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송이 형주 경계에 도달했을 때다. 돌연 일대의 군마가 나타나 길을 막았다. 대략 오백 여기가 되어 보였는데 그 대장이 특히 늠름해 보여 영웅의 기상이 있었다. 중무장하지 않은 것을 보고 싸울 의도로 나타난 것이 아님은 분명했다. 장수가 말 위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거기 오시는 분은 혹 장 별가가 아니신지요?”
“그렇습니다만...”
장송이 말끝을 흐리는데, 그 장수는 황망히 말에서 뛰어내리더니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조운이 이곳에서 오래 기다렸습니다.”
장송도 말에서 내려 답례를 올렸다.
“상산 조자룡 장군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저는 주공 유황숙의 명을 받들어 멀리서 오시는 공의 수발을 들기 위해 나왔습니다.”
조운이 말을 마치자 군사들이 술과 음식을 날라왔다. 조운이 정성을 다해 진상하니 장송은 현덕이 손님을 잘 대접한다는 세간의 소문을 새삼 되돌아보게 되었다. 장송은 무척 기분이 들떠 조운과 더불어 몇 잔의 술을 나누었다.
두 사람은 말에 올라 형주로 들어섰다. 술을 나누느라 시간이 지체되어 관사에 도착하자 날이 어둑해져 있었다. 그런데 관사 앞에는 또 백여 명의 사람들이 시립해 있었다. 이들은 북을 두드리며 장송을 반겨 맞았다. 한 장수가 말 앞에 서서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형님이 명하시기를 대부(大夫)께서 흙바람을 무릅쓰고 먼 길에서 오셨으니 잘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저 관우가 관사를 깨끗이 청소해 놓았습니다. 어서 드시지요.”
장송은 깜짝 놀라 말에서 내려 관우에게 인사를 올렸다. 관우, 조운은 장송과 함께 관사로 들어갔다. 다시 인사를 나눈 후에 주연을 베풀었다. 관우와 조운이 번갈아 술을 권하니 장송은 대취하여 밤이 늦은 뒤에야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관우와 조운이 장송을 호위하여 길을 나섰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한 무리의 일행을 만났다. 현덕이 공명과 방통을 거느리고 장송을 만나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현덕은 장송을 보자 먼저 말에서 내려 인사를 했다. 장송이 당황하여 말에서 내려 인사를 올렸다. 현덕이 공손하게 말했다.
“대부의 우레와 같이 크고 높은 이름을 들은 지 오래입니다. 하나 너무 멀리 떨어져 계신 탓에 가르침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성도로 돌아가시는 길이라 들었으나 어리석다 버리지 말고 잠시 머물러 주십시오. 대부를 그리워한 제 갈망에 보답을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장송은 이런 극진한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기분이 붕 떠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현덕과 함께 성으로 들어가니 이미 주연이 마련되어 있었다.
함께 술을 나누며 담소를 나누었으나 서천에 대한 질문이 도통 나오지 않았다. 현덕이 이렇게 극진하게 대접하는 것은 분명 서천에 대한 욕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짐작한 장송은 현덕이 아무 것도 묻지 않자 오히려 불안해졌다. 장송은 현덕을 떠보기로 했다.
“황숙은 형주를 지키고 계시는데 몇 군이나 가지고 계십니까?”
공명이 먼저 대답했다.
“형주는 그저 동오로부터 빌려서 얹혀 지내는 곳에 불과합니다. 늘 사신이 와서 토해내라고 하죠. 우리 주공께서 동오의 사위가 되기 때문에 손권이 잠시 참고 있을 뿐입니다.”
“동오는 6군 81주를 거느린 막강하고 부유한 나라면서 이곳까지 욕심을 부린단 말입니까?”
이번에는 방통이 가볍게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우리 주공은 한실의 황숙으로 계시지만 다스릴 땅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실의 역적들은 사방의 땅을 점거하고 있지요. 참으로 불공평한 일입니다.”
현덕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두 분은 그만 말하십시오. 나는 덕이 없는 몸이니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그 말의 쓸쓸함에 놀란 장송이 분개해서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명공은 한실의 종친이시며 인의가 사해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영토를 차지하는 것은 물론 제위에 오르신다해도 분에 넘치는 일이 아닙니다.”
“공의 말씀은 너무 과하십니다. 제가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현덕은 그 날로부터 3일간을 연달아 연회를 베풀었다. 그러나 역시 이때도 서천의 일은 한 자도 묻지 않았다. 장송이 그만 떠나겠다는 의사를 표하자 현덕은 십 리를 따라나와 다시 송별연을 열었다.
현덕이 술잔을 들고 장송에게 권한 뒤 말했다.
“대부가 사흘이나 머물러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서로 헤어지면 언제 또 가르침을 받을 날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현덕이 이렇게 말하며 작별의 서글픔을 견디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장송도 마음이 시큰해졌다. 장송은 서천의 운명을 현덕에게 맡긴다는 결심을 이때 굳혔다.
“저 역시 명공을 섬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형주는 동으로는 손권이, 북으로는 조조가 노리고 있어서 오래 머물 곳이 못 됩니다.”
현덕이 장송의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그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아직 옮겨갈 곳이 없습니다.”
“익주는 기름진 밭이 천 리에 뻗어있고 백성들도 성실하고 나라도 부강합니다. 험한 요새로 지켜지니 후일을 도모할 수 있는 곳입니다. 재주와 능력이 있는 신하들도 모두 황숙을 우러러 보고 있으니 군사만 일으킨다면 서천을 도모하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한실을 다시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현덕이 고개를 흔들었다.
“유익주(=유장) 역시 한실의 종친으로 백성들에게 인정을 베풀어 온지 오래인데, 제가 어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유익주는 촉에 있은지 오래이니 그 기반을 흔들 수조차 없을 것입니다.”
장송은 현덕의 말에서 익주에 아주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간파했다. 힘주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는 절대 주군을 팔아서 영예를 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점은 잊지 말아 주십시오.”
장송은 헛기침을 하고 나서 말을 이었다.
“지금 명공을 만났으니 제 속마음을 털어놓겠습니다. 유계옥(=유장)이 비록 익주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 품성이 어둡고 유약하여 현자들을 등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장로가 북쪽에서 침략할 생각을 하고 있으니 백성들의 마음이 불안하여 모두 흩어져 있습니다. 오직 밝은 주인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저는 본래 이번 사행길에 조조를 설득해 보고자 했지만 그 역적은 오만방자하기 이를 데 없어서 이야기할 것이 없었습니다. 이에 명공을 한번 뵙고자 형주로 온 것입니다. 명공께서 서천을 손에 넣으셔 기반으로 삼으시면 그 후에 북으로 한중을 도모하시고 마침내 중원을 평정하실 수 있습니다. 사직을 바로 세우고 청사에 그 이름을 남기실 것입니다. 그 공을 무엇에 비교하겠습니까? 명공께서 서천에 뜻을 두신다면 저는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 바쳐 내응토록 하겠습니다. 뜻이 있으십니까?”
현덕이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공의 뜻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유계옥은 이 비와 같은 황족입니다. 제가 유계옥을 친다면 천하가 저를 욕할 것입니다.”
“대장부가 세상에 나와 공을 세우고 기업을 갖추려면 먼저 채찍을 들어야 합니다. 명공께서 취하지 않으시면 다른 이가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가서 후회해봐야 소용없게 됩니다.”
장송의 말에 현덕이 결심을 한 듯 무겁게 입을 뗐다.
“촉으로 가는 길은 매우 험난하다고 들었습니다. 수레도 나아가기 어렵고 말도 지나가지 못한다니 비록 촉을 취하고자 하는 뜻이 있다한들 무슨 방도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말에 장송은 소매에서 지도 하나를 꺼내 현덕에게 바쳤다.
“명공의 인덕에 감복하여 이 지도를 바칩니다. 살펴보시면 촉의 도로 사항을 모두 아실 수 있습니다.”
현덕이 바로 지도를 펼쳐보니 촉의 지리와 역참, 넓은 곳과 좁은 곳, 먼 곳과 가까운 곳, 산천의 모습, 성의 물자와 병력이 모두 일일이 기재되어 있었다.
“명공은 속히 일을 도모하십시오. 제게는 절친한 벗 둘이 있는데 법정(法正), 맹달(孟達)이라고 합니다. 이 두사람은 반드시 저를 도와줄 것입니다. 이 둘은 형주로 오게 될 것이니 그때 마음을 털어놓고 의논해 주시기 바랍니다.”
현덕이 두 손을 맞잡고 감사의 인사를 하며 말했다.
“청산은 늙지 않고 녹수는 그치지 않지요. 일이 이루어지면 크게 보답할 것입니다.”
“제가 우연히 밝은 주인을 만나 있는 대로 고했을 뿐입니다. 어찌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이겠습니까?”
장송은 현덕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작별을 고했다. 공명은 관우에게 배웅토록 명을 내려, 수십 리를 더 호위해주게 했다.
익주를 맡길 주인을 찾아 떠난 여행이 현덕이라는 열매를 맺고야 말았으니 익주에 회오리 바람이 몰아치게 될 것이 분명해졌다. 이것이 장송의 선택이었다.
첫댓글 적벽대전은 삼국지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 하는 전쟁이 아닙니다..사실 관도대전이야 말로 중원을 차지 하냐 못하냐의 비중이 큰 전쟁이였습니다..조조 원소와의 전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