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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주중에 펼쳐진 위건 전에서 역전승을 거두며 리그 우승에 더 가까이 다가섰다. 맨유는 남은 경기에서 승점 1점만 추가해도 자력 우승이 가능한 상황. 이미 칼링컵을 제패한 맨유가 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오는 28일(한국시간) 새벽 로마에서 벌어질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도 승리한다면 올 시즌 3관왕을 달성하게 된다.
#2 5월 10일, 맨체스터 올드 트라포드.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 전반 종료 직전 팀의 추가골을 집어넣은 카를로스 테베스가 결연한 표정으로 벤치를 향해 달려온다. 그 앞 피치에 멈춰선 테베즈, 양쪽 귀에 손을 가져놓더니 객석을 향해 꼿꼿이 서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골게터지만 맨유에서는 선발과 벤치를 오가는 데 만족해야 했던 테베스가 보내는 무언의 항의다. 이어지는 맨유팬들의 함성. 경기 전, 영국의 조간 신문들은 테베스가 올 여름 팀을 떠날 것이라고 밝힌 인터뷰를 일제히 내보낸 뒤였다.
#3. 같은 경기 후반 15분. 벤치의 부름을 받아 박지성과 함께 경기장을 빠져나온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표정이 심상찮다. 아니나다를까. 스태프가 조심스럽게 건넨 수건을 우악스럽게 내친 호날두, 터벅터벅 벤치를 향하더니 심술이 가득한 얼굴로 경기를 주시한다. 올 시즌, 수비수인 네마냐 비디치(50경기)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출전 횟수(44회)를 기록 중이지만 더 많은 경기에 뛰고 싶은 욕심은 줄어들 리 없다. 득점왕 자리를 굳히기 위한 기회가 무산되었기 때문일 수도.
21세기 축구, 로테이션 시스템의 등장
시대가 바뀌면 축구도 변한다. 골키퍼가 동료의 백패스를 손으로 잡던 시절이나, 부상자가 발생해도 선수 교체가 없던 시절의 축구가 지금과 같을 수 없다. 4-2-4 포메이션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절에 공을 차던 이들이 작금의 4-5-1이나 4-6-0 같은 포맷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 것처럼.
21세기의 축구를 규정하는 수 많은 단어 가운데 여기서는 두 가지, 미디어와 체력에 주목한다. 미디어의 등장으로 부와 명예를 거머쥔 축구 클럽들은 미디어에서 창출되는 새로운 수익을 더욱 증대시키기 위해 대회와 경기의 수를 늘렸다. 이 과정에서 선수단은 빡빡한 스케줄에 적응하기 위해 선수 개인의 체력을 증진하고 시즌 내내 쾌적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는 데에 노력을 지속해왔다.
그 결과, 우승권에 근접한 팀들에게 가장 익숙하고 중요한 단어는 ‘로테이션’이 되었다. 클럽이 치르는 모든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목표인 팀이라면 ‘로테이션 시스템’ 없이 목표를 이루기 힘들다.
한 시즌은 무척 길다. 9개월 이상 진행되는 유럽 리그의 시즌은 상위권 팀들에게 매 시즌 최소 50경기에서 최대 70경기에 이르는 경기 수를 요구한다. 게다가 이 팀의 주전 선수 대부분은 자국 대표팀의 멤버로 A매치까지 치러야 하니 경기 수는 더욱 늘어난다. 주전 선수들이 9개월 동안 꼬박 매주 2경기씩을 소화한다고 가정해보라. 그야말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대 축구, ’베스트 일레븐’은 없다
이처럼 밀도 높은 스케줄을 소화하려면 ‘소수정예’로는 힘들다. 따라서, 현대 축구에서 더 이상 ‘베스트 일레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최고의 11명만으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빡빡한 일정을 기복 없이 치러내기 위한 노력의 결과, 주전과 비주전의 경계는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니, 현대 축구에서 우승 도전에 필요한 숫자는 11에 그치지 않는다. 자국 리그와 컵 대회, 그리고 유럽 클럽 대항전까지 치러야 하는 상위 레벨 클럽들의 1년 농사는 중하위권과 개념이 다르다. 지금도 중하위권 팀들은 11명의 선발 명단을 매 경기 큰 변화 없이 유지하지만 최상위 레벨 클럽은 2경기 연속 같은 선발을 내보내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패턴을 갖고 있어 큰 차이를 보인다.
즉, 리그 우승권에 도전하는 팀들은 그 어떤 선수도 전 경기를 뛸 수 없을만큼 빡빡한 일정과 잦은 이동이 다반사다. 이는 ‘선발 11명’에 천착하는 20세기적 운영법에 개혁을 요구한다. 이른바 ‘베스트18’의 전력이 강한 팀만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17명의 기량 차가 적고 팀 플레이가 원활할수록 여러 대회에서 모두 고른 성적을 기대할 수 있다. 11명에 집중하던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17명의 정예를 구성하고 이들을 적절하게 회전(rotation)시키는 개혁이야말로 21세기형 강호의 필요충분조건인 셈이다. 그리고,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은 그러한 변화에 걸맞는 개혁을 가장 먼저 시도한 지도자이자 가장 성공적인 결실을 이끌어낸 감독이다. 퍼거슨이 경쟁자들의 부침 속에 꾸준히 유럽과 자국에서 호성적을 내고 있는 것도 오래 전부터 시도해온 퍼거슨식 로테이션의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리고, 2008년과 2009년의 전성기는 이러한 시스템이 완숙기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알렉스 퍼거슨, 로테이션의 달인
퍼거슨의 맨유가 애초부터 최강이었던 것은 아니다. 1986년 맨유 감독으로 부임한 알렉스 퍼거슨은 1990년 FA컵 우승을 차지하기까지 근 3년 반을 트로피 하나 없이 보냈다. 리그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는 데에 걸린 시간은 무려 6년으로 그 사이 퍼거슨의 맨유는 리그 13위(89/90)까지 추락하는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이후로는 탄탄대로였다. 프리미어리그 원년인 1992/1993 시즌 우승을 차지한 이래 17년 동안 단 한 번도 리그 3위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다. 주목할 점은 1992/1993 시즌이 UEFA 챔피언스리그가 출범한 시즌과 겹친다는 점이다. 즉, 출전팀 수가 늘어난 챔피언스리그의 탄생으로 인해 퍼거슨의 맨유는 (이후 한 차례를 제외하면) 계속 UEFA 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하는 일정을 경험하게 된다. 매 시즌 50경기가 넘는 공식 경기를 치르는 일정에 익숙해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러니, 알렉스 퍼거슨이 ‘로테이션 시스템’의 필요성에 가장 먼저 눈을 뜨고 ‘베스트18’ 구성에 천착하기 시작한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테베스와 호날두의 불만, 박지성과 플레처의 헌신
로테이션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늘 뛰고 싶어하는 선수들 공통의 욕구를 적절히 조절하는 한편, 그들의 컨디션과 상대팀에 따른 전략을 고루 고민하고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은 시행착오와 희생을 요구한다. 긴 시간에 걸친 경험이 쌓여야 하고, 그 뒤에는 웬만한 팀에서라면 주전으로 뛸 선수들의 희생과 인내가 필요하다.
- 시행착오, 맨유의 경우
퍼거슨의 맨유는 오래전부터 두 종류의 선수군을 확보하는 데 집중해왔다. ‘멀티 플레이어’와 농구의 ‘식스맨’ 역할을 담당할 선수가 바로 그들이다. 1군 경기에 언제 투입되더라도 최소한 서너 가지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던 필립 네빌 (현 에버턴), 퀸턴 포츈(현 투비제/벨기에 2부리그), 존 오셰이 같은 ‘멀티맨’들은 퍼거슨의 맨유가 돌발 변수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비교적 타격을 적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완충제였다. 스페셜리스트가 존중받는 현대 축구에서 이들은 과거에 말하던 ‘주전’과는 거리가 멀지만 감독이 늘 11+6의 스쿼드 리스트에 포함시킨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이것은 퍼거슨 감독이 ‘베스트18’ 멤버 구성에 오랜 시간을 공을 들여온 것과도 맥을 같이 한다. 실패작으로 끝난 젬바-젬바, 리암 밀러, 벨리옹 등 어중간한 커리어의 선수들을 꾸준히 영입했던 것은 이러한 실험의 아픈 증거다. 이러한 선례 덕분에 맨유는 현재의 두툼하고 믿음직한 ‘베스트18’을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테면, 올 시즌의 라이언 긱스, 안데르송, 박지성, 테베즈, 나니, 에반스, 플레처 등은 과거 기준의 ‘주전 멤버’와는 출전 패턴이 다르고 예전의 ‘벤치 멤버’보다는 훨씬 많은 출전 기회를 얻는다는 점에서 로테이션 시스템 하에서만 설명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현재의 맨유가 꾸준히 정상권을 유지하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세운 주요 멤버라는 점에서 그 비중을 간과할 수 없다.
- 희생과 인내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상대적으로 기회를 덜 받는 선수들의 불만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그 첫번째다. 퍼거슨의 맨유가 시행하는 로테이션 시스템에서 시즌 내내 우선 출전권을 보장받는 선수는 대략 6~8명 선이다. 이들은 팀의 경기 일정에 따라 주요 경기 위주로 출전이 집중된다. 문제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선수들, 그리고 일정에 따라 종종 경기를 쉬어야 하는 톱 플레이어들의 불만을 관리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테베스와 호날두의 지난 주말 해프닝은 각각 이 두 가지 경우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테베스의 경우는 맨유의 딜레마가 극대화된 사례다. 테베스의 불만은 단순히 베르바토프, 루니에 비해 선발 출전 기회가 적었던 것에 그치지 않는다. 맨유는 그 동안 테베스를 임대 선수로 쓰면서 소속사인 MSI에 매우 많은 임대료를 지불했다. 완전 이적을 추진하면서 제시받은 이적료까지 더하면 천문학적 액수가 된다. 감독이 포워드 옵션 가운데 No.3로 활용하는 선수에게 팀 사상 최고액을 퍼붓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게다가 테베스는 지구상 어느 클럽에 가더라도 당장 주전으로 뛸 수 있는 특급 골잡이다. 선수의 희생과 인내를 요구할 수 밖에 없는 로테이션 시스템에서 필요한 것은 선수가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고 있다는 믿음이다. 맨유가 테베스 완전 영입을 망설이는 사이 테베스의 인내는 한계점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로테이션은 계속될까
이제 맨유는 다음 시즌을 앞두고 시험 무대에 돌입한다. 테베스와 호날두의 경우처럼 로테이션 시스템이 온전히 껴안지 못한 월드 클래스 선수들의 거취 문제를 처리해야하고 묵묵히 팀이 제시하는 일정을 따르는 ‘베스트18’의 보강과 교체도 진지하게 추진해야 할 때다. 맨유에게 올 여름이 중요한 것은 그래서다. 아직 시즌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이미 클럽 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맨유의 호성적은 분명 로테이션 시스템의 정착에 기인한 바 크다. 현재 유럽 리그 수익 구조에서 경기 수가 줄어들 가능성은 전무한 상황이고 월드컵 등의 A매치 빅이벤트 역시 꾸준히 지속될 전망이니 로테이션 시스템의 필요성은 점점 배가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도 로테이션 시스템은 더욱 강조될 전망이다. 이미 성공을 거둔 맨유의 사례는 경쟁자들을 비롯해 유럽 제패를 노리는 여러 팀들이 참고할만한 내용이다. 특히, 한 순간의 반짝 우승이나 ‘베스트11’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팀들의 경우 18명의 멤버를 효율적으로 순환시키는 로테이션 시스템의 매력에 더욱 깊이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반면, 선구자격인 맨유의 경우, 이번 여름이 고비일 지 모른다. 트로피와 함께 맞이하는 여름은 소속 선수들의 가치가 최대한 상승하는 기간이니 클럽 입장에서는 또 한 번의 큰 도전을 맞게 되는 셈인데다 경쟁팀들의 보강 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선수들이 박지성이나 플레처, 스콜스처럼 감독과 팀의 요구에 부응하며 불만을 표출하지 않는 것은 아닐테니, 어쩌면 올 여름이야말로 맨유가 로테이션 시스템을 가장 적절히 활용해야 할 시기일지도 모른다. 팀웍이 더욱 공고해질 수 있도록 선수들의 몸과 마음을 효과적으로 순환시켜야 할 테니 말이다.
첫댓글 난 로테이션이야기가 나오길레 베니테즈 이야기도 나올줄 알았는데.
첼시도 로테좀 했으면 ㅠㅠ
서형욱처럼 되고싶다 ㅠ
바르샤도 로테좀 하자..-_-진짜 최강팀이라 불리는 팀들중에 가장 로테이션 안하는 팀같음..
스쿼드가 빵빵하니 로테이션도 테베즈 빼면 별탈이 없었던 시즌.....
글을 너무 잘 써서 댓글이 별루 안 달릴 듯 ㅋ~ 떡밥이 좀 나와야 하는디
형욱님 넘 귀여버 ㅜㅜ 강아지같애 ㅠㅠ
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