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쥐 한 마리에 세계 의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 텍사스 대학 건강과학센터에 있는 ‘UT2598’이라는 이름을 가진 쥐가 3년째 살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100살쯤 된다. 이 쥐는 일반 쥐보다 1.77배 더 오래 살고 있으며 연구자들은 이 쥐가 4년까지 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반 쥐의 평균 수명은 2년을 조금 넘는 정도이고 가장 오래 생존했던 쥐도 3년을 넘기지 못했다. 이 연구 결과는 저명한 국제 과학저널인 ‘네이처’에 실렸고 의학계는 흥분하고 있다. 노화 억제 기능이 있는 이 약을 사람이 복용하면 인간의 평균 기대수명이 142세까지 연장될 수 있다는 추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근 “올해 태어난 아기는 특별한 사고나 질병이 없는 한 142세까지 살 수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인간의 평균 기대수명 80년보다 1.77배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당뇨·면역력 저하 부작용 극복이 과제
이 쥐의 장수 비밀은 라파마이신이라는 약에 있다. 이 약을 쥐에게 투여했던 연구팀은 지난해 “라파마이신이 노화 관련 질병 발생을 늦추거나 가능성을 낮춰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노화 억제 기능이 있는 약을 복용했을 때라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 약을 먹으면 식습관을 바꾸지 않아도 노화를 늦춰 장수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라파마이신은 1960년대 칠레 서부 남태평양에 있는 이스터 섬의 토양 속 미생물에서 추출한 항생물질이다. 처음에는 무좀 같은 곰팡이균 등을 죽이는 항진균제로 사용했고, 현재는 신장을 이식한 일부 환자에게 면역거부 억제제로 쓰이고 있다. 또 암세포가 자라지 못하게 하는 항암제로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세포 노화를 늦추는 현상이 발견된 후 이 약은 장수의 묘약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미국 텍사스 대학과 터프츠 대학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라파마이신을 쥐에게 투여했을 때, 젊은 쥐는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늙은 쥐는 뇌 기능, 운동 능력이 향상됐다.
이 약은 우리 몸의 특정 단백질(mTOR) 기능을 방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단백질은 우리 몸의 세포가 영양분을 흡수해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런데 라파마이신은 그 물질의 기능을 막는다. 결국 세포가 영양분을 흡수하지 못하고 성장을 멈춘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이 때문에 노화가 더디게 진행된다는 게 현재까지 밝혀진 연구 결과다. 개인 약국을 운영하는 박수아 약사는 “세포 증식이 억제돼 노화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해 이 약을 수명 연장에 활용하려는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동물실험에서는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지만 사람에게도 수명 연장 효과가 있을 것인지는 더 연구가 필요하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한때 고지혈증에 좋은 효과를 보이는 치료제가 나왔다. 쥐 실험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이 약을 투여한 사람은 돌연사하는 사고가 잇따랐다. 알고 보니 효소 내 염기서열 하나가 쥐와 달랐다. 때문에 종간 특성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라파마이신을 과하게 복용하면 당뇨에 걸리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이를 보완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 연구팀은 메트로포민이라는 약을 라파마이신과 함께 복용하면 당뇨 위험을 방지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비비아나 페레스 생물물리학 교수는 “당뇨 위험성을 높이지 않고, 라파마이신의 명백한 효과만을 가져오는 방법을 찾는다면 노화 예방에 중요한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학계에는 라파마이신이 체내 면역체계를 무너뜨린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면역력이 약한 사람이 수명 연장을 위해 이 약을 복용하면 오히려 전염병에 걸려 일찍 사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텍사스 대학 보건과학센터와 워싱턴 대학 공동 연구진은 이 약을 인간에게 직접 적용하기에 앞서 사람과 가장 친숙한 반려동물인 개를 통해 먼저 실험하기로 했다. 연구진은 평균 수명 8~10세 정도의 큰 개 30마리를 선정해 라파마이신을 투여한 뒤 노화가 얼마만큼 극복되는지, 그리고 여기에서 발생하는 치명적인 부작용은 무엇인지 연구할 예정이다. 해당 실험은 최고 3년간 진행될 예정이며 세계 최고 수준의 동물생태학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텍사스 대학 보건과학센터 랜디 스트롱 박사는 “이 실험은 라파마이신이 초래하는 부작용이 실질적으로 어떤 것인지 알아낸다는 점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 곳곳에 120세 장수인 ‘수두룩’
장수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2001년 장수학계에서 유명한 두 교수가 인간 수명이 얼마나 늘어날지 내기를 했다. 스티븐 오스태드 미국 아이다호 대학 교수는 인간이 150세 이상 살 수 있다는 쪽에 걸었다. 스튜어트 올샨스키 미국 일리노이 대학 교수는 “최대로 잡아도 130세를 넘지 못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내기 시점에서 149년 후인 2150년 150세까지 생존한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기로 했다. 이들은 각각 150달러씩 신탁예금을 하고 매년 일정액을 납부해서 2150년까지 상금 5억 달러를 만들어 이기는 쪽 자손에게 주기로 학계 공증까지 받았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 대다수가 성장 기간의 여섯 배까지 산다는 이론에 따르면 20세까지 성장하는 인간은 120세가 수명의 한계다. 그러나 유전자 복제, 생체 이식 기술이 발전하면 120세가 최고 수명이 아니라 평균 수명인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2010년 일본 오사카 시에서는 120세 이상 장수인이 5000명을 넘었다. 1980년 한국에서 200명에 불과하던 100세인은 2000년엔 2200명으로 증가했다. 미국 인구통계청은 2050년이면 100세 이상 사는 사람이 세계적으로 6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런 전망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리 현실로 나타날지 모른다. 인간 평균 수명이 85세를 당분간 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표적인 사례다. 2000년 초입에 나온 이 전망은 10년도 되지 않아 깨졌다. 2009년 들어 일본 여성의 평균 수명은 86세에 도달했다. 이처럼 실제 인간 수명은 항상 예측을 뛰어넘었다. 장수 전문가인 박상철 전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 소장은 “지금 추세로 가면 2100년이 오기 전에 사람이 150세까지 살게 될 것이다. 최빈 사망 연령(자연 사망이 가장 많은 연령)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일본의 최빈 사망 연령은 한국보다 10년 많은 92세다. 이 연령이 꺾일 기세를 보이지 않고 계속 상승한다는 사실에 세계 전문가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최근까지 전망했던 인간 수명의 한계 125세는 곧 깨질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의학 발전보다 신체·정신 건강이 기본
현대인은 1만년 전 사람과 유전학적으로 거의 달라진 점이 없음에도 생체 기관의 능력은 몰라보게 향상됐다. 평균 체형도 커졌다. 키가 커졌고 두뇌도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도록 진화했다. 그 배경에는 과학과 의학의 발전이 있다. 음식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게 해주는 전기와 냉장고가 발명돼 많은 질병을 예방했다. 살균과 정수, 폐수 시설도 장수에 도움을 줬다. 충돌 전에 스스로 멈추는 자동차 등으로 사고사 위험이 줄어들었다. 백신 개발로 천연두와 같은 전염병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망가진 장기를 줄기세포로 재생하는 연구는 이미 여러 분야에서 활용할 정도로 진화된 상태다.
현재는 수명 자체를 늘리는 연구가 활발하다. 염색체 끝 부분(텔로미어)에 대한 연구가 대표적이다. 이는 염색체 복제가 원활하게 일어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나이가 들면서 텔로미어의 길이는 조금씩 줄어든다. 텔로미어가 일정 길이(노화점)만큼 줄어들면 염색체는 복제를 멈춘다. 복제 기능을 상실한 세포는 스스로 사멸한다. 이것이 정상적인 세포의 노화 과정이다. 이 텔로미어 길이가 줄어드는 것을 늦추면 천천히 늙을 수 있는 셈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엘리 푸터만 정신과 교수는 2010년 텔로미어가 줄어드는 것을 막는 데 신체적 활동이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신체적 활동을 하는 사람과 앉아서 생활하는 사람으로 나누어 텔로미어 길이를 측정한 결과, 신체적 활동을 하는 사람의 텔로미어 길이는 더디게 줄어든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만성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신체적 활동을 꾸준히 하면 텔로미어 길이가 급격히 줄어드는 것을 억제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눈부신 의학과 과학의 발전보다 신체적·정신적 건강이 장수의 밑거름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해준 결과다. 과학과 의학의 발전으로 얻을 수 있는 장수라는 혜택은 개인이 질병이나 사고로 사망하지 않을 때의 얘기다.
과거 인구 분포는 피라미드 모형이어서 노인들의 인구가 가장 적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를 낳지 않고 노인이 증가하면서 그 모양이 직사각형에 가까워졌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60세 이상 인구 수가 15세 이하를 앞질렀다. 장수 시대임에도 50~60세 정년퇴임이라는 사회적 분위기는 변함이 없다. 가까운 미래엔 인생의 절반 이상을 ‘백수’로 지내야 할 판이다. 비경제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사회적 부담은 증가한다. 늘어나는 수명만큼 달라질 우리 사회 문화 전반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대비가 필요하다고 세계의 장수 연구가들은 말한다.
첫댓글 "좀 일찍 개발했으면 좋았을 걸..." : 이건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