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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중국사 남명(南明)에 기회는 없었을까?
워라 추천 1 조회 330 22.02.08 22:25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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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2.02.08 23:27

    첫댓글 기회도 놓치고 전략적인 판단 실수에다가 홍광제의 문제가 있었군요

  • 22.02.08 23:41

    이미 하북이 넘어간 시점에서 산동과 하남을 방어할 능력을 상실했다고 볼때 장강 회수라인에서 버티기외에는 다른 대안은 없었을 것 같습니다.

  • 22.02.09 06:42

    퍼온 글의 출처인.. 다음 블러거님은.. 중국 자료가 많아용

  • 22.02.09 07:22

    김헌창도 이런 유의 실수를 했었죠.

  • 22.02.11 21:35

    일단 송나라와 다르게 명나라는 민중봉기로 멸망했고... 송나라에서 황제와 동등한 권신들이 있어서 이게 부작용도 있지만 분권적제도라서 유연한 사고가 가능했지만 명나란 황제 독재체제라 일괄 처리를 해 관료와 황제간 유기전 관계가 아닌 일방적 관계고.. 또한 금나란 회남 이하 장강지역을 정복할 실제적 힘이 없어 최대한의 영토가 회수를 가르는 경계였지만 청나라는 일단 금나라와 다른 중원의 관료제를 적극 수용했고 명대의 시스템을 그대로 사용 했습니다. 그리고 명나라의 불운은 송나라 처럼 정부를 인정해줄 황실어른(철종황제의 후 원우황후)처럼 황실의 종친중 정통성을 인정 해 줄 사람이 없었고 황족들도 남송처럼 고종을 중짐으로 모이지도 못해 각개펵파를 당했다는 것.. 시간상 북경정부를 대신할 정부를 구축하지 못했죠.. 남경에 북경과 같은 조직을 두기 했지만 그것도 명목상의 조직이지 분조로 운영될 권한도 그것을 수행할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물론 청이 대순을 격파하고 바로 장강을 넘어 침공하지 못하고 각지에서 지리멸멸한 싸움 한 시기가 있었기에 분조가 확립되었다면 남명이 쉬이 붕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남중국은 근대까지도 살아 남아 있었을지도.

  • 22.02.11 21:38

    한가지 운도 없었는게 대순이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 주었다면 충분히 내부 정리를 하고 분조가 세워졌을 것이나 대순이 쉽게 격파 당해 회수 이북지역을 청이 상당히 빠르게 장악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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