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 역사 유머
역사와 마주하는 방식
2024.9.13 문화일보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
일제시대란, 말하자면 강제 결혼 같은 것이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태어났고 그런 이상 그 공간의 경제와 문화와 교육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거기에 ‘오욕’과 함께 존재했던 수많은 일
상에 대해 그 갈래 갈래를 하나씩 펼쳐 보면서 ‘이해’하는 것 말고
도대체 어떤 ‘역사의식’이 가능할까.
해방 이후 한국은 한 번도 그 오욕과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다. 대신
깨부숴버리거나 미처 깨부수지 못한 것들은 망각의 저편으로 보내졌다.
1987년 민주화 투쟁 이후 나온 ‘역사 바로세우기’라는 1990년대 김영삼의 구호는 그런 의미에서 지극히 상징적이다. 총독부 ‘파괴’는 그 정점이었고, 이후 많은 인식이 변했고 잊혔다.
부인과 망각으로 이뤄진 자기 인식으로 똘똘 뭉친 이들이 역사를 ‘응징’이나 ‘처벌’ 또는 자기 긍지의 회복을 위한 뭔가로만 생각하는 건 역사를 ‘개인’의 다층적 맥락에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공적 기억’은 대개 그런 맥락들이 소거되면서 성립한다. ‘처벌’이란, 역사와 마주하는 가장 손쉬운 방식이다.
일본 순사한테 눈도 한 번 흘겨본 적 없는 자손들이, 선조들의
잘못으로 빼앗긴 나라를 안 뺏긴 거라고 우기는 상황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