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왜구 연구 전문가인 이영 교수의 저서인 <황국사관과 고려 말 왜구>에서 참조했습니다./
일본 규슈 서부의 고토렛토(五島列島)는 일찍부터 해적의 근거지였다.
1298년 4월 24일, 당시 일본의 실권자인 호조(北条氏) 가문의 무역선이 사금과 견직물과 칼과 수은 등을 싣고 중국을 향해 떠나던 중에 곧바로 고토렛토 중의 하나인 와카마쓰시마(若松島)의 북서쪽인 히노시마(樋島) 부근에서 파손되고 조난당하고 만다.
그러자 곧바로 히노시마의 재진인(在津人), 백성들이 7척의 배를 이끌고 와서 주변 여러 섬에서 몰려온 선당(船党 어부들)이라고 불린 사람들과 함께 무역선에 실린 물건들을 멋대로 꺼내서 가져가 버렸다. 가마쿠라 막부는 이 물건들을 회수하기 위해 명령을 내렸지만 효과가 없었다.
시로즈 사토시(白水智)는 이들의 행동을 가리켜 "사탕에 몰려드는 개미처럼 표착선박에 몰려가 화물을 빼앗아 간 섬의 백성, 재진인, 어부들의 행동 속에서 바다를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상대의 약점을 발견하면 약탈행위를 일삼는 해적과 같은 일면을 발견해 낼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가마쿠라 시대 막부 최고 권력자의 선박에 대한 약탈도 주저하지 않았던 그들이었기에, 국내외의 조건만 갖춰진다면 언제라도 국경을 넘어가 왜구로 변신할 수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고려사에서 왜구가 처음 실린 기사인 고려 고종 10년인 1223년 5월보다 무려 70여 년이나 앞선 1151년 무렵에 이미 왜구에 해당하는 약탈을 행하고 있었다. 즉, 고토렛토의 북부에 위치한 고지카시마를 지나며 마쓰라토의 일원인 기요하라 고레가네(清原是)가 고려의 선박을 약탈했다(靑方文書). 그리고 경인년(1350년)으로부터 약 1세기 전에 해당하는 1226년 6월과 1232년 9월에도 마쓰라토가 고려를 침구했음이 확인된다.
다음으로 풍부한 말의 사육에 관해서 살펴보자. 마쓰우라 지역(규슈 서북)의 영주들의 활동과 관련해서 또 하나 빠뜨려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말과의 관련성이다. 이미 나라 시대인 8세기 전반에 기록된 히젠노쿠니후토기(肥前国風土記)에는 고토렛토 중 하나인 지카시마의 주민들에 대해 "그 지역에는 말과 소가 많이 있고, 그 지역 사람들은 항상 말을 타고 활을 쏘는 일(騎射)을 좋아한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가마쿠라 시대의 마쓰라토 무사들의 소령 목록 중에는 말을 사육하는 마키(牧)가 포함되어 있었다.
아미노 요시히코는 "아오가타우라(青方浦)의 마키에는 소도 방목되고 있었지만, 오히려 말의 목양이 주로 이루어졌다. 작은 말을 매년 방목함으로써 그 증식을 꾀하였다고 생각되는데 말은 군사적인 용도에 사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음에 틀림없다."고 했다.
이처럼 마쓰우라 지방 사람들은 일찍부터 바다만이 아니라 육지에서의 말의 사육과 선박을 이용한 해상수송, 그리고 말을 이용한 사냥과 전투에 익숙하였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그들이 정규군으로서의 육지 전투 및 해상 전투를 할 능력을 갖추고 있음은 물론, 선박과 말을 이용한 장거리 이동능력과 기동력에 입각한 게릴라전에 뛰어난 집단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점은 바로 경인년 이후 고려를 침략한 왜구의 특성과도 일치한다.
첫댓글 마쓰우라 지방 사람들은 육지 전투와 해상 전투에 익숙하였고 게릴라 전에 뛰어난 집단이었군요 왜구의 특성과도 일치하고요
네, 고려 말에 쳐들어온 왜구는 해적이면서 기병이기도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