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이하라 자료에 대하여(2)
(今井館 뉴스 제62호, 2025년 7월 31일)
후지다 유타카(藤田 豊)
今井館 교우회 상무이사
야나이하라 자료정리의 과정에서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은 야나이하라 선생의 친필원고로 된 '기독자의 신앙' 제2판 서문의 원고였다.
"본서 출판의 유래는 니이하마(新居浜) 교우의 서문에 기록한 것과 같다. 그 출판 당시 나의 아내 아이코(愛子)는 런던에 있는 나에게 편지를 보내어 말했다. '......저는 원고를 쓰던 당시의 일이 생각납니다. 밤 늦게까지 당신은 최선을 다해 글을 썼지요. 저도 조금 힘을 보태기도 했었지요. 이글이 복음시보에서 나왔을 때 정말로 기뻐서......주님께서 힘을 주셔서 당신도 나도 정말 열심히 했으니, 꼭 좋은 일에 쓰이기를 감사에 감사를 더하며 기도하였습니다.' "
이 제2판 서문의 원고는 유학중에 출판된 그의 신앙인생 최초의 책 '기독자의 신앙'에 붙인 글이다. 이책을 간행하면서 그는 아내가 보낸 편지를 서문에 인용함으로써 글을 시작하였다. 일찍 하늘로 돌아간 아내에의 사랑이 넘치는 내용이라 하겠다.
2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아내와의 재회를 기다리던 배 안에서 '저 맑은 물가로'를 노래하며 귀국하였다. 그러나 아내는 병이 중하였고, 선생이 돌아와 겨우 45일 간병했는데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이런 사연이 있는 서문이다. 야나이하라 자료에는 이 원고의 인용 외에, 아내 아이코가 다다오에게 보낸 편지는 더 이상 한 개도 남아있지 않다. 글의 말미에 이 개정판(2판)의 발행이 우치무라 간조의 권고를 받고 준비하였다는 내용이 부연되었을 뿐이다. 개정판에는 '나사로의 부활(아내의 사후 요한복음 11장을 읽다)'라는 장문의 부록도 들어있다. 위의 서문 원고의 집필일은 1923년 8월 20일이다.
우치무라는 1912년, 딸 루쓰코가 죽은 뒤, '딸 루쓰코를 기념하며 이 책을 증정한다'는 헌사와 그녀의 사진을 권두문으로 인쇄한 '정조 미담 룻기' 제 5판을 출판하여, 지인들에게 보낸 적이 있기 때문에, 야나이하라에게도 아내를 기념하기 위한 책을 발행하라고 권유했으리라고 본다.
<우치무라 간조의 '정조미담(貞操美談) 룻기', 루쓰코를 기념하여 출판한 책>
나는 부리나케 이 후에 다시나온 개정판(제2판)에서 이글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찾을 수 없었다. 현존하는 제2판(1931년) 서문에는 이 글이 올라있지 않았다. 야나이하라의 장남 이삭 씨는 '矢內原忠雄伝(야나이하라 다다오 전)'에서 이렇게 말했다(362쪽).
"첫 아내의 사후, 다다오는 정말 수없이 많은 글을 쓰면서도 전부인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왜 그래야 했는지 매우 기이하다."
이삭 씨는 그 이유를 이렇게 추측한다.
"후처에의 배려도 아들에 대한 염려도 아니었다. 필설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아픈 기억을 마음 안에 품고 가려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삭 씨가 아버지의 이 서문을 읽었다면, 평전의 내용은 달라졌으리라. '야나이하라다다오전' 에서 이삭 씨는 다마묘지의 묘비명인 '저 맑은 물가로'가 아이코와의 추억의 노래일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이삭 씨가 이 서문을 읽었더라면 그 사실을 확실히 알았을 것이다. 이삭 씨도 알지 못한 글이었기 때문에, 이 원래의 서문은 빛을 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역시 야나이하라 다다오는 우치무라의 권고를 따르지 않고 (아내의) 기념출판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기독자의 신앙' 3판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본서의 간행은 제1판(1921), 제2판(1931)에 이어 제3판 역시 나 자신의 발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모두 동지들의 사랑으로, 그 전도의 마음에서 행해진 일이다. 이 책이 몇 번이나 출판되는 동안 어 세상의 위로가 되었다면, 그 몫은 모두 동지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1933년 2월"
3판 서문의 내용을 음미해보면, 전도를 위한 책인 '기독자의 신앙'을 아내와 자신의 개인적 감정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깨달아 추도기념의 출판을 중도에 멈추었던 것이다. 앞에서 인용한 아이코의 편지 중에 '주님께서 힘을 주셔서 당신도 나도 정말 열심히 했으니, 꼭 좋은 일에 쓰이기를 감사에 감사를 더하며 기도하였습니다.' 하는 바람에 꼭 맞는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야나이하라 다다오도 이렇게 판단하여 개정판의 간행을 중도에 그만두지 않았을까 한다.
이마이칸 교우회의 전 이사장이신 니시나가 타타우(西永 頌) 씨는 이 멋진 2판 서문을 보시고, 아래와 같은 감상문을 보내주셨다.
"실로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전처 아이코의 장남 이삭 씨(오래전 돌아가심)는 어렸을 때 친엄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후처인 게이코(恵子)의 품에서 자랐습니다. 아이코에 대해서 야나이하라가 이삭에게 전혀 말해 주지 않아서 이삭은 자신의 친엄마가 아이코였다는 걸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알았다고 합니다. 그후 어느 때인가 이삭 씨는 친엄마 아이코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아이코의 동생 츠네코(常子, 나의 어머니)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서문과 부록을 이삭 씨가 보았다면 얼마나 기뻐했을까 상상해봅니다. 그런 사연이 있어, 사실 아이코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 자료를 찾아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방대한 자료 가운데에서 이 원고를 만난 일이 나에게도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첫댓글 2023 년 성서신우회에서 일본을 방문했을 때 다마묘지의 야나이하라 선생 묘지에 갔습니다. 처음 아내인 아이코 님과 함께 였습니다. 묘지는 작은 공간에, 아무런 장식없는 작은 비석만 덩그러니 있었는데, '저 맑은 물가에, 清き岸へ'라고만 씌어 있었습니다. 그 평범하고 소박한 무덤에 오히려 감명받았던 생각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