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 금계

[김진수]

당신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금계

서울 사는 우리 셋째아들은 1980년 1월 1일에 태어났다. 2016년이니까 벌써 서른일곱 살이네. 딸만 둘이다. 광주 일곡 사는 둘째아들 집으로 와서 생일을 쇠었다.

손자들 할머니는 사진에 찍히기 싫다고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오사카 사는 큰아들네 식구들까지 왔더라면 더욱 좋았을 텐데 서운했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도 있지만 세상 풍파 다 겪으며 폭삭 늙어서 손자 손녀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기분도 과히 나쁘지는 않지 싶기도 하다.

2016년 1월 6일 오전 11시, 지부 사무실에서 전교조 전남지부 신년하례식이 열렸다. 조창익 지부장이 전화로 떡국이나 한 그릇 먹자기에 가볍게 그러자 했는데, 웬걸, 사무실에 나가보니 역전의 용사들이 많이 모여서 감개가 무량했다.

묵념에 이어 ‘임을 위한 행진곡.’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싸우자던 뜨거운 맹세.--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한 점 없고 부족한 점이 전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만 여기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개인적인 명예나 이름보다는 공적 가치를 향상시키기 위하여 팔을 걷어붙인 사람들이다.
여러분은 노래를 부르며 주먹을 흔들어보신 적이 있는가. 처음으로 주먹을 흔들며 노래를 불러보면 시아버지 무릎 위에 앉은 며느리처럼 계면쩍고 어색하기 짝이 없지만 몇 번 이골이 나면 그처럼 쉬운 일도 없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더 잘 먹는다 하지 않던가.
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분들의 뒤에 걸린 현수막 글자들을 꼼꼼히 들여다본다. 거기를 들여다보면 요즘 전교조 고민이 무엇인지, 또는 투쟁 목표가 무엇인지 훤히 알 수 있다.

--조합원 총력 투쟁으로, 연금 개악 저지! 법외 노조 저지! 노동 기본권 쟁취!

대통령이 되면 국민들을 조금이라도 평안하게 잘 살도록 하는 일에 전념해야 할 것 같은데, 담뱃값은 올리고, 퇴직하면 주기로 약속했던 연금은 깎고, 해직교사를 조합원 명단에서 삭제하지 않는다고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내몰고, 노동자들의 임시계약직 기간은 늘리고, 노동자들 해고는 밥 먹듯 쉽게 하는 쪽으로 법을 고치자고 재촉이니, 그것 참 쯧쯧쯧쯧.

내가 전교조 하면서 배운 격언은 둘이다.
            - 산다는 것은 싸운다는 것이다.
            -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신년 하례식 국민의례가 끝나자 동영상이 상영된다. 2015년 조창익 지부장을 비롯한 전교조 동지들은 밖에서 사는 날이 꽤 많았다. 총리 장관 후보들은 주민등록 위장 전입, 병역 기피, 부동산 투자, 뇌물 수수, 역사관 왜곡으로 얼룩진 사람들이 수두룩하고, 빈부 격차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노동 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우는 애기 젖 한 번 더 주더라고 자꾸 종주먹을 대야지 달리 방법이 없다. 

어? 저기 신명여상에서 짤렸던 정춘순 선생 아니여? 그 왼쪽은 산장의 여인 권혜경 선생 같은디? 혼세마왕이 판치는 이 어지러운 시국에 뭣이 좋아서 저리 서울 거리를 활보하면서 무사태평으로 웃고 다닌다냐?

지부장의 초청으로 오신 배종렬 의장님이 신년하례식 축사를 하셨다.
1933년 무안 해제 출생. 그러니까 여든네 살이신데 저리도 정정하실까.

한 번은 조창익 선생한테 건강을 위해서는 운동을 좀 하라고 조언했더니, “저 운동 열심히 하고 있는데요?” 실실 웃었다. 곰곰 생각해보니 그가 말하는 운동은, ‘운동권 운동’ ‘전교조 운동’이었다.
‘운동권 운동’이 심신을 지치게 하고 때로는 엄청난 시련으로 빠뜨리기도 하지만  대개는 사람의 육신과 영혼을 건강하게 해주는 좋은 운동임에 틀림없다. 배종렬 님은 그러한 비결을 정정한 몸으로 여실히 증명해보이고 있었다.

소작농의 장남.   함평농업고등학교.   단국대학교 중퇴.   무안 해제중학교 설립 추진.   해제중학교 이사 및 교사 7년.   72년부터 논농사. 양돈 양봉.   크리스천 아카데미 9기.   78년 전남기독교농민회 결성, 회장.   한국기독교총농민회 회장.   84년 함평무안농민대회. -- 농축산물 수입 즉각 중단, 조합장 직선제 실시, 비 농민 농지 환수 후 농민에게 분배, 농민의 아들딸인 노동자의 투쟁 탄압 중단 등 요구--.   전국민족민주연맹 공동의장.   전농 3,4대 의장.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공동대표.   전남서남부채소농협 조합장.   무안채소산업발전연합회 회장.   우리겨레 하나 되기 운동본부.  세상을 바꾸는 민중의 힘 대표. 

이쯤이면 당신의 농민운동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정권의 탄압을 얼마나 가혹하게 받았을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당신의 치열한 발자취 앞에서 소극적이고 태만하고 게을러빠진 나는 한없이 부끄러워지고 죄송스러워지고 작아진다.

전교조 전남지부 초대지회장이었던 고진형 선생이 축사를 한다. 조창익 선생한테 몇 대냐고 물으니 17대라고 답한다. 당신은 초대부터 7대까지 역임했노라고 웃는다. 영구 집권에 버금가는 경력이다.
자부장도 조금 쉬울 때가 있고 어려울 때가 있어 보인다고 웃는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에는 조금 쉽게 넘어갔는데 조창익 선생은 힘이 많이 들었겠다고 웃는다. 나름대로 방청객들도 가늠이 있는지라 활짝 웃는다.
고 선생님은 교단에 섰을 때에도 학생들을 자주 웃겼을 것 같다. 나도 학생들을 웃기려고 노력했다. 내 생각으로는 교사가 학생들한테 화를 내서도 안 되고, 일방적으로 엄숙한 설교만 한다든지 학생들이 까딱까딱 졸게 한다든지 그런 수업은 별로 권장할 방법이 못되는 것 같다.
고 선생님은 또 후배교사들한테 “타고 남은 재까지 다 태우고 교단에서 물러나라.”고 당부한다. 당신은 교사로, 해직교사로, 지부장으로, 교육위원으로, 마지막에는 성지고등학교 교장으로, 타고 남은 재까지 말끔히 교직을 완전연소하고 마치신 분이다.

마지막으로 조창익 지부장 인사. 그가 ‘이생망, 다생돌’ 이야기를 한다. 처음 듣는 소리다. 요즘 젊은이들이 그런 말을 하며 자조(自嘲)한단다. <이생망>은 이번 생은 망했다는 뜻이고, <다생돌>은 다음 생은 돌로 태어나겠다는 뜻이란다. <헬로조선 -지옥 조선>, <망한민국>, <금수저, 흙수저>라더니 코에다 고춧가루 물을 붓는 것처럼 독하게 맵고 쓰라린 파생어가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는 것 같아 요즘 젊은이들의 고뇌가 안쓰럽고 짠하게 다가온다.
94년 해남중학교로 복직한 나는 해남화산중학교로 복직한 그의 갤로퍼를 얻어 타고 다녔다. 혀에 버터를 바른 것처럼 꼬부랑말이 유창하기에 영어교사인 줄 알았더니 사회교사였다. 해박한 지식에 인품까지 넉넉하고 다사로웠다. 우스갯소리로 사람들도 곧잘 웃겼는데, 대머리는 소갈머리 없는 사람과 주변머리 없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는데, 자기는 소갈머리도 없고 주변머리도 없는 사람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수염을 기르고부터는 참 수염이 풍성해서 좋겠다고 칭찬해주었더니, 머리카락이 부족하니 수염이라도 푸짐해야하지 않겠느냐고, 그걸 가리켜 ‘터럭 총량의 법칙’이라면서 또 나를 웃겼다. 
그는 늘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양보운전, 안전운행에 솔선수범하는 모범 운전사였다. 그러나 ‘운동권 운동’에서만큼은 조금도 겸손하지 않고 한 치도 양보가 없고 앞뒤를 돌보지 않고 포화가 빗발치는 최전선에서 포효하는 격렬한 호랑이였다. 나는 그의 안광에 맞닥뜨릴 때마다 간담 서늘한 기운을 뿜어내는 은장도의 시퍼런 서슬을 감지한다.
그는 장군의 딸이 전교조를 올코트프레싱(전방위 압박)하는 가운데 흔쾌히 지부장 직을 맡아 작년 내내 서울로 광주로 이 학교 저 학교로 발걸음이 수고로웠고, 새해에도 여전히 수고로울 예정이다. “한 번 잘렸는데 두 번이라고 못 잘리겠는가.” 그의 눈빛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나는 그를 만날 때마다 어느 책 제목을 떠올리며 피식 웃는다.
<한 번 운 년이 보름은 못 울까>
나는 고진형 선생 앞에만 서도 한없이 작아지고, 조창익 선생 앞에만 서도 한없이 작아지기만 한다.

마지막으로 2016년 원숭이 해 신년하례식 기념 떡 절단식이 거행되었다. 올해에는 전교조가, 또는 모든 수고롭고 짐 진 자들이 조금쯤은 숨통이 트이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절실하다.

고맙게도 지부에서는 사무실 아래층 식당에서 하객들에게 떡국을 베풀어주었다. 석화와 쇠고기 꾸미가 적당히 간간하고 쫄깃하여 감칠맛이 혀에 착착 감겨들었다.

고맙게도 지부에서는 전교조 달력까지 한 부씩 선사해주었다. 아름다운 풍경 사진이 들어간 여느 달력과는 비교할 수 없도록 특이하고 공력이 많이 들어간 작품이었다.
달력 첫 장에 찍힌 위의 사진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대형 크레인이 거꾸로 뒤집힌 이 사진은 십중팔구 고공농성일 터인데 아마도 거꾸로 보기를 강조한 듯싶다. ‘거꾸로 보는 세계사’, ‘거꾸로 읽는 현대사’. 거꾸로 보면 이 세상이 온통 이상하게 보인다. 우리들은 가끔 가랑이 사이로 고개를 처박고 이 세상을 거꾸로 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나는 교단을 거꾸로 보는 연습을 하다가 1989년 전교조에 가입하여 4년 반 동안 해직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그래도 아직 우리 학교에는 전교조가 있어서 교육 희망을 노래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끝)

누치가 없으면 눈치라도 있어야제

2016. 2. 조문절

다섯 명 모두 ‘삼학도’ 모임 회원. 가운데 서 있는 신 선생이 곡성교육지원청으로 근무처를 옮겼단다.

“그래? 그럼 눈치 한 번 먹으러 가야겠구먼.”

2월 22일 낮12시, 곡성 교육청에서 만나 압록 부근 식당으로 갔다. 왼쪽 김 선생은 여수에서 왔고 다른 사람들은 목포에서 왔다.

내 보기에 누치라는 물고기는 붕어와 잉어 사촌쯤 되는 생김새다. 예전에 압록 부근에서 두어 번 회를 먹어보았는데 그 맛이 별미였다. 이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감히 누치 회 맛이 으뜸이라고 말할 수야 없겠지만 내가 먹어본 바로는 별미 중의 별미다. 특히 바다 생선은 다양하고 회로 먹는 물고기도 많지만 민물에서 나는 물고기 중에 회로 먹을 수 있는 물고기는 그리 많지 않다.

‘누치’를 전라도에서는 ‘눈치’라 부른다. 누치가 없으면 눈치라도 있어야제. 신 선생은 눈치 회를 먹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들이 눈치 회를 얼마나 간절히 먹고 싶어 하는지 잘 몰랐다. 미리 마음에 둔 식당에 눈치가 없다고 하면 눈치껏 취소하고 눈치 회가 있는 다른 식당을 알아보아야 마땅한데 그냥 그대로 덜컥 예약하고 말았다. 우리가 갔을 적에는 예약을 취소하기에 때가 너무 늦었다. 물론 신 선생이 그 식당을 지정한 데에는 또 다른 까닭이 있었지만 생략하기로 한다.

우리는 그 식당에서 송어 회와 참게 탕을 맛나게 먹었다. 송어 회도 안 먹어본 사람이 꽤 많다. 민물고기치고는 횟감으로 훌륭한 맛이다. 색깔도 보기 좋고 맛도 연어 회 비슷해서 차지고 쫄깃하고 고소하다. 참게 탕도 아주 맛이 좋았다.

누치가 없으면 눈치라도 있어야제. 제목을 재미나게 붙이려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신 선생께서 절대로 섭섭하게 생각지 말기 바란다. 섬진강 압록 언저리에서 먹는 음식은 그 값도 만만치 않다. 신 선생은 멀리서 온 손님들한테 정성껏 최고의 대접을 했다. 너무나 고맙다.

교육청에서 다시 오후 근무를 해야 하는 신 선생은 식당에서 나와 우리와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신 선생과 작별한 다음 우리는 다시 압록 부근의 ‘사계절’이라는 식당을 찾아들어갔다. 거기는 눈치(누치)가 있었다. 탕 포함 6만 원. 금방 식사하고 왔다니까 탕 빼고 눈치 회만 한 접시 5만 원.

민물고기 특유의 비린내도 나지 않는다. 눈치 회의 덤덤하면서도 쫄깃하고 탄탄하고 격조 높은 오묘한 맛은 먹어보지 않으면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섬진강에서 언제까지 눈치가 잡힐는지, 내가 언제까지나 봄맞이 입맛으로 눈치에 소주 한 잔 걸칠 수 있을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눈치 회는 겨울에서 3월까지만 맛볼 수 있단다. 혹시 잡숴보고 싶은 식도락가는 지금 빨리 압록강 말고 곡성 압록으로 달려가시기 바란다. (끝)

[김진수]

참 든든하고 훌륭한 분들이 제 전위와 배경에 전설처럼 서 계시니 본래도 작은 저는 더 작아져서 현생에서도 벌써부터 돌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