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주류 역사계의 고조선 관련 삼국유사의 불신을 가볍게 비웃어 주는 최근(?)에 발견된 추가 외국 사료를 소개합니다.
어차피 근거 들이대며 주장해도 신앙처럼 거부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이런 사료가 최근에 발견되었다는 소식 정도는 서로에게 도움이 될듯 하여....
2017년에 수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합니다. 삼국유사에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되었다는 고조선을 증언하는 새로운 서적이 발견되었다는 겁니다. 그것도 한국인이 아니라 프랑스인이 프랑스어로 300년 전에 작성했다고 하니 신기했죠. 그리고 2018년에 그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초판이 발간되었고 해당 서적을 해제한 '유정희' 씨가 소개되기 시작합니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8100110543028308
2018년에 번역본으로 작성된 초판이 발간되었는데 구입을 시도했으나 절판되어 구입에 실패했는데..
2021년에 2판이 발간되었습니다. 초판에서 공개하지 않았던 프랑스어 원어와 프랑스어를 번역한 영어를 함께 실었는데...
저는 또 절판되어 2판도 구입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기사로만 내용을 가늠해야 하는데 대충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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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이 건국되었다는 일연의 〈삼국유사〉 기록은 한국 고대사의 뜨거운 감자요, 풀리지 않는 퍼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단국왕검의 탄생과 고조선의 건국신화가 담긴 〈삼국유사 기이편〉 이외에 고조선의 건국과 관련된 사료는 단 한 줄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한국 측 사료인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 측 사서에도 고조선의 건국에 대한 기록은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18세기 초인 1710년대에 중국에서 포교활동을 하던 프로방스 출신 프랑스인 예수회 선교사 ‘쟝 밥티스트 레지(Jean-Baptiste Regis : 1663~1738)’는 한국역사에 대한 그의 관심을 글로 남겨 유럽으로 전했다.
그와 그의 동료 예수회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작성한 중국과 동아시아 관련 기록들은 당대 유럽에서 『Description geographique, historique, chronologique, politique et physique de l’Empire de la Chine et de la Tartarie chinoise』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어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여기에는 고조선 건국의 실마리를 풀어줄 흥분되고도 충격적인 기록들이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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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쟝 밥티스트 레지 Jean-Baptiste Régis(1663~1738)는 프랑스 예수회 선교사로 1698년부터 중국선교에 참여했다. 빼어난 지리·수학·천문학적 지식을 활용해 동아시아의 지리를 파악하고 이를 유럽에 전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특히 청나라 강희제의 명에 따라 기존의 중국지도를 개량하기 위해 만들어진 황여전람도(皇輿全覽圖) 제작에 참여해 다른 예수회 선교사들과 함께 중국 각지를 누볐다. 이 과정에서 그는 조선에 대한 그의 관심을 글로 남겨 유럽에 보냈는데(주로 당시 조선왕조의 기원과 역사,문화 등), 이는 18세기 유럽 지식인이 어떻게 조선을 바라보았는지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 평생을 예수회와 천주교 전파에 헌신했고 베이징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는 그의 전문분야라 할 수 있는 천문관측과 지도제작 이외에도 중국의 역사와 철학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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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적으로 공개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http://www.nb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9140
2-6.
① 조선인(여기서는 주로 고조선인<古朝鮮人>)은 B.C. 2357년 치세를 시작한 중국 요(堯) 임금때부터 B.C. 2188년 치세를 시작한 하(夏)나라 3대 제왕(帝王)인 태강(太康)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속민(屬民)이었다. 그러나 이 때 ②하나라 천자(天子) 태강의 압정은 고조선의 저항을 가져왔다. 하지만 B.C. 1818년 치세를 시작한 하나라 마지막 천자(天子)인 걸(桀) 때 이르러서는 고조선은 중국에 다시 조공을 바쳤다. 그렇지만 걸(桀)의 폭정은 또다시 고조선이 반란을 일으키게 만들어 이때 고조선은 일부 중국 영토에 침입하기도 한다.
① 고조선의 시작과 우리민족의 기원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일연의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과 일치한다. 주지하다시피 『삼국유사』에 보면 일연은 고조선의 성립이 중국 요(堯) 임금 때부터라고 기술했다. 참고로 이 책 저자인 레지 신부가 일연의 『삼국유사』를 봤을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 레지 신부는 분명 서문에서도 밝혔지만 중국 측 기록을 보고 이 글을 쓴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론이 가능한데 아마 일연이 말한 바와 같이 고조선이 중국 요 임금때 성립되었다는 얘기가 당시 명, 청 시대 중국에서도 꽤 통용되었던 얘기였던 것 같다. 더 나아가 이것은 여러 측면에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데, 아마 중국 측 신실할 수 있는 고서에 고조선이 중국 요 임금때 기원한다는 기록이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 같다. 참고로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위서魏書』의 기록을 토대로 고조선의 기원을 얘기했는데 현존하는 『위서』에는 그런 기록이 없으므로 당연히 다른 『위서』일 것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아마 『위서』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면 고구려를 설명하면서 고조선을 더불어 설명했을 가능성이 높다. 역사에서 보면 고구려와 북위(北魏)의 관계가 밀접했으므로 아마 여기서 말하는 『위서』의 위(魏)는 북위일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북위의 역사서를 기록한 고서일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겠다.
② 필자 같은 동양사, 그 중에서도 선진사(先秦史) 전공자에게는 상당히 흥미로운 기록이다. 곧, 하(夏)나라 3대 제왕(帝王)인 태강의 실정을 언급하였는데 이 내용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와 『서경(書經)』 등에 자세하다. 태강에 대해서는 『사기』 보다는 『서경』 등에 자세한데, 곧, 태강이 사냥 등의 유희를 즐기다가 유궁(有窮)의 후예(后羿) 에게 나라를 잃은 것을 말한다. 이어서 하나라 마지막 제왕인 걸(桀)의 폭정도 언급하고 있는데 이 기록도 당연히 『사기』 「하본기(夏本紀)」와 「은본기(殷本紀)」에 자세하다. 걸(桀)의 폭정은 「하본기」 보다는 「은본기」가 더욱 자세한데, 아무튼 아마 이때 하나라가 혼란하자 고조선이 반란을 넘어 중국 국경을 침입했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 같다.
2-7.
하나라 걸의 제위를 찬탈하여 B.C. 1766년경부터 중국을 통치한 상(商)나라 초대 제왕인 ①성탕(成湯)은 무력으로 고조선인들을 제압하고 고조선이 다시 조공을 바치게 만든다.
① 상나라 개국자인 성탕이 상나라를 세우고 당시 중국을 다시 재정비하자 고조선이 다시금 조공하였던 것을 나타내는 것 같다. 아무튼 이러한 기록 등에서 흥미로운 점은 하(夏)에서 상(商)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고조선의 중국에 대한 조공, 이탈, 다시금 복속 등이 중국사와 연관되어 상당히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곧 중국이 혼란스러우면 이탈, 안정되면 다시금 조공하는 그런 관계이다.
2-8.
① B.C. 1562년 치세를 시작한 상나라 제왕(帝王) 중정(中丁) 때 고조선은 중국을 침공하였고, 이후 고조선은 때때로 굴복하기도 하고 또한 때때로는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이러한 복속과 반란은 B.C. 1324년 치세를 시작한 상나라 제왕 무정(武丁) 치세 이전 까지 계속되었다.
① 사마천의 『사기』 「은본기」에 보면 이 당시 중국은 상당히 혼란스러웠는데, 이때 고조선과 중국의 관계를 서술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상나라 19대 제왕인 반경(盤庚)은 수도를 은(殷)으로 옮긴 상나라의 제왕인데, 은으로 수도를 옮긴 이후 무정(武丁) 시기 상(商)은 과거의 세력을 꽤 회복한다.
2-9.
① 무정 때의 일시적인 세력 약화는 고조선이 강남과 산동 지방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고조선은 자신들을 정복하여 분산시킨 진시황 통치 전까지는 강남과 산동에 자리했었다. 그러나 주왕조(Tcheou, 周王朝) 이전 고조선의 역사적 사실들은 알려진 게 미미하기에 ②중국 역사학자들은 대체로 기자(箕子) 시대 이들의 왕정(王政)이 제대로 성립되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 기자로부터 조선은 중국의 한 주로 복속되었던 시기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2814년간 이어져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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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HZ 타 서적으로 공통으로 언급되고 말고는 해당 통념에 대한 것일뿐 교차검증될 사항은 아니라고 말했는데 뭔 뚱딴지 같은 소리만 해요? 18세기에 그런 소리 한 거 수백권 가져와도 그딴 건 증거가 안 되요.
세번 네번 말하면 좀 알아들어야 할 것 아닙니까? 국문 독해 못하세요? <두번째 반복>
댁의 진짜 주장은 저게 고조선 2333년 건국을 증거하는 교차검증 근거라는 거였습니다. 말 돌리지 맙시다.
@SDHZ 레지서적 18세기, 삼국유사 12, 13세기. 삼국유사가 먼저죠?
누가 18세기 통념에 삼국유사만 기여했다고 하는 사람 어디 있어요? 망신을 모면하기 위해 말돌리기 하지 맙시다.
@마법의활 교차검증 근거 ==> 이 부분은 앞서 철회했습니다.
그리고 아래 기록이 있네요. 고조선 20C 건국의 통념 시초가 삼국유사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참고한 서적과 자료 이름을 기록해놨다니 책을 구입하면 말씀드리지요.
"레지 신부가 삼국유사를 보고 이 글을 썼을 가능성은 희박한데, 우선 레지 신부는 평생 조선 땅을 방문한 적이 없었고 그가 기록을 쓰기 앞서서 참고한 서적과 자료들의 이름을 언급했는데 거기서 삼국유사의 이름은 없었다. "
@SDHZ 철회했다면 더 이상 쟁점은 없습니다. 저 또한 해당 자료가 고조선사가 한국사임을 증명하는 자료로 쓸 수 있음은 인정합니다.
300 년 전 레지나 유정희가 아니라도 환웅천왕의 고조선이나 단군 왕검의 조선 및 단군의 제위를 물려받은 단군부여 등의 역사는 중국의 고대 사서들이 넘치도록 증거한다.
레지나 유정희의 인식은 보통 수준의 역사 인식일 뿐이고 문제는 레지란 놈이 인식한 당시의 지리다.
유정희가 당시의 지리에는 눈을 감고 레지의 얄팍한 고조선.왕검조선.단군부여 등의 전언에 착안한다는 것이 너무 한심맞다.
뭐지 이 환빠는......? 그런 사실 없습니다요. 계속 그런 유의 글로 일관하면 강퇴가 가능하니 알아서 처신 잘 하쇼.
@마법의활
이 환빠?
계속 그런 류의 글로 일관?
강퇴 가능? 알아서 처신? 잘하쇼?
말뽄새하고는.
다짜고짜 이? 환빠라고?
그럼 너는 뭐지?
첫 댓글인데,
계속은 뭐고 뭘로 일관했다는 것인가?
또 그런 류의 글이란 대체 뭔 글을 말하는 거지?
처신 잘하쇼?
시장무뢰배나 하는 협박을 너무 쉽게 하네.
@신석재 '환빠' 두글자에 발작버튼 눌린 거 보니 환빠가 140% 확실합니다! 곧 처형당할 회원이라 급히 댓글남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