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야 할 원고가 태산이지만, 퐁당퐁당님을 비롯해서 은동이 소식 기다리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서 은동이 이야기 전합니다. 첫날이니 만큼 시간대 별로 사진과 함께 자세히 보고 드릴게요. ^^
뚱아저씨가 가시고 나자 은동이는 낯설고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어요. 집 여기저기를 둘러볼 법도 한데 그냥 주방에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제대로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요. 여기는 어딜까, 이 사람은 누굴까, 나는 또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았어요. 한참을 그러고 서 있기에 제가 "다리 아프지 않아? 방석에 앉아볼까?" 하고 방석 쪽으로 데려갔는데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네요.
한편 우리의 피피마우스, "엄마가 웬 강아지를 또 데려왔네?"라고 하고 있어요. 피피는 정말 속 편한 아이입니다. 이제는 다른 강아지가 집에 와도 그러려니 하는 것 같아요. 누가 오면 왔나 보다, 가면 갔나 보다...... 제가 은동이 안고 들어갔더니 한 번 힐끗 쳐다보고는 끝입니다. 쏘 쿨. ㅡㅡ;;
인적도 불빛도 없는 외딴 곳에서 오랫동안 혼자 지냈을 은동이...... 너무 참혹한 생활을 해서인지 겁이 무척 많아요. 자기보다 더 조그만 피피조차 무서워하더라구요. 피피가 은동이 옆을 지나가기만 해도 화들짝 놀라면서 뒷걸음질칩니다. 아마 피피가 막 들이대는 아이였더라면(갑자기 코코뭉치님네 뭉치 생각이...... ㅎㅎ 뭉치야, 보고 싶다!!) 은동이는 더 겁을 먹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계속 냉장고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은동이와 엑스트라 방석에 앉아 럭셔리 방석을 쳐다보는 피피. "음, 좋아 보이는데 쟤는 왜 안 앉지? 내가 한 번 앉아볼까?"
제왕 자세로도 앉아보고(팔걸이에 '턱'하니 손 걸친 거 보이시죠? ㅎㅎ).
토끼 자세로도 앉아보고.
"흠, 편하군."
가뜩이나 겁이 많은 은동이는, 잠깐 방석에 갔다가도 피피가 다가오면 얼른 비켜줍니다. ㅠㅠ 아직은 아무것도 자기 거라고 생각을 못하나 봐요. 제가 피피를 끌어내고 은동이를 불렀더니 그제야 살그머니 방석에 올라가보는 은동이에요.
어젯밤에 은동이를 위해 끓인 닭죽을 미지근하게 데워서 줬어요. 찹쌀, 닭가슴살, 당근, 브로콜리를 넣고 만든 영양식입니다. (저녁 메뉴는 강아지 보양식 북어죽!!) 너무 주눅이 들어 있어서 먹기나 할까 싶었는데 다행히 참 잘 먹었어요. 그릇을 뚫을 기세로 바닥까지 싹싹 핥아먹는 걸 보니 흐뭇하더라구요.
다른 쪽에서는 피피가 열심히 닭죽을 먹고 있고요.
닭죽을 먹고 나서 또또님표 수제 사료를 줬는데 역시 잘 먹습니다. 조금 쫄아 있긴 해도 이 녀석이 살려는 의지는 있구나 싶어 어찌나 기특하던지요. 사료는 적당히 먹고 남겨놓을 줄도 알고요.
배가 부르니 마음이 조금 놓였나 봐요. 처음처럼 안절부절하지 않고 곧바로 방석에 자리를 잡습니다. 피피가 럭셔리 방석을 탐내지 않도록 마약 방석을 가져다 옆에 놓아주었어요. 은동이의 안정에 도움이 될까 싶어 피아노 연주곡도 작게 틀어주었고요. 많이 예뻐해주고 싶은데 아직은 너무 쳐다보고 만지고 안아들고 하는 것도 부담이 될까 싶어 그냥 편안하게, 은동이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고 있습니다.
이때부터는 은동이가 겁 먹은 기색이 좀 덜한 것 같았어요. 담요를 덮어주려고 다가갔더니 제 손을 한참, 아주 한참 동안, 핥아주더라구요. 여기는 무서운 곳이 아니구나, 이 사람도 위험한 사람이 아니구나... 그렇게 받아들인 걸까요. 마음껏 제 손을 핥을 수 있게 계속 손을 내밀고 옆에 쪼그려 앉아 있었어요. 조금씩 마음을 여는 것 같아서 얼마나 다행스럽던지... 가만히 쓰다듬어보니 몸은 또 어찌나 작고 말랐는지...
누운 자세도 조금씩 편안해지는 은동이입니다. 잘 때조차 차갑고 딱딱한 바닥에 몸을 뉘어야 했을 은동이가, 퐁당퐁당님 말씀처럼 이렇게 폭신하고 안락한 자리도 있구나, 생각하는 것 같아요. 뚱아저씨가 은동이에게 럭셔리 방석을 사주신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
함께 지낸 지 하루밖에 안 됐지만 은동이는 참 순하고 얌전한 아이 같아요. 어찌나 조용한지 아직 은동이 목소리도 못 들어봤네요. 아까 동네 사는 친구가 은동이 본다고 잠깐 왔다 갔는데 사람이 들어와도 안 짖고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하더라구요. 친구가 사사미 간식을 사왔는데 그건 참 잘 먹었구요. 저희 집에 오는 사람들이, 그리고 앞으로 은동이가 만나게 될 많은 사람들이, 은동이를 사랑하고 따뜻하게 대해줄 거라는 걸 은동이가 빨리 알면 좋겠어요.
조금 걱정되는 것은 아직 저희 집에 와서 배변을 한 번도 안 했네요. 피피가 쉬해놓은 배변 패드 냄새를 맡도록 유도도 해보고, 패드가 있는 베란다에 데리고 나가보기도 했는데, 아직 낯설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많은 분들이 은동이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관심 가지고 계신 만큼 제가 잘할게요. 너무 힘들게 지냈을 은동이라 더 좋은 음식 먹이고 더 좋은 옷 입혀서 은동이를 만나는 사람들마다 "와, 저 강아지 정말 행복해 보인다"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슬프고 아픈 과거 따위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요. 은동이가 완벽하게 견생 역전하도록 다함께 응원해주시고 기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아까 원고 쓸 때는 A4 한 장 쓰는 데 네 시간이나 걸리더니 임보일기는 왜 이렇게 술술 써지는지... ㅡㅡ;;; 만날 강아지 이야기만 쓰고 살면 좋겠어요. ㅠㅠ
팅커벨의 마음을 모아모아 은동이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어헝 어헝 어헝...
아픈과거따윈 첨부터 없었던것처럼~~~눈물나요ㅠㅠ 잘읽었었어요.피피님..간절히 기도 할께요.
감사해요, 남 약사님. 은동이 위해 많이 기도해주세요. ^^
은동이가 다리 뻗고 편안하게 자는 모습에 미소가 나네요...
피피님께서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먼저 다가서기보다 항상 기다려 주는 모습이 참 현명하고 배려심이 많으신 분 같아요..그래서 아이들도 참 편안해하고...
저도 은동이를 보고 개팔자 상팔자란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응원하고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나 피피는 함부로 들이대는 성격이 아니라서... ㅎㅎㅎ 은동이도 조금씩 다가오고 있으니 걱정 마셔요. 치즈님이 아이들 위해 기도해주신다고 생각하면 늘 든든하답니다. ^^
은동이 행복한 일만 남았죠. 짖지 않는건 아마 불안해서일지도 몰라요 적응되면 짖겠죠. 안짖사다 짖어니 얼마나 반갑고 기뻣던 기억이 있네요 . 저도 1년전에 안락사 직전 한마리 데려왔는데 안짖어서 걱정했는데 일주일 만에 짖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