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좋은 아침] 일련의 시도
새로 살게 된 곳은 지대가 높아요. 가파른 골목에는 작은 세탁소 작은 꽃집 작은 전파사 그리고 작은 식당이 있어요. 작아서 모두 하나뿐이에요. 작은 식당은 슈퍼에서 가까워요. 영진슈퍼 앞 평상에는 늘어진 티셔츠를 입은 할머니가 앉아 있어요. 할머니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부채질만 해요. 나는 할머니 곁을 지나 식당에 가요. 식당 앞에는 길고양이들을 위한 물그릇과 밥그릇이 있어요. 나는 한번도 고양이를 보지 못했어요. 해변도 아닌데 식당의 통창과 문은 테두리가 하얀색이에요. 닫힌 문에서 안이 다 보여요. 들어가면 안쪽에서 한 사람이 쳐다보며 눈 인사를 해요 앞치마를 두르고 있다는 또 한 사람은 한 번도 못 보았어요. 음식이 아주 느리게 나오는 곳이에요. 거의들 혼자 와요. 둘이 오면 둘이 혼잣말처럼 말해요. 고양이 밥그릇과 물그릇을 쳐다보면서 건너편 주택에서 내놓고 키우는 화분을 쳐다보면서 음식을 기다려요. 작은 식당에서 작은 사람이 돼요.
한 그릇 요리가 나오면 먹기 시작해요. 왼쪽 가장자리부터 먹어요. 살금살금 브로콜리 피망 가지를 먹어요. 고요 속에서 방울양배추를 집어먹어요. 채소들은 뜨거운 불에 닿아도 색을 잃지 않아요. 양이 적은 식당은 하늘이 잠시 가려지는 좁은 골목에. 달그락거리는 숟가락과 포크 사이로 채소 끓는 냄새가 배어 있는 곳에. 작은 식당에 혼자만 머무는 날도 있어요. 문득 고개를 들면 원형 테이블 맞은편 의자에 산양이 앉아 있기도 해요. 언제 왔어 어디에서 왔어 묻는 얼굴이 되면 방향 따위는 갖고 있지 않아 산양은 장난스럽게 고불거리는 얼굴이 돼요. 거울처럼 마주 보고 있으면 밤이 깊어요. 너나 나나 불시착한 사이라니까 나와 산양의 동그란 눈만 반짝여요. 적막하고 우아한 심정이 돼요. 영진슈퍼 할머니는 평상을 비워두고 광활한 어둠으로 걸어 들어가셨나 봐요. 고양이들의 그릇에서는 비켜서서 산양과 내가 나란히 밤 한가운데 식당을 들여다보고 있어요.
우리라고 불러도 될까요 본 적 없는 고양이 고양이 밥그릇 물그릇 꺾인 줄기에 꽃을 피워 올린 화분 산양과 나의 발 어둠에 기도처럼 잠기는 투명한 문과 창 그리고 영진슈퍼 할머니
―『문학과 사회』(2024년 가을) 이원(1968∼)
순한 동네를 생각하면 좋다. 순하다는 게 꼭 ‘온순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온순하다는 말은 대상의 성격을 한정하는 말이지만 순하다는 말은 성격 너머 여백과 시간의 흐름까지 껴안는 말 같다. 이 시를 읽으면 해 질 무렵, 야트막한 언덕에 어린 산양과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화자는 “작은 세탁소 작은 꽃집 작은 전파사 그리고 작은 식당”이 있는 동네에 산다.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많을 “영진슈퍼” 앞에는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평상에 앉아 있는 할머니가 풍경처럼 있다. 길고양이를 위한 물그릇과 밥그릇도 있다. 이곳을 누비며 화자의 마음도 ‘순한 풍경’에 녹아든다. 한 사람이 작은 동네 속 “우리”가 되어가는 “일련의 시도”란 느리게 거닐기. 식당에 간 화자 앞에 “장난스럽게 고불거리는 얼굴”로 산양이 와서 앉는다. 왜 산양일까, 이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순하게 나를 들여다보는 산양의 눈동자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곳이니까. 가본 적 없는데 그리운 곳이다.
✵이원(1968∼) 시인 :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 《세계의문학》 가을호에 〈시간과 비닐봉지〉 외 3편을 발표하며 시단에 나왔다. 2002년 제7회 현대시학작품상, 2005년 제6회 현대시작품상을 수상하였다. 시집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불가능한 종이의 역사》이 있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 《동아일보 2026년 07월 25일(토),〈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시인)〉》, 《Daum, Naver 지식백과》/ 사진: 이영일 ∙ 고앵자 yil2078@han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