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
이성실 아저씨의 늦깎이 직장생활
이성실 아저씨가 우리 무지개마을에 오신지 올해 23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곧 예순이 됩니다.
그동안 생활관을 옮겨 다니며 별 변화 없이 하루하루 생활해 오셨습니다.
그렇게 생활하던 어느 날 상담을 요청하셨습니다.
“선생님 나도 직장에 다니고 싶습니다. 어디…일할 만한 곳 없을까요?”
말꼬리를 흐리며 나를 쳐다봅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본인이 직접 돈을 벌어 보겠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했으면 변화와 성장의 모습에 박수를 보냈을 일인데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평소에 이성실 아저씨가 보여준 행동으로는 도저히 직장생활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항상 뒷짐을 지고 느림보 걸음으로 다니셨습니다.
어떤 일이든 대체로 적극적으로 행동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봉사활동을 할 때면 슬그머니 숨어버리거나 그 자리를 피하시는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당장은 실망하게 히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에 일단 일 할만 곳을 차차 알아보자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방으로 올라가시도록 하고 서둘러 상담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아저씨의 일자리에 관한 고민은 바쁜 일상 업무로 금방 잊었습니다.
일주일쯤 지나서 이성실 아저씨께서 다시 직장 상담을 요청하였습니다.
연세도 이제 곧 60이 다 되어가고, 일자리 구하는 일도 만만치 않을 텐데 편하게 지내시는 게 어떻겠냐고 여쭈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이런 대답에 화를 내시거나 기분 나쁘다고 한마디 할만도 한데, 오늘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아주 차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도 돈을 벌어 동료들과 같이 외출해서 멋있는 옷도 사 입고 외식도 하면서 즐겁게 생활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돈을 저축하여 노후생활도 대비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나눔터에 오셔서 동료들이 직장 다니는 모습을 보고 이야기도 들어보니 나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자신감이 생겼다고 하셨습니다.
믿기지 않았습니다. 아저씨가 이런 일로 상담을 요청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좀 난감했습니다. 또 아저씨의 이런 마음을 몰라준 게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성실 아저씨의 형님이 아저씨의 보호자 역할을 맡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살림이 넉넉하지 않아 아저씨를 제대로 돕지 못하셨습니다.
일 년에 두어 번 겨우 ‘계속입소심사서류’ 작성을 위해 찾아오시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오셔도 아저씨와 따로 만나거나 여행하여 밖에서 주무시고 오는 일을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아저씨는 다른 이웃들보다 궁색하게 생활할 수밖에 없습니다.
담배도 다른 이들의 피우는 양의 절반 정도만 피우고, 좋아하는 커피도 마음껏 마시지 못하셨습니다.
외식은 생각할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이곳 나눔터로 집을 옮긴 뒤로는 이웃들과 더욱 비교되어 보였습니다.
아저씨는 취업에 관해 매우 진지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저씨를 돕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잘 돕고 싶었습니다.
“이성실 아저씨! 그럼 우리 일할 만한 곳을 함께 알아봐요.”
나눔터 동료들과 이 일을 의논했습니다. 먼저 정신장애에 관한 이해가 있어 아저씨를 잘 도울 수 있는 사업장이 어디인지 알아보았습니다. 또 아저씨가 어렵잖게 잘 적응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살펴봤습니다. 이성실 아저씨도 앞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이웃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자신에게 맞는 직장에 관해 알아보셨습니다.
며칠 뒤, 아저씨와 다시 만나 직장 일을 상의했습니다.
아저씨는 청소용역 업체 ‘엘린클린’에 다니고 있는 이들 이야기에 관심 있어 하셨습니다.
당신도 해볼 만한 일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일할 수 있을지 알아봐 달라고 하셨습니다.
나 역시 동료들과 논의하여 이런 곳에서 일하면 어떨지 생각했기에 아저씨 말씀이 무척 반가웠습니다.
‘엘린클린’에 연락했습니다. 면접 날을 정하고 이력서를 준비했습니다.
아저씨는 직업재활 담당 선생님과 함께 엘린클린을 방문해 면접 보았습니다. 면접이 잘 되었습니다.
다음 날부터 훈련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아저씨는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엘린클린에서는 사전 직업훈련 과정을 한 달 정도 가진 뒤 상황을 보고 취업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아저씨에게 직장에서 일하는 마음가짐과 직장 기본예절을 알려드렸습니다.
한 달 동안 사전훈련 잘 마치게 성심껏 도왔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예전 아저씨의 모습이 여전히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사전 직업훈련 과정을 얼마 못 가서 그만두지 않을까 염려했습니다.
놀랍게도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출근하셨습니다. 일이 재미있다고 하셨습니다.
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아저씨는 전보다 활기차고 표정도 밝아지셨습니다.
드디어 한 달 동안 적응 기간을 마치고 아저씨가 원하던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엘린클린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여 손에 들과 와서 보여주며 활짝 웃으셨을 때의 감동이란!
아저씨께 형님에게 직접 전화하여 직장을 다니게 되었다고 기쁜 소식을 전하면 어떨지 여쭈었습니다. 동생 전화 받은 형님도 열심히 잘 해보라고 격려하셨습니다.
이성실 아저씨는 23년 만에 처음으로 직장을 다니게 되셨습니다. 그렇게 일을 시작한 지 벌써 1년.
그동안 한 번도 결근하지 않으셨습니다. 아저씨 소원대로 노후를 위해 꼬박꼬박 적금하셔서 통장에 돈이 쌓여갑니다. 오늘도 일찍 일어나 몸단장을 하고 출근하셨습니다.
처음 뜬금없이 직장에 다니겠다고 찾아오셨을 때, 지금의 아저씨 모습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평소 내가 만나온 아저씨는 일 같은 건 할 수 없을 거라고 섣불리 판단하고 아저씨 말씀을 귓등으로 흘렸더라면 어땠을까. 아저씨의 밝은 모습을 뵐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성실 아저씨 일로 나는 다른 입주인을 대할 때마다 선입관이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입주인을 오래 만나왔으니 그를 아주 잘 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당사자가 자주하는 삶을 살게 도와야 하는 일에 집중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오늘도 아저씨는 퇴근하고 돌아올 때 “잘 다녀왔습니다!” 하고 인사하십니다.
나도 큰 소리로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답하는 것으로 그때 미안한 마음을 대신합니다.
첫댓글 김혜경 선생님 고맙습니다.
직장에 다님으로써 아저씨의 삶이 아주 달라졌겠습니다.
아저씨가 건강하게 오래 일하시길 바랍니다.
사람들과 정겹게 어울리며 당당하게 당신의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예~ 이성실 아저씨께서는 직장을 다니시며 참 좋다고 하셨습니다. 3월에 직장에서 서울여행을 다녀오신 후 보고 느끼신 점들이 많으시다며 저에게도 즐거웠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이성실 아저씨 참 고맙습니다. 그리고 오래오래 건강히 직장 잘 다니세요. 진심으로 응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