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7:1~8)
'Now this is eternal life: that they may know you,
the only true God, and Jesus Christ, whom you have sent"
(3절)
"영원한 생명이 여기 있으므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유일하신 진리의 하나님,
그리고 당신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입니다."
'유일하신 진리의 하나님!'
여기에 강하게 주목된다.
이 배타성 어떻할꼬.
그런데 나는 이 배타성에 감동한다.
보통 배타성은 부정적 의미로 주로 여겨지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거나
강하게 설득하고 싶은 정직한 사람들의 모습은
때때로 배타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진정성을 조금 맛 본 사람들에게는
그런 당당한 외침으로 인해
더욱 신뢰와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할 때는
그것이 순기능적이지만
만약 그것을 받아들인 다음
타자를 대할 때에는 전혀 다른 상황이 되어야 한다.
배타성은 하나님의 진리를 받아들일 때이고
그 진리를 받아들였다면
하나님의 사랑도 충분히 받아들여야 해서...
그 사랑으로 타자에게
할 수 있다면, '밑바닥'까지 낮아져야 한다.
오히려 배타성의 정반대의 모습으로 섬겨야 한다.
그것은 존중(하나님과 하나님이 만드신 타자의 인격),
겸손, 공감, 배려, 긍휼, 결국 사랑의 극한적 열매이다.
거기에 다다르지 못할 때
즉, 진리에 대한 나의 견고함이 흔들릴 것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을 견디지 못해
내 마음의 중심에 견고하게 자리잡아야 할
배타적 진리, 신앙적 원칙, 양보하지 못하는 것을
섣부르게 자꾸 드러내고
잣대로 삼는 일이 벌어진다.
근본주의는 그런 서투름의 현상이 아닐까?
이런 말을 하는 나도 그런 모습일 뿐이다.
그래서 분투의 삶이 우리에게 최선이다.
미시적으로는 전혀 진척이 없는 좌충우돌의 삶이지만
거시적으로 보며는 우상향을 그리고 있는...
그런 삶이기를 기도할 뿐이다.
하나님만 아실 내 삶의 궤적.
오늘은 3.1절이다.
3.1절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일제를 거부한 국가의 독립 의지를
우리 자신과 세계에 결연히 보이고 다진 날이다.
그 일을 통해 민족이 하나가 되었고
현실에서는 임시정부가 그 정신을 이어받아
국가, 민족의 정통성을 세웠다.
더군다나 3.1절의 방법이 '평화적'이어서
우리의 가치와 이념이 숭고함을 잘 담아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진실된 것에는 단기적, 즉각적인 실효성에서
도전을 받는다는 점이다.
3.1절은 진실한 행동이었는데
진실한 행동이 단기, 일시적으로 환란을 맞이하고
현실적으로 성과가 없어 보이자
그것을 추구했던 사람들이 변심하고 변절해갔다.
좋은 동기와 시작을 가진 이들이
변하게 되는 것은, 지속 가능한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3.1 운동의 숭고한 역사 직후에
거기에 참가한 기독교 지도자들이
오히려 일제를 옹호하는,
실망스럽고, 지금까지도 갈등의 불씨가 된 일은
너무나 안타깝다.
그 시점에서의 회개와 정리, 단절이 이루어지지 않아
여전히 그것을 변명하는 세력과
그것을 지적하는 세력과의 갈등이 확대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좋은 행동을 했다 하더라도
이 정도의 어려운 일에는
그것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데는
사람의 에너지가 통하지 않는다.
성령의 힘이 아니고서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귀한 선택권을
하나님, 성령께서 나를 도와주실 수 있도록
내 영혼과 몸을 한 치의 여지 없이
열어 드리는 것에 사용해야 한다.
<오늘의 명언>
모든 사람은 죄인으로 태어나 죽지만,
생명이신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영원한 삶을 얻는다.
-글리슨 L. 아처-
<묵상에세이>
- 이 시대를 가리켜 '과잉 활동 시대'라고 말합니다.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늘 쫓기듯 살다 보니 쉽게 지칩니다. 피곤하고
만사가 귀찮습니다. 그런데도 쉬지 못합니다. 만성 피로 증후군을
겪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기도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합니다. 기도하면 무엇을 위해 살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예수님이 분명하게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그저 저의 어떤 한 점의 의로움이라도 있어서
그것이 이런 묵상과 말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면
저는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뻔뻔스럽지만, 하나님의 긍휼함과 사랑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를 용서하시고 저를 진리 안에서 일으키소서.
하루의 삶까지 거론할 필요도 없이
한 순간, 순간이 감사이며 소중한 것임을
삶 속에서 인정하는 생활이 되게 해 주십시오.
이 시간에도 많은 지인들과 영혼들이 삶 속에서
분투하고 있습니다.
또한 방황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명, 한 명 찾아가 주실 줄 믿습니다.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시고
희망과 소망의 삶으로 전환시켜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