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글과 인연. 206
[나주, 송정을 다녀와서]
어떤 이유로 상담이 필요해 졌다. 전화로 상담을 해도 충분한 일이었고, 그곳의 안내문에도
필요하면 전화로 도움을 주겠다고 하는 곳이니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는데, 문
제는 나의 바람기가 또 드러나 버린 것인데 그 이유는 상담처의 사무실이 나주에 있다는 것
과 내가 그리 여러 곳을 여행 다녔어도 나주는 지나쳤을 뿐 내 발로 밟아 본 적이 없다는
핑계 아닌 핑계와 더불어 시간 또한 내 편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당일을 계획하면서도 혹! 하는 생각에 이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열차를 보니 조치원
에서 내려가는 열차의 시간이 내 생각과는 다르다. 그래서 오송역에서 고속으로 내려가고 올
라올 때는 상황 따라 방식을 정하기로 했고, 19일 오전 열차로 나주를 향한다. 역시 고속열차
는 내 수준이 아니다. 특히 굴굴굴하는 노선은 내 바람과 전혀 반대되는 노선이다.
그래도 한 시간여 만에 나주에 내렸다. 그리고 처음 대하는 나주역 주변, 마음이 상한다. 주변
에서 눈에 보이는 건물마다 모텔들... 그것도 얼마의 거리를 두고 있었고 나주 역 주변은
설렁했다. 슈퍼도, 편의점도, 식당도, 증평역 주변이 기억난다. 아! 증평은 언제 갈까? 곧 버스
를 타고 가고자 하는 곳 주변의 호수 공원에 가서 한 바퀴 돌아본다. 참 잘 정돈되어 있어서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식사를 한 후 업무를 보기로 생각하고 주변의 먹자 길을 걷는데 간단
히 먹을 만한 중국식당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비빔국수로, 하지만 내가 바라는 맛과는 조금
달랐다.
상담을 원한다고 세종에서 왔다고 말하니 잠시 후 담당 부서의 부장이 내려왔다. 멀리서 오셨
는데, 라고 하면서 말이다, 참 감사한 일이다. 필요한 부분의 상담을 마친 후 그가 명함을 내어
주면서 필요하면 자신에게 전화하란다. 하면서 나주의 몇 곳을 소개한다, 금성관을 돌아보고
나주 곰탕을 드시라, 그것도 하얀곰탕을 드시라. 영산강에 가시고 그곳의 홍어골목에 가셔서
막걸리를 드시라. 그렇지 않고 광주 송정역으로 가시려면 송정역 시장을 가셔서 떡갈비를 드시
라, 권하는데 그마저 고맙기만 했다.
버스를 타고 송정으로 가는 길, 나주를 벗어나니 곧 너른 들인데, 논을 제외한 모든 밭은 하우스
로 꾸며있고 아직 벼베기를 못한 논에는 누런 벼가 가득히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버스가 잠시
정차한 곳에서 바라본 논, 벼가 가득한데 풍작은 아니라고 느낀 것은 벼가 아주 약간 머리를 숙
이고 있을 뿐이니 곧 무겁지 않다는 것이고 알이 실하게 맺히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그런데 문득 그 벼를 보면서 어쩌면 요즘 학생들이나 젊은이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것도 인사
하는 모습 말이다. 그저 고개만 까닥거리고 마는 인사,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느끼실 것이다.
요즘 학생이나 젊은이들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것을 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벼는 바람에 흔들리면서 머리만 까딱까딱 거릴 뿐 허리를 숙이지 않는다. 그 논의 농부 마음이
조금은 안쓰럽게 느껴진다. 우리가 요즘 젊은이들을 대하며 느끼는 그런 기분으로, 하기는 흡연
구역을 가보면, 차라리 내가 비켜주고 말지만 말이다. 어쨌든 벼나 사람이나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름답게 느껴진다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일까?
송정역, 한 시간의 여유 동안 송정시장과 광산거리를 돌아본다. 60년대의 건물들, 쪽방 같은 구조
의 상가들, 그리고 단선인 한 골목에만 자리 잡은 장거리의 풍경들, 고갈비 식당이 눈에 뜨이지 않
고, 거리는 한산하다 못해 을시년스럽다. 아! 자장면 집은 몇 곳 보였다. 문득 백선생과 예산시장
이 떠오른다. 여기도 그리할 수는 없을까? 송정역에서는 새마을호 열차를 이용해서 조치원으로
돌아온 하루의 걸음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