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마 여행2 - 파르마 대성당과 미술관을 보고는 토스카니니 기념관에 가다!
5월 30일 모데나 에서 기차로 파르마 에 도착해 강변을 따라 걸어 필로타 광장
Piazza della Pilotta 을 지나 대성당 두오모 Duomo 에 도착합니다.
파르마 대성당 두오모 는 1073년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완성되었다고 하는
데.... 그에 딸린 종탑은 1294년에 고딕양식으로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쿠폴라 에는 코레조 가 프레스코화로 그린 “승모승천” 이 있다지만 아쉽게도
문이 닫혀 내부는 보지 못하고 외관을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하네요.
그 옆에 서있는 세례당 Battistero 은 피렌체나 피사 처럼 8각형 인 데, 이탈리아
중세 건축에서 중요한 건축물로 로마네스크와 고딕양식이 어우러져 있답니다.
대성당과 세례당에는 모두 안테라미의 부조장식 이 남아 있으며 그외에도 인근에
산 조반니 성당에 코레지오의 벽화 도 아름답다지만 모두 문이 닫혔으니 어쩌랴?
다시 길을 되돌아와 필로타 광장 Piazza della Pilotta 에 이르러
국립 미술관 Galleria Nizionale 을 찾아서 구경합니다.
미술관을 대충 보고 나오다가 14~ 16세기 토스카나파의 작품 과 프라 안젤리코
등의 작품이 여러 점 있다고 들었는데 왜 안보이나 했더니..... 이런?
미술관 에 들런게 아니고 고고학 박물관 만 보고 나왔네요? 그러니까 옛 통치자 파르네세가
의 필로타 궁전 Pal. d. Pilotta 2층은 고고학 박물관이고 미술관은 3층 에 있었네요?
역시나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필로타 궁전의 3층에 나무 아치를 지나면 중후하면서도
세밀한 조각의 목조 건축물 파르네세 극장 Teatro farnesse 도 못보고 말았으니?
울 마눌 이 애타게 보고 싶어하는 지휘자 "토스카니니 기념관" 을 보고는 다시 기차로
밀라노 로 가야하는지라....... 마음이 급하다 보니 일어난 어이없는 실수입니다.
강변의 벤치에서 마눌과 만나서는 무거운 배낭 을 메고 베르디 다리 Ponte G. Verdi 로
파르마 강 을 건너는데..... 다리 중간 기둥에 채워진 사랑의 열쇠 가 생경스럽네요?
다리를 건너서는 지나가는 행인에게 물어서 왼쪽으로 걸어 다시 오른쪽 길로 들어서니 거기
"토스카니니 의 생가" Casa Natale di Arfuro Toscanini 가 얌전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토스카니니의 거대한 초상화 건너편에 기념관은 1867년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태어난 집
으로 2층 초상화가 걸린 방에 밀라노 스칼라극장 지휘 프로그램 이 있다고 했으니....
Museo Arturo Toscanini 문을 열고 들어가니 복도에는 빛바랜 옛 흑백 사진 들이 붙어 있는데
어리버리 엉거주춤 하노라니..... 한참이나 지나서야 관리인 할아버지 가 헐레벌떡 내려옵니다.
2유로씩 하는 티켓을 끊고는 할아버지는 2층으로 안내하더니 4층까지 전시물이 있으니
자유롭게 보라고 말하고는 다시 사라지니..... 빙고!!! 우리에게는 참으로 다행스럽네요!
역시나 토스카니니 를 찍은 여러 사진들을 보는데 오페라를 지휘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오래된 사진을 보며 생전의 명 지휘자를 회상해 봅니다.
토스카니니 는 가난하게 자랐으며 어머니의 키스 조차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었으나.......
"첼리스트 의 꿈" 을 안고 성장하면서 뜨거운 열정으로 다이내미즘을 창조해 내었다고 합니다.
무솔리니 정권이 파시스트 당가인 “조바네차” 를 연주하라고 했을 때...
“이런 곡은 음악 도 아니다“ 라고 일갈하면서 거부
했으며 나치가 유태인을 박해한다는 이유로 독일 무대를 멀리했습니다.
1886년 6월 30일 토스카니니가 첼리스트로 연주하고 있던 로시 오페라단
이 멀리 브라질로 건너가서는 리우데 자네이루 에서 “아이다” 를
공연할 때에 악단과 지휘자는 대립했고 가수들은 파업 을 선언하게 됩니다.
현지 지휘자 카를로 수페르티와 악단 사이에 언쟁이 일어나 지휘자가 떠나니 급히 수습에 들어가
황급히 부지휘자를 무대에 내보냈으나..... 청중의 거센 야유 속에서 비참하게 물러나야 했습니다.
사면초가에 빠진 단장 에게 “기왕 이렇게 된 거, 우리 오케스트라의 첼리스트이자 코러스 마스터
베르디 가 악보란 악보는 모조리 외우니까 그에게 지휘 를 시켜 보는 게 어떨까요?"
그렇게 토스카니니의 지휘 데뷔 무대 가 시작됐는데 1막이 끝나고.... 그 거침없는 지휘에
넋이 나가서 청중들은 기립박수 를 쳤으며 이후 토리노에서 지휘자의 길로 들어섭니다.
서른 한살 토스카니니는 1898년 토리노에서 가진 43번의 연주회를 전부 암보로 지휘하여
전단원을 놀라게 했으며 이때 부터 밀라노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 에 전격 기용됐습니다.
그는 이탈리아 직품이 아닌 바그너, 드뷔시 등 외국 작품 도 무대에 올렸으며
그가 세계 초연 했던 오페라 중에는 푸치니의
라 보엠 과 투란도트 에 바그너의 지그프리트, 차이콥스키 오네긴 등이 있습니다.
오페라 중간에라도 관중이 앙코르를 외치면 바로 그 자리에서 그 대목을
다시 불러 답하는 당시의 관례를 깼다가.... 격정적인
시칠리아 사람들과 토스카니니가 한 판 맞붙은 사건 은 유명하다고 하네요?
마피아 두목 이 나서서 중재한 덕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는데, 타협을 허용치 않는
개혁 은 결국 라 스칼라를 등지고 190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으로 이적합니다.
사람들은 토스카니니의 천재성을 존경 하고 최고의 오페라 지휘자로
여기지만! 그 반면에 그는 리허설 내내..... 아티스트들에게 쏟아
내는 폭언과 공포스러울 정도의 성급한 기질로 비판 을 받았다고 합니다.
경비와 예산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완벽한 상연 을 하려는 기질 때문에
무대장치도 까다로운데다가 비용이 천문학적 으로 느니.....
오페라단 실무진과 갈등 을 빚었고 결국에는 메트로폴리탄 마저 떠납니다.
1920년 라 스칼라 오페라로 돌아온 토스카니니는 푸치니 미완성작 “투란도트" 를 1926년 4월에
라 스칼라에서 초연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객석에는 파시스트 무솔리니 도 와 있었습니다.
지휘를 맡은 토스카니니는 후반부에서 다른 작곡가가 추가 완성한 악보 바로 앞에서
연주를 중단 시키고 청중들에게 “위대한 작곡가는 여기서 붓을
놓으셨습니다.” 말하고 등을 돌리니 파시스트 지도자에게 박수치는걸 막았다고 합니다.
1926년 부터 뉴욕 필하모닉 을 지휘한 토스카니니는 1930년경 바다를
건너와 다시 독일등 유럽 투어를 돌며 극찬을 받았으니....
1248년 호엔촐레른 가의 영지로 된 이래 바로크풍의 궁전등 건축물이 늘어선
바이에른 북부의 고풍스러운 예술 도시 바이로이트 가 있는 데......
이 도시 파르마 출신 베르디 와 같은 해에 출생한 바그너 가 살면서 심혈을 기울여
설계한 축제극장에서 지금은 국제음악제 가 열리는 도시이기도 한데....
그 세기적인 음악의 전당 바이로이트 에서 지휘한 최초의 외국 지휘자 로 기록됩니다.
토스카니니는 1930년대에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지휘 했으며 이후
팔레스타인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봉 을 잡았으며..... 1937년
NBC 심포니 를 조직합니다. ( 내용 일부는 네이버 캐스트를 참조했습니다. )
첫댓글 토스카나니기념관 사모님이랑 두분이 오붓이 잘 보셧네요.
참 마음이 편한 하루였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