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端初
친구의 시집을 보았다.
채집한 향토어들이 주제를 부각하는 오롯한 버팀목이 되어 별처럼 포진되어 있다.
그대 절차탁마한 창작의 공든 탑이 자못 우람하기 그지없다.
이제는 시어의 배치가 가히 구극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웅변하고 있다.
삭연함, 왕연함, 늑탈, 부룩, 그예, 무저갱, 무적, 광망, 술밥, 분복,
에움길, 에워감, 가긍함, 몸맨두리, 감연함,
각일각, 난든집, 애먼, 숨탄 것, 모옥, 아람, 해찰함, 헤살, 선불,
홍두께, 생갈이, 거웃, 두둑, 웁살, 두송, 배돔, 배래, 천더기,
돋침, 자밤, 지저깨비, 콩대우, 버럭질, 비량, 앙감질,
앙글거림, 너덜겅, 너누룩함, 물목, 물멀미, 효암 등.
주옥같은 향토어로 된 시어들이 고등어의 비늘로 부시다.
2. 사진첩을 펼치며
만신전 같은 여러 소재의 단서들을 만난다.
길을 떠나 만나는 경승,
봄의 몽유,
그 길에서 만난 참꽃 같은 잇바디를 가진 사람들,
옛 시절 된비알 함께 오르며 마음을 나누던 정든 사람들,
삶의 고통을 함께 나눈 사랑하던 지친들,
그리고
물에 담구면 퉁퉁 불어나는 미역 같은 언어의 잔영들,
시어 속에 명징해 지는 잠시의 순간과 도저한 우주의 심연,
때론 처연한 너스레가 핍진하기도 하다가 바닥없는 적요에 함몰되기도 한다.
시어 속에 숨어 있는 사랑과 갈망,
범상한 일상 속에서 건져 올린 저 부신 언어의 미늘들,
하수상한 세상사,
이 풍진 세상의 온갖 근심,
헛헛한 웃음 속에 숨어 있는 매복치 같은 약속들,
실핏줄 같은 고샅 속에 숨어 있던 추억,
더러 법랍이 쌓인 고승의 서슬 퍼른 할 같은 하소도 보이고,
작금,
당위에서 멀어져 공유지의 비극으로 수렴되어가는 우리 공동체의 비극이 실로 처연하다.
더러, 시어의 그림자와 행간에 숨은 곡진한 심모원려를 만나기도 한다.
친구여,
부디 우리시대가 지닌 결핍과 과잉을 사유하여 둔중하고 담대한 사자후를 토해주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3. 結句
책값이 만원이었다.
참으로 가볍기도 하다.
왜 시인이 의로운 존재인지를 알겠구나.
그러나 시인은, 사람 사는 세상의 잠수함 속의 한 마리 앵무새다.
이 남루한 세상의 안위를 가늠하는 의로운 척후인 것이다.
친구여,
각고면려의 자취가 고스란히 박제된 사진첩은 추억과 회한과 그리움으로 점철된 매향지다.
존재를 덜어가는 이 시간이 저물면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언젠가는 고적한 적멸에 들것이다.
다시 길을 떠나 나그네가 되어 보시라.
사운대는 바람 거느리고 세상을 주유하여 사진첩에 고이 갈무리하였다가
언젠가 다시 이렇게 만나게 되기를 간절히 고대해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