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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번에 세례요한에 대해서만 설명을 드려보지요. 세례요한의 문제도 어느 한두 구절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세례요한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말라기 4장 5-6절에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 4:5)하여 예수님에 앞서 오리라는 것이 엘리야, 즉 세례요한입니다. 즉,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눅 1:17)에서처럼 엘리야는 세례요한을 두고 한 말입니다.(마 17:12-13)참조
그러면 세례요한의 사명은 무엇인가. 그 다음절에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말 4:6)하여 엘리야, 즉 세례요한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이키게 하고, 자녀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는 사명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아비는 누구고, 자녀는 누구이길래 돌이키지 않으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그 땅을 저주로 칠까하노라'고 엄명을 내렸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돌이키는 일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엄중한 하나님의 말씀이 예언으로 기록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자지간의 효라는 도덕을 회복한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분들이 있는데 아주 잘못된 해석이지요.
하나님께서 아비는 자녀에게, 자녀는 아비에게 돌이키는 것이므로, 양자가 돌이키지 않는다면 무서운 저주를 내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비는 예수님을 의미하며, 자녀는 이스라엘백성들입니다.(이사야 9:6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이는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눅1:17)고 하여 저가, 즉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온 세례요한이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 가운데로 보내짐을 받은 사명은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 "자녀들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고"에서 아비란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 즉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그 이름은 기묘자라, .... ,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에서 성경말씀을 오해하기 시작함으로 세례요한에 대한 모든 해석이 비뚤어지기 시작했네요.
예수님의 실제 이름은 "예수라 하라"에서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언제 누가 성경 어디에서 예수를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불렀나요?
오히려 성경에서 예수[이름]을 가르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기묘자라 :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마11:27]
모사라 :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마13:14]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14:9~10]
평강의 왕이라 :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마16:15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 바로 이스라엘백성이지요. 이들을 아비로 온 예수님에게로 돌이키게 하는 역할과 사명이 세례요한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한 것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를 위해 세운 백성을 주 앞으로 인도한 세례요한의 모습을 우리는 성경에서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단 한사람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한 적도 없으려니와 예수님의 복음을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전파했어야 될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앞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바 단 한번의 증거이외에 예수님 앞에 한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 세례요한이 성경에 나타난 바 단 한번의 증거이외에는 예수님 앞에 한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요? 성경을 색안경 쓰고 보시나요? 다음에 나열되는 일들이 어떻게 누구를 통해 가능하게 되었다고 생각되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막1: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막1:15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 이후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택하시되 그 누구도 아무말도 묻지 않고 어떤 조건도 내걸지 않고 그저 그 생계를 제쳐 두고 따르더라
여기서 잘 보시면 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때가 찼다고 하시며 비로서 공생애 일을 시작하심을 알 수 있는데 아무 조건없이 따르는 제자들이 한결 같이 예수를 의심없이 영접함을 알 수 있읍니다.
세례요한이 주의 길을 평탄케 한 결과라고 생각들지 않나요?
막1: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막1:37 만나서 가로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막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위 구절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주를 찾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세례요한이 잡히기 전에 이런일이 있었다면 세례요한이 그 사명 곧 자녀들의 마음을 아비에게 돌이키게 하는 사명을 제대로 수행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불분명하다 할 수 있겠지만 잡힌 이후에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은 세례요한으로서는 자기의 사명은 이미 마쳤다고 할 수 있읍니다.
따라서 세례요한이 그 사명을 제대로 완수하지 못했다는 아래의 글들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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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요한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세례요한의 사명을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두고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요 1:23)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3장 3절에도“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마3:3)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의 길을 곧게 하라, 예비하라는 것이 무엇인가. 여기에는 두가지의 사명으로 나옵니다. 하나는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요 1:34)와 같이 증거의 사명입니다. 다른 것은 섬김의 사명입니다.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눅1:17)는 것입니다.
이는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눅1:75)는 것이지요. 주를 위해 세운 백성을 예비하고, 세례요한과 그들은 종신토록 주를 의와 성결로 두려움없이 섬기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 사명 중 세례요한은 증거의 사명만을 하고, 모심의 사명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예언한 대로 엘리야가 세례요한으로 왔으며,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했습니다. 세상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도 증거했지요. 또한 세례요한은 태어날 때부터 많은 이적기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장 67절을 보면 세례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 대제사장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언하여 말하기를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눅 1:68-69)하여 구원의 뿔인 예수그리스도의 탄생과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건지시고(눅 1:74), 우리로 하여금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눅1:75)고 하여 이스라엘백성들이 주의 앞에서 종신토록 성결과 의로 섬기게 하리라고 했던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이를 위한 사명으로 이스라엘 백성보다 주 앞에 앞서 가서 의와 성결로 섬기는 사명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즉,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예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눅 1:76-77)라고 하였지요. 이는 ‘주를 위해 세운 이스라엘백성들을 예비하라’(눅1:17)는 사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증거는 했어도 주의 백성을 예비하지는 못했습니다. 주앞에서 주의 길을 평탄하게 했어야 했는데 예수님의 길은 고난의 가시밭길이었습니다. 얼마나 유대인들에게 몰리며, 쫓기며, 핍박당하고 박해받았습니까? 이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성경적 사실입니다.
- 아래 끝 -
사실을 사실대로 보고 그 다음에 해석을 해야 합니다. 증거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구요.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지 않았어요. 그것도 성경적 사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불신했습니다. 세례요한이 말입니다. 성경에 나오냐? 나오지요.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가로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저희가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말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눅7:19-20)했습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까하는 것은 당신이 오리라한 메시아가 맞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는 것은 당신이 메시아가 아니면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까? 하고 예수님께 문의를 하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기껏 세례요한이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리는 그이를 증거하라는 하나님의 명에 따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를 해놓고 이제와서 오리라한 이가 당신이오니이까는 무슨 말이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어서 묻는 질문입니까? 의심이 들어서 질문을 하는 것입니까? 성경을 잘안다구요? 성경을 똑바로 보십시오. 아무리 봐도 세례요한은 끝내 불신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불신한 세례요한을 놓고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눅 7:23)고 하여 세례요한이 예수님 앞에서 실족했음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보내고 난 뒤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눅 7:24-27)고 하여 너희가 광야에 나간 목적이 무엇이냐고 질문하시면서 선지자를 보러나간 것이 아니냐는 것이지요.
그러면 그 선지자는 누구를 증거하고, 누구의 길을 평탄하게 하고, 누구를 모시기 위한 선지자냐 이겁니다. 그 선지자의 사명이 다 어디 갔느냐는 탄식어린 말이라는 것입니다.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느냐, 이러한 권능이 누구에게로부터 오겠느냐 하시는 질책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내 세례요한을 일러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이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눅 7:28)고 하시면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이가 없다고 하시면서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다고 말씀하셔서 그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실족했음을 다시 한 번 말씀하신 것입니다.
가장 큰 자로 태어나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복음의 말씀을 전파하는데 선봉에 섰다면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큰자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지극히 작은 자보다도 작다고 하니 이 얼마나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의 책임 못함을 가슴 아프게 생각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례요한에 관한 성경의 기록입니다.
-> 세례요한과 성경말씀을 오해하여도 정말 크게 오해하셨네요.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이가 없다는 말씀은 창세 이후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자란 뜻인데 그 큰 자인 세례요한을 처녀가 낳은 자 곧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비교하면 그의 신들메도 풀기도 감당치 못할 정도로 예수님이 훨씬 크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크신 예수님을 천사보다 못하게 하셨다는 것은[히2:7]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사람가운데 있을 동안엔 천사보다 작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육신 곧 종의 형체로 사람 가운데 아무리 큰 자 일지라도 천국에 있는 가장 작은 천사보다도 작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지 세례요한이 천국에 들어가서도 작다는 것을 결코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례요한이 천국에 있을 때의 표상이라면 변화산상에 엘리야라고 할 수 있는데 모세와 예수님과 함께 더불어 말씀을 나누실 정도로 [마17:3] 결코 작은 자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 오시는 앞에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하였고[행13:24], 요한의 사명 곧 그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행13:25] 되어있는데, 세례요한이 사명을 마치지 못했다고 성경말씀을 오해하는 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마22:29]
라고 하시며 성경을 오해하는 자들에게는 성경말씀에 또한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미 자신을 오해할 자들을 향하여 선지자들 중 가장 크며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요한은
[마3:7]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세례요한이 주의 길을 평탄케한 그 길을 통하지 않은 자들에게 예수께서는
[마16:6]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마23:13]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23:33]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 세례요한이 그 사명을 조금이라도 완수 못했다고는 단 한마디도 말하지 않은 제자들은
[행4: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행13:24] 그 오시는 앞에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행13:25]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 풀기도 감당치 못하리라 하였으니
[행19:3]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행19:4]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행19:5]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세례요한이 얼마나 잘 사명을 완수했던지 주의 길만 평탄케한게 아니라 주의 사도들의 길도 순탄케 해 놓았음을 알 수 있는 구절이 행19:3~5절까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오해하여 풀이한 아래의 글들은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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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예수님 한분을 영접하기 위해 예비된 백성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제사장이요, 선지자요,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불신으로 돌아가니 그 백성을 누가 예비해야 되겠습니까? 예수님 당신께서 손수 준비하시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것입니다. 갈릴리 바닷가로, 이스라엘 이 지역 전지역으로 돌아다니시면서 어부와 세리와 창녀들 속에서 찾아야 했으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힌 노릇입니까? 왜 세례요한같이, 바울과 같이, 가말리엘과 같이 존경받는 교법사, 서기관들은 다 어디가고 갈릴리 바닷가를 헤매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주의 백성을 예비했다면 예수님이 그러한 일을 했겠습니까? 세례요한은 사가랴 대제사장의 아들로 예수님을 유대교단과 연결해줄 중요한 위치에 놓인 사람입니다. 예수님 앞으로 제사장과 서기관, 가말리엘의 문하, 그 중의 바울도 진작에 인도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유대교단 차원에서 예수님을 영접했다면 어떻게 되었겠느냐는 것입니다.
순식간에 유대교단이 예수님의 복음아래 굴복하여 예수님의 말씀으로 모두가 거듭나게 되는 것은 문제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만일 사도바울이 아닌 예수님이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였다면 얼마나 걸렸겠습니까?
예수님이 복음으로 무장한 10만 명의 정예 사도와 함께 로마로 진군하였다면 얼마면 로마가 예수님의 복음아래 떨어졌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 앞에 주의 백성을 예비하라는 그 사명을 못하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앞길을 평탄하게 해야 할 사명과 책임이 있는 세례요한이 그 책임과 사명을 다 못하고 예수님 앞에 끝내 불신으로 돌아가자 세례요한은 헤롯의 스캔들에 휘말려 목이 잘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헤롯의 스캔들을 정죄하러 왔습니까, 하나님께서 내린 주의 백성을 예비하여 주의 길을 평탄하게 하기 위해 왔습니까?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세례요한이 사도가 되었다면 구름같이 몰려든 그의 제자들이 모두 예수님 앞에 제자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자기제자들이나 구름같이 몰려든 사람들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한 사람이 한사람이나 있느냐는 것입니다. 주 앞에서 주의 백성을 예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었냐는 것입니다. 전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요한을 특별히 아끼고 사랑했던 이유가 있었지요. 세례요한이 직접 예수님에게로 인도하지는 않았으나 세례요한의 제자였지요.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할 당시에도 현장에 있었던 증인이었습니다. 당시는 예수님이 메시아냐 아니냐는 절대 절명의 기로에 놓인 때라는 것이지요. 세례요한이 엘리야임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적그리스도로 몰릴 판이라는 것이지요. 엘리야가 오기 전에 메시아가 올 수 없는 것이 성경의 예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이스라엘을 가는 곳곳마다 메시아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는데 오리한 엘리야는 어디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겠지요.
그러니 예수님께 제자들이 "이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막9:11)고 여쭈어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엘리야는 바로 세례요한인데 세례요한은 자신이 엘리야임을 부정해버렸다는 것입니다. 즉,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요 1:21)고 했으니 예수님의 입장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일순간에 유대교단차원에서 예수님은 이상한 사람으로 몰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기 전에 오리라한 엘리야도 오지 않았는데 메시아로 자처하는 자가 병자를 고치고, 죽음 자를 살리고,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니 바알세불에 접하여 귀신놀음을 하는 것으로 밖에 비쳐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의 태어날 때의 이적기사와 그의 사명등을 밝혀서 예수님은 성경에서 예언한 바 틀림없는 메시아라는 사실을 밝혀야 했던 것이고, 마태복음은 구약과 대조하여 예수님의 행적은 성경적이라는 것을 입증하면서 그런 의도로 기록된 복음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구원은 믿음입니다.
세례요한의 사명책임을 다 못하고 스스로가 엘리야임을 부인함으로 말미암아 유대교단 전체는 예수님을 신뢰하지 못했으며, 예수님은 엘리야도 오지 않은 상태에서 메시아를 자처했다는 오해를 받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너무나 안타까운 예수님의 사정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믿으라고 외친들 믿어주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적기사를 일으키고, 병자를 고치고, 가는 곳곳마다 말씀을 선포해도 가면 갈수록 예수님을 이단의 괴수요, 바알세불에 접한 자로 몰아가는 것이었지요. 이유없이 싫어하고, 이유없이 핍박하고, 박해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몰리고 쫓기면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8:20)고 하셨지요.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렇게도 핍박을 받아야 한단 말입니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는데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비 한방울 피할 거처가 없는 참으로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시의 유대인을 일러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마11:17)고 할 정도로 예수님께 냉담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불굴의 신념으로 복음을 전파했으나 아무리 말을 해도 믿어주지를 않았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요10:38)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 도다"(요 5:39-40)하시며,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요 5:43-46)고 한탄을 했던 것입니다. 결국은 예수님은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 23:37)고 하시며,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 24:2)하시는 심판의 말씀을 토하시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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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초극단적인 이단은 성령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지요. 세례 요한에 대한 이해는 논쟁의 문제이지만 성령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단사설은 논쟁의 문제도 아니고요.
일반 교회에서 성령(천사)을 하나님으로 잘못 믿고 경배하는 것은 무지(혜)해서 곧 깨달음이 없어서 그러는 거구요(계22:8) 깨달음이 없으므로 짐승과 같이 멸망당할 위기에 처한것 맞구요(시49:20), 신천지등 각종 이단들이 성령(천사)을 하나님으로 보는 이유는 교주만이 성령 곧 보혜사 그가 임했다고 꾀어서 그 교주를 하나님으로 받들어 경배하게 만들려고 일을 꾸미는 곤충들과 같은 존재 곧 무저갱 연기 가운데로 부터 땅위에 나오는 황충과 같은 존재들이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을 초극단적인 이단의 괴수 집단이라고 말한것입니다.
따라서, 황충들이 세상에 나타난 목적은 깨달음 없는 일반교인들을 멸망으로 곧 지옥(자기들의 집단)으로 이끌기 위한 것입니다. 덧붙여서 그 지옥의 사자에 해당하는 자칭 하나님에 해당하는 교주 곧 짐승이 세운 우상을 숭배케하여 들짐승 중 뱀 곧 사단(타락한 천사중 우두머리)이 지극히 높으신 분과 그 보좌를 나란히 해보려는 최후의 술책이 숨겨져 있는 것이죠(사14:14). 그 교리를 퍼뜨려는 사람은 뱀의 꼬리에 해당한다고 성경에 잘 나타나 있던데 님도 그 꼬리에 혹 해당되지 않으려면 멸망의 가증한 것(신천지 교주같은 이)이 거룩한 곳(거룩한 존재의 이름이 불려 지는 곳)에 선 것을 본다면 피하여 나오세요?(막13:14,계18:4)
성령이 천사라면 예수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했는데 성령이 천사라면 천사에 의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인가요? 또 범죄한 천사가 성경에 나오는데( 벧후2:4) 성령도 범죄를 하나요? 또 모든 천사는 인간이 부리는 영으로 나오는데 우리가 부리는 영이 성령이라는 말인가요?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히1:14)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가요? 이단괴수의 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서울역에 새로 출현한 예수 천국, 불신지옥이 또 나왔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렇게 극단적으로 쓰는 사람치고 크리스찬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지 의문입니다. 기독성
도가 무슨 무당놀음인지 아나보지요. 좀 자제를 하십다. 자신의 인격도 생각해야지 아무리 말못하는 육신을 썼다고 아무렇게나 대우를 하면 되겠어요?
위 본문을 보기싫어 보지 않다가 한번 봤는데 사도행전의 내용으로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셨는데 전혀 잘못해석하고 있습니다. 즉 "그 오시는 앞에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 풀기도 감당치 못하리라 하였으니"(행13:24-25)고 하여 요한이 달려갈 길을 마칠 때라는 것은 그 의 사명을 다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헤롯왕의 스캔들로 감옥에 갇혀서 그의 사명을 더 이상 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세례요한은 세상의 일에 참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명은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명을 이스라엘 전역을 돌면서 마치 순회선교사처럼 해야 하는 것이지 한 두번 증거하다 감옥에 간 것이 그의 사명을 다한 것이 아닙니다. 보십시오. 세례요한의 한 두번의 증거(성경에는 회붕앞에서 한번, 제자들에게 한번 두번으로 나옴)가 이 정도의 영향을 미쳤는데 세례요한이 전국을 순회하며,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거하고 그 백성들을 예수님 앞으로 돌이켰다면 얼마나 일이 잘 풀렸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앞에서 수제자가 되어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고 그의 제자들에게 복음을 알려주어 수십 수백명의 제자들이 동시에 이스라엘에 복음을 전파하면서 예수님을 증거해야 하는 것인데 겨우
두번의 증거를 끝내고 세례요한의 제자들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누가 더 많이 세례를 주느냐고 세례를 놓고 경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세례요한이 예수님에게 사명인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이지요. "이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주시더라.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요3:22-23)고 하여 세례를 각자 주는 장면으로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받들지 않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또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으로 더불어 결례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요3:26)고 하여 제자들끼리 세례를 각자 주는 것에 대해 변론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런 식으로 세례요한은 점점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 지 않고 엇갈리는 삶을 살아갔던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의 갈길을 평탄하게 하기 위해 증거하고 복음을 전파해야 되는데 그런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세례요한이 자기 제자들을 직접 예수님 앞으로 인도한 바도 없으려니와 예수님을 따르라고 한 바도 없습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 중에 두명이 스스로 알아서 예수님을 따랐던 외에는 성경의 기록이 없습니다. 물론 세례요한이
따르라고 해서 예수님을 따랐을 수도 있으나 대단히 소극적이라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할 수도 있고, 밤낮없이 예수님을 미친듯이 증거해야할 위치에 있음에도 그야말로 뜨뜻미지근 하게 겨우 증거 한 두번 한 것이 성경의 기록은 전부라는 것이지요. 그것을 놓고 사명을 다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리고 바울에 의한 요한의 제자들을 수습하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후의 일입니다. 세례요한의 사명을 다했다면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을 따르는 군중이 많았다면 최악의 경우 산헤드린에서 빌라도가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했을때 결코 반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행19:3-5)하는 내용은 세례요한의 사명을 다 못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난 이후의 내용입니다. 세례요한의 증거와 세례의 영향력이 이처럼 크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세례요한이 이스라엘 전역을 순회하면서 예수님을 증거하고 복음을 전파했었더라면 어떻겠습니까?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지요.
이미 표(사단의 인침)를 받은 자들에게는 아무리 좋은 말을 한들 듣지 않을 거라는 성경구절이 생각나네요. 계시의 말씀이 열리는 시점은 바로 사단의 인침 이후란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잘 나와 있죠. 성령이 실상은 천사라는 진주는 일곱겹으로 감추인 말씀으로 어린양이 떼어 주셨는데 믿으려 들지 않으니 어린양과는 상관 없는 백성인것 같군요. 또한 세례요한이 실패자,배도자라면 세례요한(처녀)으로 부터 난(세례 받은) 어린양 예수님은 배도자의 자손으로서 어떻게 배도한 백성의 죄를 대신할 수 있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두 증인이 증거하였다고 말하려면 세례요한의 증거도 옳다, 예수의 증거도 옳다 하던지 그 반대라고 말 하던지?
세례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을 때 한 것이구요. 착각하지 마시지요. 세례요한이 불신한 것은 성경이 증거하는 것이지 제 말이 아닙니다.
세례요한이 사명을 제대로 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지 않게 해야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사단이 그 마음에 들어와 있는 자들이므로 "사단"이라고 예수께서 그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나요? 어린양이 십자가 지시고 그 제물로 드려질것은 구약에서 부터 예언된 것으로 필연으로 진행되어야 할 부분이며 창세이후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모든 죄악의 댓가를 위한 것인데 그것이 없기를 바란다? 솔직히 양심에 물어보시길... 이런 말하는 본인이 사단의 한 부류에 속하지 않는지? 도무지 말이 되질않는 주장은 바벨론 신천지를 닮은 모든 이단들의 공통점입니다. 세례요한이 실패자라는 초극단적 이단의 본말을 보여주네요....
참포도나무님 신천지와 저는 아무 관계도 없다는 말을 몇번 말해야 알아듣습니까? 신천지가 뭐하는 단체인지 몰라요. 아시겠어요?
세례요한이 헤롯왕의 스캔들로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것이 무의미한 죽음이다? 정말 성경을 오해해도 정도껏 하십시요. 예수께서 다윗왕의 계보를 있는 유대의 왕이시라면 세례요한은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의 계보를 있는 제사장이요 참선지자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 제대로 사명을 못했다는 것이 말이됩니까? 예수께서 참선지자 엘리야라고까지 즐겨 받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참된 제사장이나 선지자라면 당연 명목상 유대의 왕이라는 헤롯에게 목이 달아 날지라도 그 잘못을 일깨워줘야 하는 것이 순리아닌가요? 요한은 하나님의 명령(구약에 예언된 말씀)과 하나님의 사자를 통한 하나님 말씀을 모두다 아주 잘 준수했읍니다.
12제자들이 그렇게 오랜동안 예수님과 함께하며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많은 이적들을 보고도 베드로는 세번 주를 부인했으며 빌립은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하며 가룟유다는 스승을 팔았는데 이것이 다 하나님이 작정하신 것 아닌가요? 목자를 치면 양들이 흩어져야하는 진리아니냐구요? 세례요한을 그대로 놔두고 어떻게 어린양을 제물로 드릴수있으며 다혈질인 베드로가 어떻게 예수께서 수모받는 것을 그대로 놔둘수 있냐구요? 셈이 그 아비 노아에게 한일을 보세요. 뒷걸음하지 않았나요? 잠시 눈을 가리울수도 있단말입니다. 요한 또한 세상의 구원을 위해 잠시 눈을 가리워 예수님을 못보게 하였다고 생각들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