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 소록도 세 개 마을 떡국 봉사 잘 다녀왔습니다. 2편.
2025년 첫날을 소록도에서 맞이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니 고흥에서 박종현 형님 목사님께서 신미숙 권사님과 달려오셨다. 9시부터 근무시라 아침 떡국 봉사만 하고 다시 가야 한단다. 그래도 좋다. 주방에서는 이희욱 목사님과 처형과 아내와 전 목사님과 신 권사님이 준비하신다. 작은아들은 다 끓인 떡국을 들통에 담아 주면 차에 싣는다. 이용화 장로님이 떡국 실은 차를 운전하고 나는 선물 실은 내 차를 운전한다. 조수석에는 박종현 형님 목사님이 타셨다.
떡국이 넘치지 않도록 조심해서 운전하는 이 장로님. 먼저 남생리부터 떡국을 배식한다. 차에서 전 목사님과 신 권사님이 가져온 냄비 등에 떡국을 담아 주고 달걀 지단과 김 가루를 올려 준다. 떡국에는 전 목사님께서 제일 좋은 소고기를 푹 삶아서 손을 찢어서 먹기 좋게 만들어 온 소고기와 삶은 굴이 들어 있다. 열심히 나르는 이 목사님과 아내와 작은아들. 구북리까지 떡국과 선물 배달이 끝났다.
예배당 바닥은 따뜻하다. 상이 차려졌다. 자오쉼터서 가져간 김장 김치가 놓이고 귤이 놓였다. 소록도 연합교회 백영기 부 목사님께서 기도해 주시고 모두 아침 식사한다. 중앙교회 박 장로님도 오시고 성도님도 오셨다. 떡국이 기막히게 맛있다.
식사를 마치고 하루 일정을 알려 드렸다. 이 목사님과 전 목사님과 작은아들은 먼저 동성교회 주방에 가서 떡국 끓일 준비 하고, 나머지는 북성교회 성도님들과 수요 예배를 드리고 동성교회로 넘어가기로 했다.
새벽 예배 때 설교하신 당회장 목사님께서 오늘 북성교회 수요 예배 설교는 양미동 목사님이 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하셨다. 얼떨결에 2025년 첫날에 첫 수요일 예배 설교했다. 설교하는 나도 울고 듣는 이 장로님이나 북성교회 집사님들도 울었다. 두 달 사이에 구북리 마을 주민이 8명으로 줄었다. 소천 되신 분도 계시고, 작은 마을은 큰 마을로 합병하려는 병원 측의 의사에 따라 큰 마을로 이사를 한 분들이 생기면서 주민이 확 줄었다. 성당 다니는 분을 배면 개신교인은 3명 밖에 없었다. 이젠 중앙교회나 신성교회나 동성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무겁다고 울먹이는 장로님.
주보에 나온 대로 이사야 43:14-21을 본문으로 말씀을 전했다. 새벽부터 반주기로 주님 고대가를 틀어 놓고 예배당 이쪽저쪽을 돌아보며 혼잣말을 하는 이 장로님을 보며 울었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사야 43:19의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라고 이 새벽에 말씀하신 의미를 생각하자고 했다. 장로님이 가는 마을로 자오에서는 봉사를 다닐 테니 힘내시라 했다. 내게 이 장로님은 아픈 손가락이다.
파주 백향목 교회 황상도 목사님이 후원해 주신 드럼을 싣고 갔는데, 북성교회 폐쇄가 되니 설치할 수 없고, 중앙교회는 당회에서 드럼 설치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여, 이희욱 목사님이 필요하다고 하여 이 목사님께 드렸다.
이용화 장로님이 운전해 주는 북성교회 차를 타고 동성교회로 이동했다. 먼저 떡국을 끓여서 성당에 다니는 분들부터 선물과 함께 떡국을 배달해 드렸다. 동성교회도 수요 예배가 끝났다. 나를 발견한 권사님들이 반가워서 난리다. 이제 칠순도 안 될 것 같은 권사님은 연세가 86세란다. 하긴 29년 전에 처음 만났을 때가 오십 후반이었으니…. 선물은 담당 장로님께 나눠드리라고 하고, 상을 차려서 떡국을 대접해 드리고, 현충일에 내려오면 인사드리러 오겠다고 말씀드리고 올라왔다.
처음 배를 타고 소록도에 다닐 때는 2박 3일의 봉사를 마치고 마지막 배를 타고 소록도를 떠날 올 땐 그냥 눈물이 났었다. 오늘도 그랬다…. 내 힘이 있는 날까지 섬겨야 할 분들이 소록도 어르신들이다. 이렇게 1박 2일의 소록도 떡국 일정이 잘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