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7년의 혁명
2006년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올해의 인물로 ‘당신'(YOU)을 선정했다.
그해는 UCC(User Created Contents,
사용자제작콘텐츠)와 SNS(Social Network Service,
사회관계망서비스) 등 사용자 참여형
웹 2.0이 모습을 드러내던 시기였다.
인터넷 세상의 개인들이 뭉쳐 만든 민주화된
권력이 세계 변화를 추동하는 힘으로 꼽힌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2006년의 사이버 세상을 되돌아보자면
마치 철기시대 사람이 석기시대를 돌아보는 것과 같은
간극이 느껴지지 않는가?
둘 사이 시간을 아득하게 벌여 놓는 절벽에 2007년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등장과 함께 깃발이 올랐던 ‘모바일 혁명’이 놓여 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2006년에는 지구상에 ‘스마트폰’이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전자수첩이나 PDA 같은 기기들이 있었지만
개념, 기능, 대중성 면에서 비교 대상으로 보긴 어렵다.)
취업포털 ‘사람인’은 직장인 1159명을 대상으로
‘회사생활을 하면서 의존하는 대상’에 대해 조사한 결과
’스마트폰‘이 1위(40.4%)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수준에 몇 살 안 된 발명품이지만
수십 년 전통의 기호품인 커피(38.5%), 인터넷검색(35.2%),
담배(26.4%)를 모두 따돌렸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스마트폰이 있는
영국 사람의 80%는 일어나고 15분 안에 스마트폰을 열어
메시지나 뉴스를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10%는 섹스 중에도 스마트폰을 쓴 적이 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의 사람들 5명에 4명은
스마트폰을 소유하고 있다(지난해 기준).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50대 장년층의 보유율은 2명에 한명 꼴,
초등학생 보유율은 그보다 많은 10명에 6명 꼴이다.
스마트폰이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양과 질
모두에서 상당하며 확산 속도는 엄청나다.
<이코노미스트>는 스마트폰과 엉켜 사는
신인류에게 새 이름을 붙였다.
호모 사피엔스(사람의 학술명)를 대체하는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의 탄생이다.
2. 모바일겟돈과
유비쿼터스
미국 언론과 IT업계는 ‘모바일겟돈’이라는 신조어로 떠들썩했다.
모바일겟돈이란 스마트폰 혁명으로 친숙해진
단어인 모바일(Mobile)과 세계 종말을 뜻하는
아마겟돈(Armageddon)의 합성어로 구글이 바꾼
검색 알고리즘이 몰고 올 거대한 파장을 일컫는 말이다.
내용은 단순하다.
스마트폰에서 구글 검색을 할 때 보여주는 검색 결과에서
‘모바일 친화적’인 페이지들이 더 위쪽에 올라가도록
알고리즘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검색 시장 점유율 65%, 유럽에선 90%를
기록하고 있는 구글의 정책 변경은 인터넷 검색 순위가 사업에
큰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 지금의 수많은 기업들에게 치명적이다.
국내 포털 네이버에서 검색 순위를 올리기 위해
벌이는 눈물겨운 노력들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특히 사업 규모가 작은 비즈니스일수록
이런 변경을 몰라 속수무책으로 당하거나 알면서도 웹페이지
개편에 애를 먹으면서 모바일겟돈의 희생양들이 속출하리라고 보았다.
현실 세계의 강제력이 법으로 구성되듯이,
사이버 세계의 강제력은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진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알고리즘이 무엇을
지향해 만들어지느냐일 것이다.
여기서 지향점은 ‘모바일’이다.
바뀐 법에 따라 디지털 원주민들은 작은 스마트폰
화면에서도 보기 쉽게 글자를 키우고,
링크를 클릭하기 쉽고,
다양한 화면에서도 자동적으로 화면 구성을 적응하도록
‘모바일 프렌들리’(mobile friendly)하게 자신을
변화시켜 나갈 것이다.
포노 사피엔스 시대 도래는 발 빠른 대응이
생명인 비즈니스 영역에서 앞서 나타난다.
사람들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자만이 돈을 벌 수 있다.
지난 발표기준 통계청과 유통업계 자료를 보면
온라인쇼핑몰 거래와 해외 온라인 직구(직접구매) 거래를
합한 전자상거래 전체 유통 규모는 46조9040억 원으로 앞서
국내 최대 유통 채널인 대형마트(46조6364억 원)를
제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 온라인 전자상거래 대세는 모바일이다.
시장조사업체 ‘크리테오’는 2015년 1분기 모바일 상거래
비중이 전체 전자상거래에서 과반을 넘었다고 밝혔다.
국내 최대 재벌 삼성그룹의 최고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현재 가장 중요한
캐시카우(cash cow)는 스마트폰 사업이다.
현재 시가총액 기준 세계 최대 기업은
모바일 시대의 문을 연 애플이다.
스마트폰이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이 기기는 진정한 최초의 개인 컴퓨터이며 사무실이나
거실에 우두커니 놓여 있는 데스크톱과 달리
유비쿼터스를 실현한 기기이다.
누구나 어디나 가지고 다니는
기기는 비즈니스 뿐 아니라 세상을 바꿔놓았다.
3. 중독적 일탈과
프라이버시
손에 쏙 잡히는 크기에 누구나 들고 있는 기기지만,
스마트폰의 프로세스 능력은 냉전시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인간을 달에 보낼 때 썼던
슈퍼컴퓨터보다 더 강력하다.
우리의 경제생활은 물론이고 사교 관계, 정보의 습득과 학습,
여가나 취미 생활까지 삶의 광범위한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는
스마트폰의 영향력은 놀랍다. 동시에 그 위험은 깊어진다.
<이코노미스트>는 유용성이 중독성으로 발전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손에서 스마트폰이 사라졌을 때
‘노모포비아’(nomophobia)라는 새로운
공포증세를 겪고 있다고 전했다.
노모포비아란 사라진(no) 모바일(mobile)이
불러오는 공포(phobia)를 말하는 신조어다.
세계 최대 보급률을 자랑하는
우리나라는 중독 증상도 심각한 수준이다.
미래창조과학부의 ‘2014년 인터넷중독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청소년 및 성인 스마트폰
이용자(10∼59세)의 14.2%는
중독위험군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려 456만 명에 해당하는 수치로,
전년(11.8%)에 비해 2.4%포인트나 증가했다.
특히 청소년의 중독 위험군은 29.2%로
성인의 2.6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업 스트레스가 특히 심한 우리나라에서
스마트폰은 청소년에게 일종의 탈출구이면서
한편으로 은둔과 비행의 뒷골목이 되기도 한다.
모바일 게임 중독,
‘카톡 왕따’
(메신저 카카오톡을 통한 또래 학생에 대한 사이버 괴롭힘),
메신저와 SNS를 통한 음란물 돌려보기 등이
대표적 문제 현상이다.
모바일 기술이 가져온 일탈적 병리현상보다 더 큰 문제는
일상적 통제와 감시의 가능성일 것이다.
2014년 10월 대한민국은 ‘카카오톡 사찰’ 논란으로 떠들썩했다.
검찰이 노동당 부대표 정진우씨에 대해 수사하면서
카카오톡 대화 내용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고
법원이 허가를 내면서 3000명에 달하는 지인들과
대인 내용이 수사기관에 넘어간 사건이다.
국민 메신저인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검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많은 사람들을 두려움으로
몰아넣었고 메시지 보호 기능이 강한 ‘텔레그램’ 등
해외 서비스로 망명 행렬(엑소더스)이 이어지기도 했다.
스마트폰이 개인 비서처럼 내 정보와 일상의 일체를
집적하면서 국가는 통제를 위해, 기업은 마케팅을 위해
여기에 탐을 낼 유혹이 점점 커지고 있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감시프로그램을 통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 등이 보유한
전 세계인의 개인정보에 마구잡이로 접근한 사실은
빅브라더(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독재자)의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뿐만 아니라 누구나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고성능의 소형 카메라를 지니고 산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이는 인간이 홀로 자신의 영역을 지킬 수 있는 고요한 순간,
즉 프라이버시가 종말할 때가 도래했음을 뜻하기도 한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눈이 나를 기록할지 알 수 없는 시대다.
디지털 기록은 인터넷을 통해 무한 복제 가능하고
전세계로 전파 가능하다.
친구의 폰에 찍힌 멍청한 실수로 누구나 일약
‘유튜브 스타(또는 조롱거리)’가 될 수 있고,
연인끼리 남긴 은밀한 순간의 동영상이 이별 뒤에
‘보복 포르노’(상대방에 대한 공격을 위해 인터넷에
올리는 야한 동영상)로 둔갑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4.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노 사피엔스의 미래를 어둡게만
그리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우리는 2011년 ‘아랍의 봄’에서 정보기술과
소셜네트워크가 사회 변혁에
어떤 뒷받침을 해줄 수 있는지 똑똑히 보았다.
디지털 시대의 감시는 파놉티콘(panopticon),
죄수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목적의 원형감옥.
미셸 푸코의 분석에 따르면 죄수들은 중앙 감시탑의
간수를 볼 수 없기 때문에 감시 받고 있다는 의식을
내재화 한다)보다 시놉티콘(synopticon)에 가깝다.
시놉티콘은 서로 동시에 감시한다는 뜻이다.
강력한 스마트폰은 통제의 도구이면서 폭로의 도구가 될 수 있다.
한번 인터넷에 풀린 정보는 삽시간에
모두의 손 안에서 알람을 울릴 수 있다.
미국의 문명비평가 루이스 멈포드는
저서 <기술과 문명>에서 근대 기계문명의 가장 중요한
발명품 가운데 하나로 ‘시계’를 꼽는다.
시계의 출현으로 “인간 행동의 척도이자 근간이었던
영원성은 힘을 잃어 갔다”는 것이다.
시계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 인간에게
매 순간은 영원한 가치를 지녔다.
한가한 오후의 햇살을 쬐는 순간은 그 순간으로 존재할 뿐
오후 2시34분이라는 꼬리표를 달지 않았던 것이다.
오전 7시에 일어나 낮 12시에 밥을 먹고 오후 6시에
퇴근하는 기계 문명의 삶은 시계가 없이는 탄생이 불가능하다.
“인간의 경험에서 시간을 분리해냄으로써 수학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독립적 세계, 즉 특별한 과학의 세계가
존재 할수 있다는 믿음을 싹틔웠다”는 것이 멈포드의 분석이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지 8년이 지났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진정한 모바일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앞으로 다가올 변화는 지난 2년 동안에 역사상 만들어진
데이터의 92%가 만들어진 정보 폭발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또는 개발도상국의 휴대전화 보급률이 10%포인트
올라갈 때마다 인당 경제성장률(GDP per capita)이
1%포인트씩 올라간다는
경제적 잠재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또는 스마트폰의 무수한 기능 가운데 시계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제 2의 자아와 같은 스마트폰과 그 이상의 웨어러블
기기들이 우리의 의식과 사회 구조,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지는 이제 시작에 불과한 드라마다.
작성일 : 2015년 6월 29일 작성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