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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시루봉 서봉에서 조망, 맨 왼쪽 뒤는 안동 학가산이 틀림없다
松下問童子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으니
言師採藥去 스승은 약초를 캐러 갔다 한다
只在此山中 지금 이 산속에 있으련만
雲深不知處 구름이 깊어 알 길이 없구나
―― 가도(賈島, 779~843), 「은자를 찾았으나 만나지 못하고(尋隱者不遇)」
▶ 산행일시 : 2019년 3월 9일(토), 맑음, 미세먼지 좋음
▶ 산행인원 : 15명
▶ 산행거리 : GPS 도상 13.3km
▶ 산행시간 : 9시간 23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31 - 동서울터미널 출발
07 : 53 - 중앙고속도로 치악휴게소
09 : 02 - 중올산 마을, 단양샘물기도원, 산행시작
10 : 34 - △1,059.9m봉
10 : 57 - 백두대간 진입, 시루봉(1,110m)
11 : 10 - 시루봉 서봉(1,116m)
12 : 04 ~ 12 : 36 - 대수동 마을 아래 도로, 점심
13 : 25 - 수학봉 남서릉 진입, 1,010m봉
13 : 38 - 수학봉(선미봉, △1,081.3m)
14 : 38 - 수리봉(1,019.0m)
15 : 12 - 신선봉(성산봉, 995m)
15 : 30 - Y자 갈림길, 오른쪽은 석화봉(834m) 0.6km
16 : 12 - 황정산 남봉(945m)
16 : 35 - 황정산(黃庭山, △957.1m)
18 : 25 - 대흥사, 산행종료
18 : 53 ~ 20 : 33 - 단양, 목욕, 저녁
22 : 36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산행지도(영진지도, 1/50000)
2.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2부 산행
3. 산행 고도표
▶ 시루봉(1,110m)
제2영동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에 남한강을 지나 차창 밖 북쪽을 바라보면 너른 들녘이 펼쳐
지고 그 끝으로 봉긋하게 솟은 봉우리가 졸음이 달아나게 눈길을 끈다. 양평의 추읍산이다.
이 추읍산의 선명도에 따라 그날의 일기를 예상한다. 오늘은 대체로 맑다. 이른 아침 연무를
감안하고 요 며칠간 미세먼지로 전국이 흐리멍덩했던 것을 생각하면 아주 쾌청한 날씨라고
할만하다.
우리는 중앙고속도로 가리파재 치악휴게소를 잠시 들려서 자판기 커피 뽑아 졸음을 쫓는다.
다시 달리는 차안에서 등산화 끈 조이고 스틱 길이를 조정하는 등 산행준비를 시작한다. 단
양 대강면에 들어서고 남조천 건너 좌우로 늘어선 준봉들 사이를 비집는 올산리 가는 길은
산을 오르는 것처럼 엄청 가파르다. 그 정점은 백두대간 저수령 해발 855m이다. 우리는 해
발 600m쯤 되는 중말 단양샘물기도원 앞에서 멈춘다.
오전 1부 산행은 3시간짜리다. 백두대간 시루봉을 다녀오기 적당하다. 이런 곳에 일반등산로
가 있을 리 만무하여 메아리 대장님의 향도로 대뜸 덤불 뚫고 잡목 숲을 헤친다. 가파른 생사
면에 코 박아 오르면서 맡는 산 냄새가 상큼하다. 이런 산 냄새를 맡을 때마다 산에 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숨차게 한 피치 오르자 산허리 돌아 앞서가는 임도와 만난다. 임도
따라가며 절개지 낮은 데를 고른다.
산모퉁이로 돌아 완만한 절개지를 붙든다. 이내 인적이 있는 듯 없는 듯 호젓한 능선길이다.
예전에 채석장이었다. 양질의 화강암이다. 그 깎아내린 나이프 릿지 모양의 날등을 살금살금
오른다. 대기는 선선하여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조차 시원하다. 채석장 지나고 능선은 미역줄
나무 덩굴이 무성하다. 고개 숙이고 저돌하여 뚫다가 지치면 양손으로 전정하며 나아간다.
긴 오르막이 잠시 주춤한 890m봉 소나무 숲에서 첫 휴식한다. 오늘 입산주 탁주 안주는 고
급스럽다. 해피 님이 보내온 영월 명가의 메밀전병이다. 요기와 더불어 목추기고 배낭까지
비우니(내 우선 탁주와 과일을 내놓아 짐을 덜었다) 끝없는 미역줄나무 덩굴 숲을 스틱 치켜
들어 마치 모세가 지팡이로 거친 파도의 홍해를 가르듯 하며 간다.
시루봉 북릉에 올라서고 등로를 왼쪽으로 약간 벗어난 △1,059.9m봉을 들른다. 미역줄나무
덩굴은 이곳도 덮쳤다. 또한 키 큰 나무숲이 우거져 사방 아무 조망이 없다. 삼각점은 ‘단양
456, 2003 복구’이다. △1,059.9m봉을 잠깐 내렸다가 가파른 빙판을 미끄러지고 엎어지고
자빠지며 오르면 백두대간 탄탄대로가 나오고 곧 시루봉 정상이다.
시루봉 정상은 나무숲이 빙 둘러 조망을 가렸지만 남쪽 사면을 잡목 숲 뚫고 20m쯤 내려가
서 절벽 위에 다가가면 근래 보기 드문 산첩첩 가경이 펼쳐진다. 이 한 장면만으로도 오늘 산
행의 값이 충분하다고 여긴다. 앞으로의 경치는 남는 것이다. 일행들은 시루봉을 오르다 말
고 오른쪽 사면을 돌아 백두대간 길에 든다. 시루봉 내린 야트막한 안부에서 곧바로 한 피치
바짝 오르면 시루봉 서봉이다(영진지도의 투구봉 표시와는 다르게 이정표에는 투구봉이 시
루봉에서 1.46km 떨어져 있다).
시루봉 서봉은 빼어난 경점이다. 전망바위가 있어 방금 전 시루봉에서의 잡목 숲 헤친 조망
이 각론이라면 서봉에서는 총론이다. 멀리는 안동 학가산이 틀림없다. 그 앞의 만산천학이
내 발아래다. 전망바위가 좁아 교대로 들러 침이 밭도록 감탄하고서 물러난다. 하산. 시루봉
서봉의 북릉을 내린다. 한 차례 빙벽을 큰 나무 부둥켜안고 내리고는 펑퍼짐하여 쭉쭉 내린
다. 푸른 초원인 산죽 숲을 지나고 골로 간다.
골을 건너갔다 건너오기 반복한다. 덩굴 숲에 번번이 막히고 사면을 치고 올라 지능선을 붙
들기도 한다. 인적이 나오면 지배(地背)를 철(徹)할 듯 주의 깊게 살피며 쫓지만 얼마 안 가
서 놓치곤 한다. 울창한 숲속 커다란 바위 아래 통나무 벌통이 놓여 있는 것을 본다. 민가가
그다지 멀지 않을 것이고 인적 또한 분명하다. 줄달음한다.
새삼 벌통 주인이 대단한 사람일 거라고 짐작한다. 벌통을 지나고도 구불구불 미로인 산길을
한참동안 내려야 하니 말이다. 종내는 가시덤불을 뚫어 사방댐에 다다르고 농로를 따라가서
도로에 올라선다. 대수동 마을 아래다. 먼저 내린 선두는 갓길에서 점심을 준비하고 있다.
4. 제2영동고속도로에서 차창 밖으로 바라본 추읍산
5. 제2영동고속도로에서 차창 밖으로 바라본 추읍산
6. 뒤 왼쪽은 백운봉, 오른쪽은 용문산
7. △1,059.9m봉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본 단양 주변
8. 멀리 가운데는 치악산 연릉, 앞은 황정산 동릉
9. 백두대간 시루봉에서 조망
10. 백두대간 시루봉에서 조망
11. 백두대간 시루봉 서봉에서 조망
▶ 수학봉(선미봉, △1,081.3m), 수리봉(1,019.0m), 신선봉(성산봉, 995m)
2부 산행은 황정산이다. 점심 먹은 자리에서 골짜기로 내려가서 계류를 징검다리로 건너고
이어 가파른 생사면을 한 피치 오르면 말라비틀어진 고추 밭이 나온다. 그 밭두렁을 길게 돌
아 1,081.3m봉 동쪽 능선을 잡는다. 제법 통통하고 암팡진 능선이다. 점심이 든든했기 망정
이다. 뱃심 한껏 쏟아 오른다. 1보 전진하려다 2보 후퇴하기 일쑤다.
갈지자 크게 그린다. 움켜잡을 잡목이 없는 데는 스틱을 힘껏 박아 보지만 꽁꽁 언 땅이라 빗
나가고 그 풀에 내가 엎어진다. 땀난다. 가파름이 한결 수그러든 860m봉에 올라서는 더는
못 참고 웃옷 벗고 반팔 셔츠차림 한다. 살갗에 와 닿는 대기가 차가우면서도 시원하다. 사우
나 냉탕에 든 기분이다. 능선은 치솟다 멈칫하기를 반복한다. 숨이 차면 스틱에 기대서서 숨
돌린다.
어렵사리 수리봉 주릉 1,010m봉에 오른다. 비로소 길이 풀린다. 고지가 저기라 내쳐간다. 나
뭇가지 사이로 왼쪽 건너편인 백두대간 황장산 연릉 그 너머 공덕산, 천주산 연봉을 연신 기
웃거리며 간다. △1,081.3m봉. 선미봉(수학봉)이라는 표지판을 ‘SEOUL MOUNTAIN’에서
걸어 놓았다. 처음에는 그들만의 작명인 줄 알았는데 앞으로 만나게 되는 이정표에 ‘수학
봉’이라 하고, 김형수의 『韓國400山行記』에는 ‘선미봉’이라 표시한 것으로 보아 얼마간 이
력이 있는 산이다.
선미봉(善美峰)에 대한 산림청의 설명이다.
“선미봉은 착한 산이라는 뜻의 착할 선자에다 산의 순수한 우리말인 ‘뫼’자를 붙여 선뫼봉으
로 불리다가 오늘에 이르러서는 뫼가 아름다울 ‘미’로 변해 붙여진 이름이다. 산이 착하다니
무슨 뜻일까. 착한 산이라서 등산로마저도 편할 것 같지만 그동안 등산인들의 발길이 거의
미치지 않아 등산로에는 잡목과 낙엽으로 원시림을 방불케 한다. 정상에 오르면 서북쪽 풍광
이 가장 먼저 시선을 끈다.
선미봉과 맥락을 같이 하는 수리봉, 황정산, 도락산 정상이 시야에 와 닿고 동쪽으로는 멀리
도솔봉부터 백두대간을 끌고 온 시루봉과 촛대봉 그리고 저수령 아래로 거대한 분화구처럼
움푹 패어든 목장지대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러나 지금은 선미봉 정상에서 아무리 발돋움하여도 사방 키 큰 나무가 빙 둘러서서 조망이
무망이다. ‘수학봉’이란 이름의 내력에 대하여는 알지 못하겠다. 삼각점은 ‘단양 452, 2003
재설’이다. 일행 점호하여 보니 세 사람이 빈다. 메아리 대장님과 산정무한 님, 사계 님이다.
메아리 대장님은 저번에 발목을 접질렸는데 통증이 도질 기미가 보이기에 2부 산행을 포기
했다. 아마 산행을 강행하기보다는 포기하기가 더 힘들었을 것이다.
산정무한 님은 수학봉에 오르려니 학문을 닦느라 늦어진다는 일부 건설적인 의견이 있었으
나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이고 사계 님이 아름다운 동행 중이다-그 두 사람은 결국 수리봉에
서 전인미답인 북릉을 타고 탈출하기에 이르렀다-대간거사 총대장님이 남아서 그 두 사람
을 기다리겠다 하고 산행은 계속 진행된다. 수리봉에서부터 신선봉까지 암릉 길이 오늘 산행
의 하이라이트가 아닐까 한다.
수리봉 입구부터 짜릿한 손맛 본다. 암릉 슬랩을 트래버스 하여 철봉 난간 잡고 오른다. 수리
봉 정상은 일견 무미건조해 보이지만 서남쪽으로 잡목 헤치고 30m쯤 내려가서 절벽 위에 서
면 일대 가경과 마주하게 된다. 바로 눈앞 오른쪽에는 섬세하고도 수려한 신선봉 남벽이 병
풍처럼 펼쳐지고, 왼쪽에는 황장산 연릉 연봉이 백두대간 장성이다. 이 가운데로는 멀리 월
악산 영봉을 옹위하는 문수산, 메두막산, 하설산, 어래산 등 월악산군이 현란하다.
수리봉 내리는 길은 약간 싱겁다. 손맛 좀 볼 슬랩을 철계단으로 덮어버렸다. 안부께 지나는
암릉이 껄끄럽다. ‘클리프 행어’적인 암릉이다. 쇠줄 잡고 수십 길 깊은 절벽을 트래버스 한
다. 이어 소나무 숲길 잠깐 지나고 철계단과 절벽 밖으로 낸 잔도를 오르면 신선봉 정상이다.
암봉 전망대는 오늘 산행 최고의 경점이다. 그중 압권은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인 천주산(天
柱山)이다.
12. 아래 마을은 예천 용두리
13. 맨 오른쪽은 백두대간 황장산, 맨 왼쪽은 치마바위
14. 왼쪽 뒤는 운달산
15. 수학봉(선미봉)에서
16. 오른쪽은 공덕산, 가운데는 천주산
17. 황정산
18. 신선봉
▶ 황정산(黃庭山, △957.1m)
오늘 산행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황정산이다. 오전의 시루봉 산행은 황정산 가는 발걸음을 가
볍게 하기 위해서이고(시루봉 오르면서 메아리 대장님을 비롯한 여러분의 분투로 대물 더덕
을 다수 포획했다), 수리봉과 신선봉은 황정산 암릉을 오르내리는 예행연습장으로 생각했다.
산행종료 예정시간을 17시로 하자고 하니 상당히 빠듯하다. 서둔다.
신선봉 막판 내리막길도 철계단과 잔도이다. 앞서가는 영희언니가 철계단 중간의 한 계단을
특히 조심하시라 이르기에 주춤주춤 갔더니 아닌 게 아니라 느닷없이 푹 꺼진다. 자칫 고꾸
라져 계단을 구를 뻔했다. 철계단을 내리면 험로는 일단 끝나고 당분간 부드러운 숲길을 간
다. 내리쏟는 중에 Y자 갈림길에서 주춤하여 망설인다. 이정표에 오른쪽으로 석화봉이
0.6km이다. 산 이름이 좋다. 다녀오고 싶은 맘을 애써 꾹꾹 눌러 참는다.
안부 지나고 한 피치 오른 평평한 공터에서 휴식한다. 배낭 털어 먹자 해도 먹어주는 사람이
없다. 하산이 얼마 남지 않아서다. 이제 와서 괜히 빵 몇 입을 먹었다가는 맛있는 저녁이 다
칠 우려가 있다. 마침 마주 오는 장년의 부부등산객이 있어 서로 반갑게 수인사 나누다 대간
거사 총대장님이 그들에게 빵 좀 드시겠느냐 권유했으나 그들도 싫다고 한다.
황정산 남봉이 멀리서도 첨봉이더니만 가까이서는 더하다. 오르막 능선 마루금은 사나운 암
릉이고 등로는 오른쪽 사면을 길게 돌아 얕은 골짜기로 오른다. 황정산 남봉 정상은 예나 다
름없이 조망 없는 숲속이다. ┫자 갈림길 왼쪽은 도락산 가기 전의 안부인 빗재 가는 길이다.
뻔히 직진하여 황정산 주봉을 가기가 의외로 착각하기 쉽다.
왼쪽 사면을 잠시 내리는 중에 Y자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으로 갔더니 곧 Y자 갈림길이 만나
서 왼쪽 사면을 길고 깊게 내려 빗재 가는 능선 길과도 만난다. 황정산을 이렇게 돌아가나 보
다 하고 내닫다가 주위가 소연하여 일행을 연호하였더니 황정산 남봉을 지나는 일행들이 듣
고 왜 거기로 가느냐며 어서 올라 오시라고 한다. 뒤돌아 중간쯤 오르자 거기가 맞는 것 같다
고 한다. 다시 뒤돌아 내려가자 아니라며 계속 올라오시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헷갈리기 쉬웠다. Y자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갔더라면 오른쪽 사면을 도는
길이 있었다. 때 아닌 알바로 힘이 쭉 빠져서 간다. 황정산 주봉 가는 오르막은 그다지 험하
지 않다. 암벽 밑을 돌아 슬랩 오르면 정상 주변의 평탄대로에 이르고 오른쪽 사면은 난간 밧
줄을 둘러친 절벽이다. 조망이 훤히 트인다. 골 건너 올산이 나지막하고 그 위로 멀리 묘적
봉, 도솔봉, 흰봉산 연릉이 장성이고 그 뒤는 성주인 소백산 연화봉이다.
이윽고 황정산 정상이다. 사방 조망은 나무에 푹 가렸다. 삼각점은 ‘단양 439, 2003 재설’이
다. 정작 황정산의 백미는 정상에서 북릉을 타고 영인봉과 원통암을 가는 길이다. 그런데 우
리는 하산시간이 촉박하여 그 길을 놓아준다. 대흥사를 향하여 가장 짧은 거리인 황정산 동
릉을 내리기로 한다. 어렴풋하게 선답의 인적이 보인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는 여기에 있었다. 어렴풋하게 보이던 인적을 꼭 붙들었으나 가파르
게 내리던 중 절벽 근처에서 잃어버렸다. 이곳저곳 쑤셔보다 협곡을 낙엽과 사태 져서 함께
내리고 오른쪽 가파른 사면을 길게 트래버스 하여 지능선을 붙든다. 이 지능선도 오래가지
못하였다. 절벽과 또 만난다. 이제라도 차라리 뒤돌아 올라 주등로를 따라 내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도 생각했지만 여태 애쓰고 내려온 행적을 찬찬히 더듬어보면 실로 막막하다.
대간거사 총대장님이 척후로 나서고 사면을 내리쏟더니 반침니의 슬랩을 찾아낸다. 수적도
인적도 없는 외길이다. 날렵한 새들 님이 먼저 내려 바위 아래 사정을 살피고 대간거사 총대
장님은 중간에 버티고 서서 일행들의 하강을 안내한다. 슬링을 건다. 한 사람이 레펠 자세하
여 하강을 다 마친 후에 다음 사람이 하강한다. 어떻게 보면 퍽 재미난 구간이다.
모두 무사히 내렸다. 낙엽 수북한 사면의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진다. 이번에는 제리 님이 척
후한다. 절벽 나오면 돌아내리기를 반복한다. 낙석이 비석(飛石)이다. 농구공만한 크기의 돌
이 낙석! 하는 외침보다 더 빨리 직하한다. 좌우로 획휙 난다. 다만 운이 좋았다. 제리 님은
자기가 평소에 좋은 일을 많이 하여 그 덕을 보았노라고 으스댄다.
골로 떨어진다. 대흥사까지 2km정도 남았다. 암릉 같은 너덜을 오르고 내린다. 슬랩은 앉은
자세하여 미끄럼타고 내린다. 어느덧 산그늘이 지고 어둑해진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골짜기
계류가 넓어지고 산자락을 더듬어 오르자 노란 산행표지기 한 장이 보이고 인적이 나타난다.
드디어 험로가 끝났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리고 멀쩡하던 무릎이 시큰거린다.
데크계단 내리막이 나오고 임도 같은 대로를 간다. 원통암 영인봉 가는 길이리라. 아까는 납
작 엎드렸던 무명봉들이 벌떡 일어서서 주장하기 시작한다. 나도 준봉이노라고. 올산천 건너
717.7m봉과 572.0m봉, 515.1m봉들이 그렇다. 올산천의 법문을 듣는 절이 대흥사다. 새로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절집이다. 대흥사가 유서 깊은 절이다.
신라 때 양산 통도사의 건립 당시 창건하였다고 하며 전성기에는 6,000여 평의 부지에 총
202칸의 당우와 불상 10여구, 오백나한상 등이 봉안되어 있었으며, 승려도 1,000여 명에 달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876년에 소실된 뒤 오백나한상은 금강산 유점사의 승려들이 와서
가져갔다고 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1876년은 일본이 강화도에 불법으로 침입한 운양호 사건으로 조일(朝日)간에 불평등한 강
화도조약(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된 해이다. 대흥사가 이와 관련이 있을 듯하다. 단양군 홈페
이지에는 대흥사를 이렇게 설명한다. “대흥사는 202칸의 큰절이었다. 일본군과 의병이 교전
하는 과정에서 애매하게 대흥사가 불타고 말았다. 승려가 100여명이 있었고 …….”
우리는 해거름에 올산천(兀山川)의 천년 불법을 들으며 산행을 마친다.
19. 앞은 신선봉 자락, 멀리 가운데로 월악산 영봉이 약간 보인다
20. 멀리 가운데로 월악산 영봉이 약간 보인다
21. 맨 왼쪽 뒤가 천주산, 맨 오른쪽은 백두대간 황장산
24. 오른쪽은 황장산
25. 천주산
26. 수리봉
27. 도락산
28. 도락산, 오른쪽 능선 뒤로 흐릿한 산은 금수산
28. 앞은 올산, 뒤는 왼쪽부터 흰봉산, 도솔봉, 묘적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