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 - 코모레비
거장 빔 벤더스의 최근 영화다. 감독은 독일 사람이고, 일본 영화다.
(일본에서 공부한 동생이 졸업 논문으로 30여 년 전에 ‘빔 벤더스’를 썼단다..)
도쿄(에서도 ‘시부야’라고 한다)에서 공공 화장실 청소부로 일하는 중년의 늙수레한 사내.
그의 하루는 새벽부터 똑같은 패턴으로 흘러간다. 아날로그적으로!
청소일 할 때도 그 밖의 시간에도 그는 늘 진심이다. 함께 일하는 젊은 짝꿍이나 그 누구보다도..
건성으로 일하는 젊은 짝꿍이 묻는다. “그 연세에 혼자면 외롭지 않아요?”
말수가 적은 그(처음엔 벙어린가 싶었다)에게서 웬만해선 대답을 들을 수 없다.
새벽에 집을 나설 때도, 공원에서 점심을 먹을 때도,
급한 볼일 보는 손님 땜에 화장실 청소를 하다 말고 나와 잠깐 쉬어야 할 때도, 그는
틈만 나면 하늘을 올려다본다. 눈부신 듯 ‘코모레비’를 바라보기도 하고~
주로 하늘을 보고 큰 나무를 쳐다보고, 나뭇잎이 하얀벽과 만나 만들어내는 그림자도 보고..
그리고 갖고 다니는 필름카메라로 풍경 그림자 사진 들을 찍는다.
아침에 차에 올라타기 전 집앞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 마시고,
출근길 작은 밴 안에선 카세트테이프로 그날 노래를 골라 듣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옛노래들이다)
점심은 일하는 곳 근처 공원에서 샌드위치로 때우며,
가끔 그곳 큰 나무 아래 떨어진 씨앗에서 자라난 어린 식물을 캐어가
집에서 정성으로 물 준다.
일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자전거를 타고 헐렁한 동네목욕탕에 목욕하러 간다.
그러고선 늘 같은 지하철역 안 자그만 가게에 들러 늘 같은 술과 저녁을 먹는다.
쉬는 날엔 동네 헌책방에서 문고판 책을 사와 밤에 잠자리에서
늘 읽다가 자며, (한 권을 다 읽으면 또 한 권을 산다)
일주일치 세탁물을 들고 빨래방에도 가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예전에 한가락 뽑았을 여주인이 하는 술집에도 들러 그이의 노래를 듣기도 한다.
한 주일간 찍은 사진 필름을 맡기고 전 주에 맡긴 걸 인화해와(흑백사진이다)
통에 정리하는 것도 그날의 일이다.
똑같은 일을 하며 평온한 하루
똑같은 모습으로 쉬며 평온한 하루
똑같은 사람들을 보며 평온한 하루
......
그런 그에게도 어쩌다 조금 특별한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그래서 감정의 변화를 보이기도 한다.
하나 크게, 깊이 끌고가진 않는다.
거의 연락 않고 지내는 가족.. 그러는 중에 여동생의 딸, 그러니까 엄마와 싸우고 가출한 조카딸이 찾아오고,
조카가 바다를 보러 가자 하니 삼촌은 “다음에”라고 한다. 다음이 언제냐고 조카가 물으니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이라 대답하며 둘이 자전거를 타면서 노래 부르듯 그 말을 주고받는다..
그의 말대로, 세상은 하나인 것 같지만 수많은 세상으로 이뤄져있어
“서로 연결되지 않는 세상도 있고..”
나의 세상과 너의 세상이 다를 수 있듯이...
마지막 장면에서
무척 길게 보여주는 그의 얼굴, 표정에서 느껴지는 삶의 슬픔과 기쁨.. 그 모든 것!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전 사족처럼, 사전에서처럼 뜻풀이해놓은
“코모레비: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
(바로 그 순간에만 존재합니다)”
......
***
코모레비는 일본에선 많이 쓰는(좋아하는?) 말인가 본데
찾아보니 우리한테는 '볕뉘'라는 이쁜 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