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10월27일
김천 <치유의 숲>
하루 시골집 하수도 공사를 한다고 땅을 파헤치고 수도관을 묻었다. 곁에서 지켜보는 것도 힘이 들었다. 일을 시작하니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간다. 주방에서 사용하는 물이 빠져나가는 관을 묻지 제대로 묻지 않아서 새로 땅을 파서 관을 묻고 원래 하수도로 연결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땀을 비 오듯 쏟아내면서 물을 한 바가지씩은 먹어가면서 하루 매달려서 일을 하니 끝이 보였다. 문득 마당쇠가 생각나서 웃음이 터졌다.
마당에 저절로 자란 들깨를 며칠 말렸다가 오늘 털었다. 너무 일찍 베어서 그런지 깨가 많이 나오지 않았다. 어깨가 걸려서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시늉만 했다. 몸은 내가 챙겨서 아껴야 한다. 내가 아프면 집안이 어둡고 가라앉는다. 마당에서 들깨를 털어 저절로 날아가서 싹을 키운 들깨라서 많지 않다. 내년에는 아깝다고 여기저기서 싹을 틔운 들깨를 키우지 않기로 했다. 바깥 밭에서 키우는 들깨만으로도 충분히 형제끼리 나눠서 먹을 수 있다.
주말마다 시골에 내려가는 일이 여행처럼 생각이 들지 않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여행처럼 다녔다. 그렇게 몇 년을 하다 보니 체력도 바닥이 나고 점점 꾀가 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어쩌다 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냥 쉬다가 오는 것도 아니다. 집을 새로 고치는 작업도 하고 텃밭이 아니라고 제법 큰 밭을 가꾸는 일도 만만치가 않았다. 집 안에 있는 텃밭도 제법 큰데, 바깥에 있는 밭은 큰 밭이다. 깨와 땅콩 고구마를 심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냥 노는 것도 아니다. 밥도 해야 하고 자잘한 일이 도와줘야 한다.
상주 가는 길목에 김천에 들러서 자작나무숲을 다녀왔다. 내가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 자작나무를 너무 좋아한다. 세상의 모든 나무는 다 귀하고 소중하지만, 그 중에서 아끼는 나무다. 시간이 늦어서 아쉽게 자작나무숲까지는 가지 못하고 근처 숲에서 단풍 진 나무들과 한참을 놀다가 왔다. 다음에는 일찍 출발해서 자작나무숲을 걷기로 약속했다.
가을은 우리 곁에 깊숙하게 스며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