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시온아, 한껏 기뻐하여라
-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복음화 전략과 본당 활성화 방안
즈카 9,9-10; 로마 8,9.11-13; 마태 11,25-30
연중 제14주일; 2023.7.9; 이기우 신부
1. 말씀의 흐름
삼복(三伏)을 앞두고 한여름 더위가 연일 온 나라를 찜통으로 달구고 있습니다. 뜨거운 날씨만큼이나 오늘 들려오는 말씀도 예사롭지 않게 뜨겁습니다. 제1독서에서 즈카르야 예언자가 들려준 말씀은 장차 메시아가 오실 때의 상황을 알려주는 결정적인 예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유배에서 돌아온 직후 애타게 기다리던 말씀을 즈카르야 예언자는 드디어 하느님께서 백성을 아주 친근하게 부르신다는 말씀으로 전해주었습니다. “딸 시온아, 딸 예루살렘아! 한껏 기뻐하여라, 환성을 올려라!”(즈카 9,9).
실제로 즈카르야의 메시아 예언 이후 5백여 년 만에 출현하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할 당시에 군중은 즈카르야의 이 메시아 예언에 따라서 행동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가장 뜨거운 잇슈가 바로 그분이 메시아이시라는 소문과 명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의식하신 예수님께서도 어린 나귀를 타고 들어가셨으며, 군중은 종려나무 가지를 들어 환성을 올리면서 자기 옷가지를 벗어 길바닥에 깔았을 정도로 환영해마지 않았습니다(마르 11,7-10). 그 군중은 예수님께서 파견하신 제자들이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주었던 이들이었습니다(마태 11,25).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짊어졌지만, 예수님께서 안식을 맛보게 해 주었던 이들이기도 했습니다(마태 11,28).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이야말로 메시아가 틀림없다고 확신한 나머지 그토록 열렬한 환영을 해 드렸을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도 제2독서인 로마서에서 선교사로서 보낸 20년을 총정리하면서 구원에 이르는 비결에 대해 이렇게 선언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8,9). 즉 우리의 혼이 하느님의 영과 소통하는 통공의 진리를 설파한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 신앙의 요체이기 때문에 그는 이렇게도 덧붙였습니다.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8,11). 이로써 메시아를 따르는 백성이 나아가야 할 길이 밝혀졌습니다. 그것은 통공의 진리요 부활 신앙입니다. 요컨대, 오늘 제1독서인 즈카르야 예언이 메시아 시대를 열었고 오늘 복음이 과연 메시아로서 오신 예수님께서 이를 공식화하셨다면 오늘 제2독서인 바오로의 사도적 권고는 메시아 백성이 실천해야 할 통공의 진리와 부활 신앙을 알려주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할까요?
2. 한국의 종교 상황과 교회 현실
한국의 종교를 관장하는 문화관광부 종무실에서는 끝자리가 5로 끝나는 해마다 십년에 한 번씩 심층 인터뷰를 통해 종교 실태를 조사하고 발표합니다. 2015년에 조사 발표된 최신 통계에 의하면, 종교 인구는 전체 인구의 47%인데 이는 종교의 자유가 허용된 국가들 가운데 최저 수치입니다. 왜냐하면 무속 행사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종교인이라고 응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흔히 ‘무당’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한국역술인협회를 결성하고 모인 회원이 35만명이나 됩니다. 이 숫자는 불교 승려들이 2만4천여 명, 개신교 목회자들이 2만여 명, 천주교 성직자들이 5천여 명 등 기성 종교 교직자들의 총 규모가 5만 명 미만임을 감안하면 그 일곱 배도 넘는 규모입니다. 그렇다면 이들 무당 혹은 역술인들을 통해 무속신앙에 의존하는 국민의 규모는 기성 종교인들보다 더 많을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공식적이건 비공식적이든 간에, 대다수 국민들의 종교 의존성향이 두드러짐을 말해 주는 지표입니다.
종교사회학자 박문수의 연구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종교 전체는 지속적으로 긍정적 위신이 하락하는 추세입니다. 가톨릭이 1970년대에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면서부터 1980년대에 교세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붐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2000년을 넘어서서는 서서히 수그러들었습니다. 현재에 와서는 인구별 종교 분포상으로 개신교>불교>가톨릭 순이고 가톨릭 내부에서도 미사에 참여하는 비율은 고작 11% 정도에 불과합니다(2022년 교세통계). 이는 우리 사회에서 전반적으로 탈제도적 성향이 두드러지고 코로나 사태 중에 나타난 ‘신천지’ 같은 이단 집단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다가, 코로나 사태 후에는 신앙의 사사화(私事化)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는 데 그 배경이 있고, 보수화된 가톨릭 내 권위적 질서에 대한 반발로 지식인층과 청년층이 대거 이탈한 데 원인이 있다고 그는 분석하였습니다.
이리하여 기성 종교의 제도적 신앙이건 무속 종교의 기복신앙이건 국민 대다수의 성향은 전반적으로 종교의존적이지만 제도적 질서를 통한 신앙생활보다는 사사로이 행하는 자유로운 실천에 더 기울어져가고 있는 가운데, 종교인들의 사회적 일탈 행위로 인해 사회가 종교를 더 걱정하는 역설적 현실에 직면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즈카르야 예언자가 이스라엘 지도층에 실망하여 낙담해 있던 당시 백성에게 메시아 대망 신앙을 불러 일으켜야 했던 상황에 비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의 군중은 메시아 백성이 될 각오는 없이 메시아만을 고대했던 과오가 있었습니다.
3. 메시아 백성의 조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올바른 메시아니즘을 반영하여, 메시아 백성이 되려면 다섯 가지로 나타나는 그리스도 현존의 표지에 충실해야 함을 가르쳤습니다. 본당의 전례는 신자들에게 말씀과 성찬을 제공함으로써 교회 활동의 정점을 유지합니다. 하지만 전례의 두 표지, 즉 말씀과 성찬에서 얻은 힘과 기운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도직 활동은 삶의 현실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이 사랑은 그 초점이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향해야 하는 자비의 실천이며, 이들이 사는 현장에로 나아가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정도로 진정성이 있어야 하는 핵심 조건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공의회 문헌을 더 깊이있게 연구한 끝에 신자들의 사도직 활동이 서로의 신앙감각을 존중하는 인격성을 담보해야 하며(2016년) 또한 공동합의성(Synodalitas)을 이룩하는 민주적 성격을 포함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2018년).
이렇게 하여 메시아 백성이 알아보고 실천해야 할 그리스도 현존의 표지는 모두 다섯 가지로서 말씀, 성찬, 사랑, 신앙감각 존중 그리고 공동합의성이 되었습니다.
40년 전 1980년대에 한국 가톨릭은 200주년 기념 신앙대회와 전국사목회의를 통해 라틴 아메리카 대륙의 복음화에 불을 지폈던 ‘기초 공동체’ 운동을 도입해야 한다고 결의했지만, 현재 주교회의의 공식 인준을 거쳐 발표된 이 사목의안의 제안은 안타깝게도 사장(死藏)되고 말았습니다. 그 대신에 1990년대에 서울대교구를 시작으로 전국 많은 교구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시작된 룸코 모델의 ‘소공동체’ 운동을 도입하여 30년째 실시해 오고 있지만, 코로나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 미사 참석율이 20%대로 떨어지는 추세를 막지 못했고 그나마도 코로나 사태 이후인 지금에 와서는 10%대로 반토막 나버렸습니다.
이제 남은 희망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등 우리와는 문화와 전통이 이질적인 외국 교회의 경험이 아니라, 우리 신앙 선조들이 백년 박해를 견딜 수 있게 했던 뿌리인 교우촌의 역사적 경험입니다. 우리 신앙 선조들은 신유박해(1801년)로 지도부가 와해되어 버린 절망적 상황에서도 자발적으로 전국에 흩어져 교우촌을 세웠으며, 여기서 기도와 교리를 중심으로 치명을 불사할 만큼의 신앙을 증거한 바 있었습니다. 백년 동안 전국 189군데에서 이루어진 이 현상은, 선교사 없이 천주교를 도입한 자발성과 주체성에 하느님의 오묘한 섭리가 작용한 것 못지않게, 교회 조직 체계는 물론 그 어떠한 통신 수단도 없던 그 시절에 마치 서로가 성령의 이끄심을 받은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교우촌을 전국에 세울 수 있었던 섭리적인 기적이었습니다.
4. 복음화 전략과 본당 활성화 방안
가장 중요한 것은 메시아를 믿고 받아들이는 메시아 백성으로서의 자의식을 갖추는 일입니다. 한껏 기뻐하고 환성을 올릴 만큼 메시아에 대한 믿음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메시아의 대리자로서 한국교회를 찾아주었던 요한 바오로 2세와 프란치스코 교황을 맞이하여 한국 가톨릭 신자들이 열렬히 환영했던 마음을 기억해야 하고, 더욱이 그토록 환영을 받은 두 교황이 보편 교회의 여망을 반영하여 한국교회에 남겨준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40여 년 전 오묘한 섭리로 신앙을 받아들이게 하신 하느님께서 다시 한 번 평화를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고, 먼저 복음화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뜻에 따르기를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것이 확고한 대원칙으로서 존중되어야 합니다. 말씀과 성찬 그리고 사랑이라는 그리스도 현존의 표지가 본당 사목과 사도직 활동에서 살아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요한 바오로 2세의 권고를 원론으로 하여 그 각론으로서, 순교자들에 대한 ‘기억의 지킴이’가 되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사랑 실천으로 ‘희망의 지킴이’가 되어 달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순교정신을 실천하고자 신자들이 연대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이를 신앙생활의 십자가로 받아들여 승화시킬 줄 아는 영성이 반드시 요청됩니다. 그래야 서로의 신앙감각을 존중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공동합의성이라는 민주적 절차를 존중하는 역동성을 간직해야 우리는 ‘땅의 소금’이 되고 ‘세상의 빛’이 되어 복음화 과업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따라서 복음화 과업을 지향해야 하면서 ‘기억과 희망’을 지키는 메시아 백성이 되자면, 본당은 말씀과 성찬을 거행하는 성사생활의 본부가 되어야 하고, 평신도들은 성사에서 받은 복음적 활력으로 그리스도 현존 표지에 따라 하느님께서 주신 삶의 현장인 가정과 사회에서 증거할 수 있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한국교회의 뿌리인 박해시대 교우촌을 모델로 삼아, 작은 공동체들로 연대하는 지향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로마 8,9) 하고 권고한 사도 바오로를 길잡이로 삼아서, 하느님의 영과 소통하는 혼으로 기도하고 통공하는 삶이 도와줄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세상에서는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Gresham's law)지만, 교회에서는 밀이 가라지보다 더 잘 자라야 합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무신론 풍조가 팽배한 세상에서는 기복신앙에 의지하는 인구가 정통신앙을 신봉하는 인구를 능가한다고 해도, 하느님 나라는 신앙 진리를 진실되이 믿는 이들에 의해서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가톨릭 신앙인들은 구경꾼처럼 미사를 보러 오지 말고 미사에서 들은 말씀과 성찬에서 얻은 기운으로 자신의 양심을 신앙이라는 나침반에 맞추어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이 부활 신앙의 관건입니다. 적어도, 예수님 당시에 열렬히 환영하다가 결국은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며 돌아선 당시 군중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딸 시온아, 딸 예루살렘아! 한껏 기뻐하여라, 환성을 올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