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4: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세베대 - '여호와의 주심'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그는 야고보와 요한의 아버지이자, 예수의 이모인 살로메의 남편이다. 그의 집에서는 삯꾼을 부리고 있었으며 예루살렘에도 그의 가옥을 가지고 있었던 점으로 보아 사회적으로 상당히 유력한 가문출신인 것 같다. 따라서 그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신교 활동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더욱이 그는 아들들이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음으로 주의 사역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야고보 - 이스라엘의 조상의 이름과 같은 '발꿈치를 잡았다'란 뜻이다야고보와 그의 동생은 세베대와 살로메의 아들들로서 예수와 사촌 형제간이 된다. 그는 요한과 함께 예수께서 가장 신뢰하던 제자중 한 사람이다후에 그는 해롯 아그립바에 의해 피살되어 사도 중에서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요한 - 이 헬라명은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 란 뜻을 가진다. 그는 예수의 최초의 제자가 되었고 가장 사랑을 많이 받았으며, 장수하면서 성경의 마지막 계시를 기록한 자이다. 또한 그의 성격은 내성적 이면서도 과격한 성격을 가져(눅 9:49,54) 주님으로부터 '우뢰의 아들'이란 뜻의 '보아너게'란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그는 주님의 사랑을 흠뻑 받은 만큼 남자 제자로서는 유일하게 주님의 십자가 최후를 지켜보았으며(요 19:26), 전설에 의하면 그는 예수의 당부에 따라 마리아를 예루살렘에 있던 자기 집에 모셔다가 그녀가 죽을 때까지 11년 동안 극진히 봉양했다 한다. 배(프로이온) - 모든 배에 대한 일반적 용어로서 여기서는 서너명이 함께 타고 조업할 수 있을 만큼의 배였던 것 같다
그물 깁는 것 - 야고보 형제는 그물을 깁고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다. '깁고'(카타르티조)라는 동사는 '준비하다', '수선하다' 또는 '원상태로 회복하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 사건은 눅 5:1-11의 상황를 고려해 볼 때에 야고보와 요한이 밤새도록 고기를 잡은 후에 그물을 수선하고 있었다는 내용이 된다. 어부에게 있어서 '그물을 깁는 일'은 '고기를 잡는일'에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다.
한편 이 같은 상황을 영적으로 이해한다면 후자는 일선에서의 '복음 전파 할'을, 전자는 배후에서의 '도움'을 의미한다고 보겠다. 부르시니 - 여타의 말씀을 생략하신 채 단지 예수께서 영적 주도권을 가지고 그들을 부르셨다. 여기서는 부름에 따른 어떤 특별한 의미가 담겼다기 보다는 22절에서 볼 수 있는 그들의 즉각적 순종에 그 초점이 맞춰진 묘사이다.
[마 4:22]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저희가 곧...버려두고...좇으니라 - 베드로나 안드레처럼야고보 형제는 지체없는 순종을 보였다. 그러나 여기의 '버려 두고'란 말도 그들이 혈연 관계를 포기하거나 끊어버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이전에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어부로서의 직업에 충실하였지만 이후로는 '오직' 그리스도의 명령만 좇아 제자로서의 소명에만 전념하기 위하여 부친의 권한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그들은 삯꾼들을 부릴 정도로 부유했던 가정과 인정많은 가족들을 '버림'으로써 그리스도를 '얻은' 바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 제자됨의 필수 요건이다.
[마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온 갈릴리 - 예수의 사역 당시 갈릴리는 동쪽은 요단강과 갈릴리 바다, 서쪽은 지중해, 남쪽온 사마리아, 서북쪽은 베니게로 둘러싸여 남북이 약 80km, 동서가 약 45km정도의 작은 지역이었다. 한 세대가 지난 후에 저술한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갈릴리는 204개의 대소 성읍들과 촌락들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갈릴리 비록 북부는 산지를 이루고 있지만 남부는 매우 비옥하여 농경과 목축에 적합하고 근처에는 호수가 위치했기 때문에, 그 당시 최소한 3백만이나 되는 많은 인구들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이곳을 예수께서 매일 2개의 마을씩 순회하며 모든 동리를 다 돌아보려고 하였다면 안식일도 쉬지 않고 강행한다 하더라도, 3개월 이상이 걸리는 엄청난 육체적인 힘이 소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 구절은 예수께서 갈릴리 모든 동리를 샅샅이 돌아다녔음을 뜻하기 보다 갈릴리의 전구역을 이리저리 왕래하시며 복음을 전파하셨음을 암시한다 회당 -
이곳은 유대인들이 포로에서 귀환한 후 전국 곳곳에 세워진 종교 집회와 교육의 장소로서 신약 교회의 모형이 되었다. 그런데 유대인 전승에 의하면 신 31:11과 시 74:8을 인용하여 회당이 매우 일찍이 기원되었다고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바벧론 포로 중에 기원된 것으로 보고 있다 예수 당시에는 작은 마을에도 유대인들이 거주했던 곳에는 어디에나 회당이 건립되어 있었고, 유대인 랍비에 의하면 예루살렘에만 460개 내지는 480개의 회당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백성들은 안식일이나 주요 명절 때에 이곳 회당에 모여 기도와 율법을 배우는 일에 힘썼다. 특히 구약 율법서는 여러 지역의 언어로 번역하기도 했으며, 회당장의 허락에 의해 율법 교육에 합당하며 권위있는 자가 나서서 율법을 해석, 교육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편 예수께서는 회당을 전도 활동의 무대로 활용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에게나 백성들에게 '랍비'라고 불리웠다.
이 회당이란 용어는 본서에서 '가르침'과 연결되어 나온다. 더 자세한 내용은 눅 4:16-30 '유대교의 회당과 초대 교회' 부분을 참조하라. 가르치시며...전파하시며...고치시니(디다스콘...케륏손...데라퓨온) -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전도의 세 가지 특수한 양식으로서 모두 천국과 그리스도에 의한 통치를 암시하고 있다. 여기서 '가르치다'는 예수의모 든 활동이 근본적으로 '교훈'관계가 있으며, '전파하다'는 예수자신이 오심과 함께 천국의 도래가 가까왔다는 '복음'과 관계가 있다.
끝으로 '고치다'는 예수께서 천국이 축복과 더불어 실제적으로 나타났다는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기 위하여 신적인 능력을 행하신 바 이는 흑암의 왕국(16절)이 파괴되고 천국이 '회복'(아포카타스타시스; 행 3:21)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한편 이 세 가지 전도 방법은 초대 교회로부터 오늘날까지 선교 역사에 계승되었다. 천국 복음
이 용어는 본서 9:35과 24:14에 다시 나타나는데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어 메시야가 임하셨다는 내용을 함축한 말이다. 한편 '천국'은 목적을 나타내는 속격으로서 복음이 천국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즉 '천국'은 세례 요한과 그리스도에 의해 이미 선포되었고, 또한 그것은 산상수훈의 중심 주제가 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전파한 메시지의 핵심이 '천국 복음'일진대 오늘날 말씀을 전하는 모든 자들은 이것을 명심하여 그 핵심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병...약한 것 - '병'(노소스)은 일반적인 '질병'그중에서도 만성적이고 중한 질병을 의미하고, '약한 것'은 그 질병으로 인한 '육체적 생활적 기능의 쇠약'을 의미한다.
실로 사랑이 많으신(9:36) 예수께서는 인간의 종말론적 구원이 그의 사역의 최종 목표였으나 인생의 현세적 구원도 외면하지 않으시고 자신을 '찾아와'. '만난', '모든' 사람들의 육체적 질병뿐만 아니라 정신적 질병도 치유해 주셨다. 이것은 바로 천국이 임하신 사실에 대한 예보이자 천국 왕의 신임장
[마 4: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소문- '들음'이라는 뜻으로서 '평판' 또는 '명성'으로 표현될 수 있다. 이는 당시 예수의 전도 활동이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얼마나 큰 환대를 받았으며, 영향을 주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수리아 - 이곳의 지리적 범위는 불확실하나 예수당시에는 로마의 식민지로 헤롯 안디바스의 관할에 있는 갈릴리를 제외한 유대 북쪽의 팔레스틴 전체를 포함하는 큰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과거 솔로몬 시대에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서로 미워하였으나 이제 그곳에도 예수의 소문이 퍼지게 된 것이다. 한편 그후 바울 당시에 이르러서는 그곳에 다메섹, 안디옥, 라오디게아 교회 등이 세워지는 등 초대 교회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선교 근거지가 되었다.모든 앓는 자...중풍병자 - '모든 앓는 자'(투스 카코스 에콘타스)는 질병에 대한 보통 표현으로 볼 수도 있으나 여기서는 '고질적인 병에 걸린 자'란 뜻으로 의학적 처방으로는 치유 불가능한 질병을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 '모든'이라는 수식어는 정신적 질환과 구분되는 육체의 모든 질환을 가리킨다 할 것이다. 이 육체적 질환에는 그 병증에 따라 가벼운 것(각색 병)과 무거운 것(고통에 걸린)으로 나누인다. 여기서 '각색병'이란 '가지각색'의 병증이 크게 위급하지 않는 질병을 가리킨다. 이에비해 '고통에 걸린 자'란 병들어 거의 기진하다시피 고통당하는 중환자를 의미한다. 이상이 주로 질병에 대한 일반적 표현이었다면, 뒤이어 나오는 세가지의 병명은 구체적인 분류이다.
귀신들린 자- 더러운 병 인 귀신이 어떤 사람 안에 거하면서 그 사람에게 직접적인 통제력과 영향력을 행사하여 마음이나 몸을 혼란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 결과 귀신들린 자는 육체적인 기능이 일부 또는 전체가 상실되기도 하고, 정신적인 장애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성령이 내주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귀신은 굴복당할 수밖에 없으며, 궁극적으로 모든 귀신은 사단과 함께 영원한 불못)에 던지움으로 영구적 운명에 처하게 된다 간질하는 자- 이 질병에 대한 혤라어의 본래 의미는 '졸도 증세'란 뜻이다. 이 병은 중추 신경 계통이 이상을 일으킴으로써 생기는데,
증세는 의식을 잃는 것과 발작성 경련, 또는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난다. 의학의 시조라 불리우는 B.C. 4백년 경의 히포크라테스는 간질을 어떤 귀신에 사로잡혀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마태는 본문에서와 같이 '간질'을 '귀신 들림'과 분명히 구분하고 있으며, 그가 사용한 '셀레니아조메누스'란 용어는 고대 점성가들의 견해대로 간질이 '달'의 '영향을 받은' 질병이라고
생각하는 당시의 민간 신앙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중풍병자- 이 용어는 신약에만 나타나는 용어로서 일반적인 마비 증상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 이 질병은 대뇌조직의 손상이나 척추신경의 파괴, 또한 중추신경 개통의 질환으로 인하여 야기된다. 한편, 이러한 질병들을 치유하시는 예수의 기적들은 그의 메시야로서의 성격을 뚜렷하게 한다.
다시 말해서 타락된 흑암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알고 있는 모든 정신적 육체적 고통과 불안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그 질병의 근본 원인인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것이 메시야의 사명이라는 것이다
[마 4:25]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데가볼리(데카폴레오스) - '열 도시들'이란 뜻을 가진 이곳은 요단강 동편과 갈릴리 바다 남쪽, 곧 북쪽의 다메섹에서 남쪽의 빌라델비아에 이르는 곳에 위치한 헬라인 도시들의 연맹체이다. 이 도시들은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B.C. 323 그의 후계자들과 노장들이 전형적인 혤라인 도시를 건설한 데서 기원되었다. 따라서 이곳은 헬라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이방인들의 거점들이 되었기 때문에 유대인들과는 배타적이었다.
예수 활동 당시 즉 A.D. 1세기에 이 도시들은 크게 번화하여 높은 수준의 문화를 향유하고 있었으며 이곳의 이방인들 조차 예수의 소문을 듣고 예수께 나아왔다는 사실은 예수사역이 유대 국가와 민족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요단강 건너편 - 유대사가 요세푸스는 '얍복강과 아르논강 사이'로 단정하는데, 여기서는 이곳이 베레아로 소개된 동부지역 전체를 잎컫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실로 팔레스틴 경내에 인접한 지역까지 예수의 소문이 전파되고 있는 것이다.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 갈릴리에서 빛을 비추기 시작하신 예수의 생명의 빛이 갈릴리를 넘어서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메시야로서의 예수를 계시하는 마태의 웅장한 의도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갈릴리로 모여 들어 예수를 '좆는' '허다한 무리'들은 '그리스도의 추종자'였지,
그리스도를 전인격적으로 순종하는 참 제자로서의 '그리스도인'은 아니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예수의 인간적인 측면만 보았을 뿐, 예수의 영적, 신적 측면, 즉 우리의 왕되신 예수께서 구원자 하나님 되심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실로 우리는 예수께서 주시는 이적과 축복만 탐하고 예수께서 베푸시는 진리와 사랑, 아니 예수 그 자체에 대해서는 둔감한 기복적이고 현실 지상주의적인 신앙을 철저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