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10주년이 됐고 연간 인적교류가 200만명에 육박하지만 중국인과 중국동포(조선족)들의 한국행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베이징(北京) 동북쪽 제3순환도로와 제4순환도로 사이의 이른바 ‘다퉁다샤(大通大厦·대통빌딩) 골목’. 베이징 중심부에서 20분이 채 안 걸리는 이곳은 중국동포들의 집단생활 터전이자 그들이 평생 숙원으로 여기는 한국행 꿈이 어려있는 곳이다. 다퉁다샤 골목에는 한식당·세탁소·목욕탕·여관 등 한국 이름을 단 업소들이 즐비하다. 다퉁다샤 골목에서 약 200m 떨어진 ‘고려촌’은 일종의 배후 근거지다. 1990년대 중반 한 중국동포 사업가가 출자해 건설한 이 고려촌에는 약 150가구가 입주해 있다. 말하자면 조선족이 세운 ‘조선족 타운’이다. 월세 800위안에서 1600위안까지 하는 다양한 집에서 거주하는 동포들은 인근 ‘연길 랭면’ ‘아리랑 꼬치’ ‘단골집’을 돌며 한국행 꿈이 실현되는 날을 기다린다.
약 200m 길이의 이 골목 중간쯤에 자리잡은 ‘익룡호텔(翼龍賓館)’. 이 호텔은 한국 관광객들이 거의 매일 단체로 발안마를 받으러 오는 곳이기도 하다. 이 호텔 1층 커피숍에는 4인용 탁자 6개가 있다. 하지만 이곳은 예사로운 곳이 아니다. 지난 9일 오후. 탁자 5개에 모두 손님이 앉아있다. 대부분 작은 손가방을 손에 든 남녀들은 한국말을 잘하는 조선족들. 창가로 줄곧 고개를 돌린 채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탁자 위에 서류를 놓고 무언가 소곤소곤 설명을 하는 사람, 왜 안 됐느냐고 큰 소리를 냈다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모두 ‘비자 장사’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한 건 해주면 2~3년은 먹고 사니 이만한 장사가 없지요.”
이 동네에 가끔 나타나 비자 장사를 하는 한 한국인을 커피숍에 있는 브로커들은 대부분 안다. 하지만 ‘업무상’ 평소에는 서로 모른 척한다. 이 커피숍 외에 다퉁다샤 건너편 화위안(華園)호텔 커피숍 등 베이징의 한국행 비자 브로커들이 집결하는 대표적인 장소는 네댓 군데.
다퉁다샤에서 비자를 따내기 위한 첫 작업은 음식점이나 술집에서 시작된다. 조선족 자치주가 있는 동북에서 한국행 꿈을 안고 베이징에 도착한 사람들은 일단 다퉁다샤 골목을 찾는다. 이곳에서 며칠을 묵으며 식당 등을 드나들다 보면 주인들은 단박에 ‘비자 손님’임을 알아채고 중개를 자원한다. 이들로부터 여권을 받아든 중개인들은 이를 다시 전문 브로커에게 넘긴다. 여권을 모으는 일은 멀리 옌볜(延邊) 현지에서도 이루어진다. 최근 고향 옌지(延吉)를 다녀온 한 동포는 “옌지시에도 여권을 모아 선양(瀋陽)이나 베이징으로 보내는 전문 브로커가 활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행 비자를 따내려는 열기는 중국동포(조선족)들뿐 아니라 한족 중국인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불법 체류하는 중국인 가운데 한족 비율이 이미 40%에 달했다. 중국인들 사이에 한국행 ‘비자 하나 받아내는 데 5만위안(약 700만원)’이라는 말이 통할 정도로 한국행 열기는 뜨겁다. 한족들은 대부분 중국 여행사를 통해 비자를 신청하기 때문에 여행사들의 영사관 로비가 치열할 수밖에 없다.
‘비자 장사’에 맛을 들인 일부 중국 여행사들은 한국으로 보낸 여행객 중 3분의 1이 불법 체류자로 돌변하는 경우도 있다고 고백한다. 이들은 인천공항에서 수십명씩 집단 증발해버리기도 한다. 이 때문에 베이징 한국 영사부는 주기적으로 각 여행사의 신용도를 집계해 중국 정부에 통보하는 한편, 여행사 신용도를 비자 심사의 주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 중국 국제여행사의 중국공민여행부 류우슝(劉武雄) 총경리는 “여행객 중 불법 체류자가 많이 생길 경우 비자업무 대행에 지장이 생기기 때문에 사전 심사를 철저히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다퉁다샤 골목엔 정상적인 서류로 비자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고 위조서류가 횡행하는 일도 흔하다. 서류를 구비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서류 위조작업을 전문적으로 하는 소위 ‘작업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한국의 연결책으로부터 현지 회사 세무자료 등 자료를 넘겨받아 초청장 등 각종 서류를 위조한다. 초청장은 한국인 위조 전문가가 직접 만들어주는데 1장에 5000위안(약 70만원), 서류 공증에 필요한 공증사무소 도장 위조는 250위안 선이다. 신분증 위조는 기본이다.
베테랑 ‘기술자’인 한 중국동포는 “세상에 위조 못하는 서류는 없지만 비자서류의 경우 중국 사무기기의 한계 때문에 숫자 모양을 자세히 살피면 위조 여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브로커들은 대체로 위조한 서류를 정상적인 서류들과 섞어서 비자를 신청하며, 담당 영사의 동향을 늘 추적한다.
브로커를 통해 위조서류로 한국행 비자를 따내는 경비는 6만~8만위안(약 700만~980만원) 선. 헤이룽장(黑龍江)성 출신은 6만5000위안, 옌볜(延邊) 출신은 7만5000위안 하는 식이다. 이 액수 가운데 브로커와 연결시켜준 중간 소개자에게 5000위안, 영사관 로비금 약 2만~2만5000위안, 서류 위조비 5000위안 정도를 빼고 나머지 3만위안 정도는 브로커가 챙기는 것이 관례다. 비자 로비에 실패한 적이 없다는 한 30대 브로커는 에쿠스를 몰고 다닌다.
거액을 주고 귀한 비자를 따낸 고객은 다퉁다샤에 머물면서 대략 출국 3일 전부터 몸 만들기에 들어간다. 연일 사우나에 들어가 얼굴을 뽀얗게 만든 뒤 비싼 미용실에 가 머리 단장도 ‘한국식’으로 한다. 때 빼고 광을 내야 한국 공항에 내렸을 때 추방당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한국 공항에서 공항 직원들에게 조사를 받을 때 현금도 100만원쯤 가지고 있어야 무사통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들이 고향을 떠날 때는 최소한 중국돈 10만위안(약 1400만원)은 마련해야 한다.
베이징 총영사관을 둘러싼 각종 의혹도 끊이지 않고 있다. 올 들어 베이징에서는 단속이 엄해져 비자 내기가 어려워졌으며, 이 때문에 브로커들이 광저우(廣州)로 이동하는 현상도 벌어졌다. 한동안 상하이(上海)가 괜찮았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지만 예전 같지 않다.
하지만 최근 들어 대사관에 수차례 비자비리 관련 투서가 날아들었고 이에 연루됐다는 일부 영사관 직원이 조기 귀국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한 비자 브로커는 “월드컵 기간이 끝난 뒤 단속이 다시 심해졌지만 그래도 할 것은 한다”고 털어놓았다. 이들은 영사부 한국직원뿐 아니라 영사관 현지채용 창구 여직원, 대사관 직원과 그 가족들까지 어떤 식으로든 끈을 맺으려 기를 쓰고 있다. 이 중 브로커들과 손을 잡은 창구 여직원들은 서류 기초 심사 과정에서 부탁받은 서류에 이상없음을 표시해 영사들에게 넘기는 등 비자비리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소문이 나돌아 파문이 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