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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판이 난장판이 된 까닭은?
회상 : 이만기와 민속씨름
민속씨름에 있어서 대중들에게 인식된 이만기씨가 지닌 상징성은 브라질 축구에서의 펠레나 NBA의 마이클 조던 PGA 투어에서의 타이거 우즈 만큼이나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이번 민속씨름연맹의 이씨에 대한 제명은 씨름계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큰 파문을 던지고 있다.
지난 1983년 민속씨름은 이만기란 큰 선수룰 출범 선물로 받았다. 당시 성인 씨름대회에서 뿌리치기 기술로 일세를 풍미한 홍현욱 선수나 모래판의 신사 이준희 선수 등의 라이벌 구도가 될 거라는 세간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만기의 기술씨름은 세상을 매료시켰다. 백두급 선수 보다 훨씬 가벼운 한라급 선수가 백두급의 거한들을 화려한 기술로 굴복시킴으로서 많은 팬들을 매료시켰다.
천하장사 등극후 환호하는 이만기(중앙일보자료사진)
이만기의 씨름이 인기를 끌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천하장사 10회라는 전대미문의 성적을 거둔 탓이기도 했지만 화려한 기술씨름을 구사한다는 것과 팬들이 보기에 지루한 씨름을 하지 않는다는 것 이었다. 그는 상대가 누구이던 간에 심판의 구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공격하였고 몇 분을 넘기지 않아 승패를 마무리하였다.
이만기는 화려한 기술과 화끈한 승부 외에도 매우 강한 승부 근성을 지니고 있었다. 전성기의 이만기는 같은 선수에게 두 번 이상 패하지 않는 기이한 전적을 가질 정도로 엄청난 승부 근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를 상대로 해서 두 번 이상 승리한 선수는 이봉걸 선수 정도였으며 요즘 방송 MC로 활약하고 있는 강호동 만이 유일하게 이만기를 상대로 3승 1패의 우세한 승률을 가지고 있지만 이 때 이미 이만기는 지는 해였고 강호동은 떠오르는 해였다.
이만기의 ‘강한 승부욕은 그의 선수생활에 위기를 가져오기도 했다. 이준희와의(? 상대에 대한 기억이 확실하지 않음) 대결에서 이만기는 심판의 결정적인 오심으로 억울한 패배를 당하였다. 그는 분을 참지 못하고 격렬하게 항의했으며 이 항의가 지나쳤다는 이유로 선수생활의 황금기에 무려 2년간의 출장정지란 중징계를 당하게 된다. 운동선수의 전성기에 있어서 2년 출장정지란 사실상의 사형선고나 같다. 그는 중 징계이후 88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유도선수로의 전환이나 역도선수로의 전향 등의 러브 콜을 받았지만 씨름에 잔류하였다. 당시 협회는 이만기를 사장시킬 수 없다는 여론의 압력에 굴복하여 2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를 사면시켰다.
난장판이 된 씨름판
이만기가 은퇴하고 강호동이 전성기에 돌연 은퇴하면서 씨름은 조금씩 몰락하기 시작하였다. 김정필. 이태현. 신봉민. 백승일 등이 이들의 뒤를 이어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지만 1세대 스타들의 카리스마에 미치지 못했다.
그 이후 에는 김영현. 최홍만 등의 거인들이 등장하며 씨름에 대한 팬들의 흥미는 점차 퇴색하기 시작했다. 이제 팬들은 씨름판에서 작은 체구의 선수가 거한들을 압도하는 화려한 기술씨름이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박진감 있는 승부를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오로지 힘과 체중에 의존하는 재미없고 지루하기만 한 승부에 경기장을 가득 매우고 환호하던 팬들은 썰물처럼 사라져 버렸다. 팬들에게서 외면당한 프로스포츠의 미래는 없다. 결국 민속씨름을 후원하던 기업들은 앞 다투어 팀을 해체하기 시작했고, 이 와중에서 현역 간판 스타인 최홍만과 이태현이 이종격투기 선수로 변신하는 등 안과 밖으로 시련이 가중되고 있다.
연맹과 남아있는 씨름인들은 씨름판을 떠난 두 선수를 ‘배신자’로 매도하는 분위기 이지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그를 쳐라!” 란 성경구절처럼 아무도 그들을 심판할 자격은 없다. 씨름판이 난장판이 되어가는 현실에서 그들이 왜 십자가를 지어야 하는가?
민속씨름의 문제점
‘스모’를 모방한 얼치기 프로스포츠
민속씨름은 일본의 ‘스모’가 국민 스포츠로 자리매김 한 것을 벤치마킹 하였다. 민속씨름을 출범을 앞두고 많은 부분에서 ‘스모’의 시스템을 흉내 내어 출범했지만 성공적인 출범 이후 확고한 국민스포츠로서 자리매김하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
‘스모’ 경기를 관람하다 보면 일본의 문화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민속씨름’은 구호에만 민속이 있을 뿐, 우리 고유의 전통을 전혀 느낄 수 없다. 빨강과 파랑페인트로 번들번들 칠해진 어색한 경기장에 국적불명의 의상을 걸친 심판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알록달록한 도포를 걸치고 등장하는 선수들의 모습 또한 무엇이 민속인지를 의심스럽게 한다. 시합에 임하는 선수들의 타이트한 팬츠 또한 국적불명이다. 그 팬츠에 새겨진 모기업의 광고는 지루한 승부만큼이나 바라보기 짜증스럽다.
김홍도 화백의 풍속화
프로스포츠도 일종의 퍼포먼스라고 한다면 적어도 ‘민속’이라는 이름을 붙이려면 심판은 중인 갓을 쓴 한복을 입고 등에는 곰방대를 꽂으며 손 에는 섭선을 거머쥔 모습이어야 한다. 선수들 또한 국적불명의 요란한 도포가 아닌 평민 두루마기를 걸치고 등장하고 한복의 곡선미를 살릴 수 있는 복장으로 시합에 임하는 등 최소한의 전통의 향수를 느끼게 해야 한다.
김홍도화백의 풍속화나 일본의 스모경기를 조금만 곰곰이 살펴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잘 알 것이다. 흉내를 내려면 제대로 냈어야 한다.
지루한 경기
씨름의 묘미는 현란한 기술과 힘의 조화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기술은 사라지고 체중과 힘에 의존한 지루하고 뻔한 경기를 펼침으로서 민속씨름은 팬들로부터 스스로 고립되고 있다. 경기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경기시간을 대폭 단축시키고 시간 내에 승부를 결정짓지 못하면 다음 경기에서 패널티를 부여하는 등 경기규칙을 대폭 개정함으로써 빠르고 박진감 있는 경기를 연출할 필요가 있고, 경기 운영적인 측면에서는 기술씨름을 장려하기 위해서 체급별 경기 상금을 대폭 상향조정하고, 천하장사는 일년에 한번 정도 번외경기로 치러져 천하장사 대회는 마치 다른 스포츠에서 올스타전을 치루 듯 씨름인의 잔치로 승화시키는 등 팬들의 관심을 얻기 위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무능하고 폐쇄적인 연맹
연맹은 민속씨름이 국민스포츠로서 독자생존하기를 포기한 채. 팀을 운영하는 기업의 편의에 따라 전권을 휘두르는 모기업의 처분에 모든 종사자의 운명을 위탁하는 열악한 처지이다. 전용경기장 건설은 민속씨름이 출범하면서의 오랜 염원이었지만 출범 이후 20년이 지나도록 전용경기장 건설은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 모두가 씨름연맹의 무능의 소산이며 무소신한 행정 20년의 결과 이다. 그런데 이런 연맹에 대해 비판가하는 것조차 용인하지 못하는 오만은 또 무엇인가? 잘난 자가 오만하면 “그래 당신 잘 났어!”하며 궁시렁 거리면 그 뿐이겠으나, 무능한 주제에 오만하기까지 하니 세상에 이런 꼴 볼견이 다시없는 것이다.
오늘 민속씨름연맹 임원제위들께 감히 부탁 한 말씀 올리고자 한다. 연맹을 말아 먹든 씨름을 말아 먹든 상관할 바 아니지만 이제 그 알량한 힘겨루기에 ‘민속’이란 말을 빼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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