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주택가에 들어서면, 요즘은 드문드문 핼러윈을 앞두고 현관 주위의 분위기를 바꾸는 집들이 시선을 끈다. 귀여운 인형이나 호박등-jack-o-lantern-으로 장식한 집도 있지만 그보다는 해골骸骨이 뒹굴고 R.I.P.-rest in peace 고이 잠들다-라고 표기된 묘비를 세워 집 앞 정원이 묘지가 된 집이 가장 많고, 처마에서 화단까지 하얀 거미줄을 넓게 펼치고 검은 거미를 걸쳐 놓거나 지붕에 닿을 듯한 마녀 인형 등을 배치해서 검은 이미지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려는 집주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트리의 반짝임과는 너무 달라 어린 아이들은 무서워 할 것 같다. '미신'이라는 말을 떠오르게 하는, 미국이라는 문명국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러한 풍습으로 인해 그렇게 잘 관리되던 몇몇 집과 정원이 하루 아침 어두움에 점령된 듯하다. 많지는 않지만 10월 마지막 주를 앞두고 점점 장식裝飾-맞는 표현인지 잘 모르겠음-하는 집이 늘어난다.
어제는 산책하다가 어느 집 현관 앞 양쪽에 놓인 의자에 두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한 사람은 단정한 자세였지만 한 사람은 다리 한 쪽을 엉덩이쪽으로 올려 놓고 있었는데 섬찟했다. 두 사람 모두 전신 해골-플라스틱-이었기 때문이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둘은 떨어져 앉아 있는, 그 집의 안주인과 바깥양반을 떠오르게 했는데 오른쪽에 앉은 사람이 상대방을 향하여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것 같았다. 하긴 묘지를 주택 가까이에 쓰면서도 거부감이 없는 미국인들이니 이해는 된다.
「1」죽은 사람의 살이 썩고 남은 앙상한 뼈. 「2」살이 전부 썩은 죽은 사람의 머리뼈. ≒촉루03(髑髏). 「3」생각하는 머리를 속되게 이르는 말. 「4」몹시 여위어 살이 빠진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해골骸骨의 뜻인데 그렇다면 땅에 뒹구는 해골과 지금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내 뼈는 무엇이 다른가. 먼저 모든 뼈가 관절로 이어져 유기적有機的 관계를 가지고 몸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뼈의 중심부인 골수骨髓는 양분을 저장할 뿐만이 아니라 적혈구와 백혈구를 만들어 공급하고 있고 그 겉은 따뜻한 혈액이 순환되고 있는 살-근육으로 덮여 있다는 것이다. 또 곳에 따라 만져지기는 하지만 보이지는 않으면서도 이 몸의 형체를 이루며 삶을 영위하는 바탕이 된다. 척추와 이어진 갈비뼈가 없다면 몸통을 이루지 못하므로 심장을 비롯한 장기들이 외부 충격에서 보호받지 못할 뿐 아니라 에너지를 만들어 팔다리로 공급하여 몸을 움직이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찬 바람에 드러난 앙상한 해골과 달리 살아 있는는 사람의 뼈는 36.5도라는 삶의 온도를 유지하며, 또 그 따뜻한 뼈의 집합은 모든 움직임과 얼굴 표정의 근간根幹을 이룬다. 바로 삶을 지탱하는 기둥인 것이다. 해골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연상하게 되지만 반사적反射的으로 더 따듯한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시야를 넓혀 부정할 수 없는 또 다른 면이 존재한다는 엄연한 현실을 깨닫게 한다. 문화라는 테두리 안에 갇혀 살면서 그것이 다인 것처럼 느끼며 살았지만 다 벗어 버리고 돌아가야 할 곳은 흙이 아닌가. 인류 문명도 결국은 땅에 뼈를 묻은-뿌리를 내린 한 그루 큰 나무인 것이다. 만성절萬聖節은 바로 죽음을 뛰어넘은 모든 성인을 기념하는 날이기에 죽음의 이미지로 전날 밤을 가득 채우는 것이리라. 그래서 다음날 동이 트면 다른 날과 달리 더욱 밝고 의미 있는 날로 기념할 수 있게 하며 이어지는 크리스마스의 참 생명, 경건함으로 새해를 맞이하고 영원히 이어지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골은 그 기능을 다 끝내고 발걸음을 멈추었지만 살아 있는 동안 많은 일을 했으니 존중받아야 마땅하고 잘 모셔져야 하리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주검은 상형문자의 굵은 획으로 땅에 씌여진 인류 역사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물론 살아 있는 뼈도 극진히 사랑해야 하는데 그 가장 좋은 방법은 과격한 운동보다는 몸에 무리를 주지 않는 산책이다. 잔잔한 가운데 모든 골격의 활동 범위를 넓혀 그것을 밑바탕으로 견문을 넓힐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틈틈이 문화라는 선을 지우고 나뭇잎을 팔랑이는 바람과 동행하는 산책은 우리의 시선을 멀리 별로 이끈다. 그리고 또 몸을 떠받치는 수많은 뼈들의 역할과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그 움직임을 원활하게 할 뿐만이 아니라 그 움직임 속에서 이 생각 저 생각으로 폭을 넓히며 신선한 감정을 샘솟게 한다. 이러한 산책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10월 31일 아침, Del Sur 초등학교에서 핼러윈 축제가 있어서 구경하러 갔다. 운동장을 개방하고 전교생이 개성이 넘치는 복장을 하고 나와 담임 선생님을 선두로 잔디밭을 바깥쪽으로 난 인도를 따라 한 바퀴 도는데 학부모들은 안쪽 잔디밭에 줄지어 서서 구경하고 사진도 찍는다. 공기를 넣은 공룡 속에 들어가 뒤뚱뒤뚱 걷는 아이들이 먼저 눈에 띄었는데 더운 날씨에도 즐거움이 먼저인 것 같다. 스스로도 재미있겠지만 어떤 아이들도 뛰어다니다가 공룡을 치고 달아나기도 하고 관심을 끈다. 말을 타고 달리는 형상을 보이는 인형 옷을 입은 아이, 레고 박스를 걸친 아이, 야구복이나 경찰복을 입은 아이, 앞에 해골을 그린 옷인데 얼굴까지 가린 아이 등 가지가지이다. 여자 아이들은 짙게 화장하고 드레스를 입기도 했는데 마녀를 표현하려고 한 애들도 있었다. 한 백인 아이 얼굴이 정말 무섭게 느껴질 정도였다. 입가엔 피가 흐르고 있는데 그 아이는 친구들 앞에 가서 잡아먹을 듯이 입을 벌리면서 드라큐라 연기를 하곤 했는데 웃음기 없는 어두움이 섬찟했지만 귀여웠다. 그런데 민준이는 특별히 준비한 복장을 하지 않고 태권도복을 입고 갔는데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작년에는 다른 복장을 했었는데 교회에서 핼로윈 축제를 인정하지 않고 마귀가 들었다고 보기 때문인데 내 생각은 다르다. 이것도 풍습이고 이웃과 교류하는 기회인데 그마저 빼앗는것이 아닌가. 핼로윈 축제보다는 교회에 따로 모여 학생들이 어울리는 시간을 마련했다는데 미국 사회에 정착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처사가 아닌가. 저녁에 한 바퀴 돌았는데 북적북적햇다. 평소엔 사람 사는 것 같지 않게 조용하던 동네가 이 집 저 저 집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부모들이 많았다. 부모들도 마술사 모자를 쓰는 등 핼러윈을 같이 즐기는 모양새였다. 역시 역시 아주 어린 아이들이 집 주인이 바구니에서 꺼내 주는 과자를 받는 것을 보니 귀여웠다. Happy Halloween!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어떤 집은 아예 부부가 집 앞에 앉아 있었다. |
첫댓글 벌써 가신지 두어달 되어가지요? 이제는 정착하시는 기분도 들 것 같습니다. 문화적 이해까지 설면 주시고 감사합니다.
에버그린님, 방문 감사하고 또 아드님 결혼 거듭 축하합니다. 어제는 '들꽃 만남' 시조집을 받았습니다. 집사람이 책 내는 것에 회의적이었는데 막상 책이 나오니 좋다고 하는군요. 딸도... 저도 너무 유치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첫 시조집으로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이슬이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