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모돈 50마리나 폐사 비상
임상관찰 미흡.늑장 대응 원인
정부 멧돼지 감축 등 관리 허술
불법 잔반급여 행태 통제 못해
한돈업계 '강력한 대책 시행을'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사태가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올들어 농장에서 ASF가 끊이지않고 발생하는 가운데 최근 대규모 사육 밀집지까지 파장이 번지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ASF 발생이 잇따르는 이유를 진단하고 대책을 모색한다.
전문가, 50마리 폐사'에 주목...농장 방역의식 약화 지적
20일 포천 농장에서 ASF가 확진된 사례와 관련해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건 모돈(어미돼지) 폐사 마릿수다.
해당 농장에선 18~19일 이틀에 걸쳐 모두 50마리의 모돈이 폐사한 것으로 방역당국에 보고됐다.
이는 그간 국내 농장에서 발생한 사례 가운데 가장 많은 수치다.
이전에는 발생 농장에서 평균적으로 모돈 3마리 가량이 폐사했는데, 해당 농장의 사육규모(1만2842마리)가
평균적인 농장 수준(약 2000마리)을 크게 뛰어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폐사율이 두드러진다.
농장주의 ASF 의심신고는 19일 18시경에 이르러서야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농장에서 임상관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초기 대응도 늦은 것으로 평가되는 대목이다.
조호성 전북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는 '포천은 올초에도 ASF가 발생했고, 멧돼지 발생 사례도 지속돼온 위험지역인데
모돈이 면밀하게 관리되지 못하고 빠른 신고도 이뤄지지 못했다'면서
'발생원인을 조사하고 있지만 결국은 방역의식 악화가 주된 요인일 것'이라고 짚었다.
실제로 올해 발생한 다른 4건의 사례를 분석해보면 농장 방역관리가 미흡했던 지점이 적지 않다.
포천의 또다른 발생 농장에선 축사 입구에 전실이 설치되지 않거나 신발소독조가 비치되지 않은 사례가 확인됐다.
2월 강원 양양의 발생농장에선 양돈단지 출입기록 관리가 미흡했고, 축산차량의 차량무선인식장치 전원을 차단하는 등
기본 방역수칙이 무시됐다.
정승헌 전 건국대학교 축산학과 교수는 '멧돼지로 ASF가 전파됐을 가능성이 큰데,
멧돼지가 직접 농장 안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사람과 차량을 통해 바이러스는 얼마든지 전파 가능하다'면서
'농가가 더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차단방역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돼지수급 악영향.방역 강화 불가피
방역당국, ASF 멧돼지 관리 실패...잔반 급여 사례도 지속
최근 방역 당국의 느슨한 방역관리도 ASF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현재 ASF 감염 멧돼지는 경북 상주까지 남하한 상태이며, 최근에는 경북 영덕에서도 감염 개체가 발견된 바 있다.
전체 멧돼지 감염 사례는 3000건에 달한다.
이처럼 ASF 감염 개체가 계속 남하하는 것을 막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기존 ASF가 발생 한 지역에 대한 멧돼지 포획 발견 사례가 최근 크게 줄어든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올들어 ASF 발생 농장은 경기 포천.김포, 강원 철원.양양 등 중부 이북지역에 집중돼 있는데,
해당 지역에서 최근 ASF 감염 폐사체가 발견된 사례가 드문 것으로 집계됐다.
실제로 포천에서도 올해 2 차례나 ASF가 발생했지만 멧돼지 감염 개체가 발견된 건 지난해 3월이 마지막이었다.
양기원 포천축협 조합장은 'ASF 감염 멧돼지가 도처에서 확인됐지만 환경부가 이를 제대로 감축하지도,
폐사체를 제대로 발견하지도 목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멧돼지가 더욱 활발해지는 시기가 도래하기 전에 멧돼지 감축과
폐사체 관리방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SF 주요 전파 원인 가운데 하나인 잔반 급여가 전국 곳곳에서 횡행한 점은 또 다른 방역 '구명'으로 꼽혔다.
최근 본지 취재 결과 이런 문제가 전국 각지에서 다수 확인됐지만 일선 지방다치단체에선 이를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돈업계 한 관계자는 '전세계 어느 양돈 선진국을 보더라도 멧돼지와 잔반 급여에 대한 통제는 ASF 예방의 기본으로 여기는데
국내에서 ASF 발생이 지속된다는 건 정부가 이같은 기본 관리에 실패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면서
'정부는 그간 방역대책을 되돌아보고 지금이라도 강력한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돼지 수급에 악영향...방역 강화
이번 포천 ASF 발생은 돼지 수급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다.
발생 농장을 포함해 방역대에 손한 돼지는 모두 18만여마리에 달한다.
이는 국내 전체 돼지 사육머릿수의 1.7%에 달하는 수치다.
방역대에 속한 돼지는 이미 이동제한 조치를 취했다.
22일 기준 발생 농장을 포함해 일부 농장에 예방적 살처분을 진행하고 있으며 일각에선 살처분 범위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덕래 한국육류유통수출협회 국장은 '이번 이동제한 조치에 포함된 물량은 돼지 경락값 상승에도 영향을 미치며
나아가 소비시장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 내부에선 ASF 위기경보를 하향하는 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번 ASF 발생으로 이런 움직임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ASF 위기경보는 2019년 9월 국내 ASF 첫 발생 이후 4년째 최고 단계인 '심각' 단계를 유지해왔다.
농가와 방역요원의 피로도가 누적되면서 정부는 이를 하향하는 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20일 포천 양돈농장의 ASF 발생은 확진사례 가운데 단일 농장 규모로는 최대 규모인 데다 80개에 달하는 농장이
인근에 위치한 양돈 말집지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위기경보 하향 논의를 이어갈 명분이 크게 떨어지게 됐다는 평가다.
농식품부는 21일 'ASF 등 가축전염병 예방을 위해 양돈농장에서 준수해야 할 추가 방역 기준'을 공고하며 농가에 방역수칙을
준수할 것을 강조했다.
농식품부는 '위기경보 심각단계가 해제되기 전까지 농장에 차량이 진입할 때 거점소독시설에서 발급한 속독필증을 확인하고
이를 보관해야 하며, 모든 출입차량에 2단계 소독을 시행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반하면 10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되며
위반 농가에서 ASF 발생 때는 살처분 보상금 5%가 감액될 수 있다'고 밝혔다. 포천=박하늘.최소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