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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강해3.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 하였도다
260531낮 (신1:24-33)
<24)그들이 돌이켜 산지에 올라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그 곳을 정탐하고 25)그 땅의 열매를 손에 가지고 우리에게로 돌아와서 우리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이 좋더라 하였느니라 26)그러나 너희가 올라가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27)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28)우리가 어디로 가랴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를 낙심하게 하여 말하기를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 하는도다 하기로 29)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30)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1)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32)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33)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아멘
신명기는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 직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 놓고 지난날 출애굽의 과정들을 회상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전하는 세편의 설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출애굽 당시의 세대는 모두 죽고 출애굽 이후의 다음세대들에게 하나님과의 언약(율법)을 가르쳐야 할 중대한 필요를 느낀 모세는 유언과도 같은 심정으로 전한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계속해서 가나안 정탐에 대한 회고가 기록된 말씀을 살펴보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은 <불신앙은 하나님보다 환경을 더 크게 보이게 한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눴는데요....오늘은 신명기 강해 세 번 째 시간으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제목으로 한 절 한절 강해를 통해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각자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신1:24절입니다.
<24)그들이 돌이켜 산지에 올라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그 곳을 정탐하고>
“정탐하다” /히브리어 וּלגריוְְַַּ (vayraggelu)
→ 몰래 살피다, 탐색하다는 뜻으로 하나님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확인하러 간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의심으로 살피러 간 것이란 뜻입니다.
“에스골” / 히브리어לכֹּ ֶשְׁא (eshkol)
→ “포도송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포도송이가 있는 골짜기란 뜻으로
실제로 그 땅은 풍성한 열매가 있는 약속의 땅이었음을 확인 한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은 하나님은 이미 “좋은 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눈으로 확인하려 했습니다.
믿음은 “보여서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셨기에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는 어떤 토도, 어떤 부연 설명도 없이 무조건 신뢰하고 믿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신1:25절입니다.
<25)그 땅의 열매를 손에 가지고 우리에게로 돌아와서 우리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이 좋더라 하였느니라>
“좋다” / 히브리어 הבָוֹט (tovah)
→ 아름답고 선하며 풍성하다는 뜻으로 정탐꾼들은 그 땅이 좋다는 사실은 인정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의미는 이 정탐꾼들처럼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은 인정합니다.
천국이 좋은 것도 압니다.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도 압니다.
순종이 옳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는 두려움 때문에 순종하지 못합니다.
여러가지 계산 때문에 순종하지 못합니다.
불신앙 때문에 하나님보다 환경이 더 커 보입니다. 대적 원수 마귀가 더 커보입니다. 그래서 순종하지 못합니다.
머리의 신앙과 삶의 신앙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머리의 신앙과 삶의 신앙이 일치해서 순종에 이르러야 할 줄 로 믿습니다.
▣ 신1:26절입니다.
<26)그러나 너희가 올라가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너희가 올라가기를 원하지 아니하고…거역하여”
“거역하다”/ 히브리어 הרמָָ(마라) 반역하다, 저항하다
→ 이는 단순한 불순종이 아니라 “반역하다”는 의미입니다.
주님보다 문제가 더 커 보이면 믿음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불신앙입니다. 우상입니다. 즉 불신앙은 단순 연약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반역입니다.
믿음이 약해지면, 현실은 커지고, 하나님은 작아집니다.
광야 시대의 이스라엘의 이 반역은 계시록의 환란의 시대에 배교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 신1:27절입니다.
<27)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
‘원망하여 이르기를’ 이란 사악한 말로 속삭이다, 뒤에서 험담하다는 뜻입니다.
‘장막 중에서’ 란 말은 “너희의 장막들 안에서”라는 뜻으로 복수를 사용 했습니다.... 단지 개인의 장막에서 혼자 속으로 험담한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이 모여 동시에 모세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이로보건데... 너희의 장막이란 말은 결국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막과는 정반대의 개념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기들 장막에 모여 지도자 모세를 헐 뜯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장막에는 하나님의 임재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그릇되고 간교한 판단에 하나님의 뜻을 멀리하고 ...뿐만 아니라 그 뜻에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공동체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자리나 가정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단순히 원망을 넘어 더 적극적인 미움의 상태를 표현합니다. 계획적으로 하나님이 자신들을 곤경에 빠트리고 멸망시키려고 애굽에서 인도해 냈다고 하나님에 대한 심한 혐오와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을 향한 미움을 넘어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왜곡하고, 악한 말로 폄훼하고 ...너무나 악의적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일 당하면 그 상대를 계속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애굽에서 건져달라고 부르짖을 때는 다 잊어버리고...
배은망덕(背恩忘德)도 유분수죠
은혜를 잊으면 사랑도 의심하게 됩니다.
애굽에서 건지신 하나님을 미워하시는 분으로 오해합니다.
불신앙은 하나님의 사랑을 왜곡합니다. 은혜를 경험했는데도 사탄은 계속 의심을 심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죄악과 지옥에서 건지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셨는데..그 사랑을 의심을 넘어 왜곡하고, 악한 말로 폄훼하고...악의적으로 부인하고..대적합니다.
이런 배은망덕은 약속의 땅이라는 물질적인 목표만 쉽게 획득하려는 인간의 탐욕이 그 마음 바탕에서 작용한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여러 차례 언약을 통해 땅과 후손들에 대한 축복을 굳게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언약은 축복의 약속으로만 가득찬 축복선집(祝福選集)이 아니라 그 백성의 책임 있는 삶을 요구하는 믿음과 실천규례(實踐規例)였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약속된 축복이 실현되기까지 믿음과 인내로 그 언약을 성실히 지키며 그 규례를 철저히 준행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언약(계약)체결은 그 계약 당사자를 신뢰하지 못하면 지킬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무너진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요 추악하고 완악한 모습을 가져오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다가 낙심한자는 ...불신자보다 더 악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예) 쌀과 굳은 밥알
▣ 신1:28절입니다.
<28)우리가 어디로 가랴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를 낙심하게 하여 말하기를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 하는도다 하기로>
하나님에게서 눈을 돌리면 절망만 보일뿐입니다.
그들은 낙심 했습니다.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다고 합니다. 아낙자손(거인족속)을 보았다고 합니다.
만유보다 크시고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보다 고작 290센티밖에 안 되는 아낙자손이 더 커보였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눈을 떼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예)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때 ...예수님을 바라볼 때는 걸었습니다.
그러나 바람을 보는 순간 빠졌습니다.
환경을 보는 신앙은 무너집니다.
약속의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만이 광야를 통과합니다.
엘리야는 환경을 보는 순간 낙담하여 도망자가 되고 맙니다.(왕상19:1-3)
환경 바라보지 말고... 끝까지 잠시도 눈을 떼지 마시고, 하나님만 바라 보시기를 축원합니다.
▣ 신1:29절입니다.
<29)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두 말은 서로 동의어입니다. 이것을 반복적으로 사용한 것은 아모리족속을 겁내지 말고..그보다는 이스라엘 중에 계시는 크고 두려운 하나님 곧 여호와의 힘을 확실히 의지하라는 강한 명령의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모세는 과거 출애굽 역사가운데 나타나신 그 능력의 하나님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 신1:30절입니다.
<30)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가시는, 행하시는/ 히브리어, 할라크
-> 현재의 계속되는 동작을 나타내 줍니다.
광야에서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앞서 인도하셨던 하나님은 지금도 계속 변함없이 이스라엘 앞에서 행하시며 인도 하고 계심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때 보여주셨던 강한 능력으로 이제부터 수행해야할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의 싸움 역시 승리로 이끌어 주실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열 가지 재앙과 홍해도하사건 때 싸워주신 하나님께서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모리족속과의 싸움에서 이스라엘자손들이 멸절될 것을 염려하여 원망하는 상황가운데서 ...과거의 똑같은 상황에서도 대신 싸워 애굽군대를 물리치신 하나님이 아모리족속도 물리쳐 주실 것이다는 것입니다.
<결국 여호수아를 통하여 이일을 이루셨다(수10:1-14)>
우리는 과거...지난 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들을 잊을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지난 날 위험에서 지키셨을 뿐 아니라 건져주신 하나님, 질병을 고쳐주신 하나님... 문제를 해결해주신 하나님... 수도 없이 많은 은혜들과 이적과 기적을 베푸셔서 여기까지 오게 하셨는데...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전혀 생각지 못하고...지금 눈앞에 닥친 현실 앞에서 여전히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의지하지 못합니다.
그 하나님은 여전히 나에게 맡기라고 말씀하시고, 내가 대신 싸워줄 것이고, 내가 대신 지켜 줄 것이고, 내가 대신 해결해 주실 것이고, 내가 대신 물리쳐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신1:31절입니다.
<31)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너희가 당하였거니와’라는 뜻은 “너희가 눈으로 보았거니와”란 뜻입니다.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목격한 사실을 언급 한 후 계속해서 이처럼 그들의 눈으로 본 사실들을 기억하게 한 것은 그들의 하나님이 결코 관념속의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살아계시며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란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기를 좋아하는 너희가 눈으로 보았잖느냐? 그런데...그걸 왜 기억하지 못하느냐? 그것을 왜 잊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느냐? 그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실텐데... 무엇을 두려워하느냐!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어서 말씀 합니다.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가 걸었던 그 모든 길에서란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어 다닌 어떠한 길에서도 예외 없이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안아서 보호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돌보시는 자상한 손이 그들과 함께 했음을 강조하여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길에서라고 되어 있지만, 원어에는 길 안에서란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걸어온 여정 자체를 감싸고 보호해 주셨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삶에서 어느 순간은 함께 하시고, 어느 순간에는 떠나시고... 즉, 어느 한 순간에만 함께 하신 분이 아니라...내 삶 전체를...내 삶 통째를 하님은 감싸시고, 보호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안다” אשנָָׂ (nasa’)/ 들어 올리다, 짊어지다
광야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역과 거부와 저항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버리시지 않으시고, 짊어지고, 즉 업고 이 장소까지 오셔서 이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모레위의 발자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 신1:32절입니다.
<32)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모든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누구의 하나님? “너희의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계속해서 믿어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금 가나안을 바라보고 있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믿어 온 것 같았는데...믿지 않았습니다. 이제까지 하나님이 입히시고, 먹이시고, 지켜 주시고, 동행해 주셨는데... 이제 와서 상대가 크고 두려운 존재라고...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많은 세월...믿은 것이 믿은 게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불행한 일이 있을까요? 그들은 결국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사망의 길로 들어서야 했던 것입니다.(35, 40절)
“믿다 ַָןמא(aman)
여기서 “아멘”이 나왔습니다.
믿음은 동의가 아니라 의탁입니다.
즉 믿음은 단순 긍정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여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보다 하나님을 믿지 못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진짜 믿음은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모든 상황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못 맡기면 모든 것이 부인되는 것입니다.
▣ 신1:32절입니다.
<33)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광야 인도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는 미래 전체를 보지 못해도 하나님은 길을 알고 계십니다.
그들이 안전하게 40년을 광야를 지나 지금 가나안 목전에 와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결코 그들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앞서 행하시며 모든 장애물들을 제거 해 주셨고, 장막을 치고 쉴곳을 마련해 주셨고, 밤에는 불로 밝히셨고, 따뜻하게 해주셨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뜨거운 태양을 가려 주셨습니다.
세상에 이런 신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 이런 하나님이 어디계십니까?
시내산 언약체결에서...너희가 나를 신뢰하고 나의 계명을 잘 지키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거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이렇게 사랑하고 부모와 같이 지키시고.. 돌보시고...이끌어 오셨거늘...
우리를 미워하셔서 우리를 죽이려고 이곳까지 끌고 오셨다고 원망하고... 통곡합니다. 이 모습이 똑같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요?.......아멘
34절부터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불신앙에 대하여 심판 하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음시간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