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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記者)와 “필자(筆者)”와 “저자(著者)” “유래(由來)”와
“유례(類例)” “질문(質問)”과 “질의(質疑)” 신문이나 잡지를 읽다 보면
비슷한 의미를 가진 단어들을 혼용하거나 혼동하는 사례들을 자주 보게 된다.
어떤 단어들은 실제로 동의어(同義語) 또는 유의어(類義語)여서 혼용해도 괜찮지만
어떤 단어들은 비록 동의어나 유의어 일지라도 의미의 미묘한 차이
또는 관습적인 용례 때문에 귀에 거슬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예를 들자면 수도 없이 많지만 대표적인 보기를 세 가지만 들고자 한다.
♣ “기자(記者)”와 “필자(筆者)”와 “저자(著者)” 이 세 단어는 ‘무엇을 쓴다 또는 기록한다’는
공통점을 가진 단어들이다. 국어사전은 이 단어들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1) “기자(記者)”:“신문·잡지·방송 등에서 기사(記事)를 모으거나 쓰거나 하는 사람.
예: 신문기자(新聞記者), 취재기자(取材記者).”
(2)“필자(筆者)”:“글이나 글씨를 쓴 사람. 예: 이 글의 필자는 영화배우이다.”
(3)“저자(著者)”:“저작가(著作家) 또는 저술가(著述家)의 준말.
예: 김부식(金富軾)은「삼국사기(三國史記)」의 저자이다.”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기자(記者)”는 신문사나 잡지사나 방송사에 속하여 직업인으로서 기사를 쓰는 사람을 가리키고,
“필자(筆者)”는 전문인과 비전문인을 가리지 않고 어떤 종류의 글이든지 발표된 글을 쓴 사람을 지칭하며,
“저자(著者)”는 일반적으로 출판된 서적을 저술한 사람을 일컫는 데 쓰인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표현들은 부적합하게 들린다. “그 수필을 쓴 기자(記者)는 현역 국회의원이다.”
〔“필자” 또는 “작가”가 적합하다.〕
“장편소설 「토지(土地)」의 필자(筆子)는 박경리(朴景利)이다.”
〔여기서 “필자”가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저자”또는 “작가”가 더 적합하다.〕
“신문에 난 그 기사의 저자(著者)는 매우 예리한 안목을 가졌다.”〔“기자”가 적합하다.〕
이상과 같이 말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많이 있으므로 서로 양해하면서 들어야 하겠지만,
각 단어가 지니고 있는 뜻에 맞게 말하고 언어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서는 단어 선택에
각별히 유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른 언어들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많이 있다.
비근한 예를 들면, 영어에서 무엇인가를 기록하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들이 여러 개 있다.
우리말과 영어 단어들의 의미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말의 세 단어를 영어 단어들과 연결시키면,
“기자”는 reporter 또는 recorder, “필자”는 writer, 그리고 “저자”는 author와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유래(由來)”와 “유례(類例)” “유래(由來)”는 “사물이 어디에서 연유(緣由)하여 옴, 또는 그 내력(來歷)”을 뜻한다.
그래서 “사물의 내력에 대한 이야기”를 “유래담(由來談)”이라 하고, “옛적부터 전하여 오는 풍속”을 “유래지풍(由來之風)”이라고 한다.
“유래”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문장을 만든다면,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사자성어(四子成語)의 유래는 무엇인가?”,
“우리말 ‘빵’이라는 단어는 포르투갈어 ‘팡(pão)’에서 유래되었다”,
“대부분의 지명에는 그 이름의 유래를 말해주는 전설이 있다”. 등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유례(類例)”는 “같거나 비슷한 예(例) 또는 사례(事例)”를 가리키며, “유례없다”라는 말은
“그와 비슷한 전례(前例)가 없다”라는 뜻이다. “유례”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예를 든다면,
“지금 우리 국민은 유례없는 물가고(物價高)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 그런 행사가 치러진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한국인이 전쟁으로 인하여 폐허가 된 땅에서 40이란 짧은 기간에 그토록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한 것은 세계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등으로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두 단어 - “유래”와 “유례-를 혼동하여 쓰는 경우가 많다.
교양잡지뿐만 아니라 전문서적에서도 그러한 사례를 볼 수 있는데, 실례(實例)를 들면 다음과 같다.
“영광의 왕께서 사람을 위해 완전한 승리를 얻으시려고 이 땅에 오셔서 굶주림과
고통과 교활한 원수의 맹렬한 유혹을 견디셨다니 이 얼마나 비할 데 없는 낮추심입니까!
이것은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교회지남, 2019.6.5. 기도력 번역문). 여기서 “유래”는 “유례(類例)”를 잘못 쓴 것이다.
“근래에 가출한 소년들이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몰매를 가한 일은 일찍이 그 유래를 들어본 적이 없는 일입니다.”
(모 대학 교수가 어느 잡지에 기고한 기사에서). 이 글에서도 “유래”는 “유례”의 잘못이다.
이와 같이 외국어로 된 문서를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자들과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 가운데서도
“유래”와 “유례”를 혼동하거나 “유례”라는 단어를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질문(質問)”과 “질의(質疑)” 이 두 단어는 분명히 “동의어(同義語)”이다.
그러나 “동의어(同義語)라 함은 그 의미가 대체로 같다는 뜻이지,
엄격하게 동일한 의미를 가졌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질의(質疑)”는 “의문(疑問)이란 단어에서 앞글자를 땄고, “질문(質問”은 뒷글자를 땄으므로,
둘 다 “의문(疑問)”과 관계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질의”와 “질문”이 “묻는다”라는
의미는 공통적이지만 누가 무엇을 왜 묻는지에 따라서 그 용례가 달라진다.
이 두 단어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곳은 국회와 지방자치단체의 의회(시의회, 구의회 등)이다.
국회범 제 122좀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정부에 대하여 알고 싶은 사항이 있을 경우,
서면으로 질문(質問)을 할 수 있는데, 이때, 의원은 질문서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하고,
국회의장은 즉시로 정부 관계부처에 이를 통지하여 답변(答辯)을 얻도록 하고 있다.
이 조항에는 “질문” 또는 “질문서”라는 단어가 여러 번 반복되어 잇고, 그에 대한 정부의 대답은
모두 “답변”으로 일컬어져 있다. 그러므로 “질문”은 “국회법에 따라 국회의원이 정부에게 일정한
사항에 관하여 설명을 요구하고 그 의견을 묻는 일”이라고 정의할 수 있고, 그것의 반의어(反意語)는
“답변(答辯)”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질의(質疑)”는 이미 상정된 안건을 심의·심사하는
과정의 한 단계로 제안자 또는 보고자에게 의제가 된 안건에 관한 의문점을 제시하여 캐묻고
그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 즉 반의어는 “응답(應答)”이라 칭하며,
질의(質疑)가 있은 다음에는 일반적으로 토론(討論)이 이어진다.
다시 정리하면, “질문”은 안건과 관계없이 국정에 관한 처리 상황과 장래 방침을 정부 또는 당국자에게
묻는 것을 뜻하고,“질의”는 제시된 안건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이고 심화된 질문을 던지는 것을 가리킨다.
국회의원들이나 지방자치단체 의회의 의원들이 이러한 의미와 용례의 차이를 알고 이 단어들을
사용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굳이 법률적인 의미를 논하자면 이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일반인들은 이런 차이를 의식하지 못하면서 이 단어들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입법자들이 법을 제정하고 논하는 의사당에서는 이런 구별도 한다는 것을 알면 좋을 것이다.
의원들이 “질문”을 할때는 누군가가 “답변”하고, “질의”를 할 때는 “응답”하지만,
보통사람들은 아무 때나 무엇이든지 그냥 “질의응답"(質疑應答)을 하면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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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우!
귀한 정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