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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대문집 개
이 범 선
채석장 주인 김억대는 안방 거울 앞에서 슬쩍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다시 한 번 자신의 멋을 점검했다.
얼굴의 색안경, 저 6·25의 명장 맥아더 장군의 그것과 꼭 같은 모양의 것이다. 그러나 워낙 맥아더 장군보다 얼굴이 작다 보니 그 진한 색안경이 어쩐지 검은 복면 같다. 하지만 그거야 원래 팔다리 얼굴 모든 것이 멋없이 크게만 생겨먹은 미군들을 기준으로 하여 만들어졌을 안경이니까 한국사람 누군들 별도리 있겠느냐 했다. 그는 꺼먼 가죽 잠바 호주머니에 두 손을 깊숙이 찔러 넣고
가슴을 펴며 얼굴을 들어 적당히 뒤로 젖혀본다. 잠바란 우선 허리가 잘록하게 조여들어서 마음에 든다. 작은 키가 조금은 커 보일 테니까. 키 이야기가 났으니 말이지 그게 더도 말고 1미터 71인 아내만만 해줘도 더할 나위 없을 텐데 하다 말고 그는 곧 동회장을 생각하며 히죽이 거울 속에서 웃었다. 동회장은 그보다도 1센티 작은 164다. 그러면서도 그는 당당한 동회장이 아닌가. 아무리 변두리, 무허가 판잣집이 태반인 동의 동회장이라 해도 시골로 칠 양이면 면장영감님이다.
사월도 중순이다 보니 털 받친 가죽 잠바는 역시 좀 덥다. 그는 지퍼를 밑으로 끌어내렸다. 한 번 더 거울 속의 멋을 살폈다. 아니다. 그는 다시 주르르 자꾸를 오므려 올렸다. 덥기는 좀 덥더라도 자꾸는 역시 위까지 꼭 잠가야 위엄이 있어 보인다.
“아니! 당신은…….”
그의 아내가 안방으로 들어서며 입을 딱 벌린다.
“뭐?”
김억대는 손가락 끝으로 안경을 매만지며 아내를 향해 돌아섰다.
“뭐라뇨. 아니 이 더운데 어쩌자고 가죽잠바는 떨쳐입고 서성거리는 거요.”
“덥긴, 아직……”
“이 양반이 정말…… 철도 모르시는군요.”
“하지만 오늘 동회에서 유지 회의가 있단 말야.”
“동회요?”
“동회가 아니라 유지 회의 말야.”
“기가 차서 참. 그래 동회건 유지 회의건 거긴 뭐 오뉴월에도 털옷 입고 가야 하는 데요?”
“오뉴월은…… 지금이 그래 오뉴월이야!”
김억대의 음성이 역정 조다. 왜 또 아는 체 잘난 체냐는. 그의 아내는 숫제 입을 다물고 말았다. 학교란 문 안에도 못 들어가봤다는, 아니 그의 말투로 하자면, 안 들어가봤노라는 남편의 대학을 나온 아내에게 대한 그 공연한 열등감을 너무나 잘 알고 또 단지 그 까닭으로 하여 어처구니없는 손찌검을 턱없이 여러 번 당해본 그녀였던 것이다.
“야, 순아, 차 하나 잡아와!”
김억대는 마루로 나서며 큰 소리로 식모애를 불렀다. 대답이 없다.
“이 계집애가 또 어딜 갔어. 회의 시간 다 됐는데.”
그는 팔목시계를 들쳐 보며 투덜대었다. 등 뒤에서 아내가 미간을 집었다.
동회사무소라면 끽해야 동 안에 있을 게 아닌가. 여느 때는 볼 일 없이도 곧잘 동회사무소에 마을을 가는 모양이던데 그날따라 무슨 그리 대단한 회의길래 그처럼 식을 찾는 거냐 했다.
“야, 순아!”
김억대는 또 한 번 이번에는 그 파란 페인트 칠을 한 대문 밖을 향해 꽥 소리를 질렀다.
식모애가 대문짝을 밀고 한 손에 든 마당비로 커다란 셰퍼드 궁둥이를 두들겨 몰아 앞세우고 들어오며 쫑알댄다.
“거지새끼가 개소리 하네!”
“뭐라구! 이 기집애야.”
김억대의 소리가 무엇에 찔린 듯 컸다.
“쓰레기통이나 쑤시고 돌아다니는 그 거지새끼가 글쎄 우리 존을 보고 개수작이잖아요!”
“뭐가 어쨌다구 또 그러니, 넌.”
김억대의 아내가 불안한 표정으로 마루 끝에 나섰다.
“허기야 존 저게 병신이지 뭐예요.”
식모애가 개를 향해 마당비를 한번 들었다 놓는다.
“존이 왜 병신야!”
김억대는 대문 옆 개장 앞에 쭈그리고 앉은 개를 바라보며 약간 누그러진 음성으로 역성이었다.
“멀쩡한 사람을 보곤 이를 허옇게 하구 대들면서, 넝마주이나 거지를 보면 쥔 본 듯이 꼬리를 치구 칭칭 개도는걸요.”
“그거야…….”
김억대는 마루 끝에 걸터앉아 구두를 신으며 뭐라고 변명을 하려다 만다.
“그러니 양아치고 새끼가 존을 붙들고 궁둥이를 밀며 도리어 날 물라고 추기지 뭐예요. 정말 창피해 죽겠어요.”
“창피하긴 뭐가 창피해! 어서 가 차나 잡아와.”
김억대가 구두끈을 다 매고 허리를 폈다.
“아저씬…… 이웃에서들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면서…….”
식모애는 여전히 볼이 부은 채 대문을 나섰다.
대문 앞에서 택시 앞자리에 쓱 들어앉아,
“유지 회의가 끝나면 또 한잔하게 될 게요.”
하고 사뭇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빼어 문 김억대가 골목을 빠져나가자 돌아서 들어오는 그의 아내와 식모애는 다시 개 이야기를 꺼내었다.
“생기긴 제법 저렇게 멀쩡하게 생긴 것이 어째 그렇게 병신 구실을 하죠, 아주머니?”
식모애는, 대문 안에 엎드려 앞발에 턱을 올려놓고 눈을 그느스름하니 감은 개를 가리켰다.
“누가 아니래. 개도 늙으면 망령이 드나 보지!”
“저 게 몇 해나 됐는데요?”
“모르지. 어쨌든 내가 왔을 때 벌써 큰개였으니까.”
지금 일곱 살 난 딸애를 결혼한 지 1년 만에 낳았다는 그녀다.
“그럼 한 10년 됐겠네요.”
식모애는 입을 딱 벌린다. 늙기도 어지간히 늙었다.
“……그러니 망령을 안 부려요!”
식모애는 부엌문 앞에서 또 한 번 개를 돌아보았다.
글쎄, 개도 늙으면 망령을 부리는지 어떤지는 잘 모를 일이지만 존은 이웃의 말썽거리였다.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건 어떻게 자라먹은 갠지 옷을 단정히 차려입은 사람을 보면 남녀 할 것 없이 기를 쓰고 달려드는 것이었다.
하기야 개란 원래 집을 지키는 것이 본분이고 보면 공자님이 대문 앞에서 얼씬거렸대도 그가 자기 주인이 아닌 바에야 가랑이를 물고 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는 충견이겠으니, 주인 딸애 유치원 여선생님의 매끈한 종아리에 이빨 자국을 냈다든가, 이웃의 반장 아저씨 발뒤꿈치를 물었다든가, 또 수도 검침원의 엉덩이나 야경원의 양복 가랑이를 물어 찢었다고 해서, 그것은 주인과 피해자 사이에서 해결지어져야 할 성 가신 사건이기는 할망정, 사람의 신분을 일일이 식별할 수 있는 신통한 능력을 미처 부여받지 못한 개를 나무랄 이유는 전혀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존의 경우는 좀 다르다. 그 늙은 수캐 존은 사람의 신분 식별을 노상 못 하는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도둑이건 성인이건 주인 아니면 모두 달려들어 물며 경계한다면야 의당 그 녀석의 폭행 책임은 동네 유지 김억대에게로 돌려지고 녀석은 그저 충직한 늙은 수캐로서 자기 사타구니나 철레철레 핥고 있을 수 있으련만, 이 존은 천사 같은 유치원 선생님의 그 하얗고 예쁜 종아리까지 경계하면서도 막상 누더기를 걸친 거지나 꼭지 따진 대팻밥 모자에 커다란 대바구니를 둘러멘 넝마주이만 보면 어찌 된 셈인지 반가워라고 껑충껑충 달려가 꼬리를 설레설레 젓는 것이다.
자 그러니 이건 김억대의 아내 말대로 이제 너무 늙어서 망령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이웃 사람들이 멀찌감치서부터 지레 피해 딴 골목으로 돌아가며 뱉는 말,
“저놈의 개는 눈알이 거꾸로 박혔는가, '거지막에서 자랐는가!”
대로 무슨 그럴 숨은 까닭이 있겠으나, 어쨌든 거지나 넝마주이 앞에서 식모애가 창피스러운 그런 개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렇기로는 김억대의 아내도 매한가지였다.
어쩌다 이웃집 아낙네들이 일이 있어 김억대네 그 파란 페인트 칠 대문을 들어설 때면 무슨 인삿말이나처럼,
“이 댁 개는 너무 사나워서……”
“이 집 개는 종잡을 수가 없더라 원.”
하며 비실비실 모로 걷는 것을 보면 김억대의 아내는 어쩐지 창피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그들의 말이야 따질 것도 없이, 무슨 개가 그래 그러냐, 또는 개를 대관절 어떻게 가르쳐 키웠기에 거지는 핥고 이웃은 무느냐는 뜻인 것이다.
그래 그녀는 개가 무슨 사고를 낼 때마다 남편에게 짜증을 부리곤 했다.
“그 개 이제 그만 치워요. 이웃 창피해 못 살겠어요. 그게 어디 도둑 지킬 개요. 도둑한테 꼬리치고 순경 물 개지.”
그러나 그때마다 김억대의 대답은 흐릿했다.
“왜 우리 존이 어때.”
그렇다고 그가 뭐 제법, 요즈음 세상 제 어깨로 벌어서 거칠게 먹는 넝마주이나 그것도 못 해 구걸을 하는 거지의 발바닥만도 못한 치들이 번드르한 양복에 넥타이 매고 노력 대신 사기나 치고 구걸 대신 뇌물이나 처먹으며 행세하는 판국이니 존의 눈이 오직 옳으냐는 따위 기특한 생각을 해서는 아니었고 도리어 그 자신도 존에 대해서는 적이 난처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가 그 늙은 개를 보신탕집에 척 팔아넘기지 못하는 것은 존이 그렇게 넝마주이 편이 되고 엉뚱한 사람을 경계하게 된 데는 그럴 까닭이 있음을 그만은 잘 알고 있을 뿐더러, 따지고 보면 오늘날 그가 소위 동네 유지가 된 것도 시초는 그 존으로 해서 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정확히 10년 전이다.
그날도 넝마주이 고아 팔뜨기―사팔뜨기의 사 자를 떼어버린 팔뜨기는 커다란 대바구니를 메고 골목골목의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다. 그러던 그는 어느 전주 밑에서 귀여운, 아주 귀여운 강아지를 한 마리 주웠다. 어쩌면 그건 시렁 밑에서 숟가락 주운 격이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는 그것을 대바구니 속에 넣어 메고 변두리 산 밑 거적막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부터 팔뜨기는 그 강아지의 가는 다리를 끈으로 매어 거적막에 달아두고 나섰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돌아와보니 어떤 뚱뚱한 미군이 쭈그리고 앉아 강아지를 어르고 있었다. 그는 팔뜨기를 보자 빙그레 웃으며 일어섰다. 강아지를 가리키며 뭐라고 했지만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그때의 그 미군은 부대의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적당한 곳을 찾아 변두리로 나왔던 것이었다.
다음 날부터 팔뜨기는 골목을 뒤지고 돌아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어제의 그 미군이 트럭으로 하나 가득히 쓰레기를 싣고 나왔던 것이다. 그는 또 거적막 앞에 쭈그리고 앉아 강아지를 한참이나 어르다가 돌아갔다.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미군은 쓰레기를 트럭에 싣고 나왔다. 뿐 아니라 먹이 깡통까지 끼고 나와서는 존 존 하고 제멋대로 강아지의 이름을 지어 부르며 한참씩 노닥거리다 돌아가곤 하였다.
어쨌든 팔뜨기는 신이 났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날마다 트럭으로 실어다 주는 돈―미군들에게는 처치하기 성가신 잡동사니 쓰레기도 팔뜨기 눈에는 그대로 돈이었던 것이다. 꿈만 같았다. 그저 강아지 존만 잘 붙들고 있으면 된다.
1년이 채 못 되어서 팔뜨기는 피둥피둥 목덜미가 굵어졌고 강아지 존은 어미 개가 되었으며 둘레에는 어느 사이에 판잣집 마을이 섰다. 팔뜨기는 단연 그 판자촌의 왕자였다. 그가 맥아더 장군의 것과 같은 모양의 색안경으로 사팥뜨기 눈을 가리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다.
그런데 일은 늘 좋게만 벌어지지는 않았다. 어느 날부터인가 쓰레기 트럭이 끊이고 오지 않았다. 이상하다 했다. 그러나 별도리가 없었다. 그는 그저 존의 등을 솔로 긁어 손질해주며 미군이 다시 나타나주기만 기다렸다. 그러던 며칠 뒤에 그는 비로소 진상을 알았다. 어떤 너절한 친구가 수십만 원을 써가며 그 파리 꼬이는 쓰레기 처분권을 딴 곳으로 유치해갔다는 것이었다.
그날 팔뜨기는 홧김에 찾아간 태폿집에서 돼지막 주인을 만나 정신없이 마셨다.
“난 이제 망했다, 망했어!”
“팔뜨기만 망했나 나도 망했다, 나도!”
쓰레기로 나오는 음식 찌꺼기로 돼지를 키우던 돼지막이니 망하기는 팔뜨기와 같은 곬이었다. 그들은 취하자 마주 붙들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고 존은 팔뜨기 옆에 쭈그리고 앉아 그의 발등을 핥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었는데 또 한 달도 못 되어서 둘은 대판으로 싸웠다. 돼지막이 있는 일대가 모두 자기 땅이니 비켜나라는 팔뜨기의 수작이었다. 어차피 이제 돼지도 못 쳐 먹게 된 판국이긴 하였지만 돼지막 주인이라고 호락호락 그대로 물러날 까닭이 없다. 멱살을 쥐고 치고받고 싸움이 벌어졌다. 그러나 싸움은 팔뜨기의 승으로 끝났다. 그래도 아직은 몇 명 졸개들을 거느린 팔뜨기였는데 존까지 합세하여 돼지막 주인에게 덤벼들었으니, 사실인즉 쓰레기를 빼앗기고 눈앞이 캄캄해 있는 팔뜨기에게 어떤 얌체 같은 친구가 맹랑한 귀띔을 해주었던 것이다. 이제 쓰레기는 틀렸으니 땅이라도 차지해두라고. 팔뜨기는 며칠을 분주히 싸돌아다녔다. 판잣집들을 한집 한집 찾아다니며 자신도 무슨 종이인지
모르는 종이에 도장들을 받았다. 팔뜨기 자기가 그 자리에서 미군 쓰레기를 받아 처리하던 바로 그 사람임을 확인해주는 그저 그것뿐인 도장이라 설명했고, 때 묻은 목도장을 꺼내는 판잣집 사람들은 또 그들 나름으로 행여나 그렇게 함으로써 미군 쓰레기를 다시 그리로 내올 수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손가락에 힘주어 도장을 찍어주었던 것이다. 돼지막 주인까지도. 그런데 그것이 바로 김억대란 거창한 이름으로 부근 일대의 땅을 불하받기 위한 종이였던 것이다.
매까지 맞고 억울하게 쫓겨나는 돼지막 주인을 본뜬 판잣집 사람들은 이젠 아주 쓰레기에 희망을 걸지 못하게 되었음을 알고 한 집 두 집 어디론가 홑어져가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쓰레기 팔아 뭉쳤던 돈 거의 전부를 그 땅에 털어넣어버린 팔뜨기 김억대만은 쉽사리 떠날 수가 없었다. 그는 나무 한 그루 없이 민숭민숭한 그 산 밑에 마침내 존과 단둘이만 남아버렸다. 차라리 돼지막 주인이라도 그렇게 쫓아내지 않았더라면, 하는 외로운 생각으로 그는 종일 저 맞은편 마을을 바라보며 땡볕에 앉아 있었다.
어떤 날 키가 유난히 작은 초라한 사나이가 산 밑으로 그를 찾아왔다. 새로 앉은 동회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동회장이란 사나이가 그에게 들고 온 용건이란 게 팔뜨기에게는 거창했다. 동 이쪽과 저쪽 중간에 있는 조그마한 내에 다리를 놓기로 했다면서 얼마간 협조해달라는 청이었다.
“여보시오, 내 살고 있는 저 거적 막을 보면서 하는 말이오?”
팔뜨기 김억대는 어이가 없었다.
그 조그마한 사나이는 몸과는 어울리지 않는 굵은 소리로 웃으며 그의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김선생님 왜 이러십니까. 다 잘 알고 온 건데. 우리 동 안에서는 김선생님 이 제일 아닙니까, 허허허.”
“……? 사람 놀리지 마시오!”
김억대에게는 그 생전 처음 들어보는 선생님이란 말부터가 놀리는 말이었던 것이다.
“원 그런 말씀을…… 아 사실 김선생님이 하실랴구만 한다면 그까짓 한 뼘만 한 다리 하나가 문제겠어요. 뭐하면 아 이 산의 돌을 몇 개 파다 해투 거뜬히 될걸……”
“흥, 속 편한 소리 하지. 파가려거든 다라도 파가요, 제길.”
김억대는 사실 그 듣기만 해도 배가 나올 듯한 이름값도 없이 본래대로 알거지였던 것이다.
그런데 세상일 그게 또 곧잘 우습게 되어간다. 다리를 놓기 위해 정말 돌을 몇 개 파내다 보니 그대로 산은 채석장이 되어버렸다.
이름을 억대라 새로 지어서 그랬던가, 그는 채석장 주인이 되면서 다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얼마 안 해서 언덕 위에 제법 멀끔한 한옥을 지었고 대문에는 자기 취미대로 파랑 페인트 칠을 몇 번이고 했다. 다시 한 집 두 집 돌산을 바라보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러자 돈이 좋아 그는 어떤 불쌍한 노인의 외동딸을 아내로 맞았다. 배워야 산다고 악으로 야간대학까지 마친 여자였으며 병 든 그녀의 아버지를 함께 모신다는 조건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이제는 제법 이발소도 목욕탕도 있는 동이 되었고 그는 또 어느 사이에 그 동네의 유지가 되어 있었다. 어쩌면 동회장이나 조금 알고 있을까, 그 밖에 목욕탕 주인, 한약방 의사, 그리고 부동산 소개업의 할아버지 등 소위 동 유지란 작자들은 물론, 돌산이 생기고 나서 새로 모여든 동민들 그 누구도 김억대의 전신 팔뜨기에 관해서는 모르고 있는 것이 그로서는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그뿐 아니라 그의 아내까지도 늙은 존의 그 괴상한 버릇을 망령으로만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 데다가 그의 채석장 일꾼들의 아낙네들은 감히 그의 이름은 부를 엄두도 못 내는 일이고, 그의 집 대문 색깔을 따서 청대문집 주인어른, 청대문집 주인어른 하니, 팔뜨기 후신인 김억대로서는 좀 더운 한이 있더라도 사월에 가죽 잠바를 입는 위엄과 몇 걸음 거리인 동회사무소라도 택시를 불러 타는 체면이 필요했으며, 그러다 보니 지금은 그 자신까지도 자기가 10년 전 팔뜨기였던 사실을 깜박깜박 잊는 때가 많았다.
그런데 사람은 팔뜨기가 그렇게 김억대로도 바뀌는데 수캐 존은 그저 그대로 존이었다.
장마가 겨우 걷히고 중복도 가깝던 어느 무더운 정오였다.
쾅 쾅 쾅, 저만치 채석장에서 발파 소리가 들렸다.
김억대는 겨우 사타구니만 가린 알몸뚱어리로 자기 집 마루 위에 회초리 맞은 개구리 모양으로 누워서 선풍기를 쏘이며 그 발파 소리를 속으로 세고 있었다.
더운 땡볕에 나가서 일일이 작업을 감시하지 않아도 그렇게 낮 12시와 저녁 6시에 터지는 발파 소리만 세고 있으면 그날 일을 대충 짐작할 수 있는 것이 또 채석장 주인의 세상 편한 점이라 했다.
그렇게 발파 소리를 세며 그느스름히 잠이 들어가던 때였다. 갑자기 집 앞이 왁자지껄했다.
“큰일 났습니다! 큰일 났어요!”
인부들이 대문 안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김억대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땀에 번질번질 젖은 알몸뚱어리가 미처 아랫사람들 앞에 체면을 차릴 겨를도 없었다.
“바위가 굴러 내렸습니다!”
“뭐, 바우가?”
“네, 아 그, 전부터 몇 번이나 말씀드렸던 그 산꼭대기의 바위가 마구 굴러 내려오면서 밑의 집을 다섯 채나 깔아뭉갰습니다.”
“미친 새끼들! 그래 그걸 왜 못 막았어! 개 같은 새끼들!”
흥분한 김억대의 입에서는 팔뜨기 시절에나 쓰던 점잖지 못한 욕설이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사람이 많이 깔려 죽었습니다! 몇 사람이나 죽었는지 그 수를 알 수가 없습니다!”
“어른 어린애, 남자 여자. 하여튼 큰일 났습니다!”
인부들은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김억대는 속옷 바람으로 채석장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래도 그는 그 색안경을 쓰는 것은 잊지 않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산꼭대기에 슬쩍 머리를 들고 앉아 있는 커다란 바위가 위험하다고 현장감독에게서 몇 차례나 경고를 받은 일이 있는 그였다. 그때마다 그는 큰 소리로,
“하늘 무너질 걱정 말고 일이나 해. 책임은 이 김억대가 지는 거야! 이 김억대가!”
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장마 뒤끝에 발파 진동으로 와르르 무너져내린 것이다.
성냥갑 같은 판잣집이 다섯 채나 가루가 되며 사람은 몇 명이나 깔려 죽고 다쳤는지 알 수 없었다. 울음바다다.
“제기럴! 죽은 새끼들은 울지나 않지, 이건 제길!”
김억대는 잔뜩 미간을 찌푸렸다. 귀찮게 됐다.
그러나 김억대로서 정작 귀찮은 일은 딴 데서 일어나고 있었다. 사고 현장에 나왔던 지서 주임이 책임자를 찾아 김억대네 집 청대문을 들어섰을 때였다. 느닷없이 존이 달려들어 그의 허벅다리를 물고 흔들었다.
채석장에서 그 보고를 들은 김억대는 허둥지둥 집으로 달려 내려왔다. 지서 주임은 돌아가고 없었다.
“야! 택시 불러와!”
여전히 속옷 바람에 색안경을 낀 그는 식모애에게 소리 질렀다.
“어딜 가시려구요!”
그의 아내가 마루로 나섰다.
“어딘 어디야. 지서 주임한테 가서 사과를 해얄 게 아냐! 죽일 놈의 개새끼. 이 존 어딜 갔어?”
김억대는 대문 안의 개장을 한번 힘껏 걷어찼다.
“아니, 지서에보다 깔린 사람들부터 먼저 구해야잖아요!”
“잘난 체하지 말란 말야! 잘난 체! 빨리 차 못 불러와!”
그는 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언제나의 버릇대로 운전대 옆에 김억대를 태운 자동차가 부서진 판잣집 틈을 빠져나갔다.
“아마 기중기라도 빌리러 가는 모양이지, 급히 가는 걸 보니.”
무너진 판잣집을 들치고 있던 인부들의 말.
사흘이 지나자 어쨌든 일단 시체들은 매장되고 채석장 아래 판자촌은 허탈 상태로 조용하였다.
나흘째 되던 날에는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는 듯하더니, 닷새째 되던 날은 벌써 모든 것을 깨끗이 잊어버린 듯 채석장에는 다시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그날은 중복날이었다.
몹시 덥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채석장에는 활기가 돌고 있다.
김억대가 인부들을 위하여 개를 한 마리 잡았던 것이다.
볕이 내리쪼이는 채석장 아래쪽에는 인부들이 모여 앉아 땀을 흘려가며 그 뜨거운 개 국물을 훌훌 들이켜고 있었고, 저만치 위쪽 널따란 바위 위에는 동네 유지 양반들 몇몇 사람이 대폿집 여자들과 어울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떠들썩거리고 있었다.
좋다, 타, 타아! 얼씨구, 얼씨구, 타아!
그 볼품없이 팔다리를 들썩거리며 바위 위를 빙빙 돌고 있는 것은 김억대라고 하는 인부도 있었고,
“아니야, 그 양반이 저렇게 벗어던지고 춤을 출 리가 있나, 원!”
하며 당치도 않은 소리라는 듯 극구 부인하는 늙은 인부도 있었다.
“어쨌든 복날 개고기는 산삼보다 낫다던데 올여름은 이제 문제없지!”
사고로 다친 팔 하나를 꺼먼 끈으로 해서 목에 걸고 읜손으로 개 국물 사발을 쥔 젊은 인부의 말이다. 이마에는 개기름 같은 땀방울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조오타. 얼씨구! 씨구……타!
저 위쪽은 점점 흥이 나는 듯 이제 장구 소리까지 들려온다.
-끝-
2016년 6월 10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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