ⑳ 가을날에 대경당집을 읽다(秋日讀帶經堂集)
높고 맑은 가을 기운 나무가 먼저 아는데
따뜻함과 서늘함 모두 잊고 멍청이가 되었네
벽은 고요해 온갖 벌레 시끄럽게 울어대고
발은 비어 한 마리 새 익숙하게 서로 엿보네
돈 욕심 버리기를 더럽힐 것처럼 여기니
나를 책벌레라 불러도 사양하지 않으리
중주의 좋은 일을 공연히 아름다워 부러워함
요봉 왕완의 문필과 완정 왕사문의 시라네
泬寥秋令樹先知(혈료추령수선지)
任忘暄涼做白痴(임망훤량주백치)
壁靜萬蟲勤自語(벽정먼충근자어)
簾虛一鳥慣相窺(염허일조관상규)
抛他錢癖如將浼(포타전벽여장매)
呼我書淫故不辭(호아서음고불사)
好事中州空艶羨(호사중주공염선)
堯峯文筆玩亭詩(요봉문필완정시)
*帶經堂集(대경당집] : 淸(청)나라 시인 王士禎(왕사정,1634-1711)의 저서. 원래 이름은 士禛(사진), 호는 阮亭(완정), 漁洋山人(어양산인). 당송의 시풍을 받은 神韻説(신운설)의 주창자.
*泬寥(혈료) : 높고 맑게 갠 하늘. 공허하게 넓은 모습.
*秋令(추령) : 가을 철, 가을 날씨.
*錢癖(전벽) : 병적으로 돈에 집착하는 버릇.
*書淫(서음) : 글 읽기를 지나치게 즐김. 또는 그런 사람.
*堯峯(요봉) : 汪琬(왕완)의 호,
*阮亭(완정) : 王士禎(왕사정)의 호. 이들 모두 청나라의 문장가였는데, 왕완은 文(문)에, 왕사정은 시(詩)에 더욱 능하였다.
―『아정유고 2(雅亭遺稿 二)』 이덕무(李德懋, 1741-1793)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고 가는 게 삶이다. 물론 냉정과 열정 사이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온도가 존재한다. 따뜻함, 미지근함, 뜨거움, 시원함, 서늘함, 차가움 등등. 냉정(冷情)보다는 온화(溫和)함이 좋듯이 뜨거움보다는 따뜻함이 좋다. 열정(熱情)보다는 평정(平靜)함이 좋듯이 차가움보다는 서늘함이 좋다.
이덕무의 삶과 글에도 따뜻함과 서늘함이 공존한다. 사람과 세상과 자연 만물을 바라볼 때는 따뜻함이 느껴지다가도 재물과 권력과 명예와 출세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뜻을 지킬 때는 서늘함이 느껴진다. 사람은 따뜻할 때는 마땅히 따사한 봄날처럼 따뜻해야 하고 서늘할 때는 마땅히 가을 서리처럼 서늘해야 한다.
「詩의 溫度」/ 저자 <이덕무李德懋(1741~1793)>, 편역 <한정주>역, 출판사: 다산초당, 출간일: 2020.02.17.
✵이덕무(李德懋, 1741~1793) : 규장각(奎章閣)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서적을 정리·교감했고, 고증학(考證學)을 바탕으로 한 많은 저서를 남겼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무관(懋官), 호는 아정(雅亭)·청장관(靑莊館)·형암(炯庵)·영처(嬰處)·동방일사(東方一士).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성호(聖浩)이다. 서자(庶子)로 태어났다.
어려서 병약하고 집안이 가난하여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으나, 총명하여 가학(家學)으로 문리(文理)를 터득했다. 약관의 나이에 박제가(朴齊家)·유득공(柳得恭)·이서구(李書九)와 함께 〈건연집巾衍集〉이라는 시집을 내어 문명을 중국에까지 떨쳤다. 이후 박지원(朴趾源)·박제가(朴齊家)·홍대용(洪大容)·서이수(徐理修) 등 북학파(北學派) 실학자들과 교유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또한 고염무(顧炎武)·주이존(朱彛尊)·서건학(徐乾學) 등 중국 고증학파의 학문에 심취하여, 당대의 고증학자였던 이만운(李萬運)에게 지도를 받았다.
1778년(정조 2) 사은 겸 진주사(謝恩兼陳奏使) 심염조(沈念祖)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淸)의 연경(燕京)에 갔다. 이때 기균(紀均)·당악우(唐樂宇)·반정균(潘庭均)·육비(陸飛)·엄성(嚴誠)·이조원(李調元)·이정원(李鼎元)·이헌교(李憲喬)·채증원(蔡曾源) 등 당대의 석학들과 교유했다. 돌아올 때 그곳의 산천(山川)·도리(道里)·궁실(宮室)·누대(樓臺)·초목(草木)·충어(蟲魚)·조수(鳥獸)에 이르는 기록과 함께 많은 고증학 관계 서적을 가지고 왔는데, 이것은 그의 북학론 발전에 큰 보탬이 되었다.
1779년 박제가·유득공·서이수 등과 함께 초대 규장각 외각검서관(外閣檢書官)이 되었다. 근면하고 시문(詩文)에 능했던 그는 규장각 경시대회(競詩大會)에서 여러 차례 장원하여 1781년 내각검서관(內閣檢書官)이 되었으며, 사도시주부(司䆃寺主簿)·사근도찰방(沙斤道察訪)·광흥창주부(廣興倉主簿)·적성현감(積城縣監) 등을 거쳐 1791년 사옹원주부(司饔院主簿)가 되었다. 그는 규장각의 도서편찬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대전통편 大典通編〉·〈규장전운 奎章全韻〉·〈기전고 箕田攷〉·〈도서집성〉·〈국조보감〉·〈규장각지〉·〈홍문관지〉·〈검서청기 檢書廳記〉·〈시관소전 詩觀小傳〉·〈송사전 宋史筌〉 등을 정리·교감했다.
1793년 병사(病死)했는데, 정조는 그의 공적을 기념하여 장례비와 유고집인 〈아정유고雅亭遺稿〉의 간행비를 내렸다. 서화(書畵)에도 능했다. 저서로는 〈영처시고嬰處詩稿〉·〈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기년아람紀年兒覽〉·〈사소절士小節〉·〈영처문고嬰處文稿〉·〈청비록淸脾錄〉·〈뇌뢰낙락서磊磊落落書〉·〈영처잡고嬰處雜稿〉·〈관독일기觀讀日記〉·〈앙엽기盎葉記〉·〈입연기入燕記〉·〈열상방언洌上方言〉·〈예기고禮記考〉·〈편찬잡고編纂雜稿〉·〈협주기峽舟記〉·〈천애지기서天涯知己書〉·〈한죽당수필寒竹堂隨筆〉 등이 있다.
[자료출처 및 참고문헌: 《이덕무 「詩의 溫度」, 저자: 이덕무, 편역: 한정주(역사평론가), 다산초당, 2020.02.7.》, 《Daum, Naver 지식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고앵자,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