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감내하기 힘들고 해서 이렇게 글을 써봅니다
사랑하는 동문여러분
저는 육군 하사관 학교 1969 8월 졸업 한 박동빈 입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국가유공자 증을 받고 황당하고
치졸하는 생각에 이렇게 나열 해 봅니다.
나라가 아무리 어렵다고 하면서 수년전에는 5.18.희생자들이라 하여
적게는 4.500만원 2억8000만원까지 지급을 하고 생색 내기위함으로
경제발전에 초석을 이룩한 참전용사에게는 헌 종이 보다 못한 유공자 증서.
이것이 이나라의 행정인가요.
그리고 유공자 증을 들여다보면 대상 : 참전유공자.아닌 참전 고엽제.
이렇게 한심한 작태를 보고만 있어야 하는지요?
저는 70년도 후반에 정보임무를 띠고 파병하여 72년 7월에 귀국 하였습니다
정보업무를 담당하지 못하고 잠깐 보병부대 근무하며 그때 도깨비21호 작전에
투입되어 진곳이 망망계곡과 수이카이계곡에 위치한 찹차이산인데 그곳에서 고엽제를 맞은것 같습니다.
헌데 귀국후 중매로 인하여 결혼을 73년 11월16일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으로 살아가던중 새로운 인생이 하나 생기더군요?
첫 딸이었습니다. 그런데 잘 자라던 아이가 백일을 2일 남겨놓고 하늘 나라로 갔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이기며 다시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단기사관학교를 응시하여(당당히 합격)광주 상무대로 교육을 받고
어엿한 장교로 임관을 해서 8사단 배치되어 소대장 보직 받고 멋있는 군생활을 하게 됨니다.
그리고 76년 군산화 장비 화력시범에 차출되어 4.2인치 박격포 소대장으로
참가해서 3개월 동안 연마해서 박정희 대통령모시고 보전 합동 화력시범을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그 공로에 대통령 표창도 받고 잘 나갑니다
그런데 또 다시 아픔이 찾아옴니다.
75년1월4일 태워난 아이가 심장에 이상이 있다하여 큰 병원을 가보라고 야전병원 군의관이 알려주더군요
그래서 휴가계를 내고 서울대병원에서 진찰을 받고(심방중격 결손증)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또 겪게되지요.
그러나 담당의사 말씀이 아직 수술 할 수 있는 시설이 없어 못한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자라면서
그 부위가 막혀벌수 도 있다는 희망을 안고 전전하며 키우던 중 셋째 아들이 태어나 다시 부모곁을
15일 만에 떠나더군요(병명모름) 그러나 여기서 희망을 잃지않고 더 열심히 살아보자 마음가짐을 다지며
내가정을 지키는 길은 하나님을 믿는것이라 결론을 내리고 아내부터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며 교회출석하게 합니다
그러나 어머니, 형제들의 만류가 얼마나 컸던지 너무나 힘든 삶이었습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3년간을 묵묵히 대소사에 찾아다니며 형제들 어머니 설득을 하며
열심히 기도및 신앙생활 했습니다
지금은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어머니 역시 교회로 인도하여 교회출석 잘 하시며 세례 받으시고
7개월 정도 병원 생활 하시다 하늘 나라 가셨지요.(이것이 사명이라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잘 인도해주시고 하므로 전방에서 중대장을 맞히고 그 어렵다는 서울의 근무를 하게 됩니다.
그것도 훈련단 소속이면서 정치1번지라고 하는 종로 중구 지역에서 말입니다.
이건 순전히 하나님100%빽이었지요? 역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있는가 보다. 나를 버리시지 않으셨구나.
그러나 믿지 않으시는 분은 박해가 심하지요 어느 선배분은 얼마를 주고
서울로 발령 받았다고 하는데 박 대위 자네는 누구 빽으로 왔느냐고 하더라고요 ?
그래서 저는 제일큰 하나님빽이지이요 하니 주변에있던 동료 장교들이 웃더군요.
그리고 군수 담당(보급과장) 을 10개월 하고 청와대 지역 중대장 및 청와대 비서실 중대장 겸직을 하게 됨니다.
이곳에서 36개월을 근무하는 동안 딸아이가 아프다기에 어쩔수 없이 그리고 이미 갈 자리가 있기에
외무부로 발령 낼 터이니 전역을 하라고 하기에 전역지원을 하게 됨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뜻이 아니였나 봅니다.
왜 냐고요?
전두환 대통령이 버마를 방문하면서 일어난 사건
아웅산테러로 인하여 많은 인제들을 앗아감니다.
저를 사랑하시고 아껴주시던 이범석외무부 장관역시 이때 돌아가셨습니다.
그로인하여 다시 저에 진로가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느끼고 예비군 동대장(행정군무사무관) 시험을
보기위해 준비하면서 내 고향인 동두천에 자리가 있는가 알아 보니 고향에는 자리가 없고
서울지역에 직장및 지역 동대장 자리가 있는 것을 알고 공무원 신분을 가지는 것이 훗날에도 도움이 되겠구나 싶어 지역에 구비서류 준비해서 등록하고 시험준비 열심히 주야 가리지 않고 했습니다
( 당시시험 과목. 주민등록 관한 법률. 국가비상사태 관한 법률. 민방위법. 병역법 근로기준법.일반상식 군사학 예비군법 기타) 열심히 준비한 덕에 당당히 또 합격하여(일명 도깨비시장)행정동은 황학동으로 제2의 직업으로 전환하게되었습니다.
한 사회의 구성원 으로 열심을 다해 임무를 수행합니다 그런데 어려움이 한두가지가 아니더군요 예비군 관리 업무가 엄청이나 힘이들었습니다. 작은 인원이 아니고 3.600 여명이나 되는 자원 일일이 수작업 한다는 것이 보통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사수해야 될 곳이기에 열심히 관리하고 교육하고 또 소통해서 질 않좋은 동에서 질 좋은 동으로 탈바꿈 시켜놓았습니다.제일 어려울때가 지역 예비군 향방작전입니다.
특히 내가 맡고 있는 지역은 일명 도깨비 시장이라고 하는데 전국에서 없는것을 이곳에 오면 구입한다는 곳입니다 그리고 예비군들 중 넝마주의(망태메고다니자들 120명)가 있어 너무나 힘든 지역이었습니다
향방훈련 시 진지 배치훈련이 있는데 배치해놓고 순찰을 돌아보면 일부는 소총도 버리고 집에가서 자는 예비군이 없나 술집에가서
술먹는 예비군이 없나 정말 통제 불능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며 연구한것이 우리동 넝마주의 라도 상급기관에 보고하고 넝마주의 부대를 중부경찰서 성동경찰서와 합동으로 그들을 소탕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역촌동 자활촌으로 보내는데 일익을 담당하였지요 정말 무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딸을 대 수술을 받는 아픔을 견디어냄니다.
이러한 아픔이 있는데 예비군 소대장들이 알고 우리지역 중대장 딸이 심장병으로 힘들어하는 것을 알고
국회의원 선거무렵에 그 당시 민정당 후보였던 이종찬을 만나 우리동 중대장 딸을 심장 수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면 무조건 당신을 국회입성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면담이 이루워 지고
미국으로 보내겠다고 호언 장담하지요 그러나 그것은 요식행위에 불과 합니다..
국회입성하고 나서 찾아보지도 않더군요. 오히려 저보고 협박을 하더군요
당시 중구지역 위원장이란 자가 동대장 자리를 지킬려면 찍소리 말고 있는것이 좋을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이런 아픔과 모욕도 당해보지 않고는 알수 없습니다 정말 괴로운 삶이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국회의원들 하는 행태입니다.
그러나 저는 굴하지 않고 정정 당당하게 병원입원조치해서 수술을 받게 하였습니다.
심장에 판을 막는 수술을 하게 됨니다.
그 딸아이가 지금은 커서 시집을 가서 아들 둘의 엄마가 되어 있답니다.
아픔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더군요?
건강으로 정년을 5년 남기고 퇴직을 하게 되지요.( 2001년12월31일 퇴직일)
그로부터 월남 참전 전우회 베트벳(vietvet)에 가입하여2001~2005년 4년동안
사무총장 임무를 맡고 전국투어 각종행사를 하며 지냈습니다.
이때 채명신 사령관님을 모시고 전국으로 돌아 다니며 세상살아가는 모습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전우들이 자녀들위해 주례부탁하면 고령의 연세에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군산으로 전주로 부산으로
대구로 다니시며 전우들을 위로하고 격려해 주시고 했습니다.
기간중에 있었던 크고 작은 일을 생략하겠습니다.
2010년 아픔을 또 겪습니다.
아들이 갑자기 열이 40도 로 치솟고 하므로 병원을 가보니
급수성골수성 백혈병이라네요.?
얼마나 아픈지 당해보지 못한 분은 모르실 것입니다.
그래도 살려보려고 노력 했습니다 이식도 하고 했는데 또 역시 하늘나라로 가더군요?
이렇게 삶이 힘들줄 정말 몰랐습니다 지나온 삶이 오직 나에 헛된 모든것으로 비롯 되었구나
하는 자아도 발견되더라고요?
그러나 한 이면에는 분명있습니다
이런 삶속에 저만이 아닐것입니다. 그외 전우도 많습니다.
김영균 선배님과 같이 베트벳에 운영자이신 최진현 전우님을 생각하면 아들 모습이
떠 올라 미칠것 같습니다.
아들 입원 해 있을때 고엽제 와도 연계가 있습니까.
박사님에게 질문을 드린 적도 있습니다.
심중은 있으나 물증이 없다는 말로만 입 막음하더군요?
왜 나같은 사람이 어디한두 명이겠습니까?
헌데 나라에서 인정을 하지 않는것이 서럽고 억울하고 답답할 따릅입니다
여러분 모든것을 내려 놓으십시요?
오늘을 사는 것도 하나님의 힘으로 사는 것입니다.
바빠서 오늘은 여기까지... 박동빈 드림
현수막 사진속의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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