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흑해 러 해군기지 드론 공격… 러 본토로 다가선 전쟁
우크라, 남동부 전선 교착 국면에
주도권 노려 러 본토 해안 첫 공격
흑해, 새로운 최대 격전지 떠올라
사우디서 40개국 ‘우크라 평화회의’
‘흑해’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새로운 격전지로 떠올랐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침공 후 두 나라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남동부 마리우폴 헤르손 자포리자 등에서 격전을 벌였다. 이 지역에서 양측 모두 교착 국면에 빠진 데다 우크라이나가 최근 흑해의 러시아군 기간시설에 대한 잇따른 공격으로 주도권 탈환을 노리면서 흑해 일대의 긴장이 부쩍 높아졌다.
5, 6일 양일간 사우디아라비아 2대 도시 지다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및 평화 방안을 논의하는 ‘우크라이나 평화 회의’가 열렸다. 한국, 미국, 중국, 인도 등 총 40여 개국이 참석했다. 러시아는 불참했다. 우크라이나는 이번 회의에서 “지난달 흑해곡물협정을 전격 파기한 러시아로 인해 전 세계적 식량 위기가 가중되고 있다”며 반러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 우크라, 흑해서 드론 공격 vs 러는 ‘킨잘’ 보복
4일 우크라이나의 해상 무인기 공격을 받은 러시아 군함이 흑해 노보로시스크 해군 기지에 정박해 있는 모습. 이 군함에서 기름이 누출된 모습이 미국의 민간 위성 기업 플래닛랩스의 위성 사진에 포착됐다. 노보로시스크=AP 뉴시스
러시아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4일 해상 무인기(드론)를 이용해 흑해 요충지 노보로시스크의 러시아 해군기지에 정박 중인 군함 ‘올레네고르스키 고르냐크’함을 공격했다. 우크라이나 정보 당국자는 “TNT 폭약 450kg을 적재한 무인기로 공격했다. 군함이 심한 손상을 입어 임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5일 크림반도 인근 케르치 해협에서 우크라이나의 해상 무인기가 러시아 민간 유조선 ‘SIG’로 다가가는 모습. 연일 이어진 우크라이나의 공격에 러시아는 극초음속 미사일 등으로 반격했다. 케르치=AP 뉴시스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 해안을 공격한 것은 처음이다. 노보로시스크항은 러시아산 원유를 수출하는 주요 통로여서 경제적 가치도 크다. 우크라이나는 5일 흑해와 아조우해를 잇는 크림반도 인근 케르치 해협에서도 러시아 민간 유조선 ‘SIG’를 역시 해상 무인기로 공격했다.
러시아도 반격했다. 러시아군은 5일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 순항 미사일 ‘칼리브르’, 유도 폭탄 등을 이용해 남부 자포리자, 서부 흐멜니츠키, 북동부 하르키우 등을 공격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텔레그램으로 우크라이나를 격렬히 비난했다. 유조선 공격에 따른 원유 유출 가능성 등을 거론하며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쓰레기들이 흑해의 ‘생태학적 재앙’을 부추긴다”고 했다.
흑해를 둘러싼 양측 충돌은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는 전쟁의 주 무대를 자국 남동부와 동부에서 러시아 영토로 옮기려 시도하고 있다. 올 6월 육로를 통한 대반격을 시작했지만 러시아의 방어에 밀려 좀처럼 진격 속도를 내지 못하자 상대적으로 비어 있는 흑해를 노린다는 심산이다.
러시아가 지난달 우크라이나의 주요 산업인 곡물 수출업을 방해하기 위해 전쟁 중에도 우크라이나산 곡물의 안전한 수출을 보장해왔던 ‘흑해곡물협정’의 연장을 전격 파기한 것도 양측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우크라이나군 또한 성명을 통해 “노보로시스크, 아나파 등 러시아의 흑해 항구 6곳은 전쟁 위험 지역”이라고 맞섰다. 이 6개 항구로 향하는 모든 러시아 선박을 군사 표적으로 간주한다는 의미다.
● 빈 살만도 ‘우크라 중재자’ 자처
사우디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전쟁의 중재자를 자처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평화회의에는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멕시코 이집트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중 어느 편도 들지 않은 중립국 상당수가 참여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5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회의에서 식량 안보 의제가 다뤄질 것”이라며 러시아의 곡물협정 파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을 촉구했다. 우크라이나산 곡물을 수급받지 못하는 아프리카 빈국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며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줄곧 인권 탄압 비판을 받아 온 무함마드 왕세자 또한 이번 회의를 통해 이미지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그가 중동을 뛰어넘는 영향력을 지닌 지도자라는 면모를 보일 기회를 얻었다”고 평했다.
김보라 기자, 파리=조은아 특파원, 김기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