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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고요의 맥을 짚다☆]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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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의 맥을 짚다]
이 섬 시집 / 시와표현시인선 026 / 시와표현(2016.06.21) /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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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의 맥을 짚다
이섬
옷은 내 몸이 살고 있는 집이다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뜨락이다
오늘 하루를 살아온 집 한 채 벽에 걸어 놓는다
반듯하게 균형이 맞지 않고 한쪽 어깨가 삐뚜름하다
오늘 하루 견디는 것이 버거웠나 보다
문틀을 조이는 나사가 헐거워졌는지?
편안한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집이 튼튼해야 해, 쾌적해야해,
통풍도 잘되고,
한여름 비바람 눈보라 잘 견디어줄 내 몸의 집,
마음의 집,
주섬주섬 마음 속 갈등의 갈래들을 추슬러 낼,
강도 높은 지진도 한여름 쓰나미도 너끈하게
견디러 줄,
외벽도 튼튼한 그런 집 한 채 짖기 위해
오늘도 터를 닦고 기둥을 세운다
마음이 좋아할 집,
몸이 살고 싶은 집.
숲속의 작은 도서관
이섬
그곳에서는 질경이 엉겅퀴 명아주가 주인이다
의젓하게 주인행세를 한다
방문객이라도 올라치면 제일 먼저 달려 나가 허리를
굽실대며 손을 잡아 이끌며 인사를 한다
빙 두른 산자락은 제 그림자에 몸을 감추고
5월의 등 따뜻한 햇볕은 갈 길이 바쁘다
숲속의 작은 도서관,
헤아릴 수 없이 빼곡하게 채워진 서가에 뽀얀 먼지 둘러쓴 책
각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언젠가 찾아올 임자를 기다리며
구구절절 사연도 깊다
누군가의 손을 거쳐 예까지 왔다고
세상을 들썩일 만큼 위력도 있었다고
금수산 산골마을에서
오늘도 바람에게 강물에게
세상의 이치를 깨우쳐 주겠다고
그 많은 활자들이
때를 기다리는 중이다.
갈葛과 등藤 사이
이섬
약속은 언제나 한 발 앞에서 기다린다
우리의 약속은 항상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물이 오른 나뭇가지는 오른쪽과 왼쪽으로 시간을
감아 올리고 새벽안개를 헤쳐나간다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고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리라
아브라함이 조카 룻을 우대하여 선택하게 하듯
어느 지점에서는 손을 맞잡을 수 있지
너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 거야
이제부터 우리 한 곳을 바라보자
갈과 등 사이 끊어질 듯 이어지는 줄기가 있다
길이 보인다
상처, 그 떨림으로
이섬
화성시 향남읍 재암리 순국기념관에서
곪아 터진 상처를 보았다
새살 돋지 못하고 진물 흥건한 흉터가
도저 있었다
내 어깨가 욱신거렸다
상처는 상처로 싸매는 것
그들은 알고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순국의 뜨거운 불길
물을 쏟아 부어도, 날카로운 칼자루에도,
꺼지지 않는 기세
불은 불로서 잡아야 한다는 것
작은 예배당에 몰아넣은 23명의 장정들
자물통으로 문을 잠그고
창문은 각목으로 못질하고
예배당에 불을 질렀다
불의 꽃은 사정없이 타오르고,
초겨울 세차게 흔들리는 눈바람에
듬성듬성 피어난 억새밭,
재암리 순국묘지에서 아직도 사그러지지 못한 매캐한
연기 내음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만 같아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겨울 강, 편지
이섬
물안개 자욱한 겨울 강물을 보면 수묵화의
그림엽서인양 한 페이지를 잘라 편지를 쓰고 싶다
소원했던 벗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다
마음을 가득 담은 정갈한 손 편지로,
흩날리는 눈보라도 묵묵히 삼키며 속살 터지는
매서운 추우도 잘 참아내는 겨울강의 심장을 알려야했다
살얼음 위를 걸어가듯 위태로웠던 순간들이 징검다리를
흔들리며 겨우겨우 발을 떼는 그에게
강물의 비명을 소리의 파장으로 그려 넣어야겠다
하루의 일과를 끝낸 저문 밤,
겨울 새떼들 날개 접고 떠나버린
꽁꽁 얼어붙은 자리 그곳에도 봄을 기다리는
속 싶은 사랑 있음을 전해주어야겠다
바람은 모두를 흔들리게 한다
이섬
제주도 돌담은 바람과 한통속이다
숨기고 감추어둔 속마음 겉마음 다 터놓고 산다
바람의 지문이 찍힌 검은색 현무암 숭숭 뚫린 구멍은
강풍의 숨통이고 바람의 공기구멍이다
바람에게도 빠져나갈 구멍이 필요하다
수시로 몰아붙이는 강풍 옴짝달싹 못하게
가둬놓으면
그 사나운 성깔 언제 어디로 폭발할지 모른다
물불 가리지 않고 흔적 없이 휩쓸고 뭉개버릴지,
바람이 땀 식히며 수 돌리고 쉴 수 있는 쉼터,
바람 그물이 필요하다
얼기설기 쌓아서 달빛별빛도 잠시 쉬어가는
여유로운 현무암 돌담길
흔들릴수록 더 깊이뿌리 내린다는,
튼튼한 돌담
밭담, 원담, 산담, 울담 모두모여 만 리를 이룬다는
재주도 흑룡만리 길,
꼬리며 지느러미가 꾸불꾸불하다
등구비 숭숭 뜷린 구멍마다 바람이 걸어간 발자국이
또렷하다
가끔은 내 어깨를 통과하는 바람의 기침소리 들린다
바위들의 웃는 곳
이섬
이 계곡 어딘가에
복숭아 꽃 만발한 상그릴라로 가는 동굴이 있을법한,
바위와 바위가 의좋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제풀에 흥에 겨운 반지르르 귀티 나는 동안의 바위 총각
옛 시인 묵객과 단짝이었다고,
팔이며 등짝에 새겨진 다채로운 서체의
깨알 같은 문신,
햇볕에 닿고 비바람 오랜 세파에 마모되고 희미해도
훈장인양 이리저리 내 보이며 무용담이 한창이다
싱글벙글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살의 호탕한 웃음 소리
골짜기로 내리꽂히며
바윗등 타고 골골이 메아리로 대답하는 무릉계곡, 석각
신선이 노닐던 이 세상의 별천지라고
상투머리 너럭바위 신이 나서 입이 벙글어진다
동해시 삼화동 무릉계곡,
그곳에 발목 잡히고 싶다
케리커처
이섬
과감히
더할 것은 더하고 뺄 것은 빼고
쳐내고 다듬고
곱하고 나누고 분석하는
고난도 인수분해,
남해마을 민속관에서 정석수학으로 말끔해진
나를 만나다
밭두렁
이섬
하릴 없이 어깨 움추린 겨울 한낮
노루귀만한 겨울 햇살 양푼에 담아
밭두렁에 풀어 앉힌다
누구나 한번쯤은 추위와 맞붙고 싶은
그런 날,
한 번 들으면 절대로 잊혀지지 않을
그 음악,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악장
아다지오, 느리게 느리게
고랑에 넘실댄다
콩의 노래
이섬
열두 대문은 아니어도 쪽문 중문 대분 붙박이로 서서
마음껏 먹고 마음껏 삼키며 콩의 노래를 불렀지
점점 어깨가 넓어지고 가슴이 두둑해졌지
제일 먼저 그리움을 배우기 시작했어 시인처럼,
콩나무, 콩깍지, 콩자반이 시가 되었어
고소하고 맛깔스러운,
잘 여문 서리밤콩처럼 실속 있었어,
떵떵 거리며 살았지!
명품사랑 “님아--”를 보고
이섬
묵으면 묵을수록 깊은 맛이 나는
50년 묵은 집간장 맛이다
낮에는 햇볕에 달여지고
밤이면 달빛을 품어 안았다
뭉근하면서도 짭짤한 맛이다
잘 발효된 사랑일수록 맑고 투명하다
퍼내도 퍼내도 앙금이 없다
단맛, 쓴맛, 신맛, 매운맛, 떫은맛에 추억이랑
설렘이랑 그리움이랑 서러움이랑 골고루 버무렸다
뒷맛이 알싸하다
미끼
이섬
‘미끼’라고 말하는 순간
너는 고생대의 화석처럼 유기물질의
진흙바닥을 빠져나가고 있다
발을 빼려고 몸부림칠수록 자꾸만 더 깊이 빠지는
개펄처럼,
누군가의 낚싯밥이 되어 본 적은?
내가 꼬리부채를 흔들며 희망찬 바닷물 속을
유유히 유영할 때
내가 미끼였음을 깜박 잊고 있었다
미세먼지로 흐릿하게 변하는
연안의 암초지대나 산호초가
물살을 거슬리는 어둠의 바다에서
나는 머리 큰 물고기를 잡아내는 미끼다
지느러미가 매끈한 유인물이다
눈 쏠림 현상으로 균형을 유지하는 어둠이다
낚시의 밥이다
길을 지운다
이섬
2.0 볼록렌즈 돋보기를 쓰고서 무심코 비쳐진
손등을 본다
기름지고 척박했던 곳, 보드랍고 살가웠든 곳
언제 이렇게 황패해졌는지, 거칠고 메말라졌는지
울퉁불퉁 나뭇등걸 드러나고 군데군데 삶의 흠집들
마구 단락도 행간도 없이 쉼표, 마침표 찍어댔다
경사진 언덕에서 바람의 길잡이로 내려온
생가지 마른가지 뒤엉킨 솔가지들
어지럽다
꽃가지 낭창이던 길을 지우고
섬섬옥수 살가운 추억의 숲 그늘 지우는
기쁨과 슬픔 사이의 애련
재생할 수 없는,
해질녘 낯선 곳에서 나 혼자인 것만 같은
허허로움,
우표마을
이섬
무더위가 켜켜로 쌓이고 불쾌지수가
수직상승하는 날에는 더더욱 생각나는 곳
낮은 초가지붕에 함박눈이 쌓이고
눈 덮인 측백나무 울타리 옆 적막이 서성이는 것
뒤란을 지키는 납매 한그루 언 손을 녹이며
봄을 기다린다
키 낮은 굴뚝에서는 가는 연기가 수묵화처럼
피어오른다
어디선가 반가운 소식이하고 가져올 것 같은
빨간 손가방의 집배원이 기다려지는 것
오래전 스쳐보았던 우표 속 그 마을
때까치소리 요란하던 고샅길
마음자리 출렁이며 흔들릴 때면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그곳, 우표마을
돌에도 온도가 있다
이섬
무너지지 않는다
폭풍과 회오리가 불어와도 끄떡없다
심하게 바람이 불면 잠시 흔들리면 그만 이다
마이산 탑사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원뿔형 돌탑들
돌에도 온도가 있다
배려하고 아껴주는 마음온도가 있다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다
암수가 조화를 이루어
빛의 암자처럼 세미하고 태산처럼 웅장하게
확장과 소멸을, 하늘과 땅을
높고 낮게 우주의 이치를 쌓는 탑 꾼이 된다
100년을 견디어온
큰 돌 작은 돌에 소원을 담는다
초겨울 기습추위도 너끈히 이기는
따뜻한 돌의 마음이 된다.
금강소나무 눈높이
이섬
통도사 입구에 도열해 있는 금강소나무
서 있어도 눕고 싶다
비스듬히 기대기도 하고 아예 팔을 괴고 누워서
제각각 편한 자세로 앉고 서 있다
금강소나무, 세상을 바꾸어보자는 당찬 내용은 아니지만
배려와 섬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토론이 진지하다
깊이깊이 뿌리내릴 한 뼘 땅도 광합성 작용할
햇살 한 자락도 골고루 보태고 나누자고,‘
세상을 이길 힘은 높은 곳으로 오르는 것만이
다는 아니라고,
온몸의 물관을 통과하여 손끝에 감지되는 작은 떨림이
마음 세포를 움직인다고,
하늘 높이 뻗지 못하고 휘어지고 구부러져 멋대로 자란
금강소나무의 멋스러움,
덕분에 나의 눈높이도
비스듬히 낮추어졌다
파라호에서
이섬
마음 문이 삐걱거려 무거운 날에는
파라호에 갈 일이다
460변 지방도로를 타고 꺼먹다리 건너,
골짜기마다 세찬 물줄기 구석구석을 휘돌아와
맑고 청정한 물의 자궁에서 굽이굽이 돌아온 물의
줄기가 꽃을 피우고 잎이 돋는 곳
산도 깊고 물도 깊고 숲도 깊어,
바람도 안개도 출렁이며 물로 다시 태어나오는 곳
전쟁의 상처가 깊게 암각된 파라호,
뼈아픈 역사도 어느덧 청정수로 헹구어 흐릿해졌다
휘어진 적송이 구름 사이배경을 만들고 보랏빛 칡꽃 송아리
주렁주렁 매달려 반갑게 환영의 종소리를 낸다
늦여름 드문드문 보이는 방문객들 기다리며
목을 길게 늘인다
파라호 짙푸른 물줄기에 닫힌 마음, 구겨진 마음, 상처 난 나음
마음 안과 밖을 물줄기로 씻어내 보면
땅 빛도 하늘빛도 눈 시리게 아름다워
마음자리가 깊어질 것 같다
칡넝쿨, 속마음
이섬
낯가림도 없이 넝쿨손을 내민다
한여름 퍼붓는 소나기의 옷깃에도 잽싸게 손을 뻗는다
그의 집념, 웬만한 틈만 있으면 얼른 자리부터 잡고 본다
만수산 드렁칡도 얼크렁 덜그렁 살아간다
그래 세상을 지탱해주는 건
어둠의 심장에 심지를 박듯이 하늘과 땅의 진액
다 품고 있는 뿌리라는 걸
그는 알고 있다
뿌리는 아픔이다
갈근갈근 씹어대는 쓰라림이다
아픔을 껴안을 줄 아는 속성이다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그만의 영역이다
위도 아래도 앞도 뒤도 모르는 막무가내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고?
한번 잡으면 결코 놓지 않는 그 성미,
한 여름 보라색 섬섬옥수 넝쿨손이
반갑다는 신호를 보낸다
자작나무 음악회
이섬
슈즈가 잘 어울리는 남자
하얀색 연미복에 연둣빛 나비넥타이
인재군 원대리 자작나무 숲에서 열리는 산상음악회,
지나가는 바람의 속삭임도 화음으로 거든다
이제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시작될 것이다
각각 자기 파트에 앉고 서 있는 늘신한 체격의
자작나무 군락
지휘자의 손짓에 따라
높고 낮게, 세고 여리게, 포르테 피아노시모,
음장과 박자를 맞추어간다
숲속의 음악회가 무르익어가고
바람이 불 때마다 잎과 잎을 부비며
절제와 배려로 산을 휘돌고 골짜기를
건너는 건장하고 훤칠한 자작나무 청년들
영혼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자연과 생명의 교감이다
나, 춤추러 간다
이섬
나, 춤추러 간다
진분홍색 열두 폭 샤틴치마 싸안고 춤추러 간다
치마꼬리 살짝 들어 올려 속 고쟁이 보일 듯 말 듯
허리는 곧추 세우고 어깨에 힘을 빼고
당겼다가 놓아주고, 조였다가 풀어주고
살랑살랑 물결이 출렁이듯, 봄바람 넘실대듯,
사분사분 엇박자로 나뭇잎이 돋아나듯,
깊은 산 속 은선 폭포 물굽이 내리 꽃이듯,
초가지붕 위 넘실대는 박 넝쿨이 듯, 굼실거리는 초겨울 햇살이듯,
무디어진 관절에서 우두둑 소리가 나도 나 몰라라
배화타령 한마당 간드러지게 돌고나면
어느새 나는 어깨춤 절로절로 육자배기 흥얼거리며
젓가락 장단 그리운 춤꾼이 되어
물결이 출렁이듯, 봄바람이 넘실대듯,
사분사분 나뭇잎 돋아나듯,
절로절로, 흥이 돋는다
백매화 통신
이섬
그리움의 염색체는 어떤 모양일까
무슨 색깔일까
봄이 잰걸음으로 온다는 서귀포 이중섭 갤러리
남향받이에 핀 하얀색 매화 한그루,
단아하고 정갈한 매무새다
꽃잎과 꽃술의 암각을 따라 그의 마음을 엿본다
현해탄을 건너 사랑하는 사람과 오고간 편지의 문자가
백매화 잎맥의 지문이 빼곡하다
가슴과 가슴으로 이어지는 뜨거움과 차가움,
아픔의 연속무늬다
문자마다 씨줄과 날줄의 갈피에 보랏빛 울음이 맺혀있다
백매화 몸살을 앓는다 깃 푸른 흐느낌이다
가난에 절어서 은지화로 그린 그림은 그의 아픈 손가락이다
생인손이다
있는 힘껏 걷어차 버리고 싶지 않은 기억의 돌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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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나의 시를 여물게 하는
햇볕에게, 바람에게, 눈 자작나무에게,
그리고 구절초에게,
나의 텃밭을 무시로 드나드는 고라니에게,
또 내가 믿는 그분에게 감사한다.
입곱 권 째 시집을 묶으면서
활자화 된 나의 시를 보는 일은
여전히 두려움인데,
이 두려움도 은총임을 뒤늦게 깨달아 가는 중이다.
일면 동안 월간 <우표>에서 에 연재했던 작품도 함께 모았다.
2016년 6월 초 녹음 짙은 梅香亭에서
이 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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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섬 詩集 [※고요의 맥을 짚다※]
[ 해설 ] -
시의 하모닉스harmonics부터 아미무스animus까지
김백겸 시인. 웹진<시인광장> 주간
하모닉스harmonics
월간 <시와 표현>의 요청으로 이섬 시인의 시집해설을 쓰게 되었다. 한 권의 시집을 정독하는 일은 비록 청탁에 의한 글쓰기라 하더라도 한 시인의 삶과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기에 조심스럽다. 인간의 사고언어와 표현 언어는 다르다. 감각과 경험의 블랜딩과 환상과 욕망, 집단무의식이 한 사람의 삶을 결정해나가는 블랙박스의 과정은 알기 어렵다. 뇌 과학자들은 인간의 암묵지식이 표현지식으로 드러나는 비율을 대충 10%로 본다. 텍스트만으로 한 작가의 삶을 혹은 한 인간을 있게 한 과거세의 총체적 인연까지를 상상한다고 해보자. 그 텍스트럼은 분석 심리학자나 점성술사의 해석까지 이르는 프리즘의 굴절을 보여줄 수 있다. 이섬 시인의 시 몇 편을 드러내서 시인이 시의 자유를 얻고자 하는 욕망과 기쁨, 노래의 잔향 하모닉스harmonics를 살펴보기로 하자.
열두 대문은 아니어도 쪽문 중문 대문 붙박이로 서서
마음껏 먹고 마음껏 삼키며 콩의 노래를 불렀지
점점 어깨가 넓어지고 가슴이 두둑해졌지
제일먼저 그리움을 배우기 시작했어 시인처럼
콩나무, 콩깍지, 콩자반이 시가 되었어
고소하고 맛깔스러운
잘 여문 서리 밤콩처럼 실속 있었어
떵떵거리며 살았지!
-「콩의 노래」전문
이 시를 보니 조조가 죽고 나서 황제가 된 형 조비 앞에 선 조식이 생각난다. 조비는 왕권 경쟁자였던 조식에게 일곱 걸음 만에 시를 짓되 형제라는 말은 쓰지 말고 형제를 주제로 시를 지으면 살려주겠다고 한다. 조식은 그 유명한 칠보시를 쓰고 목숨을 구한다. ‘콩대로 콩을 삶으니煮豆燃豆箕/콩이 솥 안에서 울고 있네豆在釜中泣/원래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本是同根生/서로 들볶음이 어찌 이리도 심한가相煎何太急’라는 시, 조식의 시는 불에 타는 목숨의 위험을 말했지만 이섬 시인의「콩의 노래」는 생명이 자라는 기쁨을 말한다. “콩나무, 콩깍지, 콩자반이 시가 되었어”라는 특이한 이미지는 시인의 전 존재가 시를 향해 자라났다는 상황이미지를 제시한다. 현실상황은 모르겠으나 시인의 전 존재가 콩이라는 식물의 성장에 투사되고 “제일먼저 그리움을 배우기 시작했어/시인처럼”이라는 진술처럼 시인은 그리움을 통해 시인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 그리움은 김소월의 한이나 패배 같은 그리움이 아니라 생명의 성장과 자유를 향한 그리움으로 나타난다. 콩이 무럭무럭 자라는 상황 암시를 통해 이섬은 시의 자유를 욕망하는데 독자는 이 짧은 시의 성장배경까지 상상해야 이 시의 재미가 드러난다. 그 상징배경은 우리가 아는 ‘흥부의 박씨’나 ‘재크이 콩나물’같은 이미지들이다. 이 우화는 씨앗을 통해 부와 권력을 쟁취하는 성장욕망의 알레고리에서 내면영혼의 성장과 여행 그리고 성숙한 인간으로의 귀환 알레고리까지 걸쳐있다. 이섬 시인이 이런 깊은 암시를 의도했는가와 상관없이 필자의 자유연상은 암시의 숲을 겨처 이 시를 만난다. 시의 힘과 특권인 암시가 독자에게 선물하는 시의 특별한 기능.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지향한다
슈즈가 잘 어울리는 남자
하얀색 연미복에 연둣빛 나비넥타이
싱그러움에 주위가 환해진다
인재군 원대리 자작나무 숲에서 열리는 산상음악회
지나가는 바람의 속삭임도 화음으로 거든다
이제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시작될 것이다
각각 자기 파트에 앉고 서있는 늘씬한 체격의
자작나무 군락
지휘자의 손짓에 따라
높고 낮게, 세고 여리게, 포르테 피아노시모
음정과 박자를 맞추어간다
숲속의 음악회가 무르익어가고
바람이 불때마다 잎과 잎을 부비며
절제와 배려로 산을 휘돌고 골짜기를
건너는 건장하고 훤칠한 자작나무 청년들
영혼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자연과 생명의 교감이다
-「자작나무 음악회」전문
“모든 예술은 끊임없이 음악의 상태를 지향한다”는 명제는 소펜하우어에서 시작했다. 문학에서는 순수를 지향했던 말라르메가 쓰고 미술에서는 몬드리안이 색의 구성을 통해 추구 했던 경지, 동양 미학에서도 시가무詩歌舞를 하나로 보았는데 이 모두를 관통하는 형식은 리듬이다. 시에서는 운율로 드러나는 음악의 상태를 지향한다.
이섬 시인은 자작나무 숲의 생명력 속에서 음악을 보고 있다. 자작나무가 군락을 오케스트라의 배열로, 이파리를 흔드는 바람은 자연이라는 연주자의 호흡, 이런 이미지들로 시인은 “인재군 원대리 자작나무 숲에서 열리는 산상음악회”를 보고 있다. 바람의 속도에 따라 흔들리는 자작나무들의 율동은 “높고 낮게, 세고 여리게, 포르테 피아노시모, 음정과 박자를” 드러낸다.
시인들이 사물에서 음악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시인이라 할 수 없다. 옛날에는 시인과 가수가 직업이 같았던 음유시인들이었다. 문화가 전문화 되면서 멜로디에 주안을 둔 노래와 의미에 방점을 둔 시로 갈라졌으나 한 몸의 다른 얼굴인 야누스으 얼굴일 뿐, 시와 노래는 같은 것, 그래서 옛 사람들이 “이야기는 거짓이나 노래는 참말이다”라는 언급도 근거가 있다. 노래는 감정의 순일한 상태가 리듬으로 드러난 것이니 허구감정으로 노래를 부를 수가 없기 때문, 원래 노래인 시도 그래서 허구적인 감정으로 쓸 수는 없다.
이섬 시인이 사물에서 음악의 상태를 보여주고자 하는 시편들이 몇 개 더 있다. 시 「밭두렁」에서는 “한 번 들으면 절대로 잊혀지지 않을/그 음악/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악장/아다지오, 느리게 느리게/고랑에 넘실댄다”고 말한다. 시「비수구미」에서는 “물의 아픔 물의 고뇌를 들을 수 있을까/살아가노라 염려와 걱정으로 무거워진 마음 다 내려놓고/잔잔한 물결로 마음 수위가 찰랑일 수 있을까/계곡 속에 숨어있는 아홉 가지 물의 비밀을 캐낼 수 있을까//물의 노래 물의 기쁨을 해독할 수 있을까”로 물의 음악적 상태에 동화된 시인의 마음을 드러낸다.
돌의 미학
무너지지 않는다
폭풍과 회오리가 불어와도 끄떡없다
심하게 바람이 불면 잠시 흔들리면 그만이다
마이산 탑사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원뿔형 돌탑들
돌에도 온도가 있다
배려하고 아껴주는 마음온도가 있다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다
암수가 조화를 이루어
빛의 입자처럼 세미하고 태산처럼 웅장하게
확장과 소멸을, 하늘과 땅을
높고 낮게 우주의 이치를 쌓는 탑 꾼이 된다
100년을 견디어온
큰 돌 작은 돌에 소원을 담는다
초겨울 기습추위도 너끈히 이기는
따뜻한 돌의 마음이 된다
- 「돌에도 온도가 있다」전문
마이산 돌탑을 소재로 했다. 마이산은 얼핏 보면 화강암처럼 보이나 풍화침식에 의해 구멍이 패인 모습들의 암반이다. 자료를 보니 약1억 년 전에 호수가 흙과 모래에 자갈이 쌓인 역암의 지층융기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한다. 마이산을 중심으로 불쪽으로는 운장산, 대둔산, 계룡산으로, 남쪽으로는 팔공산과 지리산으로, 서쪽으로는 만덕산과 모악산으로, 동쪽으로는 덕유산과 민주지산으로 이어지는 산맥들이 십자형으로 산山태극을 이룬다.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사이의 천황문을 분수령으로 빗물의 수원이 북쪽으로는 금강, 남쪽으로는 섬진강을 만들어 수水태극을 이룬다고 한다.
이섬 시인은 첫 “무너지지 않는다/폭풍과 회오리가 불어와도 끄떡없다/심하게 바람이 불면 잠시 흔들리면 그만이다/마이산 탑사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원뿔형 돌탑들”이라고 느낌을 말하고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 돌탑이 백년이 넘도록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이유가 있다. 처사 이갑이 25세 때 마이산에 들어와 솔잎생식을 하는 수련 중에 석탑을 쌓으라는 신의 계시를 받아 쌓았다 한다. 30리 밖에서 돌을 날라 팔진도법과 음양이치에 따라 축조를 하고 상단부분은 기공법을 이용하여 쌓았다고 하니 신비한 이야기다.
이섬 시인은 신화적 사유에 의한 감동으로 이 시를 썼다. “암수가 조화를 이루어/빛의 입자처럼 세미하고 태산처럼 웅장하게/확장과 소멸을, 하늘과 땅을/높고 낮게 우주의 이치를 쌓는 탑 꾼이 된다”는 진술은 돌탑의 영원성에 대한 이미지를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돌에도 온도가 있다/배려하고 아껴주는 마음온도가 있다는” 표현은 타자인 돌과 주체인 내가 한때는 같은 존재였으리라는 느낌의 발로이다.
현재에 드러난 개인의 삶은 시간의 주름으로 접혀 들어갔거나 시야에서 사라진 은폐, 혹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미래의 삶과 연속되어 있으며 분할해서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의 삶은 내적으로는 유전자의 긴 진화시간과 외적으로는 자연과 문명의 긴 변화 속에 위치해 있다. 의식에서 은폐되었기에 무의식적 시간에 잠겨있는 과거와 미래는 특별한 순간에 그 비전과 느낌을 현재에 드러내기도 한다. 시인과 예언자는 이런 감수성이 있는 사람들인데 이섬 시인도 이런 무의식적 느낌을 시에서 드러내고 있다.
돌에 대한 이섬 시인의 섬세한 느낌이 표현된 시편이 하나 더 있는데 시「바람은 모두를 흔들리게 한다」이다. “바람의 지문이 찍힌 검은색 현무암 숭숭 뚫린 구멍”“바람 그물” “등구비 숭숭 뚫린 구멍마다 바람이 걸어간 발자국”같은 표현들은 돌과 바람의 섬세한 교감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바람(주체)와 돌(타자)의 이미지는 결국 나와 세계의 관계를 드러내고자 하는 시인의 무의식적 이미지들이다.
상그릴라와 무릉도원
이 계곡 어딘가에
복숭아 꽃 만발한 상그릴라로 가는 동굴이 있을법한
바위와 바위가 의좋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제풀에 흥에 겨운 반지르르 귀티 나는 동안의 바위총각
옛 시인 묵객과 단짝이었다고
팔이며 등짝에 새겨진 다채로운 색채의
깨알 같은 문신
햇볕에 닿고 비바람 오랜 세파에 마모되고 희미해도
훈장인양 이리저리 내 보이며 무용담이 한창이다
싱글벙글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살의 호탕한 웃음소리
골짜기로 내기꽂히며
바윗등 타고 골골이 메아리로 대답하는 무릉계곡, 석각
신선이 노닐던 이세상의 별천지라고
상투머리 너럭바위 신이 나서 입이 벙글어진다
동해시 삼화동 무릉계곡
그곳에 발목 잡히고 싶다
-「바위들이 웃는 곳」전문
지상에 존재하는 평화롭고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서양의 유토피아가 ‘상그릴라’이다.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의『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지평이라 한다. 반면에 동양의 무릉도원은 도연명이 쓴『도화원기桃花源記』에 기원을 둔다. 모두 인간이 갈 수 없는 오지에 있고 소설과 시에 등장하니 현실에는 없는 꿈의 장소이다.
중국 정부가 관광목적으로 중국 원난성 디칭티베트족 자치주에 있는 현 중뎬中旬을 2001년 샹그릴라 하고 개명하였으나 실재하지 않는 장소이다. 샹그릴라는 티베트어로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는 뜻이라 하니 의미심장하다. 마음속의 원초적 사건 즉 서양의 에덴이다. 지복이 있는 낙원과 실낙원의 사건은 모두 무의식의 욕망과 원망이 관계하는 심리적 사건이라는 얘기.
우리나라에도 무릉계곡, 무릉리 등 무릉이 들어간 지명이 꽤 된다. 이섬 시인은 “동해시 삼화동 무릉계곡/그곳에 발목 잡히고 싶다”는 열망 때문에 이 시를 썼다. “복숭아 꽃 만발한 상그릴라로 가는 동굴”.“신선이 노닐던 이세상의 별천지”는 모두『도화원기桃花源記』의 이미지들을 패스티쉬pastiche한 것이다. 독자는 익숙한 문화적 상징의 차용 때문에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금방 알아차린다.
필자는 이 시의 제목인「바윗돌이 웃는 곳」이라는 이미지와 앞 글 ‘돌의 미학’에서 분석한 이미지들과 연관주제를 말해보고자 한다. 영생불사의 복숭아가 있는 무릉도원이든 세속을 초월한 샹그릴라이든 모두 바위가 있는 동굴을 지나야 한다. 비밀장소는 바위와 협곡으로 둘러싸인 장소이다. 태초의 생성시간과 원초성을 간직한 곳인데 인간의 심리적조건과 관계하는 곳이니 유추하면 어머니의 자궁이다. 태아(주체)는 어머니의 산도(바위 협곡)를 거쳐 낙원으로부터 현실(실낙원)의 시간에 진입한다. 어머니라는 세계로부터 분리된 자아는 어머니와 한 몸이었던, 즉 세계와 한 몸이었던 지복의 순간에 대한 향수가 있다. 인간은 현실이 가혹할수록 삶의 심리적 균형을 이루고자 꿈과 무의식에서 혹은 작품에서 어릴 적 유년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무릉도원과 상그릴라로 혹은 에덴으로.
세계도서관과 감정이입의 투사投射
그곳에서는 질경이 엉겅퀴 명아주가 주인이다
의젓하게 주인행세를 한다
방문객이라도 올라치면 제일 먼저 달려 나가 허리를
굽실대며 손을 잡아 이끌며 인사를 한다
빙 두른 산자락은 제 그림자에 몸을 감추고
5월의 등 따뜻한 햇볕은 갈 길이 바쁘다
숲속의 작은 도서관
헤아릴 수 없이 빼곡하게 채워진 서가에 뽀얀 먼지 둘러쓴 책
각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언젠가 찾아올 임자를 기다리며
구구절절 사연도 깊다
누군가의 손을 거쳐 예까지 왔다고
세상을 들썩일 만큼 위력도 있었다고
금수산 산골마을에서
오늘도 바람에게 강물에게
세상의 이치를 깨우쳐 주겠다고
그 많은 활자들이
때를 기다리는 중이다
-「숲속의 작은 도서관」전문
아르헨티나 시인 보르헤스는 “천국은 도서관처럼 생겼을 것”이라는 말을 한바가 있다. 보르헤스에게 지식과 정서, 오성은 책들이 있는 도서관에 있었고 아르헨티나 우파정권이 보르헤스를 국립도서관장으로 임명했을 때 행복해 했다. 보르헤스에게 자연은 거대한 도서관이었고 작가는 이 자연의 비밀과 지식을 언어로 옮기는 사람이었다.
「숲속의 작은 도서관」이라는 제목은 시인이 숲의 나무와 풀로부터 사물의 인식에 관한 지식을 얻는다는 암시를 말하고 있다. “헤아릴 수 없이 빼곡하게 채워진 서가에 뽀얀 먼지 둘러쓴 책/각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시적 진술을 흥미롭다. 필자 역시 책과 많은 인연을 맺고 살아온 사람이라 책의 은유와 상징에 관한 문장을 좋아한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많은 지식과 비밀을 얻어온 역사가 문화사이다. ‘문명文明’이라는 글자는 언어와 기호로 자연의 어둠을 걷어내고 인간에게 유용한 지식과 비밀을 쟁취한다는 뜻이 있다. 서양의 ‘Culture'도 그 기원은 자연을 경작해서 인간마을을 풍요롭게 하는 뜻이니 비슷하다.
숲이 도서관이니 나무와 풀은 책인데 “오늘도 바람에게 강물에게/세상의 이치를 깨우쳐 주겠다고/그 많은 활자들이//때를 기다리는 중이다”는 진술에서의 활자들은 이파리쯤으로 인식하면 되겠다. 숲의 책들이 ‘세상의 이치’를 깨우쳐 주겠다는 대상은 ‘바람’과 ‘강물’인데 바람과 강물은 숲을 지나가는 존재 즉 시인자신의 은유이다. 숲의 자연은 인간에게 그대로 자신의 지식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시「숲속의 작은 도서관」은 인간이 자연물과 동화된 감정이입으로 자연자신이 되었을 대 자연의 비밀한 지식을 드러낸다는 암시를 말하고 있다.
이섬 시인의 숲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입은 다음 시에서도 드러난다.
어린 학생들 오가는 통학 길, 기세 좋게 울울창창 뻗으며 기품있게 자라던 조선소나무 한그루, 언제부터인지 물기 마르고 푸석푸석 피부에 탄력이 없어지더니 우수수 나무 잎 떨어뜨리며 속과 겉 하얗게 바라며 위태롭게 서 있다.
지난 여름 즐기며 등걸에 빈틈없이 붙어있던 중국매미탓인가, 매미의 독침에 시달리고 눈 따갑게 쏘아대는 황사 침에 얼마나 견딜 수 없었으면 모험과 시샘의 악풀에 시달렸으면 간이며 쓸게 다 빼주고 한세상 살아가노라 쌓아올린 공적 다 비ㅝ내고 허깨비처럼 빈 가슴만 부여잡고 있다. 나날이 누렇게 변해가는 모습 더는 볼 수 없어 그를 보내주기로 했다 안락사 해주기로 했다
아직은 심장이 뛰고 있는데, 가슴 뜨거운 온기가 남아 도는데, 속정 겉정 다 버리고 더는 붙잡지 않기로 했다
-「그를 보내기도 했다」전문
시적 대상은 한반도 이상기후로 말라가고 있는 ‘조선소나무이다. 침엽수인 소나무가 아열대기후로 변하는 중인 한반도 기후에 적응하지 못하는 과학적 사실과는 다르게 시인은 고사의 원인을 “등걸에 빈틈없이 붙어있던 중국매미”라 진술한다. 시인이 알레고리의 장치를 이 시에 적용했을까. 알레고리라면 조선소나무는 높은 기품을 가진 대인大人의 은유이고 독침을 가진 매미는 시샘을 하는 소인배들의 은유가 된다. “악플”에 시달렸다는 표현도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다. 이섬 시인이 의식적인 알레고리로 자신이 알고 있는 한 인물에 대한 표현을 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조선소나무가 복잡한 상황 속에 놓인 사람에 대한 투사인 것은 확실하다. “아직은 심장이 뛰고 있는데, 가슴 뜨거운 온기가 남아도는데, 속정 겉정 다 버리고 더는 붙잡지 않기로 했다”는 인간적인 감정의 마지막 표현도 이를 뒷받침한다. 시인의 사랑은 사물(대상)에 대한 투사를 통해 자신의 나르시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이 시의 작사동기가 알레고리라면 외부적 상황을 드러낸 것이지만 무의식으로 드러난 서정의 은유라면 시인 자신의 정서적 내부 상황을 외부사물에 투사한 것이 된다.
해석은 독자의 자유
신 월령가
이 시집에서 특이한 시가 12개의 단시로 묶은 『신월령가』이다. 월령가는 농사에 관한 실천 사항과 철마다의 풍속과 예의범절을 달에 따라 읊은 월령체가사. 이섬 시인은 월령가를 패러디해서 시인 자신만의 「신 월령가」를 썼다. 주제는 계절의 변화에 반응한 자연을 바라보는 시인의 기쁨. 자연의 생명력에 대한 시인의 시적 엑스타시가 좋아 보인다.
밤새도록 신열에 시달리더니
이른 새벽 바오밥나무 가지마다 터지는 연둣빛 촉
그의 심장에서 돋아나는 연분홍 실금
-「신 월령가」소제목「연두, 잎 새달」
“연두 빛 촉”과 “연분홍 실금”의 색체이미지의 대조설정이 아름답다.
단숨에 진초록 생즙 한 사발 넘기는 소리
은사시나무 한 뼘씩 키 자라는 소리
금강소나무 몸 비틀며 품 커지는 소리
불끈불끈 근육질이 단단한 사내
보기보다 정이 많은
온 누리에 골고루 생명의 소리 넘치게 하는
소리, 소리.
-「신 월령가」소제목「누리달, 생명의 소리」
자연의 생명력을 소리로 드러내 독자의 공감각적 심상을 유도하고 있다. 자연에서 얻은 이런 표현들의 연마가 이섬 시인의 앞으로 나갈 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한 해의 생명력이 다하는 11월이 되면 자연은 숙살肅殺의 기운이 충만하게 된다. 그 상황을 소리로서 드러낸 표현들도 있다.
저 소리 좀 들어봐!
가을에서 겨울로 막 뛰어가는 발자국 소리
당단풍 어우러진 올레길에서부터 휘돌아온 바람이
부산하게 매무새 여미는 소리
목도리에 장갑, 귀마개까지 챙기는 소리
게으른 귀뚜라미 울다가 그쳤다가 뒤척이는 밤
나도 덩달아 잠을 잃어버렸다
-「신 월령가」소제목「서리서리-미름달」
시의 아니무스Animus
이섬 시인은 자연에 대한 유토피아적인 동경을 가지고 있다. 예술작품과 시는 유토피아적인 시인의 꿈을 반영한다.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준 플라톤의 미학이론은 인간의 현실세계를 이데아Idea라는 세계본질의 복사Simulacre로 보았다. 예술작품은 현실의 복사Simulacre이니 플라톤에게 예술작품이란 이데아의 복사의 복사이다. 예술작품의 불완전성은 대조적으로 세계의 완전성과 영원성이 이데아의 모습을 더 빛나게 한다. 상징이미지들은 『도화원기桃花源記』나 성서의 신화 속에서 현실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있다.
현실은 너무 크고 복잡하기에 이를 통해 이데아를 상상하기에는 벅차나 예술가가 어느 한 현실의 모습을 액자 안에 담으면 액자안의 그림은 현실과 이데아의 상징을 동시에 드러낸다. 미술관의 명화들이 어느 순간 관객에게 영원성의 이미지와 숭고의 감정을 보여주는 이유이다. 액자 그림 안에 드러난 플라톤의 이데아와 현실과 시인의 환상이 투영된 작품이 시「우표마을」이다. 이섬 시인이 가보고자 하는 마을은 현실에 있지 않고 액자그림인 우표에 있다.
무더위가 켜켜로 쌓이고 불쾌지수가
수직상승하는 날에는 더더욱 생각나는 곳
낮은 초가지붕에 함박눈이 쌓이고
눈 덮인 측백나무 울타리 옆 적막이 서성이는 곳
뒤란을 지키는 납매 한그루 언 손을 녹이며
봄을 기다린다
키 낮은 굴뚝에서는 가는 연기가 수묵화처럼
피어오른다
어디선가 반가운 소식이라도 가져올 것 같은
빨간 손가방의 집배원이 기다려지는 곳
오래전 스쳐보았던 우표 속, 그 마을
때까치소리 요란하던 고샅길
마음자리 출렁이며 흔들릴 때면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그곳, 우표마을
-「우표마을」전문
이섬 시인에게 이상적인 몽환의 마을은 “마음자리 출렁이며 흔들릴 때면 꼭 한번//가보고 싶은/그곳, 우표마을”이다. 현실을 벗어난 유토피아적인 장소인 자연으로부터 시인은 영혼의 두근거림을 얻는다. 시인은 결국 세계에 대한 연애편지를 쓰는 사람이다. 옛 사람들은 수신자가 없는 연애편지인 시를 쓰고 흐르는 물에 띄워 자연으로 부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섬 시인은 이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연애를 하고 싶은 모양이다. 세계 혹은 자연으로부터 연애편지를 기대하고 있으니. 시「파도 빛 연애편지」에서도 “파도가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쓴//닭살 돋을 만큼의 두근거림과 설렘이/물결무늬로 출렁대는//그런 연애편지를 받고 싶다”고 마지막 연을 끝내고 있다. 물론 그 연애편지는 시이다. 시속의 환상인 아니무스animus로부터 받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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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시력 25년의 중견시인인 이섬의 시세계나 자세는 국민시인이라 할 만큼 뚜렷하다. 이 땅의 정서가 배인 가락과 호흡을 누구보다 초지일관으로 잘 다듬어 온 시인이다. 이섬의 시를 읽으면 향기가 난다. 그것은 “성긴 베보자기에 바람과 안개를 넣어 짜내면 / 꼭 그만큼의 촉촉함이” 우러나는 것 같은 향기다. 아니 우리들 일상의 상처나 갈과 등까지도 합일하는 경지에 이른 장인의 솜씨와도 같다. 이번 시집에서 내가 크게 감동한 것은 시적 형상화에 있어 일관되게 사물을 “마음속 흥채를 크게 뜨고 마음으로 읽고 / 마음속에 그려 넣어야 한다.”라는 마음공부다. 일상의 사물을 겉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사물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시인으로서의 자세다. 시집 곳곳에 보이는 시적 생동감을 주는 싯귀도 다 마음공부에서 나온 결과다. “스마트폰으로는 흉내낼 수 없는 절절한” 사연들을 노래하는 이섬 시인. 그녀의 초록 같은 시집이 한 여름의 느티그늘 아래로 지금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 강우식 시인. 전 성균관대학교시학교수
이섬 시인은 자연에 대한 유토피아적인 동경을 가지고 있다. 예술작품과 시는 유토피아적인 시인의 꿈을 반영한다.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준 플라톤의 미학이론은 인간의 현실세계를 이데아Idea라는 세계본질의 복사Simulacre로 보았다. 예술작품은 현실의 복사Simulacre이니 플라톤에게 예술작품이란 이데아의 복사의 복사이다. 예술작품의 불완전성은 대조적으로 세계의 완전성과 영원성인 이데아Idea의 모습을 더 빛나게 한다. 상징이미지들은『도화원기桃花源記』나 성서의 신화 속에서 현실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있다. 미술관의 명화들이 어느 순간 관객에게 영원성의 이미지와 숭고의 감정을 보여주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섬 시인의 시「우표마을」은 액자 그림 안에 드러난 플라톤의 이데아와 현실과 시인의 환상이 투영된 작품이다. 이섬 시인이 가보고자 하는 마을은 현실에 있지 않고 액자그림인 우표에 있다. 시속의 환상인 아니무스animus로부터 받고 싶은. (해설「시의 하모닉스harmonics부터 아니무스animus까지」 중에서)
- 김백겸 시인, 웹진〈시인광장〉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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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섬 시인∥
∙ 전북 정읍 출생
∙ 한남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 1995년 국민일보 국민문학상 시부문 2천만원 고료 당선
∙ 2004년 문예진흥원 우수도서 선정 (초록빛 입맞춤)
∙ 2008년 김장생문학상 대상 수상
∙ 2014년 한국시문학상 수상
∙ 시집 『누군가 나를 연다』『향기나는 소리』『초록빛 입맞춤』『사랑아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황촉규 우리다』『고요의 맥을 짚다』
∙ 시선집 『초록, 향기나는 소리』
∙ 에세이『보통사람들의 진수성찬』『외갓집 편지』
∙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시인협회 회원, 국제펜클럽 회원, 기독교 시인협회 회원, 계룡시 문인협회 전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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