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 지,
임춘자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아버님께서 지병으로 고생하시다가 6년 후에 한만은 세상을 뒤로하고 먼 길을 떠나시고 말았다.
세간꾸러미를 챙겨 시동생 세 명, 우리 낳은 아이 둘, 배속에 들어있는 태아까지 7명이 “천신 호” 배를 타고 거제에서 마산에 남편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왔다. 시골집을 팔아 겨우 방 하나에 다락방이 있는 집을 전세로 남편이 얻어두었다 주방은 두 집이 공동으로 사용하게 되어 있었다.
내 나이 27살 배속에 아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푸성귀 값이라도 벌겠다고 근처 박스 만드는 공장에 처음으로 들어가서 월6천300원을 받았다. 제일먼저 “다리미”를 샀다. 남편 옷을 매끄럽게 다려 출근을 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다리미는 전기세 많이 나온다고 쓰지 말라는 주인의 경고에 숨겨 두었다. “라면 땅”이라는 과자가 나올 무렵 가격은 5원정도로 기억된다. 시누이가 초등학교 6학년 소풍가던 날 거금100원을 주었고 200원으로 라면과자와 십리사탕으로 아이들에게 푸짐한 간식을 사준 기억이 난다.
어느 봄날, ‘만삭이 된 몸인데’ 남편이 아이 둘을 데리고 무학산으로 소풍을 가자고하였다. 주먹밥을 뭉쳐 허리춤에 달고 아이를 양손에 잡고 오솔길을 걸어가는데, 어디에서 “짹짹 바스락” 소리가 나는 게 아닌가, 소리 나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찾아가보았다. 나지막한 상수리나무 가지 사이에 섬세하고 정교하게 엮은 작은“둥지”가 보인다. 쉿 잇~ 아이들 발을 멈추게 하고 남편과 나는 새소리 나는 곳을 주시했다. “산새” 새끼 세 마리에 어미는 새끼를 돌보며 아빠 새가 먹이를 물어오더니 어미 입에 넣어준다. 어미는 입으로 잘근잘근 씹어서 새끼 세 마리 주둥이에 골고루 넣어 주는 것이 아닌가, 알에서 막 깨어난 새끼는 주둥이를 벌려 서로 먹여달라는 표현이 얼마나 귀엽고 앙증맞은지 사랑스럽고 행복해보였다.
남편은 나의 불룩 나온 배를 쓰다듬더니 거친 내손을 꼭~옥 잡아준다. ‘우리부부도 이런“둥지”를 달라고 분명히 기도했을 것이다.’ 쉬엄쉬엄 오르다가 자리를 잡고 허리춤에 달려있는 주먹밥을 풀어 우리아이 입에 떼어 넣어준다. 아이들은 냠냠 맛이어요! 아빠! 하고 목을 껴안고 깔깔거리며 귀여움을 떤다.
우리도 뭉게구름사이로 내려 비치는 햇살이 우리가슴을 파고들며 하늘거리는 자연의 바람과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우리는 행복 했다. 높은 바위 위에 올라 시내를 바라보니 크고 작은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중에 우리 집은 어디 있을까?.. 우리는 다섯 번의 이사를 하였으며 나는 새들이 사는 아름다운 둥지의 꿈을 자주 꾸었다. 셋째가 5살 되었을 때 남편이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한집에 사는 새댁을 따라 화장품 외판원으로 나섰다. 대식구 돌보기도 벅차다. 세탁기 냉장고도 없었다. 도시락 싸기 빨래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대단한 각오를 하였고 그래서 외판원 5년이 되었을 때 공무원 남편의 월급과 비슷했다.
그때 새마을 운동이 일어났다. 마산역이 석전으로 이전한 자리에 두 번째로 15평 5층짜리 시영아파트가 생긴다는 정보를 듣고 시청에 들어가 접수를 하였다. 입주자가 많아 제비뽑기를 한다는데 그것은 당연히 우리 집 호주가 하는 것이라고 우기며 우리는 긴장된 모습으로 시청광장에 나갔다. 남편의호명이 들리자 뛰어 들어갔다. ‘두 손을 모우고 하나님 도와주세요!’ 호명과 함께 2동 109호 당첨! 우리의 “둥지”가 생겼다. 15평짜리 방 두 칸 작은 거실과 단독화장실 꿈은 이루어졌다. 감사합니다. 가족이 한방에서 부디 끼며 한집에 살아도 항상 멀게만 느껴지던 우리부부가 아니던가? 공사가 시작된다.
그 당시에는 모래와 세멘이 불리 되어 차에 싣고 오면 현장에서 불록을 찍었다.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등에 메어 날랐다. 1층 된 것이 다행이며. 1층 블록 담이 다~ 쌓여져갔다. 2층을 올리기도 전에 방모양이 생길 때 쯤 오후 8.9시는 겨울은 한밤인데, 하루 종일 외판생활이 피곤한데도 무서운 줄 모르고 그냥 좋아서 이곳에 찾아와 ‘세멘부대를 뜯어 깔아놓고 불록 한 개를 베개 삼아 벌렁大자로 누어 본다. 얼마나 편안한지, 여기가 내 집이야!’ 그리고 “내 방이란다!” 푸른 하늘 은하수들은 반짝이고 인적 없는 하늘에 별똥은 앞바다를 향하여 그림을 긋고 지나간다. 나도 내방의 장롱을 그려보고 화장대도 진열해보며 주방으로 들어서면 고운 냄비와 커피 잔도 예쁘게 꾸며보았다. 너무 행복해서 달밤에 춤이 아니라 캄캄한 밤 나 홀로, 내 멋대로의 춤을 추었다. ‘오직 내 보금자리 그렇게 좋은 집은 아니라도 내 식구 거느리고 이사 가지 않는 집, 남의 눈치 안보아도 될 그 집이 너무 좋더라! 이런 감정이 두 번 다시 있을까? 집안 식구 간수하기도 벅찬 일인데 온종일 화장품 외판원으로 발이 퉁퉁 붓고 아무리 힘들어도 힘든 내색 투정한번 부린 적이 없었다. 그래도 힘이 팔팔했고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으니 젊은 그 때 그 집이 그립다.
첫댓글 지정한대로 고쳐 올려습니다. 이대로해주세요, 선생님들, 수고가 많으십니다.
어디를 수정했다는 건지요? 이렇게 해 놓으면, 출판사에서 수정부분을 알 수가 없습니다.
수정 부분을 확실하게(출판사에서 얼른 알 수 있게) 해 줘야 합니다.
그래서 <43집 편집본>에서 읽고 꼬리글로 남겨야 합니다.
원고 교체를 하면 너도 나도 다 교체를 하라하면
출판사에서는 편집을 다시하게 됩니다. 이럴경우 경비가 더 들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