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하면 다산초당이 생각나고 정약용의 유배지라는 생각만으로 머리를 채웠다.
언젠가 보길도를 가는 길에 강진 설성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 더욱 강진을 그렸는지도 모른다,
돼지고기를 고추장 양념하여 석쇠에 구어 나오고 맛깔스런 반찬이 상이
넘치도록 나와 반찬그릇 위에 또 반찬을 걸쳐 놓았던 그 푸짐함을 잊을 수 없었다.
매실 철이 되어 매년 광양면 다압리 동동마을에 있는 매실 농장을 가기 전
강진을 둘러 가기로 하고 친구 둘과 함께 새벽바람을 가르면서 떠났다.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길은 언제나 마음을 경건하게 하고 또 다른 여행의
신선함을 가져다준다.
아침은 휴게소에서 싸간 도시락으로 채우고 점심은 강진의 그 풍성하고
맛깔스런 밥을 먹기로 했다.
강진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무위사를 들렀다.
어느 책에서 무위사에 관해 읽었는데 무위사만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가람배치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 글대로 단청도 없이 주심포 맛배지붕의 양식과 배흘림기둥은, 무지한 내가 보아도 아주 간결함을 느낄 수 있었다.
좀 유명하다 싶은 사찰마다 고색창연한 모습에서 자꾸 무언가를 고치고 더해서 본래의 모습을 잃을 뿐만 아니라 상업적인 냄새가 많이 났다면
무위사는 더 이상 건드린 흔적도 없어 보이는데다 가람자체가 아주 적절하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 것이 딱 이대로가 마음에 들었다.
사찰입구에도 아무런 상점도 볼 수 없었고, 사찰 내에도 요즘 다 있는 전통찻집도 없이 정말 호젓하고, 단청마저 없어 오랜 역사를 그대로 품고 있는 단아한 모습이였다.
그 많은 역사를 일일이 열거 할 수 없지만, 분명 머릿속에 아주 진하게 남는 곳이다.
다음 장소는 사의제다.
사의제는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 와서 처음 묵은 곳이다.
이곳 주막집 주인 할머니의 배려로 골방 하나를 거처로 삼은 다산이 몸과 마음을 새롭게 다잡아 교육과 학문 연구에 헌신키로 다짐하면서 붙인 이름으로,
‘네 가지를 올바로 하는 이가 거처 하는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곳을 복원 하면서 주막집 할머니를 그린 주모상이 뒷 편에 세워져 있고,
지금도 사의제 바로 앞집에서는 음식을 팔고 있다.
사의제를 뒤로 하고 우리는 그 유명한 영랑 생가를 갔다. 사의제와는 불과
2~3백미터?에 자리하고 있다.
입구부터 흙 담에 아주 싱싱하게 담을 푸르게 에워싸고 있은 담쟁이 넝쿨과 행랑채에서 바라다 보이는 안채는 초가였지만 정갈하고 품위가 있어 보였다.
마당에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 시비가 있고 모란이 꽃은 졌지만 아주 탐스럽게 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안채 뒤쪽은 대나무와 해묵은 동백이 집안을 감싸고 있다.
이런 집에 영랑 김현식씨는 45년을 살았다고 한다.
운 좋게 해설가를 만나 영랑시인의 많은 일화를 들을 수 있어 고마웠다.
춘원 이광수씨도 이곳을 자주 와서 후학을 가르치고, 시인 정지용씨도 동백을 보러
자주 이곳에 왔다고 한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시의 탄생은 바로 이광수씨 덕분이라고 한다.
후학들에게 시를 써 보라고 했는데 김영랑씨가 시를 써서 안내고 구겨서 들고 있는
것을 이광수씨가 보자고 하여 이 시를 보고 감탄하여 발표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영랑의 생가는 부잣집답게 별채도 있어 많은 문인들이 묵고 서로 시를 공부할 수
있게 하였고 뜰에는 그때부터 이미 있었던 해묵은 은행나무와 목백일홍이 지금도
그대로 그 자리에 있다.
우리는 다시 병영에 있는 식당을 향해 떠났다.
병영이라는 마을이름은 바로 전라병사영지에서 유래됨을 알았다.
조선시대 지방에 주둔한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從二品)가 있던 영문(營門)으로 이곳에서 첨절제사(僉節制使: 從三品)·동첨절제사(同僉節制使: 從四品)·절제도위(節制都尉: 從六品) 등을 지휘하며 방위하던 바로 그곳임을...
의외로 큰 행운을 잡았다 병영지가 있던 마을과 담이 그대로 재연 되어 있고, 800년이 된 은행나무가 사람으로 치면 장년 같은 모습으로 아주 풍성한 잎을 지니고 있었고, 또한 우리나라를 서양에 최초로 알린 (하멜 표류기, 1666년)의 저자 핸드릭 하멜을 기리는 전시공간이 있다.
하멜은 네달란드 동인도회사의 일원으로 일본으로 이동 하던 중 배가 난파 되여 제주도에 표착, 나라에서는 우리나라를 감시 차 왔다고 서울 강진 여수 등에 유배 보내여 13년간 살았다고 한다. 몰랐던 역사를 다시 받아들이면서 감회를 느낀다.
이제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 영랑생가에서 해설사가 설성식당보다 친절하고 맛도 좋은 곳이라며 추천 해 준 수인관을 찾아 갔다.
한적해서 점심시간이 지내서 그러려니하고 밥을 시켰는데 돼지 불고기를 불에 구워 나온 것은 같았는데, 다른 반찬은 그저 그랬다.
처음 계획대로 내가 먹었던 설성식당으로 갈걸! 후회를 했다.
다음은 동양 최대 좌불상이 있는 남미륵사를 거쳐 다산초당으로 갔다.
이곳은 다산 정약용이 유배되여 18년간 머물며 후진양성과 실학을 집대성한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목민심서(牧民心書- 목민관, 즉 수령이 지켜야 할 지침(指針)을 밝히면서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저서 ),
경세유표(經世遺表-행정 기구의 개편을 비롯하여 관제·토지제도·부세제도 등 모든 제도의 개혁 원리를 제시한 책 ),
흠흠신서(欽欽新書- 형사사건을 다루는 관리들을 계몽하기 위해 순조 19년인 1819년 완성, 3년 뒤 간행한 형법서이다. )등 600여권의 저서를
남긴 곳이라고 하니, 그를 어찌 역사속의 인물이라 잊고 방관하며 살 수 있을 것인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곳이였다.
그곳을 넘어 백년사 가는 길에 해월루에 갔다 .
해월루에서 내려다보니 강진만의 넓은 들과 멀리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다산이 흑산도 유배중인 형님 정약전이 그리울 때면 이 언덕에서서 스산한 마음을 달랬으리라 생각하며 세운 각이라고 한다.
백련사 가는 길은 유배생활동안 벗이자 스승이요, 제자였던 혜장선사와 다산을
이여주는 길이였다고 한다. 지금도 그 길은 여전한데 인걸은 간곳이 없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길이다.
어느새 해는 강진만 서쪽으로 기울어져 급하게 갔던 길을 넘어 왔다.
저녁 마지막으로 마량향을 향해 고!
사의제
영랑생가의 담
영랑의 시비
영랑생가 안채
뒷뜰
문인들이 찾아와 함께 공부하며 시작을 하던 별채.
800년 수령의 은행나무
남미륵사의 좌불
다산초당
강진만의 넓은 들.
첫댓글 그림도 좋고 글도 좋아 제가 직접 가본것보다 훨났습니다. 건강하시죠? 눈깜짝하니 올해도 절반이 날아갔습니다. 건강하세요.
세월이 왜 이리 빠른지...생각보다 훨씬 좋았읍니다. 산소님도 건강하시죠?
아니 글에서 프로(professional)냄새가 가득합니다.
관련분야에 종사하시는 분이 쓴 것같은 냄새 말입니다!
늘이 직접 현장이 있는 듯이 글 잘 봤습니다.
(이글 보며 한번 가 보고 싶단 생각!!)
그래도 다 둘러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읍니다. 강진에서만 1박2일을 해야 될 것 같더라구요.
아주 좋은 곳에 다녀 오셨네요.
여행이란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우고 또 새롭게 인식하게 되고
다시 생활에 돌아와서도 오랜동안 활력소가 되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덕분에 강진 여행을 함께 한 기분입니다. 여행기 즐감했어요>
감사합니다. 안 가보셨으면 꼭 한번 가셔요.
잘 다녀오셨네요. 친절하게도 이렇게 길게 보고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젠가 가봤던곳, 나도 느꼈을터 ,허나 지금은 어느 때 그랬나 싶게 아스름 합니다. 해설 곁들여 다시 사진을 보니 감회가. 고향집님 올해 다 가기전에 한번 뵐날이 오겠지요?
ㅋㅋ 요즘 자주 삐지시는것 같아요,제가 전화드려서 기분전환 되셨죠?더운날 건간조심 하세욤~~~
유람기 잘봤습니다..그대로 따라가는 유람 여행이라도 함 가보고 싶네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떠나면 참 좋더라구요.
어휴 학교 다닐때 역사공부 요약해놓은것 같아요,그리고 어려워요 ㅎㅎㅎ 여행 떠나기전에 미리 공부하고 떠나면 좋은점이 많다 하더니,강진에 다녀오지 안아도 생생 합니다.고향집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고 공부하고 왔어요.
빠-정약용 선생의 훌륭한 경세방안이 혼미한 위정자들에겐 씨알도 않먹어 사후약방문 격...허나 지금 상황도 앞으로 상황도 제대로 보면 正藥用이고, 제대로 못해 惡用은 잘못된 비유이고..어찌턴 찜찜한 .경이원지 상태....선각자의 뜻이 제대로 되었으면...
맞아요. 위정자들이 문제고 사회악이겠죠.
놀부도 2003년도에 돌아본 지역입니다만, 여행기를 보면서 또 가보고 싶어지네요.
영랑생가의 초입에 붉은색 목단꽃이 참으로 고왔더랬는데...
꼭 한번 다시 가 보셔요. 그리고 놀부님이 소개해 주신 동동마을 매실집도 다녀 왔어요.
직접 따고 고사리도 잔뜩 뜯어 왔답니다. 감사해요.
언니좋은곳 댕겨오셨네요.전 10년전 보길도를 댕겨오면서 여길 다녀왔던기억이...
아주 좋은 여행이였어요.
고향집님 내 댓글에만 답글 안 주시고 나 삐침
어머! 그랬어요? 죄송합니다. 샅샅이 보고 댓글 달겠읍니다.
남도답사 1번지 강진을 다녀가셨군요. 강진에 살고 있는 저보다 더 자세하게 여행기를 쓰셨군요.
강진에 오시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010-3622-9157
감사합니다. 다산님... 진작 알았더라면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