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영원한 건 없다고 합니다. 예전부터 그리 느꼈지만 요즘 부쩍 더 공감하고 있습니다. 가치관도, 인생의 목표도 대부분의 사람 삶 속에서 한결같진 않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거지만 달리 보면 허망하기도 합니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저는 오래전부터 구체적인 삶의 목표를 따로 정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날그날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제 삶의 모토였습니다. 놀 때는 열심히 놀고, 일할 때는 전념해서 일하고, 쉴 때는 마냥 쉬고... 지금도 그리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몇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매일 어머니께 안부 전화 드리는 일, 일주일에 한 번 찾아뵙는 것, 그리고 매주 주말편지 보내는 일. 이것들은 마음먹은 후 한 번도 빠뜨린 적이 없었습니다. 어머니 관련된 건 당연한 일이니 차치하고, 제가 주말 편지에 함께 보내드린 여행지 정보, 살아가는 이야기에 대한 공감 등으로 적지 않은 이들이 감사함을 표하고, 때론 다른 분들께 퍼 나르기도 했다는 얘길 해줄 땐 참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2주 전 피지 못할 사정으로 주말 편지를 빼먹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인 월요일 아침부터 며칠간은 좌불안석이었습니다. 편지를 받아보는 이가 그리 답답해하지도 않는데, 오면 보고 안 오면 말고 정도일 터인데, 제가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기에 조바심이 이어졌습니다. ‘07년 2월 7일 ’인생 백점 만들기‘로 시작된 주말 편지는 매 주말 이어가, 지난 2월 8일 ’편‘이란 제목으로 954회분까지 만 18년을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이어갔지만 955회분에서 처음으로 멈춰졌던 겁니다. 그러나 며칠 지나며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매주 보내는 건 자신의 약속이니 그도 지키는 게 맞긴 하지만, 건너뛰었다고 안달복달할 일은 아니다 싶었습니다. 마음이 조금 안정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가 되니, 글은 써 놓았음에도 이왕 전례는 깬 것, 한 주 더 쉬어보자 마음먹어 보았습니다. 이제 조바심, 좌불안석 따위는 없었습니다. 자유로운 마음이 드니 지난주에 썼던 주말 편지를 재삼 퇴고하면서도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자신의 약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작은 일탈, 이 또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주말편지를 계속 써 보내겠지만, 강박에 빠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 번 빼 먹는다고 그걸 인식하고 지적하는 이가 없는 것도 차 다행스런 일이다 싶습니다. 문득 예전부터 공감을 이어왔던, 그래서 여러 번 반복해 모셔 와 소개했던 ’굴레와 멍에‘가 떠올랐습니다. 피치 못할 사정 덕분에 주말편지가 ’굴레‘에서 ’멍에‘로 바뀌었습니다. 작은 자유가 보태졌습니다. 이 또한 감사할 일입니다.
지지난주엔 칠곡군 기산면 대흥사지의 천년거목, 말하는 은행나무와 구 왜관터널을 돌아보았습니다. 세월을,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모두 소중함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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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는 3월임에도 1m 가까운 눈이 온다는 뉴스입니다. 문득 지난 2월 중순 구미에 오랜만에 많이 쌓인 눈을 즐겼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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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레와 멍에(모셔 온 글)==========
제가 아는 사람 가운데 7대 독자가 한 명 있습니다. 얼마 전에 태어난 그 사람 아들은 8대 독자죠. 누군가, 그 사람의 아들은 8대 독자라는 멍에를 쓰고 태어났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요즘은 독자가 많다지만, 그래도 8대 독자는... 모셔야할 조상만 해도... 제사가 몇 건이며, 벌초해야 할 봉은 몇 개 인지... 제가 생각해도 좀 짠하네요. 오늘은 그 8대 독자를 생각하면서 글을 쓰겠습니다.
굴레가 뭔지 아시죠? 소에 코뚜레를 꿰어 머리를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동여맨 것을 말합니다. 그 코뚜레로 힘센 소를 힘 약한 사람이 부릴 수 있는 거죠. 그 코뚜레는 소가 어느 정도 크면 채워서 소가 죽을 때까지 차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멍에는 다릅니다. 멍에는, 달구지나 쟁기를 끌 때 마소의 목에 가로 얹는 구부정한 나무를 말합니다. 이 멍에는 소의 힘을 빌려 일을 할 때만 소의 목에 겁니다. 소가 태어나서부터 평생 쓰고 있는 것은 아니죠. 굴레와 멍에는 둘 다 소를 속박하는 것이긴 하지만, 굴레는 죽을 때까지 쓰고 있어야 하는 것이고, 멍에는 일을 할 때만 쓰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람에게 적용해보면, 노비의 자식, 살인범의 아들...처럼 내 의지로 평생 벗을 수 없는 게 ‘굴레’고, 남편의 속박, 가난, 친구와 불화...처럼 내 노력에 따라 벗을 수 있는 게 ‘멍에’입니다. “가난이라는 멍에는 노력하면 벗을 수 있다. 굴레처럼 생각하고 자포자기하면 안 된다”처럼 쓸 수 있죠.
그럼, 8대 독자는 멍에일까요, 굴레일까요? 제 생각에 그건 부모에게 달렸습니다. 부모가 아들을 하나 더 낳으면 8대 독자에서 벗어나므로(벗어날 수 있으므로) ‘멍에’고, 부모가 애를 낳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평생 8대 독자가 되니, 그것은 ‘굴레’고...
ㅋㅋㅋ
그나저나, 현재까지 8대 독자인 그 녀석이 건강하게 잘 자라길 빕니다.
여러분도 그 아기를 위해 기도해 주실 거죠? ^^*
-----박병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