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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당 간 사나이
이 범 선
저승으로 가는 길. 그건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새벽 같지도 않고 또 저녁때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건 흡사 뜨물 같은 그런 뿌연 광선 상태였습니다. 그러면서 또 안개가 낀 것도 아닌 것이, 보이기는 제법 멀리까지 보이는 그런 황천길을 두 사나이가 허우적허우적 가고 있었습니다.
한 사나이는 뚱뚱한 몸에 하얀 수의(燧衣)를 감았고, 또 한 사나이는 비비 여윈 체구에 시퍼런 죄수복 수의(囚衣)를 걸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나란히 걸으면서도 통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둘이 다 몹시 지쳐 있는 것 같았습니다. 길바닥이 온통 시뻘건 진흙판이어서 발을 옮겨놓을 때마다 찔꺽찔꺽 흙이 달라붙는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밤도 낮도 채 아닌 이상한 빛은 그들을 꿈도 아니요 또 현시도 아닌 그런 흐리멍덩한 상태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그들은 그저 걸었습니다. 발바닥에서는 여전히 찔꺽찔꺽 소리가 났습니다. 그들은 묵묵히 걷고 있었습니다.
“보소. 선생님요.”
여윈 사나이가 마침내 입을 열었습니다. 나란히 걷고 있던 뚱뚱한 사나이는 그에게로 얼굴을 돌렸습니다.
“선생님은 어디까지 가시는 겁니까?¨
여윈 사나이가 뚱뚱한 사나이에게 물었습니다. 뚱뚱한 사나이는 다시 얼굴을 앞으로 돌리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찔꺽찔꺽 걸음만 옮기고 있었습니다. 여윈 사나이는 그래도 몇 걸음을 걷는 동안 그 뚱뚱한 사나이가 뭐라고 대답을 하려니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참이나 걷도록 뚱뚱한 사나이는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윈 사나이는 무안하기도 하였지만 은근히 화도 났습니다. 그는 대답을 듣기를 단념해버렸습니다. 역시 찔꺽찔꺽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여윈 사나이가 단념을 해버리자 그제야 뚱뚱한 사나이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여윈 사나이가 뚱뚱한 그 사나이를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그렇게 되받아 중얼거리며 여윈 사나이는 머리를 두어 번 끄덕거렸습니다.
“노형은 어디까지 가시는 거요?”
이번에는 뚱뚱한 사나이가 물었습니다.
“글쎄요. ……우선 염라대왕 앞으로 가얀다던데요.”
여윈 사나이의 대답이었습니다.
“염라대왕요?”
뚱뚱한 사나이는 여윈 사나이를 힐끗 한번 쳐다보고 나서 머리를 좌우로 두어 번 흔들었습니다.
또다시 그들은 잠잠해졌습니다. 발밑에서 찔꺽찔꺽 하는 소리만 났습니다. 그들은 상대방의 대답을 놓고 각기 자기 나름의 생각에 잠겼습니다. 뚱뚱한 사나이는 염라대왕과 지옥을 상상해보고 있었습니다. 여윈 사나이는 하나님과 천당을 상상해보고 있었습니다.
한참 만에 여윈 사나이가 다시 말을 걸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둘 중 한 사람은 길을 잘못 든 셈이군요.”
“……?”
뚱뚱한 사나이는 말없이 여윈 사나이를 돌아보았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느냐는 듯이.
“그렇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하나님 앞으로 가신다고 하셨고 나는 염라대왕 앞으로 가는데 이렇게 같은 길을 걷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지는 않을 거요. 우리는 둘이 다 길을 잘못 들진 않은 거요.”
“그럴까요?”
“사람은 누구나 죽으면 우선 하나님 앞에 나가서 심판을 받아야 하니까요.”
“하나님 앞에서 심판이라뇨?”
“그렇소. 천당으로 갈 사람. 지옥으로 떨어질 사람……하나님께서 그것을 가려주시는 겁니다.”
“……?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 저 세상에서의 재판 같은 거군요?”
“그렇소. 각자 자기의 죄 대로…….”
뚱뚱한 사나이의 단호한 말이었습니다. 그러자 여윈 사나이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또 한동안 말없이 걷기만 하였습니다. 여윈 사나이는 좀 전보다도 더 기운이 없어진 것 같았습니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며 걷고 있었습니다.
“그렇담 전 재판을 받으나 마나군요.”
이윽고 여윈 사나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어째 그렇소?”
뚱뚱한 사나이가 물었습니다.
“그야 뻔하죠. 전 저세상에서도 사형을 당한 놈인걸요 뭐.”
“사형을요!”
뚱뚱한 사나이가 놀라는 표정으로 여윈 사나이를 돌아보며 멈칫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목에다 올가미를 걸구 발밑의 마릇바닥을 덜컥 떨구더군요.”
여윈 사나이가 그렇게 말하며 자기 몸에 걸친 시퍼런 죄수복을 새삼스레 내려다보는 것이었습니다. 뚱뚱한 사나이는 자기도 모르게 여윈 사나이의 목으로 눈을 주었습니다. 과연 그 목에는 아직도 뻘겋게 올가미 자국이 있었습니다. 그건 참 무서운 일이라고 뚱뚱한 사나이는 생각했습니다. 그는 슬그머니 돌아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한두 가지가 아니었죠…….”
여윈 사나이는 그렇게 허두를 꺼내고 잠깐 쉬었다가 다시 이야기를 계속하였습니다.
“……남의 것을 훔치구, 여자를 겁탈하구, 그러다가 어떤 집에서 그만 여섯 식구를 몽땅, 두 살짜리 어린애까지 낫으로 찍어 죽여버렸단 말입니다.”
여윈 사나이의 이야기에 뚱뚱한 사나이는 또 한 번 놀라며 돌아보았습니다. 그러자 여윈 사나이는 그 뚱뚱한 사나이의 시선을 감당할 수 없었던지 고개를 떨어뜨렸습니다. 그리고 중얼거렸습니다.
“사실은 돈만 홈쳐가지고 나오려 했는데 그너무 영감쟁이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어쨌든 저야 모가지에 올가미 쓸 만하죠 뭐 .”
여윈 사나이는 이야기를 그렇게 끝맺었습니다. 뚱뚱한 사나이는 또 한 번 슬며시 여윈 사나이를 돌아보았습니다. 그 사나이가 무서워졌습니다. 세상에 이처럼 흉악한 인간이 있었던가 했습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수의 자락을 여미어 잡았습니다. 그 흉악한 사나이의 시퍼런 죄수 옷자락과 자기의 하얀 수의 자락이 행여 스칠까 꺼리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이번에는 꽤 오랫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어쩌다 하필이면 이런 흉악한 사나이와 함께 황천길을 걷게 되었을까 하고 뚱뚱한 사나이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또 여윈 사나이는 나는 그렇구, 이 뚱뚱한 사람은 도대체 세상에서 무엇을 하다 오는 사람일까, 보기에 매우 점잖은데 하고 생각하며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저 세상에서 무얼 하시다 오시는 분이죠?”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여윈 사나이는 마침내 그렇게 묻고야 말았습니 다.
“나요? 나는…….”
뚱뚱한 사나이는 그 흉악한 사나이에게 자기의 신분을 알리기를 주저하는 듯하였습니다.
“이렇게 같이 황천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도 무슨 저 세상에서의 인연인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여윈 사나이의 제법 그럴듯한 말이었습니다. 그제야 뚱뚱한 사나이도 다시 생각했습니다. 그래 이것도 하나님의 무슨 뜻이 있는 것이리라 하고,
“나는 저 세상에서 교회 장로였소.”
뚱뚱한 사나이는 애써 부드러운 음성으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네, 그러시군요. 교회 장로님, 그러니까 말하자면 예배당 주인이셨군요, 네!”
여윈 사나이는 감탄하여 머리를 주억거렸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지껄인 자기 의 이야기가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들은 또 각각 자기 생각에 잠긴 채 오랫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걸었습니다.
여윈 사나이는 옆에서 같이 걷고 있는 그 뚱뚱하고 점잖은 사나이가 부러웠습니다. 예배당 주인이었으니 그는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당연하고, 또 그렇게 해서 그는 천당으로 갈 것이니까. 그런데 나는 뭔가 하고 여윈 사나이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 하나님인가 앞에 가면 당장 지옥으로 밀어 떨어뜨려질 것이 뻔하지 않은가. 그런데 공연히 덩달아 뚱뚱한 사나이를 따라 서둘러 걷고 있다니. 그러자 여윈 사나이는 그 뚱뚱한 사나이에 대하여 찐득한 질투를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뚱뚱한 사나이도 또 자기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불쌍한 사람. 이제 저 사나이에게 내려질 하나님의 형벌은 얼마나 클 것인가. 그건 목에다 밧줄을 걸고 발밑의 마룻바닥을 덜컥 떨어뜨리는 따위 그런 장난 같은 형벌은 아닐 텐데. 주여, 그를 긍휼히 여기옵소서. 뚱뚱한 사나이는 그 흉악한 사나이를 위하여 그렇게 속으로 기도를 올렸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오래오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가서였습니다. 그들이 가던 길이 두 갈래로 갈린 길목에 다다랐습니다. 그들은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러고는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았습니다.
“길이 두 갈래로 나 있군요.”
여윈 사나이가 말했습니다.
“그렇군요.”
뚱뚱한 사나이의 대답이었습니다.
“어느 쪽 길이 그 하나님께로 가는 길일까요?”
“글쎄요.”
“오른쪽 길은 아주 넓고 평탄한데, 왼쪽 길은 좁고 돌투성이인데다 또 언덕까지 졌군요.”
“그렇군요.”
뚱뚱한 사나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물끄러미 두 길을 바라보며 그저 그렇게 덤덤히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어느 쪽 길로 가야 하죠?”
여윈 사나이가 또 물었습니다. 뚱뚱한 사나이는 한참이나 말없이 서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는 마침내 결단을 내린 듯 대답했습니다.
“왼쪽 길로 가야 할 거요.”
“왼쪽 길로요! 하필이면 좋은 길을 두고 돌길로 가요?”
여윈 사나이가 불평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렇소. 천당으로 가는 길은 좁고 험하다고 했습니다.”
뚱뚱한 사나이의 말이었습니다.
“천당. 그건…….”
여윈 사나이는 천당, 그건 당신과나 관련이 있지 나 같은 놈에게는 어림 두.없는 곳이외다, 하려던 말을 슬쩍 돌렸습니다.
“……그건 힘들 텐데요.”
“물론 힘들죠. 그러니까 노형은 노형의 뜻대로 하슈.”
뚱뚱한 사나이는 여윈 사나이의 목의 올가미 자국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글쎄요. 여기까지 이렇게 함께 왔는데. ……암만해도 그 돌길은 힘들텐데…… 그러지 마시고 선생님도 이 길로 같이 가십시다.”
여윈 사나이는 아무리 해도 좁은 돌길로 들어설 용기가 나지 않는 듯 오른쪽 넓은 길을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뚱뚱한 사나이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그저 여윈 사나이의 시퍼런 죄수옷 자락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또 한 번 속으로 되뇌는 것이었습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좁고 험하니라 하고.
결국 그들은 좌우로 갈렸습니다. 여윈 사나이는 오른쪽 큰길로, 그리고 뚱뚱한 사나이는 왼쪽 좁은 길로.
여윈 사나이는 넓은 길을 훨훨 걸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바닥이 진흙이 아니어서 아주 수월했습니다. 게다가 넓으니까 바람도 선들선들 불었습니다.
‘그 양반 참 고집도 대단하던걸. 지금쯤 돌길을 걷기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이렇게 편한 길을 두고 일부러 그 험한 길을…… 알 수 없는 일이야.’
여윈 사나이는 시퍼런 수의 자락을 펄럭거리고 걸으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뚱뚱한 사나이는 고생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돌길은 갈수록 더 험했습니다. 발밑에서 돌이 구르며 무릎을 꿇고 쓰러지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러면 그는 두 손으로 땅바닥을 짚고 일어서곤 했습니다. 그런 그의 두 무릎과 두 손바닥은 온통 껍질이 벗겨졌고 하얀 명주 수의에까지 피가 배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쓰러질 때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좁고 험하다 좁고 험하다 하고 속으로 외었습니다. 그리고 넓은 길을 택해 간 여윈 사나이를 생각했습니다. 아마 지금쯤 그 여윈 사나이는 어떤 구렁텅이에 빠져서 후회하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간악한 마귀를 만나서 희롱을 당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뚱뚱한 사나이는 수없이 쓰러지며 간신히 그 돌길 고개를 넘었습니다. 그러자 고개 너머에서부터는 환히 넓은 길이 틔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정말 천국으로 가는 길이 틀림없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이 들자 무릎이나 손바닥의 아픔 같은 것은 잊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걸음을 더욱 빨리했습니다. 저만치 길가에 커다란 바위가 하나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뚱뚱한 사나이는 그 바위 밑에서 좀 쉬어서 가리라 생각하며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바위 밑에까지 온 그는 흠칠 놀랐습니다. 이게 웬 일인가 했습니다. 그럴 리가 결코 없는데 했습니다. 거기 바위 밑에 그 여윈 사나이가 번듯이 누워 잠이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뚱뚱한 사나이는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그 시퍼런 죄수옷 사나이의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아, 선생님 오셨군요.”
여윈 사나이가 눈을 뜨며 부스스 일어나 앉았습니다.
“아니 어떻게……?”
뚱뚱한 사나이가 물었습니 다.
“네, 한참 오다 보니까 산에서 내려오는 돌길과 마주치더군요. 그래 선생님께서 아마 이 길로 오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다리기로 했죠. 역시 혼자 걷기보다는 둘이 이야기라도 하며 걷는 편이 좋지 않겠어요. 그런데 그만 깜빡 잠이 들었었군요. ……많이 고생하셨나 보죠. 무릎하며 손바닥하며 온통 피투성이가 되셨네요. ……그 참 공연한 고집을…….”
여윈 사나이는 일어서며 시퍼런 죄수옷 자락의 먼지를 훌훌 떨었습니다.
뚱뚱한 사나이는 은근히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결국 같은 지점에서 합쳐지는 것을 모르고 공연히 헛고생을 한 것을 생각하자, 그게 여윈 사나이 탓은 아니었지만 뚱뚱한 사나이는 어쩐지 그 여윈 사나이와 나란히 바위 밑에 앉아 쉬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뚱뚱한 사나이는 그대로 쓱 돌아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같이 갑시다요. 그래도 난 선생님을 기다렸는데…….”
여윈 사나이가 허겁지겁 뒤따라 왔습니다. 이제는 진흙판이 아니라, 그 진흙이 그대로 말라서 먼지가 된 모양으로 발을 옮길 때마다 풀썩풀썩 먼지가 일었습니다. 그래도 그건 진흙판이나 돌길보다는 훨씬 걷기가 편했습니다.
두 사나이는 말이 아주 없었습니다. 여윈 사나이가 몇 번 이야기를 걸어봤지만 뚱뚱한 사나이는 통 대꾸를 하지 않았습니다. 여윈 사나이는 그 뚱뚱한 사나이가 왜 그렇게 화가 나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여윈 사나이는 그렇게 말없이라도 둘이 걷는 편이 혼자 가는 것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하며 부지런히 따라 걸었습니다.
이윽고 저만치 앞에 조그마한 언덕이 보였습니다. 길은 그 언덕을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언덕 꼭대기 길 옆에 제법 큰 소나무가 한 그루, 꼭 분에 심은 것처럼 서 있었습니다. 그 밖에는 별로 나무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언덕 밑에서 소나무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러던 그들은 거기 나무 밑에 앉아 있는 한 노인을 발견했습니다.
“웬 할아버지가 있네요.”
여윈 사나이가 뚱뚱한 사나이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
뚱뚱한 사나이도 그 할아버지를 보긴 본 모양이었으나 역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우리와 마찬가지로 길을 가다가 쉬는 모양이죠?”
여윈 사나이는 그 노인을 화제로 하여 뚱뚱한 사나이와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뚱뚱한 사나이는 여전히 화난 얼굴 그대로였습니다. 그들은 노인이 그 밑에 앉아 있는 소나무를 향하여 걸어 올라갔습니다.
늙은 소나무 밑에 가부좌를 하고 앉은 노인은 그들이 그렇게 걸어 올라오는 것을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그저 고개를 들어 멀리 하늘을 바라보며, 손에 쥔 기다란 지팡이로 땅바닥을 툭툭 두들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더욱 가까이로 다가갔습니다. 그래도 노인은 여전히 지팡이로 툭툭 흙바닥을 두들기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더욱 가까이 가며, 노인의 지팡이 끝을 살펴보았습니다. 노인은 무슨 곡식을 떨고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간간이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가는 털썩 내려놓곤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두 사나이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쳐다보았습니다. 이상한 할아버지군요, 하는 그런 눈짓이었습니다.
뚱뚱한 사나이가 노인 옆으로 한 결음 더 가까이 다가섰습니다.
“할아버지!”
“응?”
그제야 노인은 느릿하니 대답을 하며 그들에게로 얼굴을 돌렸습니다.
“할아버지는 여기서 뭘 하시는 거죠?”
“……그저 이렇게 앉아 있는 거지 뭐.”
노인의 음성은 권태에 함빡 젖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지팡이로 그렇게 뭘 두들기시는데…….”
“오호, 그래서……허허허. 그저 하도 심심하니까 지팡이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거지 뭐. 그런데 젊은이들은 어디서 오는 길인가?”
“우리는 저 세상에서 오는 길인 데요.”
“오 그래. ……그래 어디로 가는 거지?”
“지금 하나님 앞으로 가는 길입니다, 할아버지.”
뚱뚱한 사나이는 공손하니 말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이라니……?”
노인은 눈을 그느스름하니 떠서 그들을 바라보며 한 손으로는 하얗고 긴 수염을 천천히 내리 쓸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만물의 주인 되시는 어른 앞으로…….”
뚱뚱한 사나이가 노인에게 설명을 했습니다.
“우주를 만들고 주인 되신 자라구?”
노인은 또 한 번 긴 수염을 쓰다듬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 그럼 바로 날 찾아온단 말인가.”
노인이 빙그레 미소 지었습니다.
“……?”
“…….”
두 사나이는 또 한 번 서로 마주 바라보았습니다.
“그럼 할아버지가 바로 하나님이십니까?¨
여윈 사나이가 반은 놀라고 반은 놀리는 투로 그렇게 물었습니다.
“글쎄 뭔진 몰라도 이 우주는 분명히 내가 만들었고 지금도 이렇게 심심한 대로 지팡이로 툭툭 치고 있지. 허허.”
그러자 뚱뚱한 사나이가 별안간 땅바닥에 펄썩 엎드렸습니다.
“오! 주여!”
그의 등 뒤의 여윈 사나이는 어리둥절해 서 있었습니다. 그는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었습니다.
노인은 또 한 번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시선을 저 멀리 허공으로 띄우며 지팡이로 흙바닥을 툭툭 두들기기 시작했습니다. 노인은 두 사나이의 존재 같은 것은 벌써 잊어버린 그런 태도 였습니다.
두 사나이는 꽤 오랫동안 그렇게 ―뚱뚱한 사나이는 무릎을 꿇고 엎드리고 여윈 사나이는 그 등 뒤에 서서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그저 그렇게 무료하게 지팡이를 들었다 놓았다 할 뿐 그들에게는 아주 관심이 없는 듯했습니다.
엎드렸던 뚱뚱한 사나이가 슬며시 허리를 바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정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주여, 제가 갈 곳을 일러주시옵소서.”
그러자 노인은, 아직 거기 그렇게 앉고 서 있는 그들에 놀라는 듯이 얼굴을 돌렸습니다.
“갈 곳이라구?”
“네, 제게 합당한 곳으로…….”
“자네에게 합당한 곳이라니?
“네, 천당이나 지옥이나……”
“천당? 지옥?”
노인은 의아한 표정으로 뚱뚱한 사나이를 굽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뚱뚱한 사나이는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흐흠! 가면 되지, 그저 가면 되는 거야, 저 밑의 골짜기로 들어가게나, 그러면 거기 동산이 있지.”
노인은 지극히 담담한 음성으로 그렇게 말하며, 언덕 저쪽 너머에 있는 골짜기를 지팡이로 가리켰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뚱뚱한 사나이는 또 한 번 크게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그리고 일어섰습니다. 그는 자기 등 뒤에 죽치고 서 있는 여윈 사나이를 한번 돌아보았습니다. 그는 여윈 사나이에게 그래도 뭐라고 한마디 헤어지는 인사를 해야 그게 도리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우리 여기서 헤어져야겠군요.”
뚱뚱한 사나이가 여윈 사나이를 향해 목례를 했습니다.
“네 네. 선생님은 역시 천당으로…… 그럼 안녕히 가슈. 저는 이제……”
여윈 사나이는 그래도 억지로 웃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목의 그 올가미 자국이 유난히 뻘겋게 눈에 띄었습니다.
뚱뚱한 사나이는 언덕을 넘어 내려왔습니다. 길이 환하게 틔어 있었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야릇한 향기를 실어왔습니다. 그 낮도 밤도 아닌 뜨물 같은 빛이 차츰 검히며, 밝은 빛이 환히 골짜기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오, 주여! 여기가 천당임을 저는 믿습니다. 주여! 감사하옵니다!”
뚱뚱한 사나이는 골짜기 안쪽으로 달려 들어갔습니다.
과연 그곳은 천당이 었습니다.
각양각색 꽃, 수정 같은 냇물, 각색 향기로운 열매, 맑은 하늘, 아름다운 새특. 뚱뚱한 사나이는 황홀했습니다. 천천히 골짜기를 더듬어 들어갔습니다. 이제는 무릎과 손바닥의 상처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역시 그 험한 돌길을 택해 넘어오기를 참 잘했느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쯤 하나님 앞에 꿇어앉아서 준엄한 심판을 받고 있을 그 여윈 사나이, 살인범을 생각했습니다. 그는 잠깐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았습니다.
‘주여, 그 살인범을 긍휼히 여겨주시옵소서!’
멀리서 노랫소리가 은은히 들려왔습니다. 뚱뚱한 사나이는 노랫소리를 찾아 걸어 들어갔습니다.
아, 그건 정말 천당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천사들이 그를 영접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몸이 갑자기 무게를 벗어놓고 둥실 뜨는 것을 느꼈습니다.
“주여, 주여! 제가 무엇이관대 이처럼……”
그는 감격해서 부르짖었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는지 모릅니다. 천당에는 어둠이란 없었습니다. 그저 빛으로만 충만해 있었습니다. 그러기 며칠인지 몇 달인지 또는 몇 해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뚱뚱한 사나이는 그저 즐겁기만 했습니다. 천당은 그저 천당이라고밖에, 어떻게도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뚱뚱한 사나이는 그저 행복하였습니다. 그는 얼마든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문득 그는 섕각했습니다. 이런 자기의 행복을 누구에게건 한번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더 행복할까 하고. 그러면 그의 그 행복은 몇 갑절이고 더 클 것 같았습니다.
그래 그는,
“나 외에도 또 이 천당에 온 사람이 누구 있소?”
하고 시중드는 천사들에 게 물었습니다.
“네. 있습니다.”
천사가 공손히 대답했습니 다.
“그럴 테지. 착한 사람도 많이 있었으니까. 그래 그 사람들은 어디에 있죠?”
“글쎄요, 어디든 마음대로들 거니시니까, 아마 혹 만나시게 될 지도 모릅니 다.”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였습니다. 뚱뚱한 사나이는 천사들을 전후좌우에 거느리고 연못가를 돌아 황금 대문을 지나서 장미꽃이 만발한 화원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러자 옆에서 따르던 천사가 말했습니다.
“저기 한 사람 있습니다.”
천사가 저만치 꽃나무 밑을 가리켰습니다. 과연 거기 어떤 사람이 꽃나무 밑에 비스듬히 누웠고 천사들이 그의 옆에서 부채질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오! 만나서 이야기라도 하고 싶군요. 오래간만에 저 세상 이야기를.”
뚱뚱한 사나이는 천사들이 인도하는 대로 그 꽃나무 옆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렇게 꽃나무 가까이까지 가서 였습니다. 그는 걸음을 딱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꽃나무 밑에 누워 있는 사나이를 뚫어지게 쏘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놀란 것은 그 뚱뚱한 사나이뿐이 아니었습니다. 꽃나무 밑에 누워 있던 사람도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섰습니다.
“아니, 이거 선생님 아니슈!”
그렇게 소리 지른 사나이는 바로 그 사나이였던 것입니다. 그 비비 여위고 아직도 목에 올가미 자국이 있는 그 시퍼런 죄수옷을 입은 사나이였던 것입 니다.
“……”
뚱뚱한 사나이는 말문이 꽉 막혀버렸습니다.
천사들은 서로 자기네끼리 얼굴을 마주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두 분이 잘 아시는 사이신가 보군요. 참 반갑겠습니다.”
한 천사가 그렇게 치하하자, 모든 천사들이 축하의 노래를 합창하기 시작했습니다.
“반갑습니다, 선생님!”
여윈 사나이가 그렇게 반기며 뚱뚱한 사나이의 손을 덥석 쥐었습니다. 그러나 뚱뚱한 사나이는 여전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는 미간을 찌푸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뚱뚱한 사나이가 미간을 찌푸리는 것을 보자, 천사들은 곧 노래 부르기를 멈추었습니다.
“그럼 저리로 거니시죠.”
천사 가운데 한 천사가 눈치 빠르게 뚱뚱한 사나이의 기분을 알아차리고 그를 저쪽으로 모셨습니다.
“뭔가 저희들이 잘못한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한 천사가 그렇게 사과하였습니다.
“아니오. 그런 건 아니오.”
뚱뚱한 사나이는 여전히 시무룩한 채 그렇게 말했습니다. 천사들은 더욱 사뿐사뿐 걸음걸이까지 조심하며 그를 따랐습니다. 뚱뚱한 사나이는 묵묵히 걷기만 하였습니다. 천당으로 온 후로 처음 울적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윽고 그는 옆의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여기가 분명 천당이죠?”
“네. 그렇습니다.”
“그럼 지옥은 어디쯤 있습니까?”
“지옥이라뇨?”
천사는 의아한 얼굴을 하며 반문했습니다.
“그러니까, 저 세상에서 죄지은 사람들이 와서 무서운 벌을 받는 곳 말이오.”
“……? 그런 곳은 없습니다.”
“지옥이 없단 말입니까?”
뚱뚱한 사나이는 무척 놀라는 얼굴이었습니다.
“네. 그런 곳은 없습니다.”
“그럴 리가 있소, 그럴 리가. 여기는 분명 천당이라면서요? 그런데 지옥이 없다니 그런…….”
“그렇습니다. 여기는 분명 천당입니다. 그리고 지옥은, 지옥이란 그런 곳은 없습니다.”
천사는 조용히 미소 지었습니다.
뚱뚱한 사나이는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지옥이 없다니. 지옥 없는 천당이라니, 그 극악한 죄수와 내가 같은 곳에…….’
그는 자기의 발부리만 내려다보며 걸었습니다.
천당에는 여전히 빛이 충만해 있습니다. 각양각색의 꽃, 수정 같은 냇물, 향기로운 열매, 맑은 하늘, 아름다운 새들. 그리고 천사들은 여전히 뚱뚱한 사나이의 전후좌우에서 시중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뚱뚱한 사나이는 이제 어쩐지 천당이 그리 탐탁하지가 않았습니다.
-끝-
2016년 6월 10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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