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무도회 (외 1편)
이 진
딱지만한 가면으로 세상을 다 가릴 거야
손바닥 위에 지구별을 올려놓을 거야
아니, 끝내기 홈런 한 방으로 너를 날려버릴 거야
가면들이 가면 뒤에서 웃고 있어
서로를 염탐하고 있어
하얀 드레스를 입고 레드카펫 위를 서성거리는
내 와인 잔에 네 피가 찰랑거려
가면의 위대한 힘을 한번 느껴봐
역전의 열망으로 플로어를 돌고 있어
스포트라이트 속 화려한 춤, 그 빛을 타고 올라
꿈도 날개를 퍼덕이고 있어
팡! 팡! 팡! 플래시가 터지고
현란한 소용돌이 속에 다크호스가 떠오르고 있어
누군가 속삭였어
그렇게 어수룩한 세상일까?
변장술이 제법이군? 거울 속의 내가 빈정댔어
이젠 멈출 수가 없어!
도망칠수록 집요한 그림자가 나를 추적해 와
휙, 검은 커튼이 덮치고 있어
냉장고 사내
잠들면 떠메고 가도 모르는 집채만한 몸뚱이
그는 한 기의 무덤처럼 덤덤하다
뱃구레만 채워놓으면 세상은 만사형통이다
학교로 유아원으로 아이들을 내보내고 아내도 마트로 출근하면
그때부터 그는 잠의 바다로 출항한다
출렁이는 뱃속은 먹이사슬의 대합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발치에는 발목 잘린 식물성이
머리맡은 머리 잘린 동물성 차지다
삼겹살, 고등어, 꽃게, 닭볶음탕, 잡채, 비름나물, 해물탕
한바탕 뜨겁다가 식어버린 것들까지 영역을 다투고
미식가인 사내는 잠 속에서도 연신 입맛을 다신다
날 좀 보소! 휴대폰 소리가 요란하게 꿈의 행성을 폭파하면
철커덕! 유아원 다녀온 사내아이가 아이스크림에 목매고
초등학생 딸이 딸기우유를 꺼내 들고 모니터 속으로 사라진다
아내가 유통기한 지난 먹거리를 다시 채워 넣을 때까지
심장에 빨간 불이 켜지도록 그는 어미 새처럼 제 속을 내어준다
제 목줄을 가족들이 쥐고 잇다는 것을 사내는 안다
드라이아이스처럼 기어 나오는 새벽녘의 울음소리
탯줄 같은 투석기를 등 뒤로 감춘 채
자신의 관 속에서 서서히 부패하는 사내,
쿵! 무너지는 순간까지
그는 결코 등 돌리는 법 없이
오늘도 아침이 그득한 한 집의 식탁을 피워낸다
⸺시집 『손바닥 위에 지구별을 올려놓고』 (2018.9)에서
------------
이진 / 경남 밀양 출생.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문학예술학과 석사과정 졸업. 2008년 《시인시각》 신인상 당선. 시집 『손바닥 위에 지구별을 올려놓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