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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들은 잊고 살던 것을 깨닫게 해주었어요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다‘아마존의 눈물’ 김진만 PD 2010년을 열며 대한민국의 화두는 단연 ‘아마존’이었다. MBC 창사특집으로 방영된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은 한반도 35배에 달하는 광활한 열대 우림, 7천 킬로미터를 흐르는 끝없는 아마존강의 생태와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원시 부족의 경이로운 모습을 담아냈다. 더불어 문명인들의 욕심으로 인해 파괴되어가는 자연과 원주민들의 고통 또한 고스란히 보여주며 반성과 감동을 자아냈고, 다큐 사상 최초로 2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목숨을 건 촬영, 250여 일간의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촬영팀도 화제였다. 김진만PD는 “원주민 역시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따뜻한 사람들일 뿐이었다”고 말한다.
글 이권자, 사진 김혜균 기다림에 익숙해지다 오늘 조에족 최고의 사냥꾼 모닌이 사슴을 잡아왔다. 이제 여인들은 서너 시간에 걸쳐 천천히 고기를 다듬을 것이다. 언제 먹을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이 먹고 싶을 때 먹을 것이다. 그리고 20여 명의 부족민들에게 골고루 고기를 나누느라 모닌은 두세 시간 이상을 고민할 것이다. 더 이상 사냥을 할 수 없는 노인들과 아픈 사람들, 부모가 없는 아이들까지 모두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답답해서 화병이 날 지경이었어요. 뭔가를 빨리 찍고 쉬기도 하고 번역도 해야 하는데, 그들은 시계도 없고, 시간 개념이 없으니까요. 해가 이만큼 뜨면 뭘 하겠다 하는데 그게 항상 정확지 않아요. 그가 아마존에 온 것은 MBC시사교양국 연출자로서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마존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유난히 더위와 비위에 약하고 벌레를 무서워하는 그 역시 처음부터 흔쾌히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한다. 하지만 연출자로서의 본능은 이미 아마존으로 향하고 있었다. “부족들의 휴먼다큐를 찍고 싶었어요. 사냥을 하고 축제를 벌이는 것 외에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가 너무나 궁금한 거예요.” 취재까지의 과정은 길었다. ‘후나이(FUNAI):브라질 원주민 보호국’의 서류 절차만 6개월, 그다음 부족민들이 회의를 거쳐 허락을 하면 들어간다. 부족에 들어갈 때마다 건강검진을 받아야 했다. 문명인들이 지닌 바이러스로 인해 원주민들이 감염되기 때문이었다. “도시 빈민의 느낌이었어요. 이미 문명이 들어와 있었고 원시 부족의 모습을 발견하기 쉽지 않았거든요. 플라스틱과 기름의 오염으로 벌레가 들끓었고.” 그들은 활 대신 총으로 사냥을 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보트에 넣을 기름을 요구하거나 촬영에 필요한 발전기를 빼앗는 부족도 있었다. 그것이 아마존의 현재였고, 도시 문명에 적응하지 못한 부족민들의 현실이었다.
방송을 얼마 앞두고 드디어 조에부족의 촬영 허락이 떨어졌다. 아마존에는 대략 3,000명 정도의 미접촉 부족이 남아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촬영이 불가능했고, 조에족만이 유일하게 촬영 가능한 미접촉 부족이었다. 기분 좋은 마무리였다. 촬영팀 모두 무사히 돌아온 것도 다행이었다. 그렇게 김현철PD의 촬영까지 총 250여 일, 3만 분의 테이프를 3백 분으로 편집할 때였다. 반복해서 촬영 장면을 보며 김PD는 아마존에서보다 더욱 가슴이 먹먹해지고는 했다 한다. 연출자의 중요한 자세는 ‘잘 들어주는 것’ 간염으로 죽을 날을 앞두고 어린 아들에게 사냥을 가르쳐주던 마티스족 비나의 애틋함, 해질 녘이면 엄마가 보고 싶어진다는 마루보족 여덟 살 고아 소녀 릴리아니의 슬픈 눈동자, 남자 친구가 있냐고 묻는 엄마에게 고개를 내저으며 부끄러워하던 와우라족의 열세 살 소녀 야물루. 야물루에게서 도시를 동경하는 표정을 새삼 발견한 것도 편집을 하면서였다. 김진만PD는 아마존 부족의 휴먼다큐를 찍겠노라던 다짐처럼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갔고, 그것을 담아내려 애썼다. 요즘은 식당에 가면 수고했다며 음료수도 주시고 서비스도 많이 주신다며 활짝 웃는 김진만PD, 그에게서 늘 사람 이야기를 담아오던 연출자로의 자부심도 엿보였다. 1996년 MBC에 입사하며 연출자가 된 그는 1971년 서울 연희동에서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고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자신에게 연출이 맞을 것 같았다는 그가 처음 지원한 곳은 의외로 예능국이었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 “예능도 재미는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더 재미있어 하는 건 사람 관계였거든요. 근데 잘 지내기는 했지만 연예인들하고는 약간의 벽이 있더라고요. 그 당시만 하더라도 연예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건 힘들었어요. 그러다 교양국으로 옮기고 일반인을 만나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그분들하고는 그냥 가족이 되잖아요. 고민을 함께 의논하고 해결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같이 지내는 게 좋은 거예요.” 사람을 통해서 그 사회를 보고 사람을 통해서 무언가를 보여주는 게 좋다는 김진만PD. 그는 사람이 서로 신뢰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어가는 과정을 담아낼 때면 또 하나의 생명을 만드는 느낌이라고 한다. 2008년 5월에 방송되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휴먼다큐 사랑-로봇다리 세진이’의 연출자도 그이다. 당시, 장애를 가진 열세 살 소년 세진이가 수영 선수 국가대표가 되어 장애인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과 헌신적인 엄마의 사랑은 많은 시청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그는 지금도 세진이와 만나고 연락을 하고 지낸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TV프로에 나온 그를 보고 세진이가 전화를 해 “아저씨, 너무 멋있어지셨어요”라고 했다며 흐뭇해했다. 김진만PD는 연출자가 갖춰야 할 중요한 마음 자세는 ‘잘 들어주는 것’이라 말한다.
“왜 화내는지, 왜 우는지. 연출자라면 다 이해하려고 해야 하죠. 그래서 특히 듣는 자세가 중요하고요, 필요한 ‘그림’만 만들려고 하지 말고 정말 그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 최선을 다해야 될 것 같아요. 그리고 더욱 중요한 건 마무리죠. 촬영이 끝났다고 타인이 되어버릴 게 아니라 계속 연락도 하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어떤 식으로든 그 사람의 삶에 강하게 개입했었으니까요. 자연스럽게 잊혀지면 어쩔 수 없겠지만.” ‘아마존의 눈물’이 자연다큐이자 환경다큐를 넘어 휴먼다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이런 마음 덕일 것이다. 10년쯤 후, 다시 아마존에 간다면 야물루는 어떤 엄마가 되어 있을까, 비냐 가족은 살아 있을까, 릴리아니는 슬픔을 이겨내고 씩씩하게 자라 있겠지, 조에부족은 여전히 문명을 거부한 채 살아갈까…. 불현듯 떠올린다는 김진만PD는 그들이 계속해서 안녕하기만을 바랄 뿐이라 했다. 정말 아낀다면 마음이 행동으로 나타나야죠 김진만PD는 요즘 ‘아마존의 눈물’ 영화화 작업에 한창이다. 모자이크도 없애고 TV로 보여줄 수 없었던 부분도 첨가해 아마존의 현실을 더욱 밀도 있게 보여줄 것이고, 수익은 아마존 원주민들을 위해 쓰여질 것이라 한다. “건강이 안 좋아진 원주민들이 많거든요. 마음이란 그렇게 주고받는 것 같애요. 누군가의 마음을 얻었다면 저 역시 마음을 내줘야겠지요. 그러면서 정말로 이해했다면 실제로 행동하게 되는 게 바로 마음 아닐까요.” 그는 4월이면 2011년에 방송될 창사특집 ‘남극의 눈물’을 위해 남극으로 떠난다. 엄청난 더위 대신 이번엔 엄청난 추위다. 하지만 그에게는 두려움보다 설렘이 더욱 큰 듯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호기심과 기대 말이다. 언제 어디에 가도 누군가의 형과 오빠가, 아들과 손자가 되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누군가의 마음을 열기 전에 자신의 마음부터 열 줄 아는 사람. 그가 바로 김진만 프로듀서다. 김 진 만 프로듀서는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96년 MBC에 입사, ‘피자의 아침’ ‘우리시대’ ‘네버엔딩 스토리’ ‘최민수 죄민수 그리고 소문’ ‘휴먼다큐 사랑-로봇다리 세진이’ 등을 연출했습니다. 이후 MBC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은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좋고 사람을 만나는 게 좋다’는 김진만PD는 앞으로도 진솔하고 감동적인 ‘사람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출처 : 월간<마음수련> 2010년 4월호 webzine.mau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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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멋있어요..김진만피디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