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wer
“야, 정훈아, 오늘은 시간 되냐?”
“훗. 아니.”
“야, 이거, 이거, 이놈 맨날 바쁘기나 하고 말이야. 대체 언제 우리 술 한잔 하냐?”
“미안, 미안. 오늘은 바빠서 그래. 대신, 내가 주말에 한턱 쏠게.”
“으휴- 알았다, 알았어. 하여튼 간에… 사장이란 자리가 그냥 절로 얻어지는 건 아니지.”
“가라.”
“그래~.”
난 그렇게 멀어져 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책상에 있던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물고는 다시 일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창 일을 하다 기지개를 켜고 시계를 보니….
……! 8시 25분전….
난 황급히 일어나 외투를 걸치고 사장실을 나섰다.
차를 급히 몰아 간 곳은… 시내에 있는 한 꽃집.
딸랑. 탁.
“장미꽃 스물 다섯 송이 주세요.”
“네. 오늘도 오셨네요?”
“풋. 네.”
“늘 꽃다발이죠?”
“하하, 네.”
“여기 있습니다.”
“네. 고마워요. 여기…”
“여기 거스름 돈이요. 참, 늘 사가시는 분이니까… 사탕 드릴게요.”
꽃가게 주인은 내게 내민 것은 예쁘게 포장된 사탕 한 꾸러미였다.
“고맙습니다.”
딸랑.
꽃을 들고 한참을 걸어가다가 내가 멈춘 곳은… 문이 예쁜 하얀 색인 집이었다.
난 빙그레 웃고는 꽃다발을 그 집 앞에 살포시 놓아두었다.
아, 언제나처럼 조그마한 카드도 함께.
‘오늘도 꽃이 시들기 전에 꽃을 놓아둡니다.’
그렇게 꽃집에서 이십분 거리인 집까지 걸어가서 오늘도 그 집 앞에 꽃을 놓아둔다.
정확히 8시에 오늘도 꽃을 놓아둔다.
차를 타고 회사로 돌아가면서 회상에 잠겼다.
내가 처음 그녀를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57일 전이다.
그 당시 친구와의 약속을 근처 카페에서 잡았는데 어이없게도 퇴짜를 맞았다.
허탈함에 비속을 걷는데, 그러다가…
…….그녀를 보았다.
사람들은 피하고 다니는 비속을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있었다.
그녀는 문이 닫힌 한 가게 앞에 있었는데, 그 가게 앞에 있는 한상자 안을 쭈그려 앉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여기서 뭐하세요?’
내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돌리더니 생긋 웃었다.
‘고양이를 보고 있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천천히 그녀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상자 안에는 내 손만한 고양이가 갸르릉 거리고 있었다.
나도 그녀와 같은 포즈로 그렇게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버려진… 고양이인가요?’
‘네. 비속에서 비를 맞고 있는데 아무도 아는 체를 안 하는 거에요. 너무 불쌍해서 옆에 있어주는 거에요.’
‘…그렇군요.’
‘데려가려고 했는데 관뒀어요.’
‘왜요?’
‘나를 너무 경계해서요.’
그녀의 말에 나와 그녀는 같이 웃었다.
‘갸르릉…’
‘언제까지 이러고 계실 거에요? 이러다가 고양이랑 당신 둘 다 감기에 걸릴 거에요.’
‘고양이가 나한테 마음을 열 때까지요.’
‘……’
‘어?’
‘왜 그래요?’
‘고양이가 나를 쳐다봐요.’
‘……?’
‘이제 마음을 열었단 증거에요.’
‘어떻게 알아요?’
‘내가 증명해보일게요.’
그녀는 조심스럽게 왼손을 고양이에게 가져갔다.
고양이는 잠시 움찔거리더니 이내 그녀의 쓰다듬는 손길에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봐요!’
‘쿡. 정말이네요.’
‘이제 집에 데려가도 되겠어요.’
라며 그녀는 고양이를 들어올렸다.
고양이는 갸르릉거리며 그녀의 볼을 혀로 핥았다.
‘꺄아- 하지마~. 꺄하하-.’
그녀는 그렇게 환하게 웃었다. 미소가 예쁜 사람이었다.
그날부터 그녀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그녀는 꽃을 누가 가져다 두는지 모른다.
하지만 난 꽃을 가져다 언제나 늘 집 앞에 놔둔다.
그녀와 나는 자주 길에서 만나지만 꽃을 놔두는 그 사람인지 모른다.
그걸로 충분하다.
그녀에겐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에… 내 마음을 전할 순 없지만 그걸로 충분하다.
그렇게 꽃으로서 그녀의 사랑을 빌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사장님, 늘 웃으시는 분이셔서 너무 좋아요.”
오늘도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비서가 대뜸 얘기한다.
“하하, 그래요?”
“네. 그러니까 애인 좀 만드세요. 그러면 정말 더 예쁜 미소를 볼 수 있을 텐데요.”
난 비서에게 한번 웃어주고 복도를 걸었다.
……애인은 없지만 이미 사랑하는 사람은 있는걸요.
화창한 주말.
친구와 약속을 잡아 시내의 카페에서 일을 보고 친구와 헤어져 나오는 길에 아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그녀와 친한 이웃집 아주머니.
그리고 나와도 친분이 있는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오랜만에 뵙네요.”
“아이고~ 정훈씨도 잘 있었어?”
“그럼요.”
“정훈씨는 무슨 볼일이야?”
“아, 친구와 일이 있어서 잠깐…”
“하하, 그래?”
“네. 근데 아주머니는 시내에 어쩐 일이세요?”
“하하, 옆집 아가씨가 부탁을 좀 해서 말이야.”
“무슨… 부탁이요?”
“예물 옷감을 보내려는데 글쎄 나에게 부탁을 했지 뭐야. 내가 이 근방을 잘 꿰뚫고 있다고 말이야~.”
“예물… 옷감이라뇨?”
“아, 몰랐나 보지? 아가씨, 일주일 후에 결혼이잖아.”
“……그…래요?”
“그래~. 신랑이 아주 훨친하더라구~. 참, 내 정신 좀 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그럼 난 이만 가볼게.”
“……네. 안녕히 가세요.”
아주머니가 저만치 사라지고 난 후에도 난 그 자리에 서있었다.
……….그녀의 결혼.
그녀의 결혼 하루 전날, 정확히 내가 그녀를 만난 지 364일, 내가 꽃을 보내기 시작한지 364일 되는 날.
오늘도 역시 그녀와 처음 만나는 날과 같이 비가 오고 있다.
지금 시각. 7시 25분.
난 어김없이 오늘도 차를 타고 꽃을 사러 간다.
……아마, 이것이 오늘로 마지막이 되겠지.
쏴아아아아.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다.
지금 시각 8시.
마지막이니까 내 손으로 꽃을 주고 싶다.
그런 마음에 난 약간 떨리는 손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살짝 열리는 문.
난 불쑥 장미 꽃다발을 내밀었다.
“결혼 진심으로 축하해요.”
“정훈씨!”
놀라운 반 기쁨 반으로 꽃을 받아 드는 그녀.
“결혼 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옆집 아주머니께서 알려주셨어요.”
“그…래요…”
“그럼 갈게요.”
“아, 들어갔다 가죠…”
“아니에요. 그럼… 갈게요. 그리고… 다신 오는 일 없을 거에요.”
“…네?”
“그 사람이랑 행복하세요.”
난 미소와 함께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섰고 그렇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비속을 몇 발자국 걸었다.
“잠깐만요!!”
“…….”
“늘…. 내 집 앞에…. 늘 8시에…. 꽃을 놓아두었던 사람… 정훈씨죠?”
“…….”
“난… 난… 몰랐어요…. 전혀 몰랐어….”
“알아주길 바라진 않았어요.”
“왜… 그랬어요….”
“당신과 그 사람이 잘 되길 비는 마음에서요. 내가 주는 꽃을 보고 용기를 얻길 바랬어요.”
“정훈씨…”
“행복하세요.”
뚜벅 뚜벅
“정훈씨!!”
다시 귓가에 울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난 다시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날… 좋아했던 거에요…?”
“……”
“그런….거에요…?”
“…… 사랑했어요.”
뚜벅 뚜벅…
그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지만 난 걸었다. 아니, 걸어야 했다.
이상하게도 마음 한쪽이 시원해지는 기분이 든다.
아주머니께서 보내주신 그녀의 결혼사진.
난 빙그레 미소를 짓고 회사 창 밖에서 보이는 맑은 하늘을 보았다.
그녀는 어딘가에서 분명 행복하겠지…
내 첫사랑이었던 그녀…
고마워요….
사랑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요……
안녕하세요-.
처음 올려보는 단편소설입니다.
'조성모'의 'Mr Flower'의 가사를 약간 땄어요.
많이 감상해주세요.
카페 게시글
인소닷단편소설
[단편]
[천연화] Flower
천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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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05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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