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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다시 한 번 잠깐 뒤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앞에서 모든 상품의 가치는 그것이 다른 것과 교환될 때만 드러난다고 말한 바 있다. 교환의 가장 원시적 형태인 물물교환은 이미 사리진 지 오래다. 우리 선조들은 수많은 상품 교환에 직면했을 때, 그 많은 상품의 가치를 쉽게 측정하는 방법을 어떤 특별한 상품, 즉 '일반적 등가물'인 화폐에서 발견했다. 그 때부터 한 상품의 가치는 그거싱 교환될 수 있는 일반적 등가물의 단위 수로 표시됐다. 하나의 예로서 그 일반적 등가물을 금이라 하고 신발 한 켤레가 금 10그레인과 교환될 수 있다고 해 보자. 그러면 그 신발의 가격은 화폐 10단위가 된다. 가격이란 단순히 가치의 화폐적 표현이다.
화폐의 주된 기능은 가치의 일반적 척도, 다시 말해서 가격의 표준이다. 이밖에도 화폐는 다른 기능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유통을 더 쉽게 해주는 기능이다. 갑이 을에게서 외투를 한 벌 사면서 화폐를 사용한다. 을은 병에게서 라디오를 사는 데 갑에게서 받은 현금을 사용하고, 병은 정으로부터 과일 통조림 한 상자를 산다. 몇 개월이나 몇 년 뒤에 그 외투와 라디오와 과일 통조림은 소모돼 없어질 것이다. 처음에 유통에 개입된 화폐량이 교환을 더 쉽게 해줬고 그럼으로써 이런저런 상품들의 소비를 촉진했지만, 화폐 자체는 소비되지 않았다. 화폐 상품은 다른 상품들을 손에서 손으로 이동시키는 구실을 하고 그럼으로써 그것들의 교환을 더 쉽게 해준다.
하지만 화폐는 때때로 순환을 멈추기도 한다. 수전노처럼 돈을 모으는 것 자체가 즐거워 돈을 모으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갑과 같은 사람들이어서 좋은 외투를 한 벌 사고 싶지만 한 달 봉급으로는 살 수가 없어서 돈을 모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원하는 물건의 값만큼 모일 때까지 매달 일정액씩을 떼어 남겨 둔다. 어떤 사람이든지, 어떠한 물건을 사려 하든지 다들 이렇게 한다. 심지어 자본가들도 이윤의 일부를 떼어 예비 계좌나 할부상환 기금이나 장래의 투자를 위해 모아 둔다. 그러므로 화폐는 가치 저장의 수단이기도 하다. 유통과 저장은 화폐가 가진 두 가지 모순되는 기능인데, 그 둘은 서로 변증법적으로 연관돼 있다. 왜냐하면 특정 시기에 많은 양의 화폐가 유통에 투입돼 더 큰 가치를 교환할 수 있는 것은 저장 또는 저축이 있기 때문이다.
신용이 이 모든 것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아마 반박을 받을 것이다. 그것은 착각이다. 왜냐하면 만약 갑이 외투를 즉시 살 수 있도록 신용을 사용한다면 그 신용은 다른 사람들이 모아 둔 돈일 것이기 때문이다. 신용은 모든 종류의 예금자들이 모아 둔 돈을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이바지하도록 가동할 수 있는 하나의 제도 또는 일련의 과정이다. 그 돈이 특정 목적을 위해 모아진 것이든 별다른 목적 없이 모아진 것이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오늘날 모든 대형 은행들은 고객들에게 정기예금 계좌를 개설해 준다. 내가 많은 양의 돈을 약정 기간(보통 1년에서 3년) 예금하면, 그 기간이 끝날 때 은행은 단기 예금으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고율의 이자를 원금과 함께 나에게 돌려준다. 왜 은행은 이렇게 특별한 이자를 줄 만큼 친절할까? 은행은 자기네에게 이익이 될 때만 친절한 법이다. 은행은 내가 약정 시기까지는 예금을 인출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기간에 그 돈을 내게 지급하는 것보다 더 높은 금리로 단기 융자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신용들은 나의 저축이나 저장에 기초하고 있는 셈이다.
신용은 목적에 따라 분류하면 크게 세 가지 형태가 있다.
첫째 형태는 유통 신용인데, 보통 단기(短期)다. 예를 들면 도매 상인이 선금을 주고 창고에 쌓여 있는 상품을 사는 경우가 그렇다. 어떤 제강 공장이 야금 공장의 주문을 받아 다량의 강철을 판매했는데, 3개월 후에 지급받는 조건의 90일 만기 어음을 받았다고 하자. 다행히 그 거래 은행이 이 어음을 할인해 준다. 즉, 그 은행은 할인를 공제한 나머지 금액을 한꺼번에 지급해 주고나서, 어음 지급일이 되면 그 어음을 돈으로 지급받아 갈 것이다. 유통 신용은 반드시 앞으로의 지급을 예상하고 이루어지는 것으로, 자본의 순환을 가속시키는데, 이것은 우리가 아는 대로 잉여가치가 증가하는 요인이 된다. 그것은 흔히 위의 예에서처럼 상업 어음의 할인을 통해 이루어진다. 또한 유통 신용은 당좌예금의 차월(초과 인출)을 확대함으로써도 이루어지는데, 이런 은행 계좌는 잔고 이상으로 예금을 인출할 수 있고 그 초과 인출은 은행에 대한 부채가 돼 이자를 물어야 한다.
신용의 둘째 형태인 기업 신용 또는 투자 신용은 보통 장기(長期)며 거액인데, 이것은 기업들로 하여금 자기 자본이 허용하는 범위보다 더 넓고 더 빠르게 팽창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최근의 예로는 프랑스의 두 주철공장이 합병해 프랑스 최대의 주철공장이 된 경우를 들 수 있다. 합병된 기업의 총비용은 70억 프랑으로 추산됐지만 두 공장은 실제로는 10억 프랑의 가치밖에 안됐다. 엄청난 불균형을 메우기 위해 은행(41억 프랑)과 국가(26억 5천만 프랑)가 자금을 지원했다. 기본적으로 이런 종류의 신용은 총잉여가치를 증대시킬 수 있는 생산 자본 축적을 기대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은행들은 대출 기업의 경영 상태를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자기네가 상당수의 주식을 소유해야 한다고 고집한다. 이러한 관행이 19세기에 투자 은행들이 성장한 주된 요인이었다. 이 금융 권력자들은 다양한 기업에 투자하고 그럼으로써 많은 기업의 지배권을 얻어 내는 전문가들이다.
셋째 형태인 소비자 신용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최근 몇 년 동안 엄청난 비율로 팽창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충동 구매'는 잠재적 수요와 먼 훗날의 수요를 갑자기 오늘 내일 사이에 실현하도록 만듦으로써 내구 소비재 생산의 실제 호황을 창조해 낸다. 그러한 신용 역시 예상 수요를 만들어 내고, 자본 순환에 필요한 시간을 단축시킨다.
요약하자면, 모든 형태의 신용은 다 자본을 위해 봉사하는 도구다. 그것은 크든 작든 간에 비축된 모든 유동성 화폐를 끌어내 공적·사적 금융기관(시중 은행, 저축 은행, 예금계좌 등)의 금고 안에 모아들임으로써 그것을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이익이 되도록 특별한 규모의 화폐 자본으로 만든다. 유통 신용과 투자 신용과 소비자 신용은 모두 자본의 순환과 자본주의의 경제적 작용을 가속하는 작용을 하며, 그럼으로써 잉여가치의 양을 증가시킨다. 그러므로 신용은 이윤율 저하 경향을 완화하는 작용을 하는 요인의 하나로 봐야 하며, 앞 장에서 간략히 설명한 다른 요인들에 덧붙여야 한다.
다시 화폐로 돌아가자. 우리는 앞에서 귀금속인 금·은이 일찍부터 상품 화폐가 됐음을 살펴봤다. 그것의 사용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국가는 금·은을 일정한 화폐 단위의 가치가 있는 주화로 주조할 권리를 스스로 부여했다. 이 주화는 일정한 가치를 가지게 됐고 쉽게 유통됐다. 원격지 정복과 신대륙 발견에 따라 많은 금·은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 안전을 위해 그 금·은을 은행에 예치하기 시작했다. 은행은 이것과 바꾸어 그들에게 그 예치를 인정하는 종이인 '지폐'(은행권)를 내주었다. 편의상 은행은 예를 들어 화폐 5,380단위에 달하는 금의 총예치량에 대해 한 장의 지폐를 발행하지 않고 500의 가치가 있는 지폐 열 장과 100짜리 석 장, 50자리 한 장, 10짜리 석 장을 내주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지폐가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옮겨지는 것이 쉬워졌고, 100단위 지폐라는 것은 은행이 언제든지 100단위의 금과 바꾸어 준다는 것을 뜻했다.
나중에는 화폐를 발행할 자격을 얻은 은행들이 자신들의 금보유량에 맞추어 주화뿐 아니라 지폐까지도 발행하는 관습이 점차 굳어졌다. 이런 지폐들은 신용 화폐(금의 준비가 없이 보증 발행된 은행권)가 됐는데, 그것은 언제든지 지폐를 귀금속으로 바꾸어 줄 수 있음을 보장하는 발행 기관의 신용도에 그 지폐들의 유효성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다시피, 사람들은 돈을 다루는 사람을 지나치게 믿는다. 사실, 화폐를 발행하는 국영 은행들은 지폐를 금화로 바꾸려는 사람이 점차로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교역의 총량이 상당히 늘어나서(그리고 화폐는 그 힘을 많이 상실했다), 한 나라의 금 보유량으로는 불충분하게 됐다. 그리하여 국영 은행들은 금화 주조를 중지하고, 창고에 있는 금의 가치보다 훨씬 많은 지폐를 찍어내기 시작했다. 그 다음에 그들은 모두 지폐를 금으로 바꾸어 주던 것을 그냥 그만뒀다. 화폐는 이제 더 이상 하나의 상품이 아니게 됐고, 본래의 가치가 없는 단순한 상징이나 표지가 됐다.
화폐 자체가 이와 같이 변화하는 동안 다른 화폐 형태들이 나타나 번성했다. 이들 중 어떤 것은 신용 체제에서 나온 것이었다고 앞에서 언급했다. 그리하여, 일정액의 돈을 일정 시기에 지급한다고 약속하는 대변 전표나 어음이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여러 차례 배서(背書) 양도될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지폐처럼 유통됐다.
무엇보다도 수표가 널리 사용돼 화폐를 대신할 수 있게 됐다. 나는 물건을 하나 사고 가게 주인에게 100단위짜리 수표를 끊어준다. 그러면 그 가게 주인은 내 거래 은행에 가서 그 100단위를 현금으로 바꾸어 가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 자신의 은행 계좌를 가지고 있고, 거기에다 내 수표를 예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은행은 간단히 자기네 상호간의 계정에다 거래 내용을 기입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한다. 거기에는 틀림없이 화폐의 정산이 있었지만, 지폐가 매개되지는 않았다. 수표, 어음, 신용증서, 당좌 차월(초과 인출), 그리고 계좌 배서(背書)를 통한 정산 등은 모두 현금이 아닌 다른 화폐 형태들이다.
오늘날에는 한 나라 안의 유통에서 전체 지급 수단은, 일부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은행권이고, 나머지 일부는 우리가 지금까지 언급한 다른 모든 형태의 화폐로 이뤄져 있다. 후자에 속하는 것으로는 이밖에는 여러 가지 화폐가 있다. 어쨌든, 다양한 형태의 화폐의 평균 유통 비율을 고려해 보면, 모든 종류의 지급 수단의 총량은 시장에 나와 있는 모든 상품의 (가치대로)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만약 이 화폐(또는 화폐 형태)가 평균 1년에 다섯 차례 주인이 바뀐다면, 그것은 화폐의 양이 1년 동안 교환되는 재화 총가치의 약 5분의 1에 달한다는 뜻이 된다. 유통되고 있는 화폐(또는 화폐 형태들)의 총량이 불충분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런 경우 더 많은 화폐를 만들어 내기는 매우 쉬운 일이다. 그래서 지속적인 화폐 과잉 상태가 흔히 일어나는데, 이런 상황을 인플레라고 부른다.
이런 상황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은 대개 국가에 있다. 국가는 은행권 발행을 관리하는데, 필요한 지출을 위한 재원이 부족할 때 국가는 화폐를 더 빨리 유통시키려는 유혹을 받는다. 이렇게 되면, 교환될 수 있는 상품의 양은 증가하지 않고 화폐량만 증가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생산되는 상품의 전체 가치는 변화가 없지만, 그것은 늘어난 화폐량에 따른 가격으로 표시될 것이다. 여기에서 전반적인 물가 상승, 은행권의 구매력 하락 또는 심지어 사실상의 통화 가치 하락 현상이 일어난다.
은행권의 남발 때문에 일어난 화폐 가치 하락은 물가 상승을 일으킨다. 그러나 최근에는 오히려 그 반대 현상이 훨씬 더 빈번히 일어났다. 즉, [독점 기업들의] 물가 인상이 화폐량 증가와 그 가치 하락을 유발해 왔다. 바로 이것이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동반하는 경향이 있는 인플레의 근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옹호자들은 물가 상승의 원인을 생산성보다 임금이 더 빨리 증가하는 탓으로 돌린다. 우리가 한 상품의 가치를 공식 m=c+v+s로 표시했던 것을 되새겨 보자. 만약 모든 생산 조건이 변하지 않는다면, 임금 상승이 ‘v’를 증가시킬 것이고 그에 따라 ’m’도 증가할 것이며, 이것이 가치의 화폐적 표현인 가격에까지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만약 이 가정을 거부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즉, 잉여가치가 상응해 하락한다면 임금은 가격을 상승시키지 않고도 생산성보다 훨씬 더 빨리 증가할 수 있다. 이 추론이 아무리 단순할지라도 그것은 논리적으로 옳고, 또 기본적인 진리를 강조하는 데만 기여할 뿐이다. 즉, 일반으로 인플레 또는 물가상승은 실제로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계급투쟁의 한 표현이다. 노동자들의 노력으로 그들의 구매력이 다소 상승했을 때, 만약 다른 조건들이 변하지 않았다면, 자본가들이 상품의 가격을 올려 인플레를 유발하지 않는 한 잉여가치율은 증가는커녕 유지조차 불가능하다. 오히려 보통 먼저 시작하는 것은 그들 쪽이다. 그래서 물가는 경제적 정당성이 없이 상승하고, 반면 임금이 생산성보다 더 빨리 증가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오직 잉여가치 증대라는 목적을 위한 것이다.
이것은 독점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기본 문제들 중의 하나이고, 더 논의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좀더 전문적인 연구에서 다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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