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인권 위원회에서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다고 연락이 왔다.
국가인권위원회 정책 국장이외 직원들과 420장애인 차별철폐농성단 대표들과 간담회였다.
그곳에 모인 대표 급들 모두 정책에 관한 요구에 관련한 뚜렷한 주장들과 견해들을 가지고 있지만 장애아 부모인 나는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장애아 인권과 교육차별에 관해서 실사례 이외 경험과 현장에서 느끼는 부모들의 고통을 호소하려 했다.
420공동농성단 도경만 집행위원장은 이 나라는 당사자들의 끊임없는 요구와 투쟁으로 차별에 저항하고 있는데 국가 인권위는 무엇을 하는가를 화두로 던지고 장애인 차별 금지법 추진위원회(이하 장추련) 김광이 법제위 부위원장은 국가 인권위에서 법안을 내놓은 장차법이(장추련법안보다 상위법안으로 될) 권고 수준인 다음에야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실질적 법안이 필요하다며 국가 인권위에 접수된 진정 처리 1천여의 건수에 비해 실제 처리된 건수는 너무도 미미했다고 지적하며 여러 종류의 차별 사례를 예로 들고 집단 소송,과 손해 배상 문제 등은 차별에 대한 예방책으로 효과적일거라는 말과 시정명령제, 이행 강제성 부여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였다.
이어 정책국장은 서울대학교수가(내 기억이 정확한지 잘 모르겠지만) 집필한 책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으며 ‘생존권,노동권, 교육권. 이동권, 정보 접근권.....’ 우리가 너무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고 잘 알고 있는 내용들이었다.
인권위측은 권고적 기능만을 하고 있다며 여러 다른 나라에서도 강제 집행 능력을 가진 인권위는 별로 없며 강제 이행 집행 할 수 있는 기구를 인권위 산하에 둔다는 것은 업무영역 확대라는 측면으로 인권위 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룬다고 답했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 이행 기구를 줘도 안한다는 뜻이다.
‘띠발! 너희들 까불면 죽어! 나도 감정있는 사람이야! 내 몸(내 아이가) 불편해 보여도 할 수 있는 건 한다구! ’
젠장! 나도 이 정도 권고는 할 수 있다.
그런데 늘 씩씩한 척하던 나는 간담회 중간에 바보 같이 울고 나와 버렸다.
장애아 부모로 이 국가에서 받는 차별과 양육에 관한 어려움으로 하루하루가 죽고 싶을 만큼 힘들어 거리로 뛰쳐나온 나에게 국가 인권 위원회에서 그저 시정 권고만하고 이행 강제 집행할 의지도 생각도 없다는 인권위 측의 이야기는 내 귀에
‘우리나라는 장애인 차별에 관한 한 너희들이 알아서 해야 된다. 국가는 개입하지 않겠다.’ 라고 들렸다.
이 간담회는 국가인권위가 420공동 농성단의 인권위점거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듣고자 하는 성의로 보여졌기에 장애인 차별 철폐에 해결에 관한 뭔가 듣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인권위측이 가진 생각들을(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재차 확인 했을 뿐이다.
듣고 있자니 자꾸 눈물이 흘렀다.
(젠장!삭발이 후 잘 하지 않던 화장을 오늘 따라 왜 했는지 후회했다.)
간담회는 장애 부모인 내게 참기 힘든 시간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국가 인권위는 가슴이 없다.
그들은 그저 업무만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쩌면 인권위는 이 간담회를 가진 것만으로 420공동 농성단에 성의를 보였고 할 일을 다 했다고 생색낼지 모른다.
장애우 권익문제 연구소의 조건부 시설비리에 대해 설명을 하는 동안 인권위 측 누구는 깜빡 깜빡 졸고 있었고, 난 옆 사람도 모르게 눈물을 훔쳐 내며 꾹꾹 참고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감정이 폭발할 것 같아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져 장애우 권익문제 연구소 박숙경 팀장의 말을 끊고 이 자리에서 나가겠다고 말해버렸다.
그리고 바보처럼 울음이 터지면서
‘저, 이 자리, 너무 견디기 힘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내 아이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사회에 나올 것이고 이후 내가 늙거나 죽으면 저런 시설(비리시설)에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데...
내 아이 삶과 내 삶이 걸린 비참한 현실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여기 모여 계신 분들은 그저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네요.
혹시 자식과 동반 자살에 관해 생각해 보셨습니까?
난 아이 죽이지 못해 제가 이 자리에 와 있습니다.
도대체 그럼 인권위는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가 더 묻고 싶군요.
이 시간이 너무 힘들어서 지금 나가겠습니다!’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않은 채 이야기를 해 정신이 없었지만 대충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간담회 분위기를 망가뜨린 죄로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을 하고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고 코트를 들고 나왔다.
김도현 국장과 촬영 중이던 EBS방송 작가가 따라 나와 나를 진정 시키려 애를 써 주었지만 좀처럼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내가 나온 이 후도 오랜 시간 간담회는 계속 되었다.
나도 내가 왜 울었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내가 장애인 당사자였다면 장애 여성 공감 박영희 대표처럼 차분히 할 말 다 했을런지 모른다.
내 자신의 한 목숨을 걸고 고통도 혼자 감당해야 한다면 어쩌면 박경석 교장 선생님처럼 지치지 않고 힘차게 더욱더 힘차게 열정을 불사르며 투쟁을 즐길 수 있을지 모른다 생각했다.
그러나 난 비장애인이고 장애아 부모다.
장애아 뿐 아니라 비장애 아이를 가진 엄마고, 한 집안의 며느리이고, 어느 집안에 딸이다.
가족의 희생과 장애아 자식을 담보로 수퍼 우먼을 방불케 하는 투쟁을 요구한다.
인권 운동을 하는 엄마로 산다는 건 아이 삶의 고통을 뛰어 넘어야 하는데 내게는 이것이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이다.
나는 내 아이의 차별과 고통의 삶을 함께 할 수는 있어도 넘을 수 없었다.
장애인 참교육 부모회 대표답게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키며 앉아 있어야 했는데.......
왜 그랬는지......
인권에 관한 국가 최고 공적 기관으로부터 들었던 말은 적어도 나에겐 '이 나라에 인권은 없다.'가 결론이고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따뜻한 가슴도 없었다.
국가에 대한 실망이 전부였다.
(그리고 이성적이지 못한 나 자신에게도 실망했다.)
간담회에 앉아서
‘말아톤’의 초원이와 천문학자 ‘스티븐 호킹’를 떠올렸다.
언론에서 초원이와 스티븐 호킹........ 장애를 뛰어 넘은 ‘인간승리’로 표현했다. 맞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초원이는 인간 승리임에도 기업 선수로 뛰지 못하는 개인적 취미인 마라토너가 되었고, 만약 스티븐 호킹이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살았다면 현재 그는 시설에서 썩은 음식을 먹으며 학대 받으며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 장애인 현실인 것이고 정답이다.
스티븐 호킹이 천문학자로 살 수 있었던 것은 한 개인의 인간 승리가 아니라 영국 사회의 승리다. 그들의 사회적 (교육적)지원 체제와 사회 안전망 체계 때문일거라 스스로 믿게 되었다.
몇 해 전에 장애인 참교육부모회 결성에 열정을 쏟던 박인용 국장은 자신의 딸이 장애아라는 이유로 입학 거부했던 유치원에 대해 국가 인권위에 진정서를 냈었다.
국가 인권위는 그 진정에 대해 장애인 차별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비겁한 결정을 내렸었다.
장애아동을 양육하면서 셀 수 없는 교육차별과 함께 상처를 받아오면서도 꿋꿋하게 버텨왔지만, 인권위라는 국가기구로부터 받은 결정은 국가에 대한 기대를 버리게 해 장애아 부모들에게 결국 깊은 상처를 남겨져있다.
그런데 오늘 이건 또 뭔가..........
국가 인권위가 업무 확대 반대한다는 이유로 우리 아이와 내가 또 거부당했다는 이 느낌은....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과연 정부는 있는가...
결국 우리의 ‘장애인 차별을 철폐하라’ 외침은 외로운 메아리다.
정신지체, 발달 장애아 부모로 자신을 주장할 줄 모르는 아이들의 미래를 여기서 주저앉아 묻기에는 고행의 긴긴 시간이 남아있어 더 서러웠는지 모른다.
이 설움과 오늘의 내 눈물이 투쟁의 에너지로 승화되길 스스로 기도하며 그 차별 고리에서 안주하려는 국가 인권 기관에 기대 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는 수퍼맨이 되어(흉내라도 내며 살아야한다.) 길고 긴 투쟁으로 차별의 고통에 어떤 형태로든 저항해야한다.
뒤 돌아 갈 수도 없으니 앞으로 행진 할 수 밖에.....
오늘은 아프다.
많이 아프다.
정말 너무 많이 아파서 비명도 지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