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붉은 선혈. 하얀색 셔츠를 물들이며 점차 그 영역을 확대시키고 있는 선홍빛 붉은 천연의 물감. 사람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천연의 순수한 물감...
아팠다. 왜? 왜 아프지? 모른다. 나의 관심사는 그저 저 붉은 물감 뿐. 신비한 선홍색...
-잡아! 죽여!!! 화근은 없애야 한다!
아파.. 왜 찌르는 거지? 나는 잘못이 없다. 하지만 저들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 화를 내며 나를 공격한다.
-투르의 예니체리! 죽어!
싫어! 죽기 싫어!! 소망도 이루지 못했는데..... 그럴 순 없어! 그들을 만나야...!
-카르 누나... 미안... 난 힘이 없어....
존? 어딜 가? 필립은 어디에? 그리고 난.... 어디에 있지?
-흥, 죽었군. 짐승들이 뜯어먹게 내다버려라.
누가 죽었는데? 설마... 필립이? 하지만... 이제 감각이 없다? 설마 내가 죽은..... 아냐, 아니야! 난 죽지 않았어!!!!!!
"헉!"
붉은 머리칼의 소녀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꿈...이었나? 하지만 이런 꿈은....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제법 예쁜 용모의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몸이 무거웠다. 그렇지. 벌써 사흘째 감기몸살.. 이제 슬슬 나아갈 때도 될 텐데. 하긴 조금은 나아졌다.
"퓨란, 일어났니?"
"아, 네, 네엣! 일어났어요, 어머니."
소녀, 퓨란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감기몸살에는 땀빼는게 최고라... 이집 사람들도 참 억지였다. 아픈 사람을 운동하게 만들고, 죽도 아닌 걸 먹이다니. 약도 지어주지 않고서. 하지만 효과는 있는 듯 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보글보글 끓는 스튜 냄비와 함께 그 옆의 의자에 앉은 갈색 머리칼의 부인이 눈에 띄었다. 부인은 다정히 말을 걸였다.
"오늘은 좀 어떠니?"
"네, 괜찮아요. 어제보다 더 나아졌긴 해요."
인자해 보이는 부인은 살포시 미소지으며 손에 들린 뜨개질감을 가지고 연신 바삐 손을 놀렸다. 연갈색 머리칼의 키가 큰 소년이 웃으며 퓨란에게 다가왔다.
"퓨란 누님! 오늘은 괜찮습니까?"
"으응, 아직은 아니야. 모레쯤에는 괜찮아 질거야."
퓨란은 아직도 무거운 몸을 의자에 기대며 말했다. 하지만 역시 그 검은 눈동자는 생기 넘치는 건강해 뵈는 눈이었다. 부인은 슬쩍 뜨개질감을 놓고 스튜를 살피며 생각에 잠겼다. 퓨란은.. 친딸이 아니었다...
그녀의 이름은 퓨란 메이필드. 본명은 아니다.
타는 듯한, 윤기나는 붉은 머리카락과 어두움을 한없이 담은 듯한 검은 눈동자.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외모였다. 그리고 목에 걸린 하얀색 보석의 목걸이. 마지막으로 손목에 맨 이상하게 생긴 기계. 가죽끈에 달렸으며 매우 작았지만, 그 뭔가 투명한 벽(유리) 안에서는 작은 바늘같은 것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예.. 손목시계입니다...)
몇 년 전 카디스가 팬드래건에 의해 점령되었을 때 그곳에서 발견한, 동떨어진 외딴곳에 버려졌던 검은 머리칼 소녀의 시신. 부인은 인정이 많았기에 그 피투성이 시신을 깨끗이 해서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붉은 머리칼을 가진 피투성이 소녀가 그녀의 집 앞에 쓰러져 있었다. 그래서 치유해 주었고, 일주일만에 깨어난 소녀는 기억상실이었다.
그래서 양녀로 거두면서 지어준 이름이 퓨란. 그녀의 첫 번째 아기ㅡ, 태어난지 일주일만에 죽은 붉은 머리칼의 여자아이의 이름이었다. 어째서 그 이름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퓨란이 된 소녀, 퓨란은 성격이 매우 밝고 명랑했다. 남편이 죽은 이후 그녀가 웃게 된 것은 퓨란과 두 쌍둥이 남매인 케리, 케이가 즐겁게 어울려 노는 것을 본 이후부터였을 정도로 퓨란은 밝은 아이였다. 부인과 주변사람들은 약 14, 15세 전후로 보였던 그 아이의 나이가 14세라고 단정했고, 이제 23세가 되었다. 어느새 9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버린 것이었다.
그만큼 퓨란의 위치는 그 집안에서 매우 커졌다. 용모덕에 청혼이 많이도 들어왔지만, 전부다 허.사. 퓨란은 전부다 거절한 것이었다. 내로라하는 가문에서 오는 청혼도 걷어찬 그녀였다. 뭔가 허락하려는 생각을 하기만 하면 뭔가 누군가의 형상이 눈앞에 선히 떠오른다는 말을 하지만.. 과연 누가 믿을지...
하지만 퓨란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그 형상속의 미끈한(?) 10대 후반쯤의 소년(청년?)이었다. 왠지는 모르지만, 좋은 걸 어떡해? 제대로 기억나지도 않지만, 허락할까 말까 하는 갈등이 생기면 선명히 떠오르는 얼굴이었다. 물론 그 직후 흐릿해지긴 했지만.... 상당히 잘.생.겼.다♡ 라고도 생각하는 퓨란이었다...
"어머니? 어머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계세요? 스튜가 눌어붙겠어요."
퓨란의 목소리에 생각의 홍수속에서 겨우시 빠져나온 메이필드 부인은 화들짝 놀라 황급히 스튜에 물을 더 부었다. 덕분에 시간은 더 많이 걸렸지만.. 상관은 없다. 그만큼 더 먹으면 된다는 고정관념이 현재 그 일가족의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었다.(콩가루집안이로구나~ 에헤~이야~~~~~~!(ㅡㅡ;;;;))
한참 후, 스튜&빵&물&그외등등으로 배를 채운 가족은 각자 할일을 찾아 하기 시작했다. 케이는 동네 친구들과 같이 우르를 몰려 놀러 나갔고, 케리는 퓨란에게 바느질을 배웠다. 부인은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더워더워!) 연신 손을 놀렸다.
그.러.나....
"퓨란 누니이임~!!!!"
"어라? 케이? 무슨 일이야?"
친구들은 어디 갔는지 혼자서 황급히 달려온 케이는 턱까지 차오른 숨을 몰아쉬다 말고 말했다.
"로, 로워드 클럽 녀석들이 또..."
「로워드」라는 이름을 듣기가 무섭게 바느질감은 내팽개치고 운동에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집을 뛰쳐나가는 퓨란이었다. 소요시간, 30초. 그런 모습을 보며 케이와 케리와 메이필드 부인은 역시 면역이 생기나보다,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시장. 그 한구석에서 청년들이 한데 모여서 열심히도 뭐라뭐라 떠들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의 퓨란은 내가 신랑이 되어야 된다 이겁니다!"
"뭐시라? 왜 너냐? 나지!"
"웃기는 놈들, 그건 나야, 나! 어디서 그런 망발들이야?"
그런 말들이 왔다갔다 하는 와중에,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한 인영(人影)이 눈에 띄었다.
"야이 놈들아아아~~~!!!!! 또 시작이냐아~!"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달려오는 그 모습은 역시 퓨란. 자신의 광적인 팬(?)들이 모여 결성된 팬클럽(...)인 로워드는 퓨란의 눈에 거슬릴 것이 당연지사였다. 틈만나면 자기만이 그녀의 신랑이 되야 마땅하다느니 하는 택도 없는 망발을 늘어놓는 놈들이 과연 그녀의 마음에 들겠는가? 전혀 아니었다.
"오, 퓨란! 내가 보고싶어진거야? 크헉!"
"야! 내가 보고싶은거지! 퓨란, 이참에 한번에 혼례를...? 우게겍!"
"야야야, 나지. 오늘 밤 네 방에 찾아.... 꾸에에엑! 와아악!"
"나의 퓨란, 아버님께 인사 드리러 가야지? 우아아아악!!!! 크허억! 으악!"
뻐억! 빡! 쾅! 퍼퍼퍽! 휘잉(파공음)! 꾸에에에에~!
"야이 망할것들아! 당장 이 클럽 해체 못해? 앙!"
오늘도 이렇게 한 녀석도 남김없이 기본 다섯대씩은 패고 쫓아낸 그녀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그렇지만.....
"응? 저 사람은?"
퓨란의 눈에 거친 갈색머리칼에 터번을 두른 청년이 눈에 띄었다. 물론 이전의 영상은 아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낯설지 않은 외모였다.
'내가 저런 사람을 본 적이 있던가? 처음인데?'
한참을 제자리에서 고민고민하던 그녀에게 청년이 말을 걸었다.
"아가씨? 혹시 '메이필드' 가(家)의 댁이 어디인지 알고 있소?"
'엇... 낯익은데.... 그러니까...?'
'메이필드'라면 자신의 성이고, 자신의 가문이 메이필드 가문이다. 그래서 그다지 잘 돌아가지는 않지만 그나마도 상급에 달하는 그녀의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자마자 그녀는 청년을 안내할 수 있었다.
"저희 집이네요? 절 따라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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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호호호호홋! 드디어 아린은 미친 거시어따(니가 얼간님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