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 정남규, 강호순, 엄인숙….
이름만 들어도 섬뜩한 한국의 대표 연쇄살인범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사이코패스(Psychopath)라는 점이다. 사이코패스는 타인에게 공감하는 기능을 상실한 인격·성격장애를 지닌 사람을 말한다. 사이코패스는 10여년 전부터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주목받곤 했다.
인천 8세 초등생 살인사건의 범인 김모(16)양을 면담한 김태경 우석대 상담심리학과 교수가 지난 7월 13일 “김양은 사이코패스일 확률이 높다”는 증언을 하면서 사이코패스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대검찰청 과학수사자문위원인 김 교수는 지난 4월 김양을 면담해 정신감정과 심리분석을 했다. 그는 “(김양이) 정신장애일 가능성은 극히 낮고, 사이코패스 성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김양은 지난 3월 인천 연수구 동춘동의 한 아파트 놀이터에서 8세 아동을 유괴해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현재 진행 중인 인천 살인사건 1심 공판의 최대 쟁점은 김양이 사이코패스 인격장애를 지녔는지 혹은 다른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인지다. 둘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는지에 따라서 형량이 10년 이상 차이가 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현재 검찰은 김양이 사이코패스에 해당한다고, 반대로 김양의 변호인 측은 아스퍼거증후군 등 다른 정신질환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이 뭘 하는지 안다
사이코패스가 관심을 끈 것은 2004년 7월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경찰에 붙잡히면서다. 그는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약 11개월 동안 20명을 살해했다. 처음 본 사람들을 살해해 지문을 도려내고 토막낸 뒤 그 앞에서 밥까지 먹는 등 잔학함을 보인 그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이 대중에 알려졌다. 이후 한국 사회는 잔혹 범죄를 맞닥뜨릴 때마다 사이코패스 여부 판별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사이코패스의 특성으로는 흔히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이기적이며 △자극을 추구하고 △남을 잘 속이며 △속이는 과정에서 쾌감을 느낀다는 등의 특성이 보고된다. 박형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강호순, 정남규, 오종근(보성 어부 살인사건의 범인) 등 최소 2명 이상을 살해한 국내 연쇄살인범 14명을 직접 면담한 경험이 있다. 지난 7월 18일 기자와 만난 박 연구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사이코패스란 말에 사이코라는 접두사가 붙어 있어 ‘정신병이 아니냐’고 흔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정신병은 자기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 모르는, 한마디로 판단력이 상실된 상태죠. 사이코패스는 다릅니다.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주 잘 알기 때문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을 택합니다. 문제는 그 사이에서 피해자를 물건처럼 여긴다는 거죠. 피해자의 인격을 완전히 무시하기 때문에 잔인하고 가혹한 범죄가 발생하게 되는 겁니다.”
정신질환의 경우 범죄의 구성요건 중 책임성이 일부 혹은 전부 조각(阻却)된다. 이 때문에 형을 선고할 때 감경(減輕) 사유가 된다. 반면 사이코패스는 그렇지 않다.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알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아는 상황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기 때문에 책임성이 조각되지 않는다. 박 연구위원은 “사이코패스는 사실상 형 가중 사유”라며 “교화가 불가능하다는 특성상 대책은 범죄자를 격리하거나 제거하는 것밖에 없기 때문에 사회를 수호하기 위해 사이코패스를 가능한 오래 사회와 격리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00명 중 1명 이상
사이코패스 여부를 판별하기 위한 방법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은 사이코패스 체크리스트(PCL-R) 검사다. 20개의 문항으로 구성된 40점 만점의 이 검사에서 25점을 넘으면 사이코패스로 분류된다. 흔히 인터넷에 이 PCL-R검사 문항이 떠돌아다니지만, PCL-R검사는 자가진단이 아니라 대상자를 면담한 전문가가 진단하는 검사이며, 학교생활·면담기록·수감기록 등 매우 방대한 자료를 통해 성격장애 여부를 종합적으로 진단하는 것이므로 이 검사 문항으로 사이코패스 여부를 진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사이코패스는 감정이 없거나 약하다는 특성이 있어 거짓말탐지기에 걸리지 않을 확률도 일반인에 비해 높다. 거짓말탐지기 전문가인 최효택 국제법과학감정원 심리분석연구소장은 “사이코패스는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 거짓으로 탐지되지 않을 가능성이 보통 사람보다 높다”며 “사전에 조사해 사이코패스로 판정되면 탐지기 조사를 하더라도 여러 변수를 열어 둔다”고 말했다.
현재 범죄심리학계에서는 사이코패스를 선천적 요인이나 후천적 요인에 의해 100% 결정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생래적으로 사이코패스적 성향을 지닌 사람이라 하더라도 성장과정에서 적절한 교화를 받으면 사이코패스적 특성이 100% 발현되지는 않는다는 분석이 현재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에게는 어느 정도 공통적인 선천적 특성이 있다는 데 동의한다. 세계적으로 사이코패스 연구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전문가는 캐나다의 범죄심리학자 로버트 D. 헤어 박사다. PCL-R테스트의 개발자이기도 한 그는 사이코패스에게는 생래적인 특성이 존재한다고 봤다. 그가 사이코패스의 특징으로 꼽은 요인 중 대표적인 것이 ‘공감능력의 결여’와 ‘이기적인 성격’이다. 그는 인구 100명 중 1명 이상이 사이코패스라는 주장을 내놓아 주목받기도 했다.
최근 들어 정신의학계에서 사이코패스의 뇌가 일반인과 다르다는 연구 결과가 잇달아 나오는 것도 사이코패스가 선천적으로 태어난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200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연구팀은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해 사이코패스는 감정이 수반되는 도덕 판단을 내릴 때 공포를 주관하는 뇌 영역의 활성도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2012년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 정신의학연구소의 나이겔 블랙우드 박사 역시 “fMRI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 사이코패스의 뇌는 우측 전전두피질과 측두엽의 회백질 양이 적다”고 했다. 이 부위의 회백질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최신 연구 동향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는 일차적(primary) 사이코패스와 이차적(secondary) 사이코패스로 나뉜다. 전자는 일차적·선천적인 사이코패스이고, 후자는 후천적·사회적인 사이코패스다. 둘 중에서는 일차적 사이코패스가 사이코패스의 핵심적 특성을 보다 더 많이 지닌다. 기질적으로 냉담하고 공감능력이 떨어지며 스릴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MRI로 찍었을 때 뇌의 특정 영역 기능이 떨어지는 모습도 이차적 사이코패스에 비해 분명하게 나타난다. 유영철·강호순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차적 사이코패스는 후천적·사회적인 사이코패스이다. 한때 소시오패스(sociopath)로 불리기도 했지만 현재는 모두 사이코패스로 분류한다. 성장과정에서 무언가가 결핍된 환경으로 인해 사이코패스적 특성이 발현됐지만 적절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부분적으로 교화가 가능한 경우다. 상대적으로 감정적이고 공감능력이 있으며 걱정과 불안감도 일차적 사이코패스에 비해 더 느끼는 편이다. 2009년 교도소에서 자살한 정남규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
대부분 교화가 안 된다
일각에서는 인천 사건의 피고인 김양이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사이코패스라고 확정할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전문가의 지적이다. 윤정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반적으로 사이코패스 증상이 성인기에 발현이 된다고 하나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행동이 있다”며 “PCL-R-yv(youth version)가 있기 때문에 미성년자라고 해서 사이코패스라는 소견을 내릴 수 없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이코패스로 확인된 연쇄살인범들은 성장과정에서 사이코패스적 특질을 강화하는 환경적 결핍을 겪었다. 정남규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끊이지 않는 폭행과 동네 아저씨로부터 성추행·성희롱을 당한 일로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으며, 고등학교 재학 중에는 집단따돌림과 학교폭력을 겪었다. 유영철의 경우 어릴 때 알코올중독에 걸린 아버지의 폭력과 외도가 심했다.
현재 사이코패스 개념의 유용성을 두고는 학자들의 입장이 엇갈린다. 사회학이나 사회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사이코패스를 바라보는 학자들은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을 통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는 입장이다. 박형민 연구위원은 “개별 범죄자의 구체적 특성에 초점을 맞춰야지 사이코패스라고 뭉뚱그리는 건 득보다 실이 크다”고 말했다. 공감능력의 결여, 지나친 합리성, 능숙한 거짓말 등의 특징이 사이코패스로 분류된 범죄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인 것은 사실이지만, 분류를 위해 초점을 맞추는 것은 ‘사이코패스인 너’와 ‘그렇지 않은 나’를 나눈 뒤 선을 그어버리는 것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한번 사이코패스라는 낙인이 찍히면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도 사이코패스 개념을 사용하는 데 비판적인 학자들이 꼽는 단점이다. 사이코패스는 대부분의 경우 교화가 안 되기 때문에 한번 사이코패스라는 낙인이 찍힌 사람은 사회에서 재기하기가 어렵다. 박 연구위원은 “인터넷에 떠도는 PCL-R검사 항목들을 보고 무분별하게 ‘너는 사이코패스’라는 식으로 진단하는 것이 대표적인 위험 사례”라고 말했다.
반면 임상심리학적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학자들은 사이코패스 개념이 유용하다는 설명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윤정숙 연구위원은 “사이코패스는 섣불리 진단을 내리기 위한 목적에서 만든 인격장애 진단명이 아니다”라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성격장애, 인격장애에 속하는 사이코패스는 종전의 정신과적 지식으로 진단이 힘들었어요. 사이코패스는 그들만의 새로운 특질을 가지고 있죠. 이 특질을 지닌 이들을 분류할 수 있는 진단명이 있다는 것은 매우 도움이 돼요. 사이코패스는 이미 범죄심리학계에서 정립이 잘된 개념이고, 실제로 폭력범죄를 예측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죠. 이러한 범주를 굳이 쓰지 않으면서 특질에 맞지 않는 기존 정신과적 질환에 끼워 맞춰 진단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인격장애자 사이코패스를 둘러싼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