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플랫폼 해피허브(Happy hub)의 대표로서 행복한 삶(세상)을 위해 애쓰고 있다.
특히 인생 3쿼터 이후 삶의 행복을 위해 매일 '행복한 발걸음모임(2013~)', ' 행복 콘서트(2017~)' 등
다양한 프로그램 기획 및 운영, 강의 및 코칭/컨설팅 등을 하고 있다.
2005년부터 5000여 지인들에게 매주 월요일 '김재은의 행복한 월요편지'를 보내고 있으며, 행복코칭, 행복경영강의,
교차로 칼럼니스트 등의 글쓰기를 통해 사람의 숲에서 더불어 행복나누기를 하고 있다.
혹한의 겨울이 언제 끝날까 노심초사했는데 어느새 입춘이 지나 남녘에선 화신이 들려온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그 무엇도 결국 다 지나가는 삶의 이치 앞에 숙연해진다.
어쩌다 이 세상에 와서 수많은 희로애락과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살펴보면 때론 대단한 것 같기도 하고
떄론 별거 아닌 것 갗기도 하나 인생이란 참 오묘하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밀려온다.
인디언들의 전통 중에 '포틀래치(potlach)문화'가 있다.
이는 남에게 얼마나 많은 선물을 했느냐에 따라 사회적 지위와 계급, 신분이 결정되는 풍습이다.
하지만 인디언들은 많은 선물을 나눌 수가 없었다.
풍족한 생활이 아닌데다가 유목 생활을 했기에 많은 것들을 가지고 다닐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몸에 밴 나눔 정신으로 자신의 마음을 나누려 애썼다.
자신이 지닌 손때 묻은 것이든 방금 익힌 재주든 무엇이든 '선물;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 선물을 주고 싶은 사람의 눈길이 머무는 곳에 슬쩍 놓아 둔다.
받는 사람에게 필요한 물건이면 기꺼이 감사하며 받으면 되고 필요 없는 물건이면 오히려 짐이 되니 그대로 놓아두면 되었다.
그러면 준 사람은 자신이 공개되지 않았기에 자신의 성의가 무시되었다는 원망 대신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선물을 준비 못한
자신의 정성이나 마음의 부족을 확인하고 선물을 회수하거나 다음 시회를 기다린다.
이러한 인디언의 선물은 받지 않더라도 일정기간 내어주었다가 떄가 되면 회수해가는 자연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다짜고짜 인디언의 선물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다.
선물 그 자체보다 '자연스러움'을 말하고 싶어서다.
마음을 전하든, 어떤 일이 내 앞에서 생기든 '자연스러움'을 잃지 않으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다는 것이리라.
이 시대의 사람들이 온갖 스트레스로 힘들어하고 잘못드는 이유가 바로 '자연스러움'의 상실 때문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꾼다.
그런데 행복을 꿈꾸면서도 살아가는 삶의 모습은 행복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간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많이 이룰 때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끝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분모값)을 키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오죽하면 99섬 가진 사람이 한 섬 가진 사람의 것을 뺴앗아 100섬을 채우려 한다고 할까.
그런데 이룰 수 있는 것(분자값)은 내 마음처럼 어찌하기가 쉽지 않다.
세상일이 어찌 내가 원하는 대로 되겠는가.
분자값은 키우기 어려운데 분모값은 끝없이 커가니 자연스럽게 행복도는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분자값 대신 분모값을 줄이는 게 훨씬 지혜로운 선택일 것이다.
결국 인생의 행복은 만족도 게임이다.
적절한 수준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 그것이 행복의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계영배'라는 게 있다.
우리 선조들이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기 위한 만든 잔이다.
이 잔에 술이나 물을 가득 채우면 아래 구멍이 열려 한방울도 남지 않고 빠져나가 버린다.
그런데 60~70% 정도를 채우면 그대로 남아 있다.
자꾸 욕심을 채우려 하는 그 마음에 경고장을 날리고 싶었던 선조들의 삶과 행복의 지혜가 번뜩인다.
다시 행복의 중심으로 돌아와 묻는다.
'진정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탤레스는 행복을 애우다이모니아(eudaimonia)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고유한 일, 자신에게 어울리는 일을 탁월하게 수행할 때, 바로 그 상태가 행복이며, 그때 느끼는 희열과 기쁨이
행복이라는 것이다.
행복을 사전에서 살펴보니 이렇게 되어 있다.
복된 좋은 운수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의미는 참 좋은데 '도대체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를 알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필자는 오래전부터 행복을 행복이 아닌 행복이라 주장해왔다.
스스로 몸과 마음을 움직여 실행할 때 일어나는 결과가 행복이라고,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기꺼이 즐겁게 땀을 흘려 내가 원하는 것을 느껴지는 것이 바로 행복이라는 것, 이런 면에서보면 행복은 명사가 아니라 철저하게 동사이다.
많은 사람들이 돈이 많으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면, 권력이나 명예가 내 것이 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러지 못한 자신을 한탄하고 우울해한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나 인식은 삶과 세상이 둥그런 공 모양이라는 것을 놓치고 한 쪽만 바라보는 아리석음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빛이 강하면 그만큼의 그림자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부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보자.
물론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이미 우리는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
굶지 않고 먹고 사는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돈이 많다고 해서 하루에 열 끼를 먹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잉여상속재산을 둘러싼 자식들의 법정 싸움 또한 쉽게 눈에 띄는 우리 사회의 풍경이다.
부는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이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행복이 아닌 불행의 씨앗이 된다고 하고,
지나친 부를 위해 나의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다 인생의 종말을 맞을 수고 있는 만큼 중독성이 은근히 강하다.
이렇게 보면 행복은 조건이나 절대적 상수가 아니다.
조건이나 상황은 늘 변하는 것이어서 그나마 얻은 행복도 곤두박질치기 일쑤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위에서도 이야기한 바 있듯이, 먼저 할 일은 만족의 위대한 힘을 내것으로 하는 것이다.
많은 현인들이 만족함을 아는 것, 즉 '지족'을 행복이라 이야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내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만족함을 아는 것이 행복의 비밀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물론 여기엔 '비교'라는 무서운(?) 유혹을 견뎌내야 하지만 말이다.
또 하나는 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곁에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부나 행복은 쫓으면 쫓을수록 달아나는 상향이 있다.
오히려 찬찬히 살펴보면 이미 내가 가지고 있거나 우연히 내게 찾아 오기도 한다.
내가 하고 싶고, 원하는 것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내게 깃드는 것이다.
내가 지금 숨을 쉬고 있고, 걸을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함께하고 있음에 꺠어있고, 그것을 발견하기만 하면
내 곁엔 수많은 행복 요소가 널려있는 행복투성이 삶을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얼마나 즐겁고 고마운 삶인가.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 10조 행복추구권은 행복의 발견을 지원하는 내용으로 바꿔어야 하지 않을까.
행복한 삶과 관련하여 무시해서는 안될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일상의 삶에 깨어있는 것이다.
내가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고,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 이것은 나를 불행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고, 나를 온전하고 살아있는 존재로 거듭나게 한다.
일상의 의미, 오늘 이 순간의 가치를 느낄 수 있기에 지난 과거나 오지 않은 미래에 연연하고 염려하는 나에게 자유를 선물한다.
진정 자유로운 존재로 살고 싶다면 바로 '일상의 삶'에 깨어있으면 가능하다.
좋지 않은 일이 이어지는 '머피의 법칙'이나 좋은 일이 계속되는 '샐리의 법칙' 또한 '일상의 삶에 꺠어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 더 언급한다면 '나만의 행복 습관'을 갖는 것이다.
지금 나의 삶은 그동안 살아온 습관의 산물이다.
즐겁게 행복하다면 그런 습관이 뒷받침한 것이고, 힘들고 고통스럽다면 거기에도 그런 습관과 이유가 존재하는 것이다.
뿌린 대로 거두고,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나는 것이다.
그런데 행복 습관이란 무엇인까.
애가 무엇인가를 꾸준히 할 때 기쁨과 만족, 성취감을 준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 습관'이다.
공원을 산책하거나,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것, 어딘가로 떠나는 여행, 누군가를 돕는 자원봉사 등 나에게 기쁨과 보람을 준다면 어떤 것도 행복 습관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나만의 행복 습관 리스트를 적어놓고 삶이 힘들거나 무료할 때, 우울해지거나 답답할 때 그것을 하는 것이다.
행동으로 감정을 조절하는데 이만큼 좋은 것은 없을테니까.
결국 내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가려면 어찌할 수 없는 것은 내버려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실행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하긴 싫어하는 마음인 '귀차니즘'을 잠재우고 '바로 하기(Just do it)를 내 삶에 녹여내면 예상 밖의 결과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이렇게 행동하고 시도하는 습관을 가지고 살아가다보면 '뜻밖의 행운, 예기치않은 즐거움'인 세렌디피티(serendipity)가 오롯이
내 것이 된다.
매일매일이 아니더라도 한 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세렌디피티의 즐거운 경험을 해보면 어떨까.
결론적으로 우리가 진정 꿈꾸어야 할 삶은 행복한 삶을 넘어 '좋은 삶'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행복도 좋은 삶을 위한 하나의 방편이자 수단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삶이 좋은 삶일까?
성공을 행복이라고 여겼던 시절도 있었고, 행복을 철저하게 마음의 문제라고 여기고 습관이나 라이프 스타일은 무시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웃의 행복을 해치면서까지 자신 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품격 없는 삶은 살고 있는지도 깊이 살펴보아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좋은 삶'을 나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충분하다고 느끼며 만족하는 삶, 소박하고 지속 가능한 삶, 더불어 즐기고 나누는 삶'이라고.
서울대 행복연구센터 최인철 교수는 좋은 삶을 '나답게 사는 삶,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은 삶, 타인의 삶을 아끼는 삶'이라고 했다.(굿 라이프 2018)
좋은 삶을 어떻게 설명하든 누구나 자신만의 '좋은 삶'이 있을 것이다.
누구나 '나답게 나로서 살아가는 삶'이 있듯이 말이다.
3우러 속으로 점점 들어가다 보니 봄의 기운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계절이 이렇게 변해가듯이 삶 또한 변해가고 흘러간다.
영원한 것은 없다.
죽지 않을 것 같은 내 자신도 끝내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온 이상, 살아있는 동안 행복한 삶, 좋은 삶을 살다 갈 일이다.
새봄, 새날이다.
새로운 시작을 하기에 잘 어울리는 시절,대한민국 행복 디자이너가 스스로에게는 물론
행복한 삶을 꿈꾸는 모든 이에게 전하는 행복 편지이자 행복 메시지이다. 김재은 행복플랫폼 해피허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