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은 집착하지 않고 동요하지 않는 지혜의 연마이다.
<잡아함경>
*참회진언(懺悔眞言)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3번 )
*소원성취진언(所願成就眞言)
옴 아모카 살바다라 사다야 시베훔 (3번)
*광명진언(光明眞言)
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릍 타야훔(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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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이 바로 그때 *
- 다시 월든 호숫가에서 2 -
월든 호수를 처음 본 사람은 글을 통해서 상상했던 것보다 호수가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우리들은 흔히 크고 작은 것을 밖에 드러난 외면적인 것만으로 판단해 왔기 때문이다. 월든은 둘레가 3킬로미터도 채 안 되는 규모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큰 것은 밖에 드러나 있지 않고 그 내면에 있다. 월든이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그 흡인력을 생각한다면 그 어떤 호수보다도 크고 깊다. 한 해에 60만 명의 정신적인 '순례자'(관광객이 아니다)들이 세계 각처에서 이 월든을 찾는 것을 보아도 그 넓이와 깊이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뉴욕에서 일을 마치고 월든을 다시 찾았다. 이번이 세 번째인데도 새롭게 느껴졌다. 그날은 마침 인근 고등학교 학생들이 한 교사의 인솔하에 소로우의 오두막 터에 와서 현장학습을 하는 광경과 마주쳐 적지 않은 감명을 받았다. 듣는 학생이나 가르치는 선생님의 진지한 그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마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존 키팅 선생을 연상케 했다.
학생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밝고 여유 있는 것을 보면서, 입시지옥에서 잔뜩 주눅 들고 굳어 있는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만약 우리 고등학교에서 교실 밖에 나가 이런 현장학습을 한다면 모르긴 해도 단박 학부모들의 항의가 거셀 것이다. 우리는 교실에만 갇혀서, '그곳을 알기 위해서는 그곳에 가야 하는 것'이 진정한 학습임을 모르고 있다.
마침 녹화를 위해 방송사 촬영 팀과 동행한 길이라, 그 현장학습 장면을 담고 싶었다. 선생님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인사를 드리고 학습 장면을 좀 찍을 수 있었으면 한다고 여쭈었더니 먼저 학생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했다. 다들 찬성하여 순조롭게 찍을 수 있었다. 이런 일 또한 민주적인 교육임을 실감케 했다. 교사가 임의로 결정하지 않고 먼저 학생들의 의사를 물어 결정하는 그 절차가 참으로 믿음직했다. 강의가 끝난 후 학생들이 선생님한테서 받아든 종이를 갖고 뿔뿔이 호숫가에 앉아 그날 학습의 감상문을 쓰는 모습 또한 아름다웠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후 스무 살이 된 소로우는 그의 가장 짧고도 유명한 교사 일을 시작한다. 그의 고향 콩코드 제일의 대학 준비학교였다. 교단에 선 지 며칠 안 돼 '제3인 학교위원회'의 한 사람이 그를 불렀다. 그는 교실의 활동과 소음 수준이 너무 높다고 하면서 아이들에게 처벌을 자주 가할 것을 지시했다. 그의 지시에 자극받아 소로우는 할 수 없이 매를 들었는데, 그날 저녁으로 그는 사직서를 제출하고 교사직을 그만두었다.
오늘날 우리들은 자신을 좁은 틀 속에 가두고 서로 닮으려고만 한다. 어째서 따로따로 떨어져 자기 자신다운 삶을 살려고 하지 않는가. 각자 스스로 한 사람의 당당한 인간이 될 수는 없는가. 저마다 최선의 장소는 현재 자신이 처해 있는 바로 그 자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법정 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사진: 쉼터 하나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