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사(井邑詞)
1)
ᄃᆞᆯ하 노피곰 도ᄃᆞ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후렴구)
아으 다롱디리 (후렴구)
*
노피곰: 높이높이
머리곰: 멀리멀리
어긔야: 여운이면서 흥을 돋구는 말이다.
(현대어 풀이)
달님이시여, 높이높이 돋으시어
멀리멀리 비추어 주십시오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2)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ᄃᆡᄅᆞᆯ 드ᄃᆡ욜세라
어긔야 어강됴리
*
져재: 시장(市場).
녀러신가요: 가 계신가요.
즌ᄃᆡᄅᆞᆯ: 땅이 질다 , 위험한 곳, 험한 곳.
드ᄃᆡ욜세라: 디딜까 두렵습니다, 디딜까 두려워라, 의구형(疑懼形) 종결의미.
(현대어 풀이)
저자(시장)에 가 계신가요?
아아(혹여), 진 데(위험한 곳)를 디딜세라 두려워라
어긔야 어강됴리
3)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논ᄃᆡ 졈그ᄅᆞᆯ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느 것이나 놓으시라, 어느 곳에든 놓으십시오.
졈그ᄅᆞᆯ셰라: 저물세라, 저물까 두렵다, 의구형(疑懼形) 종결의미.
(현대어 풀이)
어느 곳에든 (짐을) 내려 놓으십시오
내(남편) 가는데(가는 곳)에 날이 저물세라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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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설화 원문과 풀이
정읍(井邑)은 전주(全州)에 속하는 고을이다. 이 고을의 사람이 행상을 나가서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그 아내가 산 위의 돌에 올라가 바라보면서 남편이 밤에 다니다가 해를 입을까 두워하여 흙탕물의 더려움을 빌려서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세상에 전해지기를 고개에 올라가 남편을 기다렸던 바위가 있는데, 망부석(望夫石)이라 불렀다.
(원문)
井邑(정읍), 全州屬縣(전주속현), 縣人爲行商(현인위행상), 久不至(구부지), 其妻登山石以望之(기처등산석이망지), 恐其夫夜行犯害(공기부야행범행), 托泥水之汚以歌之(탁니수지오이가지), 世傳(세전), 有登岾望夫石云(유등점부석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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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유일한 백제의 가요이며, 국문으로 기록되어 전하는 가요 중 최고의 작품이다. 옛 가요와 작품에는 음악성이 있어서 따라 부르다보면 뜻이 절로 나타난다(義自見). 무사 귀환을 비는 아내의 至高至純(지고지순)의 사랑이 눈물겹다.
[대상] 정읍/ 이숨
기다림이 한계를 넘어서면 시간이 멈춘다
천 년이 오늘이다
그러한
생은 고적하여
달그림자에 운명이 쓸린다
나는 원시의 모계였다가
백제의 여자였다가
한 사람을
여태 기다리는 사람
가요 속에서 누군가 발음에
홀연 옷깃을 바룬다
정읍시 시기동 언덕
철로 끝은 아득하다
오고 가는 방향은 정해졌지만
오고 갔던 사람은 다른데
왜 당신은 세상에 몸을 싣지 않은가
달하 노피곰 도드샤*
달이 한 번 더 나를 비추지만 울지 않는다
개망초가 철로 곁을 달린다
달무리 지나 한낮과 봄여름이 스쳐간다
속도란
피었다 지는 사이의 일
아으 다롱디리*
당신이 내려선 자리에
내가 올라서서
달을 켠다
* 백제 가요 ‘정읍사’
[우수상] 박쥐 / 김정랑
정읍시 산외면 상두산 자락 용굴에는
물구나무 수행자가 살았다고 한다
눈 어두운 사미니, 발가락으로
천장에 목어 그리며 수직의 해탈을 꿈꿨다
어둠 속에서 번뇌를 토해낸 어미처럼
그녀는 붉은 가을밤을 해산했고
수컷이 구해온 산후 첫 끼니에 버무려진
누군가의 이름을 씹으며 젖을 물렸다
회색 휘파람은 먹이를 유혹하는 기술, 파동은 사냥을 알리는 신호탄
그녀는 살점을 뜯고 피를 마셨다
깨달음은 두 눈을 켜는 꿈이었다, 아니 날개에 파닥이는 노래였다
관음의 미소 가득한 밤 핏자국을 참회하던 대나무 숲
살생하지 않는 나무나 돌로 환생하고픈
그녀는 입을 벌리지 않았다, 더 이상
가벼워질 수 없는 몸으로
입적한 날은 동안거 결제일
땅으로 비상하던 그녀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그토록 배부른 적이 없었다
구더기 한 줌 몰려오는 새로운 세상
그녀의 갈비뼈가 팔레트처럼 부풀어
영원한 불화로 피어나는 순간 동굴에는 수많은 음표가 돋아났다
[심사평]
전북특별자치도를 대표하는 문학상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고 한국문학의 메카인 곳이 정읍이 아닌가 싶다. 한글로 내려오는 최초의 시가 ‘정읍사’이고, 우리나라 최초의 정격가사인 불우헌 정극인의 ‘상춘곡’이 탄생 된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정읍사문학상이 주는 권위와 의미는 한국에서 으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에 응모한 작품들 모두가 소중하고 귀하게 느껴졌다. 심혈을 기울인 작품들이 많아 대상 한 작품과 우수상 한 작품을 선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 정도로 수작들이 많았다. 그중에서 몇 작품을 최종심에 올려놓고 오랜 고심 끝에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을 선정하게 되었다.
먼저 대상을 받은 작품은 시 ‘정읍’이었다 기다림이 한계를 넘어서면 시간이 멈춘다 / 천년이 오늘이다. 라고 시작되는 이 시는 고요하고 잔잔하면서도 그 내면에서 느껴지는 간절한 소망이 두드려졌다. 요즘처럼 초고속! 빠르게! 가 아닌, 요란하게 내세우지 않아도 언어의 절제력은 물론, 예부터 내려오는 우리 것을 지키려는 정읍의 마음을 천천히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이런 게 바로 천기(天氣)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작품이 눈에 띄어 심사자로서 참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수필이 시보다 시적인 감동을 줄 때가 많다. ‘바람개비’가 그 한 예이다. 어린 시절의 바람개비를 떠올리며 이야기는 누군가를 웃게 만들 수 있는 / 언제나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어린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그려낸 ‘바람개비’를 최우수상으로 선정했다.
이 작품이 말하고 싶은 것은 뒷부분에서 찾아진다. 웃지 않는 아이와 뛰지 않는 아이를 바람개비가 연결하면서 따뜻함을 전달해 준다. 척박하고 개인주의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천년의 노래를 간직하고 있는 정읍의 전통성과 정읍이 가진 문학적 소재들하고 일치한다고 본다. 이 수필은 중수필적인 느낌을 준다. 작품을 서술하는 일인칭 화자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표면에 ‘나’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면 현장감과 사실성이 추가되어 더욱 독자에게 친근감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심사자 모두는 만장일치로 시 ‘정읍’을 대상으로 선정하는 데 이견이 없었다. 최우수상으로 수필 ‘바람개비’가 선정되었고. 우수상으로는 ‘박쥐’가 선정되었다. 세 작가 모두 투고한 나머지 작품에서도 높은 수준의 작품성을 보여줘 더욱 신뢰감을갖게 하였다. 정읍사문학상의 공모 취지에 잘 어울리는 작품이 선정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작가들의 당선을 축하한다.
- 심사위원 : 윤재석, 이광원, 김정임, 정량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